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남북미, 남북미중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노동존중을 내걸고 그와 정반대되는 노동말살을 일삼고 있듯이, 문재인 정권은 말로는 종전선언을 제안하면서도 실제로는 종전선언과 전면 배치되는 행동을 해왔다. 백보를 양보해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이제 종전선언을 제안한 만큼 그 선언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그럴 가능성도 없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유엔총회 연설이 있기 일주일 전인 지난 15일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김승균 대표를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국가보안법 8조 회합통신 조항으로 최근 실체도 불분명한 일련의 ‘간첩조작’을 일삼던 정권이 이제는 7조 찬양고무 조항마저 적용함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일각에서 요구하고 있던 부분개정마저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직책이름이 무색하게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나중의 일이다”는 말로 반통일적인 국가보안법 존속을 옹호했다.
종전선언을 하자며 그 선언의 상대를 여전히 적대시하고 반노동 반통일 반민족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고 그 악법을 휘둘러대는 것만 보더라도 이 정권이 얼마나 매사 겉 다르고 속 다르며, 앞뒤가 안 맞으며,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종전선언 체결의 실제 당사자들이 조미 당사자였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전쟁은 남과 북의 전쟁이기도 했고, 그것으로 고통 받은 것도 남과 북이고, 전쟁의 결과 실제 분단된 것도 남북이다. 따라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주체는 남과 북이어야 한다. 2018년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선언은 그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실제 그 선언이 있었던 2018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고 그 성과 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으로 합의하기까지 했다.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호소 이전에 자신이 할 일을 찾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처럼 자기가 주체적으로 할 일은 회피하고, 심지어 자기가 내뱉고 약속한 것과 정면 배치되는 행동을 하며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을 호소하는 것은 얼빠지기 이를 데 없는 짓이다.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선언이 사실상 파탄 난 것도 미국 요구에 의해 한미 워킹그룹(Working Group)이란 걸 만들어 놓고 사사건건 미국 눈치를 보며 북을 적대시해 왔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은 무엇이고 누가 파기해 왔는가?
한반도(조선반도)는 현재 정전체제이다. 1953년 7월 27일 전쟁의 직접적 당사자들이었던 조미(혹은 조·중 대 미국중심의 연합군) 간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68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정전협정은 형식적으로는 전쟁의 일시적 중단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전면적인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조미 간 체결한 정전협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제4조 60항에는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60.한국(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중국군은 이북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정전협정 이행을 거부한 채 미군은 76년 동안이나 이남에 진주하고 있다. 이로써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에 점령군으로 진주했던 미군의 강점상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드배치는 그 강점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가장 적나라한 반증이다. 사드배치는 대중국 군사 감시망, 미국 본토 보호를 위한 북핵감시처럼 오로지 미국의 군사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강제 배치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전에는 사드 배치 반대를 약속해 놓고는 집권 이후에는 아무런 명분도 없이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며 사드배치를 강행하고 있다.
정전협정에는 “모든 무장병력이…일체의 적대행위를 완전히 정지할 것을 명령하고 또 이를 보장할 것”, “한국(조선)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 “적대 중의 일체 해상군사역량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조선)육지에 인접한 해면(海面)을 존중하며 한국(조선)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 “적대 중의 일체 공중군사역량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조선)지역 및 이 지역에 인접한 해면의 상공을 존중한다”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 1956년 핵무기를 이남에 들여오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최첨단 군사무기를 수입하며, 공중에서는 핵폭격기를 수시로 출격시켜 이북을 위협하고 있으며, 바다에서는 연례적으로 대규모의 한미군사훈련을 실시하며, 군사경제적으로 봉쇄하고 말살정책을 펼침으로써 협정을 무력화 하고 사실상의 전쟁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최근 다시 한미군사훈련을 전개함으로써 어렵게 다시 연결한 남북통신선이 끊어지게 한 자들은 또 누구인가? 말만 들어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참수부대’라는 끔찍한 부대를 운용하며 또 이를 공공연하게 떠들어대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공정성’을 마치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듯 그토록 강조하는 자들이, 서해상을 중심으로 한미가 전개하는 거대한 연합훈련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북에서는 서해 인근 해주 해상에서 조·중합동 군사훈련을 단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종전선언과 주한미군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물이다
문재인 정권은 종전선언을 통해 북의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지만, 9.19평양공동선언에서는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북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과 적대행위 청산이 북비핵화와 등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 뒤 귀국하는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종전선언은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철수와는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주한미군 주둔이 정전협정 파기의 산물이며, 한미동맹이 종전과 평화협정의 중대한 걸림돌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을 정면 부정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종전선언 제안 직후에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주둔이나 한미동맹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잘못된 인상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라고 지적하며 종전선언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종전선언, 평화협정과 그 적대물인 한미(일)전쟁동맹, 미주둔군은 절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다. 반대로 북에 대한 제재 철회, 한미군사훈련 전면 중단, 남북 공동선언 이행, 주한미군 철수, 한미(일)군사동맹 해체는 종전선언, 평화협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북을 적대시하고 그 적대시 정책에 기반을 둔 국가보안법 체제를 그대로 두고 종전 운운하는 것 역시 말도 안 된다.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이런 피점령의 노예상태와 이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철저한 노예의식을 청산하고 사실상의 전쟁지속 상태와 이 상태를 영구적으로 존속시키려는 요인들을 끝장내야 한다.
점점 도를 더해가는 부패성과 기생성을 드러내며 정치놀음에 몰두하며 이전투구 중인 여야 양당체제의 십 수 명의 예비후보들 그 누구도 이러한 역사적 과업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물론이고 이들 부르주아 정치세력들 역시도 종전선언을 가로막는 역사의 폐기물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