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40호 3-5 노동자정치를 위하여

하영진 l 현대사상연구소 연구원

1
이 글은 2021년 11월 발간된《현장과 광장》5호에 실린 글 <대선과 노동자정치>를 읽고 ‘노동자정치’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을 살피는 가운데 필자의 견해를 더한 것이다. 2022년 3월에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선거는 끝났다. 이 글은 선거 이후의 ‘노동자정치’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왜 노동자 정치이며, 어떤 노동자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새로울 것 없는 물음이지만 새로워지기 위해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물음일 것이다. <대선과 노동자정치>라는 글과 함께 물음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노동자정치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노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노동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정치에 의해서 삶은 달라진다.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삶은 달라진다. 이때 정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현실정치일 수도 있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노동자들이 관계를 통해 이루어가는 일상정치이기도 하다. 서로 무관하지 않은 그 정치들은 노동자의 사고와 행위를 변화시키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들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 자체가 정치다.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바꾸기 위한 정치인 것이다.

2
20대 대선이 치러지기 전에 쓰인 <대선과 노동자정치>에서 홍승용은 “차기 정권의 한계 내에서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대비책을 만들어 낼 것인지 의문”1)이라고 쓰고 있다. ‘차기 정권’은 ‘민주당과 국민의 힘당’을 의미한다. 어느 당에서 집권을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실질적으로 차기 정권에 별로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56)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선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최대의 관심사”(56)라는,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노동자정치를 다시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홍승용이 글에서 밝히는 ‘자본주의의 근본문제’, 즉, ‘실업 문제, 국제적인 갈등과 전쟁의 위협, 환경파괴’는 노동자에게 근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차기 정권’이 될 거대 양당은 바로 그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들에 의해 유지·존속되고 있기에, 그 문제들의 일부이기도 하기에,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처한 정치지형이 그러하기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 정치세력화해 나가야 하는 노동자정치는 새삼스럽지 않은 더욱 새로워져야 할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여긴다.

선거는 끝났고 ‘자본주의의 근본문제’에 대한 해결은커녕 자본과 혼연일체가 되어갈 정권이 들어섰다. 선거의 결과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노동자정치의 현실이다. 정당의 득표율이 현재하는 노동자정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2,600만 노동자와 130만 민주노총의 조합원 숫자를 감안 할 때 노동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겠다는 정당들의 득표가 3% 수준인 90만표 득표에 그친 현실이 그것이다. 결과에 대한 원인 분석은 필요하고 어렵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왜 노동자정치이며 어떤 노동자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또 다른 주목거리는 ‘자본의 힘당’이라고 여겨지는 국민의 힘당이 민주당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는 한국의 정치지형이다. 자본주의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정치가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의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노동자정치가 지향하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선거도 활용해야 하고, 유능한 정치인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600만 노동자들의 지지를 최대한 많이 끌어내는 것이 노동자정치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갈 길은 멀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여전히 진행 중인 노동자정치에 대해 다시 물으며 나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좌파의 노동자정치를 이루고 있는 세력들이 선거와 노동자정치를 등한시하면서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궁극적으로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자정치 없이 개혁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노동자 민주주의가, 노동자국가가 가능할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정치라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준비는 현재하는 노동자정치를 검토하고 다시 준비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물어본다.

3
“자본주의는 불변의 자연법칙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적 산물이고 그래서 인류의 힘으로 바꿀 수도 있다”(58)는 자세는 역사적 경험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넘어서는 현실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인식이다. 그리고 그 필요에 대한 인식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경험들을 통해 생성될 것이다. 그렇게 생성된 인식은 다시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경험들을 생성해 낼 것이다. 인식과 경험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성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자발적 연대’를 통한 ‘단결’은 노동자들이 처한 계급적인 처지로 인해 생성될 가능성이다.

