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심 l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1. 공황이론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질병의 확산 충격으로 최악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며, 이를 두고 새로운 ‘대공황 Great Depression’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이미 자본주의 이래 서너 차례의 대공황을 경험하였다. 주장하는 이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으나 1873년부터 20여 년간, 1920년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1974년에서 1982년까지 그리고 2008년의 공황을 세계적인 경제침체기로서 역사적인 대공황으로 꼽는다. 대공황은 “경제위기는 10년마다 한 번씩 발생한다.”는 10년 주기설과 같은 주기적인 공황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계를 뿌리채 뒤흔드는 경제위기로 새로운 경제질서로의 이행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공황 발생의 경향을 이야기하였다. 이후 제2인터내셔널 시기 독일사민당 우파의 사상가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의 전반적 공황을 부정하자 이러한 수정주의를 반박하며, 투간-바라노프스키(Mikhail Ivanovich Tugan-Baranovsky)는 생산부문들 사이의 불비례에 주목한 ‘불비례 공황이론’을, 제한된 수요로 공황이 발생한다며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과소소비 공황이론’을,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은 거대한 고정자본의 증대로 인한 불비례의 ‘불비례 공황이론’을 각각 전개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자본-노동의 분배 투쟁에 주목해서 임금 상승으로 이윤율이 저하해 공황이 발생한다는 ‘신리카도주의자들’의 공황이론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중심에 둔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 공황이 일어난다는 ‘근본주의자들’의 공황이론이 크게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논쟁을 거치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이 공황이론의 핵심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맑스의 이론에 기초한 이론 이외에도 여러 공황론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리카도(David Ricardo)는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과 더불어 발생한 영국의 산업공황을 둘러싸고 ‘전쟁에서 평화로의 이행이라는 경제외적 원인에 의해 촉발된 일시적 교란’으로 파악하였는데 이를 두고 맑스는 “리카도는 공황에 대해 즉 생산과정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세계시장의 일반적 공황에 대해 실제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중략) 그 후의 역사적 현상들 특히 세계시장공황의 거의 규칙적인 주기성은 리카도의 후계자들로 하여금 더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또는 그것들을 우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없게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멜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사회의 총생산물을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과잉생산 공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대한 처방은 ‘지주들의 소비와 도로·공공사업, 지주 및 자본가에 의한 건축·토지개량과 같은 사업에 빈민을 고용하는 것’으로 충족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는 후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재정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멜서스와 같이 ‘노동자들의 소비부족’을 공황의 원인이라고 본 시스몽디(Jean Charles Leonard Sismondi de Sismondi)는 공황의 극복방안에 있어서는 멜서스와 달리 ‘임금일반을 상승시켜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공황이론이 있다. 1876년 영국의 경제학자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는 1876년 ‘경제공황과 태양흑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1701년 영국의 공황발생 이후 평균적인 주기가 태양의 흑점 주기와 일치한다고 하였다. 태양흑점이 기후 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기후 주기가 강수량 주기에, 강수량 주기는 곡물생산 주기에 영향을 미쳐 결국 경기순환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이 먹고 사는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식량의 원활한 수급문제로부터 공황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점에서는 의미 있는 분석이라고 보여진다.
