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평등과 풍요의 변증법(19): 현단계 주요모순과 노동자정치운동

평등과 풍요의 변증법(19): 현단계 주요모순과 노동자정치운동

홍 승 용(현대사상연구소)

1.

마오의 주장처럼 ‘하나’의 ‘지도적⋅결정적 역할을 하는 주요모순’을 파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주요모순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운동의 양상과 결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주요모순과 부차모순의 구분은 전략목표 설정의 전제조건이다. 이때 모순들의 경중만 아니라 해결의 우선순위, 혹은 동시적 해결의 가능성도 함께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요모순이 다른 모순들과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밝히는 것도, 운동의 역량을 ‘약한 고리’에 집중하거나 필요시 적재적소에 분산 배치하는 전략의 유연성을 위해 유용할 것이다. 나아가 우선적 과제들의 해결에 따라 변화된 국면에서 새로 부상할 주요모순을 예상하는 것도 운동의 ‘방향상실’을 막고 지속적으로 주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단계에서는 파쇼정권과 노동자민중 사이의 모순이 주요모순으로서 그 폭발력을 충분히 갖춰왔다. 이 모순은 파쇼정권 타도를 통해 긍정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 현정권은 공공연히 노동자민중을 적으로 삼고 그럴듯한 가장도 없이 제국주의 자본독재의 이익에 노골적으로 복무함으로써, 오히려 자본독재에 복무하는 그 본연의 기능을 저버리고 있다. 자본독재세력이 보기에도 눈치코치 없이 나대는 현정권은 지속가능한 효율적 착취와 지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야를 망라하는 자본독재의 노회한 하수인들은 오래전부터 내각제를 통한 일본식 영구집권을 꿈꿔왔다. 현 집권 세력은 내각제의 필요성 혹은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를 선전하기 위한 희생양의 자질을 골고루 보여 주었다. ‘내로남불’이 전정권의 교양이라면, ‘적반하장’은 현정권의 주요 통치원칙이다.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하는 끊임없는 도발만 아니라, 집권 핵심 인사들의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부도덕하고 기만적이고 고압적인 행태로 인해, 범국민적 분노와 정권타도의 에너지는 어떤 언론공작으로도 쉽사리 억누를 수 없게 부풀어올랐다. 전쟁 위기의 폭증과 미일 제국주의에 대한 굴종적 관계 또한 이 에너지의 강도를 높여놓고 있다. 부동산 및 금융 위기가 그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양평 고속도로와 핵폐수 문제로 이미 도화선에 불이 붙은 상태다. 현 집권 세력은 스스로를 자본독재의 ‘약한고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파쇼정권 타도에는 노동자민중만 아니라 심지어 극우세력과 자본독재세력의 일부도 가담할 수 있다. 따라서 정권 타도 자체가 아니라 타도운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촛불정권’처럼 운동의 결실만 독식하고 운동의 역사적 요구들은 파묻어 버리려는 세력은 언제어디서나 출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파쇼정권 타도에 집중하면서, 이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부차적 모순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내각제를 추진하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 간의 모순은 부차모순이지만, 이를 해소하는 방식은 향후의 정치 지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퇴진운동과 동시에 기득권 정치세력의 영구집권몽을 깨버리는 방식으로 이 모순을 해소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 현정권 하에서 격화된 다양한 모순들, 예컨대 극우반공세력의 상징인 국보법을 악용하는 세력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세력 사이의 모순, 핵폐수를 방류하는 등 환경을 파괴하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 사이의 모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과 평화를 지키려는 세력 사이의 모순 등을 해결하는 운동은 파쇼정권 타도운동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운동의 방향을 규정하는 데에는, 현단계의 주요모순을 해결해감에 따라 다음 단계의 주요모순을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새로운 주요모순은 허공에서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이미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이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과 노동자민중이 그만한 비중의 정치권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 사이의 모순이야말로 내일의 주요모순 아니겠는가. 이 모순은 자본독재와 노동자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이 현단계에서 나타나는 형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노동자정치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독일 사민당이 급성장하던 시기인 1881년에 엥겔스는 영국의 노동자 정치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글을 쓴다. 즉 노동자계급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거의 전적으로 토리당원들, 휘그당원들, 급진파의 수중에, 상류계급의 사람들의 수중에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거의 이십오 년 동안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거대 자유당’의 꼬리를 이루는 데 만족해 왔다. 이것은 유럽에서 가장 잘 조직된 노동자계급에게 걸맞지 않는 정치적 지위이다.”[1]F. 엥겔스: 「노동자당」,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 5권, 김태호 역, 박종철출판사 1994, 484쪽. 이하 ‘노동자당’으로 약칭. 이어서 엥겔스는 낡은 당들의 운명이 다하여 새로운 길이 필요한데, 그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업 및 농업노동자계급이 인민의 막대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영국에서는, 민주주의란 더도 덜도 아닌 노동자계급의 지배권을 의미한다”고 단언한다.(노동자당485) 하지만 영국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이해를 돌보는 일을 “지주, 자본가, 소매상인 등의 계급”과 “그들을 쫓아다니는 법률가나 신문기자 등등에게 허락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노동자의 이해를 위한 개혁이 그렇게도 천천히, 그렇게도 비참할 정도로 조금씩” 이루어질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영국의 노동자민중은 하려고 하기만 하면 되며,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요구하는 어떠한 개혁도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노동자당486-487)

