[전선] 186호 8-8 양질전환과 헤게모니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2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홍승용 ㅣ 현대사상연구소

1. 파국의 가시화

미국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한 예고는 자본독재의 첨병들인 주식과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벌써부터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본질은 미국 중심 다국적 금융자본의 글로벌 수탈체제가 갈수록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이제 그 종말의 출발점에 와 있다는 것, 자본독재의 종주국에서부터 체제 붕괴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 아닌가. 어떤 미봉책들로도 해소될 수 없는 이 근본문제는 이미 1세기 전 레닌이 명확히 개념화한 바 있다. 즉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능가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 자본주의의 부후하는 최종단계, 즉 제국주의가 그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누려온 달러패권에는 군사력이나 이데올로기만 아니라 고도의 생산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생산력발전은 불균등하다. 점점 더 많은 생산력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 독일, 대만, 한국 등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달러패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서 전쟁의 불씨로 작용한다. 생산력의 불균등발전에 따른 경제영토 재분할은 국제법 따위가 아니라 힘관계에 의해, 결국 제국주의전쟁을 통해 결정된다. 제국주의전쟁은 이미 인류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제국주의적 착취와 수탈체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전쟁의 참화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예측불허다.

연일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지진이나 쓰나미 등은 물론 인간적 요인을 벗어난 자연재해다. 그러나 이로부터 파생되리라 충분히 예상되는 재난, 즉 제2, 제3의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는 확실히 인재다. 즉 자본증식을 절대원리로 삼아온 자본독재체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온난화에 앞서 핵재난으로 폭발할 환경재앙, 경제위기로 인한 절대빈곤의 전지구적 양산, 일상화된 제국주의전쟁의 참화는 인류문명을 당장이라도 끝장낼 수 있는 재앙의 삼위일체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에 맞서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자본독재의 노예이길 거부하는 노동자민중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 양질전환

대안사회 건설은 객관적 필요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극복을 위한 방법과 대안의 구체적 전망을 공유하는 조직적 주체세력이 일정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위기는 혁명이 아니라 야만의 밑거름이 되기 쉽다. 최근 영국의 반이민 폭력시위가 그 단적인 예다. 노동자계급의 분열, 외국인 혐오, 성적, 지역적, 세대간 갈등, 운동의 파편화, 각자도생 문화 등등을 유도⋅조장하는 것은 자본독재세력이 교육⋅문화사업⋅소비구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무기다. 뿌리깊은 반공이데올로기, 특히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확산된 반노동자중심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허물고 대안사회 건설의 주체적 조건을 만드는 과정은 바로 자본독재에 맞선 해방전쟁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이다. 주체적 조건 형성의 요체는 대안전망의 생산과 대중적 공유다. 대안사상⋅이론⋅정책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지식노동자들이나 활동가들이 극소수에 머물고, 또 그 성과들을 노동자민중 다수와 공유하지 못한다면, 고전적인 표현으로 ‘이론이 대중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지금처럼 자본독재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노동자민중을 압도한다면, 어떤 위기가 밀려와도 대안사회 건설은 첫발을 떼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노동자민중 모두가 대안사상으로 무장해야 대안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와 혁명적 변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교육과정을 압축하고 주체적 조건의 질적 도약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도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어느 정도의 양적 팽창, 즉 적극적 주체들의 조직화와 조직의 일정한 확장을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안의 구체화와 함께, 이를 조직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절대적으로 시급한 당면과제다.

3. 헤게모니

대안세력의 양적 팽창은 수정주의나 개량주의의 온상을 만든다고 우려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조직의 확장에 소극적이거나, 대규모 조직들의 기존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피한다면, 소수의 폐쇄적 스터디그룹을 넘어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세력확장 자체가 운동의 목표일 수도 없다. 이 난제를 헤쳐나가는 데에는 헤게모니 개념이 유효하다. 대안사상⋅이론⋅정책으로 무장한 적극적 주체들이 아직 소수일지라도, 다수가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면 변질 없는 조직확장도 가능한 것이다.

다수의 자발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대안사상⋅이론⋅정책이 현실성과 호소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호소력 있는 대안이론 생산을 위한 체계적 연구와 치열한 논쟁 및 검증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필요 있다. 또 검증된 성과들을 광범하게 공유하기 위한 조직적 교육체계를 제도 차원에서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때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당이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도록 추동하는 것도 고려할 만한 과제다. 무엇보다 대안의 대중화에 적극 나서는 주체들이 헌신적 활동을 통해 대중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헤게모니 형성의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자본독재와의 가시적 대결만 아니라, 대안세력의 확장과정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일부터가 해방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요인이다. 밀려오는 위기를 호기로 전환하기 위한 시간싸움에 전력을 다하자. 재앙은 그냥 기다리는 이들의 몫이다. 전력을 다하는 이들의 몫은 승패를 넘어선 삶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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