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47호 10-3 진보교육감 12년, 성과와 한계

이을재 ㅣ 전 전교조 조합원

1. 진보교육감의 탄생과 진보교육운동의 도약

2006년 12월 20일 국회에서 주민 직접 선거로 시도교육감을 뽑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1) 이 법에 따라 시도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 것은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가 처음이며, 교육감 직접 선거는 2010년 6월 30일부터 모든 시도에서 전면 시행되었다.

그 이전까지 교육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이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관료적 지배와 통제 아래에 있었던 셈이다. 해방 이후 60여 년 동안 교육감은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하거나 어정쩡한 간접 선거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지방교육자치제도가 시행된 1991년에야 대통령이 교육감을 임명하는 제도가 중단되고, 시도의회에서 선출된 교육위원들이 교육감을 선출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에는 각 학교별 1명씩의 학교운영위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교육감을 선출하고, 2000년부터는 선거인단이 확대되어 학교운영위원 전원이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2008년이 되어서야 주민 직선으로 교육감을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6년 12월 개정된 법에 따라 2008년 7월 처음 시행된 서울교육감 주민 직접 선거에 진보교육운동 단체에서 추대된 당시 건국대 주경복 교수가 최초의 진보교육감 후보이다. 주경복 후보가 현직 교육감이던 공정택 보수교육감 후보에게 밀려 2%의 득표 차이로 낙선하고, 2009년 시행된 경기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후보인 김상곤 후보가 당선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진보교육감이다.

2009년 경기도에서 처음 당선된 후, 2010년 6월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행된 교육감 선거에서 경기도, 서울, 강원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에서 6명의 진보교육감이 무더기로 당선되었다. 다시 4년 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절반이 넘는 13명, 2018년에는 14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올해 2022년에도 과반수인 9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이 같은 진보교육감의 대대적인 진출은 교육감 직선제라는 민주적 선거제도로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권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선택하게 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들 진보교육감의 진출 뒤에는 오랜 기간의 진보교육운동이 있었다. 진보교육운동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물론, 학부모, 청소년 학생 등 시민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 진보교육운동 세력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전국 각지에 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이들이 진보교육감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진보교육운동의 견인차는 전교조임이 틀림없다. 1989년 창립된 전교조는 70~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운동, 특히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진보교육운동은 교사들에 그치지 않았다. 학부모, 학생 등 일반 시민들은 전교조 후원 운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였으며,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부모 단체, 청소년 학생 단체, 교육 시민단체 등을 만들어 교육 문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내거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진보교육감의 대진출은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이들 진보교육운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 진보교육감의 성과와 한계

1) 진보교육감의 의의와 성과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기존의 대한민국의 교육에 심각한 모순이 누적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교육모순들에 대한 비판과 개혁 요구가 주민들의 지지와 선택을 받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교육감들의 주요 정책공약은 입시경쟁 교육의 폐기,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 무상급식과 교육복지의 확대, 학생인권 보장과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 등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진보교육감의 정책 공약 제출 자체만으로도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진보교육감 이후 교육정책에 나타난 주요 변화는 일제고사 폐지, 학생인권조례 제정, 학교 무상급식, 혁신학교 실험 등이다. 이러한 교육정책들은 대한민국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 이전 수십 년 동안 견고하게 지켜졌던 교육제도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온 적지 않은 변화였으며, 궁극적으로 교육의 근본적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가. 일제고사 폐지

일제고사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이전까지 일부 학교,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표집 방식의 전국학업성취도평가를 전체 학생들에게 일제히 치르게 한 것을 말한다. 이는 이전까지의 성적경쟁과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전교조 등 진보교육운동 진영과 시민들은 교육의 획일화와 서열화 그리고 비교육적 경쟁과 차별 심화 등을 이유로 전면적인 반대운동에 나섰으나, 불통 이명박 정부는 반교육적 일제고사 정책을 강행하였다.

