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를 읽고
김지음
1. 역사와 삶
‘한국사’를 오랜 시간 공부해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여 장장 12년간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역사를 반복하여 배웠다. 학부 시절에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백제 멸망 당시, 죽음을 각오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전쟁터로 나서던 망국의 마지막 병사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또한 조선 후기, 먹고 살기 어려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내와 자식들을 남의 집 노비로 팔아넘기던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역사란 결국 삶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 혹은 교재에서 어떤 사람들의 삶은 단지 몇 개의 단어만으로 서술되곤 한다. 나는 나보다 먼저 살아왔던 그들의 얼굴이 궁금했고,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낱 범인(凡人)에 불과할 당신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기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나는 그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노동자 역사 이야기』의 저자 박준성은 목숨을 건 투쟁으로 역사를 일궈낸 노동자 민중의 역사를 소개한다. 힘이 없고 사소하여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목이 찢어져라 외쳐야 했고 온몸이 불타도록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잊혀져 갔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싸워야 했으며, 왜 그토록 몸부림쳐야 했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박준성이 있다. 박준성은 잊혀진 이름 위에 쌓인 먼지를 훌훌 털고 깨끗이 광내어 우리 앞에 조심스레 꺼내어 놓는다. 민중이고 노동자이며,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며, 애인이자 친구이고, 남편이자 아내이며, 아버지이며 어머니일 이름이 간직해온 ‘사소한’ 이야기를 소중히 들려준다.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발버둥 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눈물마저 사치였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알았을까. 그들의 발버둥이 우리를 바로 여기, 현재의 뭍에 데려오리라는 사실을.
박준성의 말마따나 “자기가 하는 일이 스스로 보람 있고 사회에서 쓸모 있으며, 누구나 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함께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해방공동체”를 꿈꾸는, 꿈꿨던, 꿈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2.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박준성은 『노동자 역사 이야기』를 통해 올바른 역사 이해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관해 먼저 살펴보자. 박준성에 따르면 첫째, 현실의 모순과 해결해야 할 과제의 원인을 역사에서 찾아냄으로써 그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 둘째, 역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는다. 셋째, 역사는 과거 또는 현실의 사건이나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준다. 즉, 우리는 이렇게 역사를 배움으로써 인식의 폭을 넓히고, 비판 의식을 기르며, 역사의 원리와 법칙을 올바로 인식하여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 역사는 그러한 역할을 잘 수행해왔는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처지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처럼 역사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이의 환경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식민지 지배자들과 그들의 동반자인 ‘친일파’들은 ‘근대화 논리’와 ‘독립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선인의 민족성’을 선전하며 현재의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계속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식민지 지배 체제가 마냥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식민지 사회의 현실, 식민지의 모순과 민족의 과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생각이 옳은 생각일 수 없다.1)
역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고대 사회의 노예는 해방을 성취하였고, 봉건 사회의 농민들은 봉건적 주종 관계를 탈피하였으며, 시대를 주름잡던 독재자와 위대한 왕들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역사의 변화 발전은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으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충족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 계급이 소멸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가 없어지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해 온 과정이다.2) 하지만 사회는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자연은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자연히 오지만 인간 해방의 새벽과 봄은 자연히 오지 않는다.3) 역사의 변화와 발전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처절한 외침이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역사적 주체로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바로 인식하고, 역사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믿고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올바르게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3.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1980년 광주에서 울려 퍼진 마지막 가두방송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그 애절한 목소리에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과거를 잊은 채 순간의 이득과 감각에만 매몰되어 허우적대곤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박준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중 가장 나의 이목을 끈 ‘강주룡, 최초의 고공농성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공부를 많이 하지도 못했고,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 여성도 아니었으며, 남편의 영향을 받아 여성 단체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하찮게 여기던 노동자이며 여성’이었다. 강주룡의 이름은 ‘을밀대 고공농성’과 함께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평양에 있던 조그만 고무 신발 공장 노동자가 을밀대 위에서 농성한 사건을 중앙 일간지에서도 ‘평양 을밀대에 체공녀 돌현’(동아일보, 1931년 5월 31일), ‘을밀대 옥상에 올라가 파업 선동의 연설’(매일신보, 1931년 5월 30일), ‘아사 동맹을 지속 을밀대에서 철야 격려’(조선일보, 1931년 5월 30일)라고 크게 보도하였다. 그의 죽음과 장례식도 신물에 실렸다.
강주룡은 평양에 위치한 평원 고무 농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였다. 당시 고무 공장은 고무 냄새와 푹푹 찌는 열기로 젊은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꺼려, 당시 ‘늙은 노동자’로 분류되는 30세 전후의 기혼 여성들이 주로 일하던 일터였다고 한다. 그들은 낮은 임금과 하루 15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 인신 구속, 폭행, 성희롱 등 각종 횡포와 괴롭힘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1931년 5월 16일, 회사 측은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겠다고 알렸다.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하를 반대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을 시작한 지 12일, 회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경찰을 동원하여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쫓아내기에 이르렀다. 선배이자 간부였던 강주룡은 한밤중 광목 한 필을 움켜쥐고 을밀대에 올랐다. 죽을 각오로 나뭇가지에 광목을 걸던 강주룡은 문득 자신의 죽음이 평원 고무 공장 노동자들의 뜻을 알릴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 들었고,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가 싸우는 뜻과 평원 공장의 횡포를 마음껏 외치고 죽자’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싸늘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을밀대 꼭대기에 올라간 강주룡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빼앗긴 나라 노동자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평원 고무 공장 노동자들이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각오를 밝히고 외쳤다. 강주룡의 고공농성과 1개월에 걸친 파업 투쟁 끝에, 회사 측은 임금을 인하한다는 주장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파업한 노동자 전원을 채용한다는 요구는 끝내 이뤄지지 못하였다.
이후 강주룡은 ‘평양 최초‧최고의 적색노동조합’ 사건에 넘겨져 수감 중 얻은 병으로 1932년 8월 13일 목숨을 잃었지만, 노동자 해방을 꿈꾸며 피멍 든 세상과 싸워왔던 그녀의 삶은 여전히 현재의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4. 마무리하며
노동을 해본 이는 안다. 저 ‘사소한’ 점자 블록 하나에도 누군가의 피땀이 스며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땀 흘려 일군 결실이라는 것을. 나는 하나의 생(生)을 보며, 세상을 보며 이 세상을 일군 이를 생각한다. 울고, 웃고, 쓰라리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야만 했던 그 표정을 감히 상상해본다. 나는 지금 역사의 한순간에 홀홀히 서 있다. 지금이야말로 절실히 질문해야 할 때이다. 세상을 바꾼 것은 누구인가? 하나의 이름인가, 이름 모를 다수의 얼굴인가? 역사의 주체로서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찐─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1)박준성,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2009, p77
2)같은 책, p94
3)같은 책, p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