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을 위해

송서경 l 배달노동자

도시가 죽고 사는 것은 기업에 달렸다. 노동자도 기업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으로 인해 임금이 오르고 안전을 위한 규제가 만들어지면 일자리는 없어진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은 이윤을 최대로 뽑아내는데 필요한 수단으로만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 지역의 공장, 사무실, 땅은 팔리지 않고, 노동자도 일을 하지 못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 확실한 사실에서 상반된 두 가지 논리가 도출된다. 첫 번째 논리는 고용을 위해 두 계급 사이의 현존하는 갈등을 회피하고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기업이 떠나지 않도록, 즉 기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자가 나면 희생해야 하고 흑자가 나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지역사회도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당장의 고용을 늘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한정된 자원을 노동자보다 기업 유치에 사용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노동자가 임금을 받는다. 기업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도 올라가고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이며, 더 큰 파이의 극히 작은 부분을 배분받아 결국 노동자의 소득도 증가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양보하고 정부가 혜택을 퍼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성숙에 따라 기업은 자동화까지 요구하게 되는데, 그때는 노동자도, 지자체도, 그 지역의 자영업자도 정신을 차려보면 늦었다.

또 다른 논리는 갈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노동자가 끊임없이 투쟁해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개별 투쟁마다 이기고 지고도 중요하지만, 다음 투쟁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의식화와 단결력에 집중하고, 조직된 노동자의 교육에도 힘쓴다. 하지만 투쟁을 통해 인건비나 안전 비용을 올리면 사람보다 기계를 들이거나 공정관리를 위한 기술을 들이는 스마트공장화하고, 이윤을 쥐어짤 수 있는 나라로 공장을 이전한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없어지고, 전·후방 업체들의 노동자도 타격받는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에서 중간 관리자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자동화는 표준화를 의미하니까요. 지금은 시험 단계입니다. 7, 8월쯤에는 노동자 4명을 해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조업 자본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구미, 군산, 통영 등의 도시가 죽고 있는 이유는 생산성이 낮아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아서이다. 따라서 두 번째 논리는 어중간하게 투쟁해서는 안 되며, 공격 대상을 헷갈리지 않고 자본으로 분명히 정하여 총자본에 대해 총공격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미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을 대다수와 사회적 가치를 위한 생산으로 이용하는 체제로 결국에는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첫 번째의 자본가 계급과의 조화 논리가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좋고,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좋다. 이 논리는 기업이 수익을 지속해서 내고 낙수효과가 발휘되는 상황에서 유효하지만, 현재 한국의 현실은 기업의 경영이 계속 악화된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고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성장의 흐름이다. 대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국내 요인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정부도 지원을 해주고 노동자에게도 노력을 더 하라고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동결하고 임금투쟁을 멈춰야 하며, 물량이 늘어나면 기꺼이 잔업하고 물량이 줄어들면 탄력적으로 일을 쉬고, 하청 노동자는 쥐어짜야 한다. 현재 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하다. 고용을 지켜야 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 이기적으로 관계 맺는다는 견해가 오늘날의 대중과 노동자계급에게는 정설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 일반의 본성인지에 대해서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정상적이라고 말한다.

인류 역사 무대에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부터는 친근한 인간상이 이기주의다. 경제적 부에 대한 욕망이 언제나 어느 정도 존재하는 힘이며, 다른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자명한 요소라고 가정하는 것은, 중세 사상가들에게는 비합리적이요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성상 경쟁적이고 상호 간 적의로 가득 차 있다고 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은 노동자와 자본, 제도,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진다. 노동자를 뺀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에 산업에서 핵심은 노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윤을 얻어 일자리를 줘야 노동자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원리는 장시간 중노동과 상시적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 구조조정 방편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와 외주화를 일삼는 자본의 전략을 용인하게 했다. 외주업체는 필요에 따라서 고용을 증감하고 노동자의 숙련을 올리는 계획은 없다. 언제 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산업의 핵심이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주장이지만, 현실은 자본이 핵심이다.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가 자본가에 의해 좌우되고, 자본의 효율성에 따라 산업구조가 개편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리오 휴버먼(Leo Huberman) 책 『휴버먼의 자본론』(1951)은 인간의 자유를 말한다. 온전한 삶을 누린다는 것, 즉 자유는 우리에게 너무 먼 개념이다. 리오 휴버먼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독재가 자연스러운 척 공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그 공존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내가 원하는 선거 후보를 뽑고 그 후보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더라도, 한국산연이 고용안정 노사합의문에 서명한 지 이틀 만에 폐업 통보한 것은 소수에 의한 독재라는 것이다. 생산이 이미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산 과정과 생산수단에 대한 의사 결정에 소수의 이사회가 아니라 일하는 주체와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그는 그리고 수요와 생산을 직접 연결하는 상식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대신, 생산과 이윤을 간접 연결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자유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자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없다. 자본가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소비자다. 사회주의 반대자들은 상품의 획일화를 우려하며 사회주의가 소비자에게 다양한 상품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속고 희롱당하는 존재이다. 통상적으로 품질과 생산에 투입된 노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에서는 브랜드 이미지로 형성되기도 하고 마케팅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수익을 극대화한다. 또한, 시장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양쪽이 서로 비대칭된 정보를 갖고 있어 소비자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여도 휴대폰 요금제 이해와 배급사가 없는 영화 구매는 불가능하며 어떤 종류의 기름이 섞여 있는지 모르는 주유소에서 주유한다. 우리는 싼 것이 비지떡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혼란스럽고, 중개자나 대행사를 중간에 꼈을 때마다 가치에 맞지 않는 가격을 지급할까 봐 불안하다.

노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지 결정할 수 없는 노동의 소외,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서 일차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은 노동자를 수동적이며 무력하게 만든다. 실제로 대다수 현대인은 수동적으로 일하고 노동으로부터 자아실현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오 휴버먼은 이를 넘어선 더 자유롭고 능동적인 생산, 생명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을 자유롭고 의식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1961)에서 마르크스의『경제학·철학 수고』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을 인간 본성으로 규정했다.

생명 활동의 유형에 한 종의 모든 특징, 그 유적 특성이 모두 깃들어 있다.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은 인간의 유적 특성이다. 사람이라는 종의 생명 활동에만 고유한 ‘자유로운 활동’과 ‘의식적인 활동’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객관 세계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으며 의식적으로 세계를 변혁하는 속성이 있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다.

우리 사회에는 공장 안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 민주주의가 있다. 아파트와 초등학교에도 있는 선거와 의사 결정권이 직장에는 없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에서 해고된 노조찬성파 노동자는 “우리가 발언권을 가져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묻는다. 사회주의 체제는 민주주의가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그리고 자유를 공유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다수 사람에게 자유는 구속의 부재보다 더 적극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게 대다수 사람에게는 더 중대하다. 자유는 온전한 삶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 …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코를리스 라몬트(Corliss Lamont)가 표현했듯이, 자유를 공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책 소개> 기후위기는 인류위기, 자본주의가 주범이다

다음 글

<여성> 공동체적으로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