진보교육감 당선 이전인 2008년경 일제고사 당일 체험학습 실시, 일제고사 선택권 부여 등으로 일제고사 반대 투쟁에 참여한 교사들 12명이 해임, 파면되고 30여 명의 교사들이 징계를 받았으나, 2010년 전국에서 당선된 6명의 진보교육감들은 2008년부터 2012년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일제고사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들은 교육부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시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제고사 시행을 전면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교육부에 일제고사를 표집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일제고사 분담금을 내지 않거나, 일제고사 시행 여부와 시험 과목 수, 시험지 종류에 대한 선택권 등 시행 방법을 각 학교장에게 위임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고, 학생,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일제고사의 전면 실시에 제동을 걸었다.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완강한 일제고사 반대 투쟁 끝에 결국 2013년에는 박근혜 보수 정권이 후퇴하여 초등학교 일제고사가 폐지되었으며, 2017년에는 중학교 일제고사까지 폐지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일제고사 강행 방침도, 결국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일제고사 시행 공문 이첩, 일제고사 반대 투쟁 교사 징계 방침 공문 이첩 등에서 보인 진보교육감들의 애매한 태도에 투쟁 동참을 기대했던 진보교육운동의 일부 활동가들에게는 아쉬움과 실망을 주어,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관계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나. 학생인권조례 제정

학생인권조례의 제정도 진보교육감의 주요 치적으로 꼽힌다. 2010년 경기교육청을 시작으로 진보교육감 지역인 광주, 서울, 전북 등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으며, 이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꾸준히 조례 제정이 추진되어 충남, 제주, 인천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진보교육감 출범 이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청소년 학생들의 두발, 복장 자유화 운동, 강제 보충수업 폐지 운동, 체벌 반대 운동 그리고, 인권단체와 진보교육운동의 학생인권조례 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이전 청소년 학생들의 권리 유보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성적 경쟁 지상주의에 의해 오랫동안 정당한 것처럼 취급되었다. 청소년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 보장 운동에 전교조 등 진보교육운동 세력과 인권시민단체 등이 응답하여 진보교육감과 함께 일궈낸 결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다.

보수세력은 교권 침해 우려, 동성애 조장 우려 등을 이유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반발하고 있으나, 진보교육감들에 의해 추진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양심과 사상의 자유 등 당연한 권리임에도 그동안 외면되어 온 학생인권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이를 명문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평가되어야 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공부를 해야 할 시기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청소년 학생들의 인권이 유보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비민주적 학교제도와 성적지상주의 등 잘못된 교육제도가 학생인권과 교권을 위협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보수세력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는 뚜렷한 반대의 명분이 없으며, 진보교육감에 대한 정치적 반대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입시경쟁 교육, 장시간 학습노동 등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구조적인 학교 환경의 변화 없는 학생인권 존중은 말로만 그칠 수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진보교육감의 교육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무상급식 실시 찬반 논란 과정에서, 전체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이 오히려 저소득층에 대한 역차별이며, 나아가 전체 학생들의 급식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등 보수세력의 억지와 반대로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 성과는 값진 것이기도 하다.

학교 무상급식 실시는 2009년 첫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공약이었으며, 경기도에서는 당연히 당선 이후 무상급식이 확대되고 있었다. 무상급식 찬반논쟁이 정치권으로 비화된 것은 2010년 진보교육감 선거에서였다. 무상급식 시행 수준이 낮은 편이었던 서울지역에서 곽노현 진보교육감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상급식 확대를 추진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체 학생 무상급식을 반대하기 위해 저소득층 선별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주민투표를 시도하였으나, 거꾸로 주민투표 자체가 무산되면서 진보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전면 실시 방침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 실현 공약이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제도와 상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학생들의 집밥 도시락이 없어지고,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으며, 안전하고 질 높은 학교급식을 위해 위탁 급식을 직영 급식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던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교육감들의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러나 당연하고 정당한 진보교육 정책이었다.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대한민국의 뒤떨어진 무상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었으며,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즉 공공성을 강화하는 의미가 있었다.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선별복지론이 급격히 힘을 잃고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실현된 것이다. 2021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까지 수업료가 면제되는 무상교육 방침도 이 같은 보편적 복지 확대 흐름의 연장선에 있으며, 대학무상화 역시 가까운 시일 안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라. 혁신학교 운동

혁신학교 정책은 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진보교육감의 정책 중 하나이다.