대량실업, 극단적 양극화, 환경재앙, 전쟁 위협과 같은 문제들을 자본 권력을 대변하는 기존 정치 권력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 권력은 기존의 지배⋅착취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 들 것이기에 노동자들이 자본독재 권력과의 사활을 건 전쟁을 통하지 않고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거나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권력을 상대로 하는 이 전쟁을 수행할 중심 주체는 태생적으로 자본과 적대적 모순관계를 이루는 노동자민중이 될 수밖에 없는 것‘(59)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자발적 연대’를 통한 ‘단결’은 새롭게 창조해야 할 가능성이 아니다. 이미 자본 권력에 의해 강요된 ‘자발적 연대’를 통해 ‘단결’하고 있는 노동자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기존의 노동자 세력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함께 결합할 수 있도록 노동자정치가 생성해 내는 그 만큼의 가능성이라고 여긴다. 지금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생성은 새로움과 창조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4
홍승용의 분석처럼 자본의 무한 증식과 부의 집중과 상대적 빈곤 내지 양극화의 심화는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본질적 경향이다. 또한, 축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자본이 그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 드는 것도 필연이다. 그런 이유에서 노동자 민중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저항이 없으면 대량실업과 절대빈곤의 양산 또한 불가피할 것이다. 홍승용의 해답처럼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저항의 방법은 노동자 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체인 민주국가, 곧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59)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자정치를 통하지 않고는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노동자국가를 이루는 것도 요원할 것이라고 여긴다.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들이 함께하려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임에도 자본가의 사고와 행위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들의 의식이 지배적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정치는 그와 같은 지배 관계를 바꾸어 내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은 ‘평등’이라는 가치에 기반하여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여긴다. 또한 그 과정은 “사회구성원들 위에 군림하며 소수 지배계급의 독점적 이권을 대변하는 형식적 민주국가가 아니라,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구현하는”(66) 과정일 것이다.

노동자정치는 지금 여기의 일상에서부터 구현해 나가는 과정의 결과로서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정치가 노동자들만의 정치일 수 없으며 모든 차별과 억압을 없애려는 해방운동들과 연대하는 과정이며 그 자체가 민주화의 과정일 것이다. 노동운동과 노동자정치만으로 모든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평등에 기반하여 모든 해방운동들과 연대할 때 모두의 불평등을 해소할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 해결과 노동자국가 건설이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시적 사안별 연대를 넘어 지속적이고 유기적인 연대와 운동의 통일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66)는 것이며, “전체 운동 속에서 떠맡을 수 있는 적합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것”(66)이다. 그러한 공감대를 넓히는 일은 “노동자 정치가 떠맡아야 할 과제”(66)일 것이다.

자본 권력의 국제적 성격을 감안 하면 연대의 범위는 일국 내에 머물 수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기본원리는 노동자 국제주의라고 할 수 있다. 홍승용의 지적처럼 “한국 자본이 저개발국들의 저임금 노동자들 덕분에 초과이윤을 뽑아올 때, 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처우에 시달리며 3D업종을 연명시키고 있을 때, 한국 노동자들이 자본 권력의 편에 서지 않고 외국 노동자들 및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경험을 축적해가는 것은 노동자 국제주의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66-67)이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을 발판으로 “노동자 국제주의 조직의 부활과 제국주의 자본에 맞선 전략 구사도 가능해질 것”(67)이다.

5
홍승용은 선거 혹은 대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다가오는 대선에 어떻게 임할 것인지는 대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자정치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69) 노동자국가 건설을 위해서 노동자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 것은 결정적 조건이기에 “선거공간을 활용해야 한다”(69)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국가 건설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관심과 동참을 확대하기 위해 선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선거가 노동자국가 건설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 할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홍승용은 이번 대선에서 진행되었던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민중경선으로 진보-좌파 단일후보를 만들고 진보-좌파 연대연합정치를 추진하여 거대 양당과 함께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을 3분 하는 진보-좌파 진영을 건설하자는 제안’을 검토한다. 홍승용은 “정의당과 진보당 두 당을 진보-좌파 연대연합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은 양당의 노동자 민중적 뿌리를 다시 살려내고 노동자 민중정치의 현실적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키우려는 고심의 산물”(75)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현재의 진보 다원주의를 인정하자는 주장도 진보-좌파 내부에 고착된 분열 상태가 쉽사리 해소될 수 없으리라는 현실 판단의 산물일 것”(75)이며, 민주노총의 정치적 위상을 되살리려는 의도에도 공감한다.(75)

