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서경 ㅣ 배달 노동자
여성과 남성이 동일노동을 한다면 동일임금을 줘야 하는가. 질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바로 대답한다. 백인 노동과 흑인 노동도 동일임금에 대해 이견의 여지가 없다. 앞의 두 질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동일노동이라는 같은 전제 하에 아동과 성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인과 비노인, 수습과 3개월 이상, 사내하청과 직접 고용, 외국인과 한국인의 동일임금에 대해 물어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자본가 계급보다 노동자 계급과 하층 중간계급이, 사무직 노동자보다 생산직 노동자가 외국인, 장애인, 노인 등 자신과 다른 집단의 노동시장 유입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 집단에게 상대적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더 크다. 따라서 다른 피지배 계층 집단을 차별할 가능성도 노동자 계급과 하층 중간계급이 더 크고, 정신 노동자보다 육체 노동자가 더 크다. 차별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아나키즘과 흑인 혁명>의 저자 로렌조 에르빈(Lorenzo Kom’boa Ervin)은 반자본주의자가 아니라면, 진정한 반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소위 좌파진영으로 분류되는 리버럴들은 훌륭한 싸움을 하겠지만,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국가를 부수지 않는 한, 그들은 결국 배신하고 반인종차별 투쟁을 짓밟을 것이다. 당신이 반자본주의자가 아니라면, 진정한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인종차별을 계급에 기반하여 해석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이론의 근거를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지배 계급이 노예를 통해 노동력에 지급하는 비용을 줄여 노예제도가 미국 초기 자본주의를 유지시켰던 역사를 든다. <미국 민중사(1980)/하워드 진>에 따르면 노예제가 지배적이었던 지역과 주에는 백인 노동자의 임금이 훨씬 더 낮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북 전쟁 이후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백인 노동자들의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흑인 노동을 투입했다. 이는 두 번째 근거와도 연결되는데,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가 단결하여 반자본 투쟁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노동계급을 인종적으로 분리시켰다. 마지막으로 ‘하얌’이 정상화되고 주된 정체성이 됨에 따라 인종차별은 인종적 정체성을 넘어 계급적 정체성, 계급 의식을 갖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피부색이나 민족으로 차별할 때는, 그 사람이 가난할 것으로 예상되어서, 수입이 낮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정체성은 흑인 부자와 흑인 가난한 사람이 인종으로 하나 되어 반인종차별 투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지난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 4명이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것을 계기로 미국 전역으로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반인종차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좌파 언론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는 6년 전 퍼거슨 시위 때와 비교하여 ‘Black lives matter(흑인 삶도 의미 있다)’ 운동에 하얀 하층민이 상당히 많이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코넬 웨스트(Cornel West) 교수는 29일 CNN에 출연하여 우리는 미국이 실패한 사회적 실험이 된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자본주의 경제가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가져다주지 못하고 체제가 스스로 개혁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흑인들을 높은 곳(높은 사회적 지위)에 많이 시도했었다. 흑인 정치인, 흑인 교수 계층, 흑인 중산층은 너무 자주 자본주의 경제에 편해졌고, 군사국가에 편해졌고, 시장이 이끄는-연예인, 지위, 권력, 명예, 너무 많은 시민들에게 큰 의미인 모든 종류의 우월적인 것들의-문화에 너무 자주 편해졌다. …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진영이 버니 샌더스 동지의 후퇴에 힘입어 운전석에 앉아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높은 곳에 있는 흑인을 더 많이 보여주기만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시위를 끝낼, 흑인 민중을 위한 답을 못 찾고 있다. 높은 곳에 있는 흑인들은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가져다주지 못한다. … 가난한 흑인과 노동자 계급 흑인, 노동자 계급 유색인종은 배제된 사람들이고 희망이 없음을 느낀다. … 우리는 비폭력적인 혁명과 폭력적인 혁명-권력, 자원, 부, 그리고 존중을 민주적으로 나눠 갖는 폭력적인 혁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러한 종류의 나눠가짐을 받지 않으면 당신들은 더 폭력적인 폭발을 받게 될 것이다. … 민주당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목격하는 비겁한 활동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인종적 정체성이 미국의 노동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에 비해, 한국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어렵게 한다. 국제통화기금의 한국 경제 보고서(2017.12.)는 고임금과 사회보장을 누리는 정규직과 저임금과 사회보장이 취약한 비정규직으로 분단된 이중 노동시장 문제를 주요한 극복 과제로 지목했다. OECD 한국 보고서(2018.3.)도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핵심문제를 이중구조로 설명했다. 그런데 다른 OECD 회원국들은 비정규직이 젊은 층에 많지만, 한국은 모든 연령층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고령자 층에서 특히 높다고 덧붙였다.


OECD (2020), Temporary employment (indicator). doi: 10.1787/75589b8a-en
한국의 비정규직은 일반상식과 달리 청년층이 아닌 중고령자가 핵심계층이다. 조기퇴직이 정상화된 현실과, 50대 초중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할 때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중이 높은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며, 기간제법과 「고령자고용촉진법」도 용인해주는 제도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법에 따르면 만55세 이상의 고령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더라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 근로자로 간주 되지 않는다. 중고령자 취업을 용이하게 한다는 본래의 취지의 순기능이 전혀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저임금, 불안정, 주변화된(marginalized) 일자리 위주의 고용을 양산할 뿐이다. 55세 이후 기간제 고용이 늘어나고, 노인 취업률과 빈곤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노인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려면 비정규직으로 해석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 노동자와 55세 이상 노동자가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또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경우, 임금총액이 정해져있고 파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및 파견직이 나눠 가짐으로 인해, 이론적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임금문제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계급적 단결을 이루기 어렵다고 느낀다. 필자는 비노인 노동자와 노인 노동자가 단결할 수 없다면, 비정규직과 정규직도 연대할 수 없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이 불가능하다면 사무직과 생산직의 계급적 단결도,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의 단결도,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의 단결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계급(2008)/이재유>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은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집약된다고 정리한다. 이는 사회를 변혁하려는 노동자 계급과 자기 자신을,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 건설의 역사적 주체로 보는 계급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계급의식이 부족하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연대와 사회의 가치를 우선할 수 없다.
이재유는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급의식은 물질 영역인 경제 영역이 아니라 법, 정치 등의 정신 영역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노동자는 공장과 사무실에도 있지만 학교, 미디어, 선거제도와 의회정치 속에서도 살아가고, 경제 영역보다 정신 영역이 우선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의식이 노동과 생활을 넘어서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처럼 너무 자주 느끼게 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람시는 이 정신 영역에서 노동자 계급 외의 다른 피지배 계층이 노동자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의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이데올로기는 내가 누구와 같은 편이고, 누가 친구 또는 적이 될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면서 투쟁하는 지형을 만들어내고, 대중을 조직하는 힘이 된다. 노동자 계급은 시민 사회에서 자신과 다른 피지배 계층의 동의를 얻어내어 조직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해야 한다. 경제 영역의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 역학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투쟁은 이 사회를 변혁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