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ㅣ 예비노동자
나는 타인들에게 주로 ‘몽상가’, ‘현실과 동떨어진’, ‘낙천적인’과 같은 단어들로 말해진다. 누군가는 내게 “너처럼 살면 걱정이 없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걱정이 오히려 많은데.
살면서 단 한 번 ‘현실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친구와 가고 싶은 여행지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니 아무래도 돈을 많이 모아야 할 것 같아.” “그러네! 나는 (그런) 생각도 못 했는데 넌 진짜 현실적이다!” 나는 이 일화를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현실주의란 이상이나 관념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고 사고나 행동양식을 뜻한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세상 물정에 밝고 자신의 몫을 잘 챙기는 ‘똑똑한’ 사람을 일러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즉, 이 정의에 따르면 경제적 이해관계에 철저하고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자’이다. 그런데 이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만이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과연 이것은 사실일까?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어떠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어딜 가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풍요가 무조건적인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넘치는 상품과 소비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대비되는 정신적 빈곤뿐만 아니라, 지나친 개발과 성장이 야기하는 기후와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극심한 폭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한데, 생물다양성 과학기구 IPBES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하는 약 800만 종의 생물 가운데 100만 종이 수십 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이런 것이 현실이라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인류는 현대에 이르러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한편에서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지라도 끊임없이 더 원하고 원하며 돈과 욕망의 굴레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인간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삼림을 불태우며 수많은 동식물을 매순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지속불가능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보아야 할 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토록 찬란한 경제 성장 후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막대한 부를 거머쥔 댓가로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정말 경제 성장만이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 경제활동이 주춤하자, 자동차나 비행기 등 운송수단을 통한 이동이 줄어들며 대기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인적이 드문 도시나 숲에서 야생동물과 희귀 동식물이 발견되며 생태계가 일부 회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칠 줄 모르고 맹렬히 질주하던 인간의 욕망에 잠시 제동이 걸리자, 지구는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이러한 환경개선사례가 경제가 회복되면 원상 복귀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는 오로지 경제 성장만이 현실적인 것이라 믿으며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만을 추구하도록 살아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에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모하지 못하게 한다. 무차별적인 경제 성장의 결과로,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는 점차 파괴되어 간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모두 돈의 노예가 되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만일 경제 성장이 다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또한 우리는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진정한 ‘현실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에서 활동 중인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 C. 더글러스 러미스는 21세기를 위한 ‘진정한 현실주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타이타닉호에 탄 선원과 승객과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빙산에 부딪혀 모두 침몰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전속력으로” 질주하기를 바란다.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불행한 현실과 거대한 생태적 재난을 맞닥뜨린 지금, 우리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가 당연한 현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믿어왔던 “경제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다.”라는 경제발전론의 논리를 내려 놓아야 한다.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을 바로 보고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이야말로 현실에 근거한 ‘진정한 현실주의’가 아닐까?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경제 성장으로 이룰 수 있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참다운 풍요, 모든 방면에서의 풍요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는 성장해야 한다.”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너무 많은 시간 노동하고,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져갔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기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투며 서로를 밀쳐내기 바빴다. 우리는 스스로의 유용성과 경제적 가치를 증명하기를 끊임없이 강요당하며, 이유 모를 공허감과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풍토에서 벗어나 참다운 풍요로움, 진짜 행복을 꿈꾸어야 한다. ‘상식’은 바뀔 수 있다. 미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