혁신학교 정책의 특징은 첫째, 민주적 학교 운영이다. 혁신학교는 기존 학교에서 일반적인 학교장 1인 독재를 무력화시켰다. 혁신학교 실험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다모임, 학부모다모임, 학생다모임 등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가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운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혁신학교 경험은 이후 민주적 학교자치의 보편화로 나아가는 소중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둘째,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다. 혁신학교는 암기 위주, 성적 중심의 반교육적 교육과정을 거부하고 대안 교육과정을 모색하였다. 혁신학교는 암기 위주의 교육과 강의 수업 대신 체험학습, 각종 실습 등 학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을 중시하며, 이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와 참여도 역시 일반학교 학생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혁신학교는 해당 학교의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참여와 논의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을 정하고 학교를 운영한다. 혁신학교는 학생들 개개인의 지적,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중심에 둔다. 학업 성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비교되거나 줄세워지는 일은 학생 중심의 수업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혁신학교 학생들은 학생 중심의 학습 과정에 보다 즐겁게 참여할 수 있으며,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보수세력의 억지 주장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일반 학교에 비해 낮지 않다. 보수세력의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교육공공성 강화를 중시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비판과 공격의 방향이 일제고사 부활, 학생인권조례 반대 등 비교육적인 경쟁과 차별 그리고 반인권적인 억압과 통제를 조장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혁신학교는 경쟁과 차별을 조장하는 입시 중심의 교육 대신 협력과 배려 그리고 인권을 중시하는 학교를 목표로 하는 실험학교이다.

혁신학교는 관료적인 지시와 통제 방식의 학교 운영을 포기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학교자치를 추구한다. 이에 대해 학생, 학부모들은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혁신학교 주변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질 정도로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지원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보수세력에 의한 혁신학교 학력 저하 주장에 영향을 받은 일부 지역에 혁신학교 신규 지정 반대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대다수 혁신학교 학생, 학부모들의 공감과 환영을 얻고 있으며, 오히려 혁신학교에 추가 지원되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의 형평성 문제까지 더해져, 혁신학교 정책이 혁신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일반 학교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진보교육감 12년 동안 벌어진 일제고사 폐지 운동, 무상급식 운동, 학생인권조례 운동, 혁신학교 운동 등은 대한민국의 교육 붕괴를 막기 위한 소중한 진보교육운동의 내용이자 진보교육감의 성과이다.

2) 진보교육감의 가능성과 한계

2006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으로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는 진보교육감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교육감 직선제는 지방 교육권력의 성격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교육감 임명제가 교육감 직선제로 바뀌면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는 교육이 중앙 정치권력으로부터 조금은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마침내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육부문에 나타난 민주주의의 중대한 진전이다. 교육감 임명제는 특정 정치권력이 교육을 지배하고, 이에 대해 어떤 평가와 반성,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데 비해, 교육감 선출 이후에는 교육감 선출에 참여하는 교육위원, 선거인단 또는 국민들에 의한 교육제도 평가, 반성, 비판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감 선출제 이후 교육계에는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한 반성과 평가, 비판이 그 이전보다 왕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보수교육감과 진보교육감 등의 교육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었으며, 학교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 학교자치 등 학교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교육감 12년에 대한 진보교육운동 진영의 평가는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때때로 진보교육감의 정책 특히 논쟁적인 교육 현안에 대한 판단과 입장이 진보교육운동 진영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교육운동 진영은 보수교육감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청 앞 농성 투쟁을 벌이거나 집회를 열어 진보교육감을 규탄하기도 했다.

진보교육감이 진보교육운동 진영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제도와 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중앙정부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지방교육자치제가 불완전한 때문이다. 진보교육감으로서는 어떤 교육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여도 적지 않은 경우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을 경험한다. 예컨대,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등학교 등 교육불평등을 야기하는 특권학교를 폐지하려 하여도, 중앙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학입시제도, 교육과정 편성, 교원 배정, 학급당 학생수, 교원정원 등 교원정책, 학교비정규직 신분 보장 등 중요한 교육정책은 거의 모두 중앙정부의 권한에 속한다. 이 같은 상황은 진보교육감의 교육개혁의 범위를 좁히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교육감이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 진보교육운동과 진보교육감이 갈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진보교육감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은 진보교육감의 인사권에 대한 제도적 제약이다. 진보교육감은 법제도적으로 진보교육 정책의 내용을 채우고,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임용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다. 진보교육감은 당선 이후에도 보수적인 관료들이 대부분인 행정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의 진보교육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지방교육자치제라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교육감은 다른 일반 지방자치단체장에 비해서도 자신의 정책 공약을 집행하기 위해 임용할 수 있는 인원과 권한이 터무니없이 적다. 예컨대, 시도지사는 복수의 부지사, 부시장을 임명할 수 있으나, 교육감은 단 한 명의 부교육감도 임명할 수 없으며, 심지어 부교육감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교육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명한다. 그 외 시도지사가 주요 정책 담당자를 폭넓게 임용할 수 있는 데 비해, 교육감은 비서실의 비서 약간 명을 임명할 수 있을 뿐이어서, 당선 이후 사실상 ‘나홀로 교육감’이 되는 것이다. 부족하나마 진보교육감 초기에 평교사 중 진보적인 정책 역량을 가진 교사들을 일부 임용할 수 있었으나, 이조차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령으로 평교사가 전문직(장학관, 장학사)으로 임용될 수 있는 통로를 봉쇄하여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이후 파견교사 또는 학습연구년 교사 등 변칙적인 방식으로 최소한의 진보 정책 역량을 수혈받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전교조 등 진보교육 정책 역량을 지닌 사람들이 진보교육감의 진보교육 정책 집행에 참여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높이고 진보교육감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감이 자신의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확대하고,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교육정책 결정권을 지역과 학교에 넘기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3. 진보교육감 12년의 교훈