이처럼 공황이라는 경기침체의 늪에 빠지자 화들짝 놀란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원인을 들어 공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공황으로 인해 민중이 감수해야 하는 생활고통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공황은 이윤의 감소와 자본 잠식의 심각한 상황이지만, 실업과 굶주림으로 죽음에 내몰리는 공황은 아니었으며 그러한 공황이야말로 오롯이 민중이 감내해야 하는 공황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오랜 세월 몸담아 왔던 일터에서 우리를 쫒아 내는가? 왜 물건은 남아도는데, 우리는 생필품조차 살 수 있는 돈이 없는가?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하여 우리만 개, 돼지처럼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의 공황이론은 장황하고 어려울 뿐이지 그 답변을 주고 있지 않다. 회피할 뿐이다. 이제 우리가 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인 공황에 대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자본주의 몰락을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중의 삶을 일순간에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죽음만이 목전에 두어야 하는 슬픈 운명에 더이상 놓여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 이후 농토를 잃고 유랑민이 된 농민들과 도시 실업자들의 죽음과도 같은 고난의 삶을 묘사한 <분노의 포도>를 1939년에 발표하였다. 이하에서는 <분노의 포도>에 나타난 민중의 삶을 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무엇이 우리를 공황으로 내몰리게 하는지, 어떻게 우리는 공황의 시기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2. 1929년 대공황과 민중의 고통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이 193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존 스타인벡은 공산주의자가 착취받는 과수원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조직한다는 내용의 <의심스러운 싸움 In Dubious Battle>을 1936년에 발표하였고, 1937년에는 두 명의 떠돌이 농장 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을 발표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는 떠돌이 농장 근로자들의 문제를 파헤치는 글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분노의 포도>를 쓸 당시 스타인벡은 ‘인민전선(Popular Frontist)’ 당원이었으며,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은행, 지주, 경찰들의 탄압을 고발하는 <분노의 포도>가 발표되자 비난의 여론이 들끓으며 금서로 지정하여 공공 도서관에는 비치하지 못하게 하였다. 특히 작품의 직접 무대가 된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에서는 오클라호마 출신 하원의원이 국회에서 탄핵연설을 하고, 그의 책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분노의 포도> 배경은 텍사스에서 캐나다 국경에 걸친 대평원이 맹렬한 모래폭풍(더스트 볼)으로 농경지가 사구(沙丘)로 변하던 1933년경으로, 소작료를 내지 못하고 토지 소유주인 은행에게 농장을 빼앗겨 더 이상 고향에서 먹고 살 수가 없게 되자,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조드 일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당시 미국사회는 1929년 10월24일의 검은 목요일(Black Tuesday)로 불려지는 뉴욕 주식시장 붕괴로 촉발된 대공황의 시기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량실업과 일자리 부족으로 일가족 모두가 죽음으로 내몰리던 시기였다. 일본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하야시 나오미치의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2011, 유승민·양경욱 역, 그린비출판사)>에 1929년 공황 당시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특히 미국에서 1933년 완전실업자가 약 1,300만 명에 달하고 그 밖에 수백만 명의 부분실업자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시카고와 같은 산업도시에서는 인력의 40% 이상이 실업상태라고 한다- 저자 주) 해고를 모면한 노동자는 임금을 평균 35% 혹은 40% 정도 깎였다. 독일에서는 1932년의 노동조합원 중 완전실업률이 43.8%라는 믿을 수 없는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중산계급의 많은 사람들도 은행 도산과 채권 가격의 폭락으로 재산을 잃고 몰락했다. 임대료와 전기세, 가스비를 지불할 수 없어서 아파트에서 쫓겨나 유랑민이 된 사람들이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2만 5,000가구와 20만 명의 청소년이 떼 지어 돌아다니는 ‘기이한 사회현상’이 일어났다. 그들의 생활은 밤에는 무개화물차와 공원에서 자며, 각지의 무료급식소에서 두 끼만 먹고 또 다른 지역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학생의 20.5%가 영양실조에 빠졌고, 지방자치체의 재정파탄으로 공립학교가 폐쇄되어 갈 곳을 잃어버린 학생이 33만 명에 달했다.”


또 다른 자료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후버빌’로 불리운 노숙자 판자촌) 여기서 이 모든 사람들은 오래된 녹슨 자동차 안에서 살고 있었다. 오렌지 상자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가족은 그 많은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 상자에서 살았다. 많은 노숙자들과 실업자들은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떠돌아다녔고 ‘호보 정글(hobo jungle)’이라고 불리는 빈민가를 히치하이킹을 하며 옮겨 다녔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기차를 탔는데 불법적으로 기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들은 유개화차나 화물차에서 잤다. 1933년에는 이렇게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백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들은 감옥에 가거나 부상을 당하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 살았다.”
3. 공황과 불황이라는 인재(人災)
<분노의 포도>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일상은 중노동과 희망없는 미래가 있을 뿐이다. 주인공 톰 조드가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트럭의 운전수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여덟 시간이나 열 시간 아니면 열네 시간쯤이라도 그저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되니 누워서 떡걱기같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지. 온 신경을 길바닥에 쏟다보면 무언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법이요. 하다 못해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이라도 불어야 해요. 회사에서는 우리에게 라디오도 못 가지고 다니게 하지만 (중략) 아무렴. 나도 남들처럼 출세를 해야 할 게 아니오? 그래서 나도 그 통신대학 강좌나 하나 들어볼까 생각중이오.”
