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진상은
새해 벽두에 북에서 전해온 소식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등이 남북을 이 “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이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는 소식,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ㆍ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 삭제되어야” 한다는 소식 등에 상당수 사람들이,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 운운하며, 꽤 놀라고 있는 것 같다.
무리도 아니다. 적어도 외교적 혹은 수사적으로는 “자주ㆍ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추구해 왔던 종래와는 사뭇 다른 선언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남북관계 혹은 북남관계에는 아무런 근본적 변화도 없다. 사실상 누구나 내심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정치적ㆍ외교적 필요에서든, 그 ‘분위기’에 뇌동하거나 억눌려서든,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던, 현실을 사실로서 공인한 것일 뿐이다. 사실, 계급적 성격이 전혀 다른, 아니 극히 적대적인 두 사회체제가, ‘연방제’든, ‘국가연합’이든, 소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한 국가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환상일 뿐이 아니던가?
그런데 북은 왜 지금 저런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일까?
이런저런 의견이 없을 수 없겠지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부쩍 격화된 대북 적대, 특히 미국의 핵잠수함ㆍ핵항공모함ㆍ핵 항공기 등도 모자라 일본군까지 끌어들여 거듭거듭 펼쳐왔고 펼칠 계획인 대북전쟁연습이 결정적 계기ㆍ원인이었을 것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대북 적대를 주도하는 것이 윤석열 정권이나 대한민국 정부는 결코 아니다.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미제국주의다. 예컨대, 남북관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훤히 알 것임에 분명한 전 통일부 장관 김연철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섯 번의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ㆍ북ㆍ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때 가능했다.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한겨레≫, 2023. 2. 5; 강조는 인용자.)
분명, 남북관계를 결정해온 것은 “북”과 “미”이며, 한국은 그럴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저 말에 이어진, “‘우리 민족끼리’는 관성에 의한 구호일 뿐, 정책 현실은 아니었다.”는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적대적인) 두 국가”가 현실임을 사실상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남북이 합의 하에 유엔에 동시가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두 국가” 사이의 평화ㆍ전쟁 문제는 어떤가?
북의 선언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에 이어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종전협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킬 뿐, 실전 중이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그렇다면, “두 국가”라는 규정, 특히 헌법에서 “북반부”라는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은, 허다한 불안 요인들을 안고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평화를 향한 일보전진이랄 수 있다. “북조선”ㆍ“남조선” 하며, 실제로는 국경선인 ‘휴전선’ 이남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영토시(視)했던 태도를 바꾸어, 이북만이 조선이고, 이남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한’ㆍ‘북한’이라고 부르는 것, ‘북조선’ㆍ‘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을 있는 대로 반영하는 정명(正名)이 아닐뿐더러, 지양해야 할 대결적 언어 아니던가!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는 사실도 망외로 확인되었다. 북측 자신도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온갖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국가보안법도 있고 하니, 누가 보나 가장 친(親)국가보안법적이고, 가장 친미적이며, 가장 반북적인 ≪조선일보≫에 근거하자면,
“北韓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외교ㆍ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 기사 제목이다.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properly assess the crisis situation: [이하 영문 생략-인용자]) 못하고 경각심 흐트러뜨리는 무책임한 진단(…)으로 들린다. 그런데 그런 단언을 하는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다. / “김정은이 한국ㆍ미국ㆍ일본을 계속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핵 위협과 잇단 미사일 발사는 화해 희망을 어둡게 하면서(…) 한반도의 영구적 긴장을 고착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 하지만 그런 추측과는 반대로(…) 김정은의 최근 행보는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 전쟁을 일으킬(…) 준비라기보다는 되레 전쟁 억제 시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재래식 무기 전력(…)의 상대적 약점을 감추려는 기만 행위(…)다. 한ㆍ미 동맹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통한 북한 공격 무력화, 김정은 참수(…) 작전 등에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으로 군사력을 배양하며, 중국ㆍ이란을 아울러 반미(反美)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자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개연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전문가칼럼 [윤희영의 News English] ‘北韓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2023. 2. 8.)
명확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쟁을 원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끝으로, 그러면 남북관계의 진실을 대략 확인한 우리 노동자ㆍ인민은, 특히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우선 ‘우리민족끼리’니, ‘남북은 하나’니 하는 환상을 청산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자ㆍ인민대중이 허위 선전ㆍ선동에 놀아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한 선진노동자들의 노력과 역할이 필요이다. 노동자 대중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계급으로서의 그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고, 그 사명 수행에 나설 수 있도록 추동하는 선진노동자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 사회의 계급적 분열ㆍ분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