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이 글은 2023년 2월 25~26일 소성리에서 진행된 노동전선 수련회 강의원고입니다.
박수규 ㅣ 사드철회 성주대책위원회 대변인
들어가는 말
아마 소성리에 사드장비가 반입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을 겁니다. 일본의 평화활동가들이 소성리를 방문했는데 그 중에 오키나와의 헤노코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38년째 하고 있다는 분이 있었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싶었죠. 그리고 2019년에 오키나와 다크투어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국의 탐욕과 맹목적 국가주의로 인한 민중의 수난이 한반도 민중의 수난사와 겹쳐지고 압축되어 있어서 결국 한국 민중의 투쟁과 오키나와 민중의 투쟁이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강하게 느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소성리 사드철거투쟁을 제국주의 지배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중의 항쟁이라는 지평에서 봐야한다, 우리가 사드배치 과정의 불법성을 들어서 국가의 주권문제를 내세우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주권이라는 게, 하청회사 사장의 경영권 수준 아니겠어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싸우고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가 계급적 단결인 것처럼, 사드철거투쟁도 결국 민족주의적 분할이 아니라 제국과 국가폭력에 맞서는 아시아 민중의 연대라는 폭넓은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선 짚고 싶습니다. 실제로 오키나와의 평화활동가들이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어요. 그 분들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모여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해요. 제주도 4.3 다크투어 참가하신 분 더러 있지요? 기회가 있으면 오키나와 다크투어도 참가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소성리에는 주로 수요일에 미군 교대병력을 실은 버스와 유조차가 들어옵니다. 낮시간에 들어오니까 연대자들이 결합을 못하고 어머니들과 소수의 지킴이들이 정말 힘겹게 싸우고 있어요. 그 차량들이 나갈 때 소성리지킴이 강형구장로가 방송차를 끌고 양키고홈 외치면서 왜관 캠프까지 따라가요. 그러니까 미군들이 한국군과 경찰에 항의를 하고 난리가 났어요. 그걸 보면서 이번 주 월요일에는 왜관 캠프 앞에서 피켓팅을 시작했어요. 결국 소성리 마을길은 미군에게 뚫렸지만 오히려 소성리 싸움이 왜관캠프로 확장된거죠. 그렇지 않나요? 전국적으로 미군기지가 80여 개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 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날을 정해서 전국 미군기지 앞 일인시위를 조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항의행동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하면 더 좋을 것 같고.
2023년 2월 24일, 어제 282번째 아침평화행동을 진행했습니다. 화요일, 목요일은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함께 평화행동을 하고, 월수금은 진밭교에서 지킴이들 중심으로 아침평화행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아침평화행동의 차수가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닙니다. 282라는 숫자는 2021년도에 문재인이 한미정상회담의 조공으로 트럼프에게 약속한 “사드기지 육로병참선” 확보를 위해 매주 2차례 소성리에 수백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면서, 2021년 이후 주민들이 경찰들과 대치한 횟수를 나타낼 뿐이고, 소성리 주민과 연대자 동지들이 경찰의 물리력에 맞서 싸운 것은 그 외에도 백수십회가 더 있습니다. 2017년 4월 26일 사드장비반입, 9월 7일 발사대 추가반입, 2018년 3개월간 미군숙소 시설개선공사, 2020년 5월 29일 사드성능개량장비 반입, 그외 주기적인 공사장비와 자재 반입이 있을 때마다 주민과 연대자 동지들은 끈질기게 맞서 싸웠습니다. 여기까지 서론이고 이제 사드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1.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라는 무기
사드는 중거리,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종말단계 고고도에서 요격하는 지역방어체계이다. 사드 요격미사일의 사거리는 200km, 요격 고도는 40~150km이다. 사드체계의 핵심은 AN/TPY-2 X-밴드레이더로 탐지거리는 종말모드 800km, 전방배치모드 2,000~5,000km로 알려져 있다.
2. 미국 주도 동북아 MD체계
MD(미사일방어체계)라는 용어는 사드체계가 방어용으로만 쓰이는 무기로 착각하게 한다. 실제로 사드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유사시에는 일본의 샤리키와 교카미사키 그리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레이더로 미국 본토와 오키나와 및 괌에 주둔하는 미군기지로 향하는 중국과 북한의 ICBM이나 중거리미사일을 발사-이륙단계에서 조기 탐지할 수 있다. 이후 태평양의 이지스레이더로 탐지, 추적하면서 이지스함 기반의 SM-3와 알래스카, 캘리포니아의 GBI 요격미사일, 종말단계에는 사드와 패트리엇까지 동원해서 미국은 4~5번의 요격 기회를 갖게 된다. 실전에서 요격의 가능성 여부는 별도의 문제이고,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이나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그 만큼 보복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의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명시한 안보문서 개정이나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5015 등이 상대방의 도발에 대한 반격이 아니라 ‘도발의 징후가 포착되면’ 적기지를 선제공격한다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MD 구상은 기본적으로 선제공격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전 개념이다. 이를 중국이나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사드는 단순히 방어용 무기가 아니라 공격용 무기가 되는 셈이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자국의 “핵심이익”을 제일선에서 침해하는 군사적 위협이 되는 것이므로, 중국이나 북한은 유사시에는 가장 먼저 성주에 미사일을 날려 보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3. 사드로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다?