돌발적인 사고로 살인죄를 지게 되어 4년간 감옥에서 지내고 가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톰 조드에게 희망이 없는 미래는 마찬가지이다.
“가석방이 되어 나간 놈이 있었는데 한 달쯤 있다가 다시 들어왔어요. 가석방 조건을 왜 또 위반했느냐고 한 놈이 물으니까 그놈 말이 걸작이었지요. “제기랄, 집에 가니까 편리한 시설이 하나도 없더군. 전기도 없고 샤워할 목욕탕도 없고 읽을 책도 없는데다 먹는 건 형편없더군” 하는 거에요.”
지주의 명령에 의해 하루에 3달러를 받고 농민들의 농토와 농가를 트랙터로 밀어버리는 트랙터 운전수에게 농민들의 저주가 쏟아지지만, 알고 보면 그들의 운명 또한 한 치도 내일을 바라볼 수 없는 하루살이 목숨의 농민과 다르지 않다.
“오오라, 자네는 조우 데이비스의 아들이 아닌가?”“그래요.” (트랙터) 운전수가 말했다.“자네는 하필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자네와 똑 같은 사람들을 울려 가면서 말일세.”“일당 3달러예요. 죽어라고 땅만 파도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데 이젠 진절머리가 났어요. 나도 처자식이 있어요. 우리도 먹어야지요. 일당 3달러예요. 그것도 매일 꼬박꼬박 받거든요.”
<분노의 포도>에서는 그렇게 절망으로 내몰려진 수만 명의 중서부 농민 그리고 동부지역의 노동자들이, 미시시피에서 로키산맥을 거쳐 베이커스 필드로 뻗은 66번 도로를 따라,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일자리를 찾아 행렬을 이루었다. 그들에게는 “더러운 놈들”이라는 뜻의 ‘오키’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뿐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저 아이들을 위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왜 경멸의 말을 들으며 굶주림 속에 떠돌아다녀야만 하는가? 맑스가 자본론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후,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인 공황이 민중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공황은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적 억압체제이며 인간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엥겔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사실, 최초의 전반적 공황이 발발한 1825년 이래로 상공업계 전체는 즉 모든 문명 민족들과 그 부속물을 이루고 있는 다소 미개한 민족들의 생산과 교환은 대체로 십 년에 한 번씩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교류는 정체되고, 시장은 포만상태가 되고, 생산물은 팔리지 않아서 산더미같이 쌓이게 되고, 현금은 볼 수 없게 되고, 신용은 소멸되고, 공장은 조용히 서 있게 되고, 근로대중은 생활수단을 너무 많이 생산한 탓에 생활수단이 부족하게 되고, 파산이 속출하게 되고, 강제경매가 속출하게 된다. 마침내 산처럼 쌓여 있던 상품들이 대폭 혹은 소폭 인하되어 팔려나가게 될 때까지, 생산과 교환이 점차 원래의 걸음을 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정체는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생산력들과 생산물들은 대량으로 허비되고 파괴된다. 이 걸음걸이는 점차 빨라져서 속보로 변하고, 이 산업상의 속보는 구보로 넘어가고, 이 구보는 다시 더욱 속력을 높여 공업, 상업, 신용, 투기의 장을 마구 내달리는 본격정인 장애물 경마의 질주로 변하며 그러다가 마침내 목숨을 건 도약 끝에 – 파산의 구덩이에 다시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우리는 1825년 이래로 이러한 과정을 꼭 다섯 번 경험하였으며, 이 순간(1877년) 여섯 번째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황의 성격은 매우 뚜렷해서 푸리에는 최초의 공황을 모든 공황에 타당하게도 이렇게 부를 정도였다: crise pléthorique[다혈증적 공황] 즉 여분[과잉]에서 오는 공황.”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식이 부족해서 굶주리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먹고 굶주려야 하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다. 남아도는 먹을거리가 자본가의 손안에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누구에게나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공황인 것이다. 그러자 민중의 한 사람, 한 사람은 분노하게 되어 포도송이처럼 얽혀 익어간다. 그것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된 것이다.