자본주의 근본 문제 해결이나 노동자국가 건설을 위한 노동자정치의 관점에서 홍승용의 검토는 무엇보다 “진보-좌파 연대연합정치론의 장기 구상이 자본독재로 인한 범인류적 위기를 극복할 노동자 민중권력의 성장 및 이를 통한 노동자국가 건설을 추진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대 양당과 진보-좌파의 3분할 구도를 설정하는 데에 비중을 두는 것”(75)이라는 점에서 “자본독재 극복을 먼 미래로 미뤄두는 입장의 산물”(75)이라고 여긴다. 홍승용은 이런 입장이 대선을 향후 노동자정치운동의 밑그림을 그리고 발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민중 경선을 통한 진보-좌파 단일후보를 선출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선의 국면에서 노동자 후보가 가지는 의미는 있을 것이다. 홍승용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노동자 후보는 대선에서 얻게 될 지지율이 아니라 향후 노동자정치 발전의 불씨 역할을 통해서만 자신이 존재 이유를 지닌다고 여겨야 한다. 대선은 정당이나 정파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동자 민중을 동원하는 일시적 행사가 아니라, 자본독재 극복을 위한 장기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진용을 갖추는 노동자 정치의 압축적 발전 기간이 되어야 한다.”(76) 선거가 끝난 지금 노동자들을 대변하려는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정당들이 살펴야 할 대목일 것이라고 여긴다.

6
홍승용은 지젝의 주의주의도 가끔 좋은 교훈을 던진다면서 그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누군가 혁명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혁명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미성숙한’ 시도에서 시작하여 겨냥한 목적 달성의 실패 바로 그 안에서 −거기에 ‘혁명의 교육학’이 있다− ‘정확한’ 순간을 위한 주체적 조건들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2)

홍승용이 인용한 지젝의 말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로부터 배우라, 더 잘 실패하라, 정직한 실패를 하라’와 같은 경구가 떠오른다. 새겨야 할 경구라고 여긴다. 한 번 실패 하면 그만둘 것인가, 한 번 성공하면 그만 성공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공과 실패와 관련하여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경구도 있다. ‘작은 성공을 반복하여 습관화하라’는 경구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과 실패와 관련한 경구들을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상태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살피고 가능한 시도들을 해나가는 과정에 충실 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 과정은 노동자들이 정치를 통해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자발적 연대’라는 가치를 실현해 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노동자들이 직면한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러한 가치지향에 회의적일 수 있다. 사회주의 붕괴와 자본축적의 위기와 자본의 혐오와 배제와 분열의 정치에 의해 노동도 노동자도 노동계급도 노동조합도 노동정당도 흩어지고 갈라지고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발적 복종이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바로 그러한 변화한 자본주의의 현실로 인해 노동자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일 테다.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평등’이라는 가치에 기반한 노동자들의 연대를 확산시키고, 이미 주체적인 노동자들의 자발성을 자본에 대한 복종에서 노동자들의 연대로 성격을 바꾸어가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들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모이고 모여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치를 하자는 것일 테다.

  1. 홍승용,《현장과 광장》5호, <대선과 노동자정치>, 56쪽. 이하에서 이 글에 대한 인용은 (쪽수)로 표기함.
    2. S.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박정수 역, 그린비 2009, 539-540쪽.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전선] 140호 3-4 사회진보연대의 극우 반동화가 조선일보 기고로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 글

[전선] 140호 3-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현황과 전망

2 Comments

  • Thank you for your sharing. I am worried that I lack creative ideas. It is your article that makes me full of hope. Thank you. But, I have a question, can you help me?

  • ตุ๊กตาผู้ใหญ่ https://th.yourdoll.com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