오키나와나 괌으로 향하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과 미국 본토로 향하는 ICBM을 조기 탐지하는 데는 한국배치 사드가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남한의 주요 기지를 방어하는 데는 전혀 쓸모가 없다.
중거리미사일의 목표도달시간은 대체로 10분이고 ICBM은 30분이므로 탐지에서 요격까지 충분한 시간과 다층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종심이 짧아서”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의 목표물에 도달하는 시간은 3~5분이므로 탐지하고 요격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더구나 한반도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어서 발사단계에는 탐지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수중발사와 회피기동, 단거리미사일 동시대량발사 시에는 속수무책이다. 최근 러시아의 단거리미사일 75발 중에서 우크라이나가 요격에 성공한 것은 41발이었다. 요격에 실패한 34발의 미사일은 어느 땅에 떨어졌을까?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전쟁무기는 군수마피아가 가지고 노는 게임아이템이 아니다.
4. 불법배치, 불법정상화, 김천 노곡리 그리고 성주 소성리
1) 2016년 7월 13일,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도무지 한미합의의 실체가 없다. 국회 비준이 필요한 조약의 형식도 아니고 외교부의 공식적인 협약도 없다. 실무자들끼리 모여서 작성한 [한미공동실무단 운용결과보고서]와 실무자들끼리 발표한 [한미, 주한미군에 사드배치하기로 한 결정]이 전부이다.
2) 윤석열은 취임하자마자 사드기지정상화 노래를 부르고, 사드부지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서두르고 있다. 사드배치 과정에 이미 수많은 불법과 편법, 꼼수가 난무했지만 최근에 드러난 단적인 불법사례가 있다. 환경평가협의회를 구성할 때에는 주민대표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성주군이 수차례에 걸쳐 소성리에 주민대표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소성리에서는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성주사람 누군가가 주민 ‘대표’ 자격으로 사드부지 환경평가협의회에 들어갔다는데 ‘주민’인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성주군과 국방부는 끝내 밝히지 않고 있다.
3) 사드 정면 500-1,000m 거리에 있는 김천 노곡리에서는 작년과 올해 이태동안 100여 명의 주민 중에 12명이 암진단을 받고 그 중 7명이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국방부와 언론은 사드레이더 전자파가 휴대전화 기지국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보다 적다고 떠벌이고 있다.
4) 문재인정부 시절인 작년 5월 14일부터 지금까지 소성리는 전쟁상태이다. 일주일에 2번 혹은 3번씩 수백 명의 경찰이 배치되어 사드기지 출입차량들의 통행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작전 – 육로병참선확보작전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맞서서 주민들은 지금까지 280여 차례 기지정상화에 저항하는 평화행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평화행동과 관련하여 최근 이석주 이장을 비롯하여 15명의 주민과 연대자들이 벌금 200-300만원의 1심 선고를 받고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5. 덧붙임 – 소성리는 위대하다.
그 투쟁의 맨 앞자리에 항상 소성리 어머니들이 계신다. 2016년 사드성주배치가 발표되고 군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때도 소성리 어머니들이 맨 앞줄에 앉아 계셨다.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고 소성리가 자주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소성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소성리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종사를 이어 원불교의 종법 체계를 확립한 정산종사가 태어난 마을이다. 이 분은 일제치하와 해방정국,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한 시기에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평화와 공화의 사상을 역설한 큰 스승님이다. 1978년 유신치하에 성주에서는 처음으로 이 마을에 여성농민운동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 여성들이 남정네들을 감화해서 농민운동에 나서게 만들어 성주 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분들이 지금 소성리 사드투쟁의 주역이고, 그 분들의 뒷배가 되어주던 분들이 바로 소성리 어머니들이다.
한편으로 하필이면 소성리에 배치된 것은 사드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소성리가 아니고 다른 곳이었으면 사드투쟁을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전국의 평화시민들이 연대해서 함께 싸울 수 있었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미국의 압력과 압도적인 국가폭력 앞에 주눅 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마침내 이 땅에서 사드를 뽑아내는 것, 그것이 소성리의 운명이고,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의 운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