“과일의 제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도 덩굴과 나무의 뿌리가 모두 파헤쳐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럭에 가득가득 실린 오렌지들이 땅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진다. 몇 마일씩이나 과일을 얻으려고 온 사람들도 이것은 가져갈 수가 없다.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얼마든지 오렌지를 주워 올 수 있다면, 여남은 개에 20센트를 주고 누가 오렌지를 사 먹겠는가? (오렌지를 사 먹도록 하기 위해) 고무호스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오렌지 더미 위에 석유를 뿌려댄다. 그 과일을 못 먹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되는 판에 그 황금빛 오렌지 더미 위에 마구 석유를 뿌려대는 것이다. 과일 썩는 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한다. 커피를 태워서 배의 연료로 써라. 옥수수를 태워서 난방을 해라. 곡식은 잘 타고 불기가 좋은 것이다. 강에 감자를 쓸어 버리고 굶주린 사람들이 감자를 건져 가지 못하도록 강둑에 경비원을 세워라. 돼지를 잡아서 그대로 땅속에 묻어 버려라. 그리고 그 썩은 물이 땅속으로 그대로 스며들도록 내버려 둬라. (중략)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나오면 경비원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사람들은 묵묵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지켜보고 도랑가에서 잡고 있는 돼지들의 멱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지만 산처럼 쌓인 오렌지는 썩어 문드러지고 돼지는 곧 땅속에 파묻혀 그 위에 석회가 겹겹이 발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4. 진짜 소유권
어릴 적 돈이 없어서 사고 싶은 물건 마음껏 사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 사 먹지 못할 때, “나도 문방구집(때론 구멍가겟집)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던 유치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그 어릴 적 생각이 그저 유치한 것 만은 아닌 것이,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사회가 ‘금수저’, ‘흙수저’를 이야기하면서 사회불평등을 이야기할 때이다.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해도 자연인이 아닌, 인간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한 똑같은 권리와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땅이 나눠지면서 땅을, 집을 이용하는데 임대료를 내어야 하고, 흐르는 물도 사 먹어야 하고, 무선의 통신망에 돈을 지불해야 하고, 돈에도 이자를 내고 써야 한다. 자연에서 저절로 키워지는 먹을거리조차도 우리가 손을 대게 되는 순간 우리는 절도죄를 행한 범죄자가 되며 약탈자가 되어 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명한 자연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는 자연인이 산에 올라가 무언가를 채취할 때마다 “본 촬영은 소유주의 동의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무단으로 임산물 채취 시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6조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볼 때마다 ‘나는 자연인’이 아닌 소유권의 지배 아래 억눌려 사는 인간임을 곱씹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왜 그럴까? 땅은, 물은, 무선 통신망은, 돈은 누구의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분노의 포도>에서 은행에, 트랙터에 땅을 빼앗긴 농민들도 ‘진짜 소유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다. 그도 잡초와 뱀과 싸워왔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몹시 가물어 아버지는 돈을 약간 빛내야 했었다. 우리도 모두 여기서 태어났다. 바로 저기 저집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다 태어나고 커왔다. 그래서 아버지는 또 빚을 져야 했다. 그러다가 땅의 소유권이 은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중략) 물론 그렇겠지. 허나 우리 소작인들 생각으로는 이건 바로 우리 땅이다. 우리가 이 땅을 측량하고 나누고 갈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죽어온 사람들이다. 이제 쓸데없는 불모의 땅이 되어 버렸을지라도 이것은 우리 땅이다.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일생동안 일했고, 그리고 여기서 죽어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대한 우리들의 소유권이다. 그것이 진짜 소유권이지 숫자 나부랭이 몇 개 적어놓은 종이쪽지가 소유권은 아니다.”
