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52호 3-6 단 한 번도 한일 양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피해자의 목소리에 답한 적은 없다

김파란 ㅣ 농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사연도 있겠지만 국가간 합의는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된다고 점잖게 말한다.

그럼 정말 그런 것일까?

식민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동아시아 인민들이 입은 고통과 손해는그 피해가 완전히 밝혀지기 전이라도 국가간 합의에 의해 소멸되는 것일까? 아님 국가간 합의에도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 즉 그때의 체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과제(피해자의 호소)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그 과제를 찬찬히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일 간에 지금 시끄러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고 선언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반일감정으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의 경우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몸으로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연속되고 있다. 신체가 식민지배와 전쟁의 폭력에 구속되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 원폭 피해자들에게 더 가혹한 것은 “1965년 체제’에서 일본인 원폭 피해자들은 이미 자국 사회에서 그 피해를 알리는 운동을 했고, 그것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비인도적인 현실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한일 양국 정부가 아니다. 바로 자국 정부로부터 피해 구제와 지원을 받고 있었던 일본인 원폭 피해자였다.

같은 장소 히로시마에서 내가(일본인) 원폭 피해를 입을 때 그 옆에 조선인 피해자가 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호소에 일본 시민들이 호흥을 하게 된다.

이런 시민들의 자각으로 1970년대부터 한국 원폭 피해자들과 일본 시민들이 연대한 운동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 피해자들과 일본 시민 사회가 연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전쟁의 피해를 신체에 고스란히 간직한 원폭 피해자 사례였다.

이런 연대를 토대로 1970년대부터 자신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소송이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일본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1990년부터 대거 등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1965년 한일회담이 시작되고 또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호소해왔고 제기해왔고 그리고 그것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1965년 한일협정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개선되어 왔던 것이다.

또 그런 가운데 관련 국제인권법도 현저하게 발전했다. 이런 소송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법원은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단 한 번도 한일 양국 정부에 의해 자발적으로 피해자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다.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미국에서 한국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 소송을 디투면서 한일협정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끄집어냈고, 여기에 국제사회가 화답하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의 핵심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나?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지금껏 자신들이 뭘 했으며, 어떤 목소리들을 외면했는지는 성찰하지 않고 지겨운 반일 감정 부추기는 ‘사과’ ‘배상’ 타령 그만하자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아무 부끄러움 없이 페북이나 칼럼에 내뱉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나 소설 평론에는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자유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으니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말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반일이나 전체주의 민족주의는 정말이지 당신들 사적 인연의 쾌락주의를 합리화 시키는 더러운 미끼가 아닌가?

1965년 한일협정이 남긴 비인도적인 면은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정보공개 전에 이미 한국과 일본 두 정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1965년 한일회담 게시 이전부터 그리고 한일회담이 중간중간 중단 된 시기에도 또 한일회담이 최종적으로 체결된 이후에도 언론사나 정부부처에 쇄도했던 피해자들의 청원, 진정서…

‘제발 아들을 찾아주세요’,
또는,’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확인해 주세요’.
‘내 가족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할린에 갔다고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호를 요청하는 청원서, 진정서 때문에 한일협정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교섭을 했다. 이런 외교교섭에 나섰던 일들이 한일회담 문서 뿐만 아니라 한국 외무부 문서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역사 구조적 제약 속에서 한일회담 교섭 주체들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말 대신에 이 회담이 추구해야 될 목적과 그것을 이루지 못한 한계를 폭로한 피해자들의 간절한 탄원과 청원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한일협정이 얼마나 불안전한 것인가와 그 불안전한 청산으로 인해 어떤 비인도적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는 것이 민주적인 사회의 접근 방식이다.

그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일협정 10주년을 맞은 1975년 한일 각료회담에서 양국 정부는 이런 말을 한다. 지금까지 장기 미해결 과제 중 세가지, 유골봉안 문제 그 다음 사할린 억류 동포 문제, 원폭 피해자의 구호 문제는 꼭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일협정의 문서가 다 공개되지 않은 그 시점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한일협정으로 고통을 받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한국이나 일본 정부는 물론 시민 사회도 인지하고 있었다. 즉 이 말은 한일협정 문서가 다 공개되고 이것을 전문가들이 다 분석해야 알게 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미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제기했던 문제고 그 제기된 문제를 한국과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위에서 예시로 든 1965년 한일협정이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어떻게 전적으로 다 해결 할 수 있겠나! 전쟁이 끝나고 이 피해자들 몸에 남긴 상흔으로 그들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일본 시민 사회와 연대해 투쟁하면서 일본 정부를 움직인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받은 청구권 자금의 대부분은 경제 재건에 사용되었고 피해자 구제에 사용된 것은 9.7% 불과했다. 그 9.7% 중에서도 일제 식민지 시대 금융 일본 보험에 예치된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이 70%였고 ‘강제동원’ 과 같은 인명 피해에 대한 것은 30%로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린 이것을 나라를 일으킨 박정희의 구국적 결단이라 불렀다. 또 2023년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이런 피해자들에게 그 ‘돈’ 우리가 줄테니 일본 정부와 기업은 책임 질 필요가 없다라고 선언한 것을 한일 양국 미래를 위한 고독한 지도자의 결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비인도적 만행을 거듭 자행하는 한일 양국의 정치 외교를 어떻게 미래를 위한 화해와 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이런 비인도적 행위들이 과거의 역사 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되고 있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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