1) 진보교육감은 진보교육운동의 산물

진보교육감은 단순히 진보교육감 개인이 아니다.

어떤 선출직 공직자도 그렇지만, 진보교육감은 특별히 더 개인적인 일이나 성취가 아니다. 진보교육감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선택은 진보교육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개혁을 요구해온 진보교육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이다. 진보교육감은 진보교육운동의 산물이다. 따라서, 진보교육감은 진보적인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내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진보교육감이 진보교육 정책 실현을 위해 보수세력의 저항 등으로 초래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4년 임기 동안 자리 보전과 재선 성공에 몰두하는 경향은 경계돼야 한다. 진보교육감의 개인적 성취가 더 중요한 목표가 되는 순간, 진보교육운동은 부차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만큼 진보교육 정책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보교육감을 전교조 교육감이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의 일부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진보교육운동의 선두에는 단연 전교조가 있었다. 진보교육감들 중 다수가 전교조 조합원 출신이기도 하다. 진보교육감들이 채택한 정책들 역시 그 뿌리를 캐보면 대부분 전교조 결성 이전부터 교사운동 활동가들이 어려운 조건에서 그 실현을 위해 연구하고 실천한 주제들에 속한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교조는 진보교육운동에서 극히 일부의 구성원일 뿐이다. 전교조 결성 시기에 전교조와 대등한 조직 체계를 갖춘 학부모단체가 출범하여 진보교육운동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으며, 후원자이자 동료로서 진보교육운동의 이론을 담당해온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교수노조 역시 진보교육운동의 또 다른 주축이다. 입시교육에 얽매여 한계가 없지 않으나 일찌감치 강제 보충수업 금지, 두발복장의 자유 등 학생의 권리 보장을 요구한 고등학생 운동 역시 진보교육운동의 당당한 주체로서 발전을 거듭하여 다양한 학생 청소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역사는 짧지만 규모로 보아 교사집단 못지않은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역시 진보교육운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그뿐 아니다. 시도별, 시군구별로 구성된 무수한 교육운동시민단체들이 진보교육운동의 대열에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진보교육운동은 진보교육감이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교사, 학부모, 학생 청소년, 학교비정규직, 지역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주체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진보교육감 탄생의 주역들이다.

진보교육감은 물론 진보교육운동은 진보교육감이 진보교육운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진보교육감이 자신을 탄생시킨 진보교육운동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소극적인 도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교육감은 홀로 진보교육을 창안해 내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진보교육감 이전에 진보교육 실현을 위한 진보교육운동의 성과들은 진보교육감의 소중한 자산이자 힘이다. 진보교육운동과 함께할 때, 진보교육감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으며 그 존재 이유 역시 뚜렷해질 것이다.

2) 진보교육운동의 최우선 과제는 교육공공성 실현

대한민국 경제는 이미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10위권에 오를 만큼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풍요와 달리 대한민국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청소년 학생 자살률은 놀랍게도 그 많은 나라들 중 세계 1위이다. 청소년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다.