대공황의 시기는 극도의 경제위기와 더불어 그로 인한 사회전반의 대격변을 동시에 예고한다. 노동자계급 또한 변화한다. 1929년의 대공황에서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사회·경제적인 공격이 더욱 강화되고 대량실업이 존재하는 갖가지 곤란을 겪으면서도 노동자계급은 새로운 방식의 투쟁과 조직을 강화해 나간다. 세계적인 경제공황기의 노동자 투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의를 갖는 것은 실업자투쟁이었다. 실업자투쟁이 이전에 비해 매우 큰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조직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실업자운동의 슬로건이나 요구들 -빵 획득을 위한 투쟁, 실업급여와 사회적 보험을 요구하는 투쟁, 강제퇴거 반대투쟁, 공공사업의 수립을 요구하는 투쟁 등-은 지역, 부분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라 전국, 계급적 성격을 띤 것이었다. 1930년 2월 초에는 서유럽 국가들의 공산당 대표들이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회의를 열어 1930년 3월6일을 ‘국제실업반대투쟁의 날’로 정할 것을 제안하였고 유럽과 미국 공업도시의 가두와 광장에서 수 만 명이 집회와 시위가 결행되어, 노동자들은 공황의 무거운 짐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지배계급의 정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투쟁은 결국 자본가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계급적 적대를 철폐하는 것으로 귀결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공황의 시기를 거치면서 너무도 또렷하게 ‘풍요속의 빈곤’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소유권’에 대한 의심을 떠올리며 ‘진짜 소유권’을 주장하는 투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분노의 포도>에서 이야기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서부의 여러 주들이 새로 일고 있는 변화에 격동하고 있는 것이다.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캔자스와 알칸사스,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가 그렇다. 한 가족이 그들의 토지로부터 옮겨가고 있다. 아버지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그런데 그 은행에서 이제 토지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은행도 토지를 가지면 부동산 회사가 되지만, 그 회사는 자기들의 토지 위에 트랙터를 굴리고 싶지 소작인들을 두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트랙터라는 것은 나쁜 물건일까? 기다란 밭이랑을 파헤치는 기계의 힘은 무리한 것일까? 그 트랙터가 만약 우리들의 것이었다면 그것은 그렇게 고약한 물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 혼자의 물건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트랙터가 우리들의 긴 밭이랑을 파헤쳤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 혼자만의 토지가 아닌 우리들의 토지라면 말이다. 이 토지가 우리들의 것이 됐다면 그때 우리는 토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렇듯이 토지를 가는 트랙터도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 트랙터는 두 가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땅을 파헤치기도 하고 우리들을 땅으로부터 추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트랙터는 탱크와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트랙터나 탱크나 다 같이 사람을 추방하고 협박하고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맑스·엥겔스는 자본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대립물로서의 사적소유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사적소유로 인한 빈곤으로부터 해방됨으로서 궁극적으로 자본가계급 또한 사적소유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유산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동일한 인간적 자기 소외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의 계급은 이 자기 소외 속에서 쾌적하고 보장받고 있다고 느끼며, 그 소외를 자기 자신의 힘이라고 알고 있으며, 그 소외 속에서 인간적 실존의 가상을 가지고 있다. 후자의 계급은 그 소외 속에서 파괴되어 있다고 느끼며, 그 소외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비인간적 실존의 현실을 보고 있다. (중략) 사적 소유(의 해체)는 …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즉 자신의 정신적 및 육체적 빈곤을 의식하는 빈곤, 자신의 탈인간화를 의식하는 따라서 자기 자신을 지양하는 탈인간화가 만들어짐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중략)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자신도, 그들을 조건짓는 대립물인 사적소유도 소멸한다.”