이 질문은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뼈아픈 것이다. 영국 노동자계급은 그래도 1900년 노동당을 만들었고, 1945년 집권당으로까지 성장했지만, 우리 노동자민중은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면서도 ‘거대 보수당들’의 꼬리를 이루고 이들에게 자신의 이해를 내맡겨 놓는 처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 구성원이 노동자민중인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란 더도 덜도 아닌 노동자계급의 지배권을” 의미한다는 것을 노동자민중 자신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 그리하여 노동자민중이 현실적 비중에 합당하게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것, 그리하여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파쇼정권 타도라는 현단계 주요모순 극복운동이 다음 단계에 나아갈 방향 아니겠는가. 영국의 노동자민중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민중도 “하려고 하기만 하면 되며”, “어떠한 개혁도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3.

노동자정치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위해서는 운동의 통일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군소정당과 정파들을 통해 소규모로 분산된 채 각자도생 중인 노동자정치운동 세력들이 단일 노동자당으로 결합하여 보수 양당의 대안세력으로 노동자민중 앞에 나서면 왜 안 되겠는가. 여기에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합세하여 거대 노동자당을 만들면 무엇이 문제인가. 왜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냐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실패의 악몽에 언제까지 시달릴 것인가. 물론 무원칙적 운동 통일로는 노동자정치운동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운동 통일의 첫째 원칙은 자본독재 속의 한 분파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복무하는 독자적 운동세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국가권력을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손에 맡기는 민주국가, 즉 노동자국가 건설을 핵심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원칙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단계 자본독재를 전인류 차원에서 극복하고 노동자 국제주의 정신에 입각해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가고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공유할 수 있는 한, 어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파든 통일된 노동자당 내부에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함께 세부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검증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 내부 정파들 간의 세부적 입장 차이들은 자유로운 논쟁을 통해 조율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협소한 정파적 칸막이들을 허물고, 인류의 무궁무진한 유산들을 재료 삼아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변증법적 사고를 주체적으로 가동함으로써 아직 구체화된 적이 없는 대안사상⋅대안정책을 생산하고 범인류적으로 활용할 만한 대안모델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불붙은 파쇼정권 퇴진운동의 열매를 다시 보수 기득권세력에 고스란히 상납하지 않으려면, 보수양당과 대립하는 독자적 노동자정치운동의 존재이유를 퇴진운동 과정에서도 만천하에 밝혀가지 않으면 안 된다. 퇴진운동 결과로 다시 보수 기득권 세력인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민주당 정권이 그 동안 자본독재의 주요 분파로서 드러낸 한계를 대중적으로 폭로해감으로써,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제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자적 노동자정치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노동자민중이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노동자정치운동의 주요 과제다. 그러한 인식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근본 문제에 대한 인식, 즉 축적의 한계와 주기적 위기가 필연적이며, 이에 따른 고통을 자본독재는 대량실업⋅전쟁⋅환경파괴 등을 통해 반민중적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하여 노동자민중 사이에서 공유하는 것도 운동의 당면과제다. 이로써 노동자정치운동과 노동자국가 건설이야말로 현재의 범인류적 문명위기를 극복할 최선의 방법임을 운동의 적극적 주체들은 물론이고 노동자민중의 압도적 다수가 자각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자각은 운동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파쇼정권 타도 운동의 파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것을 미리 정권교체 수준에 제한해 놓을 이유는 없다. 물론 이슈로 이슈를 덮는 낡은 수법이나 자신의 죄를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는 적반하장의 통치원칙이 자본독재의 막강한 물적 자원과 결합해 효능을 발휘하고 정권의 수명을 연장해갈 수도 있다. 노동자정치운동은 어느 경우에도 자체의 독자적 입장을 구체화해갈 필요가 있다. 파쇼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분노와 증오는 루카치가 말한 혁명계급의 ‘신성한 증오’와 본질적으로 접한다.[2]G. Lukács: Zur Frage der Satire,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100쪽 그것이 증폭될수록 현재의 주요모순은 더 신속히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양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는 노동자정치운동의 주체들은 현정권을 향해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 인사들이 무지막지하고 솔직하기 짝이 없는 횡포를 통해 자본독재의 약한고리가 되기로 자처한 공로에 대해!

(2023. 7. 17.)

1 F. 엥겔스: 「노동자당」,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 5권, 김태호 역, 박종철출판사 1994, 484쪽. 이하 ‘노동자당’으로 약칭.
2 G. Lukács: Zur Frage der Satire, in: Probleme des Realismus I, Neuwied/ Berlin 1971,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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