초중고 교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학입시제도 등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결정권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제도를 변경할 권한이 없는 지방정부라는 이유로 진보교육감이 대한민국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는 근본적 원인인 대학입시제도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성적경쟁, 입시경쟁 스트레스, 청소년 학생 자살률,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 등 대한민국 교육 붕괴의 근본적 원인인 극단적 입시경쟁 교육을 그대로 두고서는 미래혁신교육, 인공지능교육, 기초학력보장, 학부모 교육비 부담 경감 등 어떤 교육정책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역량은 개인을 위해서만 아니라 한 사회 전체를 운영하고 지탱하는 데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교육은 공공성을 가진다. 초중등교육은 물론이고 고등교육(대학교육)까지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대학무상화는 이미 OECD 국가 등 대부분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정책이며, 세계 10위권에 든 대한민국에서 이를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최근 OECD와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교육선언 역시 교육공공성과 교육의 변혁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은 대학무상화와 함께 대학평준화를 통해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 고등교육(대학교육)의 균등한 질 확보가 가능할 때, 모든 학생들이 비로소 평등한 교육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평준화가 되어 있는 OECD 대부분의 나라들과 비교할 때, 대한민국의 초중고 학교 학생들이 매우 불행하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지 않고 서열화되어 있어, 학생들이 극심한 입시경쟁에 내몰리게 되어 장시간 학습노동과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은 물론이고, 극도의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무상화와 평준화를 온전하게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이미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국공립대학과 공영형 사립대학 등을 통합하여 대학입학과 졸업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대학평준화는 가능하다. 이에 맞추어 수능 등 서열 경쟁 방식의 대학입학 시험을 대입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무상화와 평준화는 대한민국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며,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이를 빼놓은 어떤 교육정책도 근본적 교육개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3) 진보교육감에 대한 지원과 협조는 물론 준엄한 비판이 필요하다.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소통은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학생들에게 극단적 입시경쟁 교육을 강요하고 있는 왜곡된 교육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따라서, 진보교육감은 진보교육운동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애를 극복하고 진보교육운동으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받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하며, 진보교육운동 역시 진보교육감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진보교육운동과의 소통 못지않게 진보교육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진보교육운동의 준엄한 비판이다. 어떤 선출직 공직자도 그렇지만, 지지자들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기만 하고 비판과 견제를 멈추는 순간 그 공직자와 지지자들의 관계와 소통은 중단된다. 선출직 공직자들은 언제든지 반대 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치적 신념과 공약을 저버리고 타협할 수 있다. 이러할 때 지지자들의 준엄한 비판은 선출직 공직자와 지지자들을 끈끈하게 연결시켜 주고 지원해 주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진보교육감은 기존의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진보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관료와 정치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그때마다 굴복이나 타협의 유혹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진보교육감 12년 동안 진보교육감이 거둔 적지 않은 진보교육 정책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 교육 현안을 두고 보수세력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굴복하거나 타협하여, 결국 진보교육감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더구나, 진보교육감이 종전의 보수교육감과 다르지 않은 입장과 태도를 보였을 때, 진보교육운동은 더 많은 경우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교육권력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투쟁을 선택하는 대신, 진보교육감의 후퇴나 반개혁에 대해 미온적 대응을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진보교육운동이 가장 진지하게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진보교육운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때때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진보교육감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투쟁이다. 진보교육감 역시 보수교육감과 같은 교육권력의 하나이며, 언제든지 보수세력의 공격에 굴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운동이 진보교육감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멈춘다면 진보교육감은 보수세력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되며, 따라서 진보교육감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진보교육감은 진보교육운동 역량만큼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육개혁의 방향과 그 실현 정도는 결국,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역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진보교육감의 외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운동의 긴장과 투쟁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진보교육운동의 임무는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선된 진보교육감이 진보교육 정책을 흔들리지 않고 추진, 견지할 수 있도록 비판하고 견인하는 것까지이다. 지난 12년 진보교육감의 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는 진보교육감 개인만이 아니라 진보교육운동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

1) <교육감 선거 방식의 변화>

1991년 6월 20일 지방교육자치법 제정으로 교육감 임명제가 교육감 선출제로 바뀜. 교육위원회에서 선출(교육위원은 시도의회에서 선출)

1997년 12월 17일 교육감 선출 권한이 교육위원회에서 교육감선거인단으로 넘어감.(학운위선거인과 교원단체선거인. 학운위선거인은 학교당 1명, 교원단체선거인은 학운위선거인의 30% 이내)

2000년 3월 1일 교육감선거인단 확대(학교운영위원 전원)

2006년 12월 20일 주민 직선(2010년 6월 30일 전면 실시. 2010년 6월 30일 이전 임기 만료의 경우 2010년 지방선거까지 1년 미만인 경우 권한대행, 1년 이상인 경우 선거하되 2010년 6월 30일까지 임기 만료. 2010년 6월 30일 이후 임기 만료 때는 임기 만료 후부터 2010년 지방선거 교육감의 임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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