““하지만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를 모르겠단 말이요. 도대체 이 고장 일대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말이요. 다들 먹고 살 수가 없는 모양이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도 다 틀린 모양이오. 좀 물어봅시다.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소.” (중략) 케이시가 말했다. “나도 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소. 모두들 그런 질문들을 하더군. 결국 우리가 다 어떻게 될 거냐고 말이오. 우리가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 건 아닐거요. 우리는 언제나 어떤 과정속에 있는 법이지요. 언제나 움직이며 가고 있는 거요.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느냐구? 그들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움직임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소. 왜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는 알 수 있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움직이는 거요.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거요. 그들은 그들이 처해있는 형편보다 좀 더 나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소.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들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오. 그것을 원하고 그것이 필요하니까 가서 그걸 얻으려는 거지요. 그러다가 피도 흘리고 서로 미쳐서 싸우기도 하는 거요. 나는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소. 그리고 당신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어 보았소.” (중략) “그건 그렇지만 이 나라가 어찌 되어가느냐 이거요? 내가 알고 싶다는 건 바로 그거요.”톰이 짜증이 난다는 듯 끼어들었다. “글쎄 당신은 죽었다 깨나도 못 알아듣겠소. 케이시가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당신은 같은 질문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오.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을 전에 본 적이 있소. 결국 당신은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똑같은 노래만 부르고 있는 거요. ‘세상이 어찌 되어가느냐?’고 말이오. 당신은 무얼 알고싶어 한 사람도 아니오.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고 사방으로 흩어져 가고 있소. 사방에 죽어가는 사람들 천지요. 아마 당신도 머지않아 죽을 거요. 죽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를 거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소. 당신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오. ‘다만 세상이 어찌되어 가느냐’는 잠꼬대 같은 노래만 부르고 있단 말이오.””
5. 움직여라!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때때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자연을 변화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만들어 가는 역사적인 물결위에 몸을 싣고 있다. 존 스타인벡은 “때로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앞으로 나아갔다가는 때로 뒤로 물러서기도 하지만 결코 한 발짝을 다 물러서지 아니하고 반 발짝씩을 후퇴한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인간에 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이며 또 그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아는 것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이다.
“시커먼 비행기로부터 장터의 광장 위에 폭탄이 떨어질 때, 포로가 돼지처럼 창에 찔려 죽을 때, 짜부라진 몸뚱어리가 더러운 흙바닥 위에 나동그라져 피를 흘릴 때, 우리는 이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전진하는 발걸음이 내디뎌지지 않는다면, 만약 전진하는 아픔이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다면, 아무런 폭탄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누구의 멱살도 잡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폭격기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시대, 오히려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폭탄은 인간의 혼이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주들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 시대는 무서운 시대인 것이다. 왜냐하면, 조그맣게 일어났다가 여지없이 얻어맞는 하나하나의 파업이야말로 전진하는 발걸음이 멈추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알 수 있다. 인간이 하나의 이념을 위해서 고통과 죽음을 감수하지 않는 시대야말로 가장 가공할 만한 시대라는 것을! 왜냐하면, 이런 속성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기본적인 요소요, 인간을 만물로부터 구별 짓게 해 주는 인간성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는가? 공황이라는 위기를 방조하고 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그 파장은 노동자들을 총알받이로 막아내고 다시금 회생하여 그 이익을 최대한 향유하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의 대공황인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가?
“케이시가 거기에 대답하고 나섰다. “모두가 다 그런걸. 나 같은 사람(목사-저자 주)은 악마만이 원수요,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악마하고만 싸워왔지만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그 악마보다도 더 지독하고 고약한 것이오. 그리고 그놈은 갈기갈기 찢어 놓기 전에는 풀어지지 않는 놈이오. 당신은 독이 있는 도마뱀이 먹이를 움켜잡는 것을 본 일이 있소? 아주 꼭 나꿔챈다구. 그럴 때는 그놈을 두 동강을 내야 그놈의 대가리가 늘어지지. 모가지를 댕강 잘라 놓아야 대가리가 늘어진단 말이야. 나사를 박는 드라이버를 들고 그놈의 대가리를 쪼아야만 그놈을 풀 수 있지요. 그놈이 죽어 뻗어 있는 사이에도 그놈의 이가 뚫어 놓은 구멍속으로 독이 뚝뚝 흘러들어 가지요.””
3 Comments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й сервисный центр по ремонту бытовой техники с выездом на дом.
Мы предлагаем: сервис центры бытовой техники москва
Наши мастера оперативно устранят неисправности вашего устройства в сервисе или с выездом на дом!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й сервисный центр по ремонту бытовой техники с выездом на дом.
Мы предлагаем: сервисные центры по ремонту техники в перми
Наши мастера оперативно устранят неисправности вашего устройства в сервисе или с выездом на дом!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й сервисный центр по ремонту кнаручных часов от советских до швейцарских в Москве.
Мы предлагаем: ремонт часов москва
Наши мастера оперативно устранят неисправности вашего устройства в сервисе или с выездом на до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