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옥 ㅣ 부산회원
여성문제와 관련한 여러 책들을 읽고 또 현실이 강제하는 실천으로 학습할 시간이 부족한 동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서평을 쓰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중국과 관련한 책들을 뒤지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미 절판되어서 PDF판으로 읽었다. 그러나 중국혁명이란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판단해야 할 지점이 많아 이 짧은 책의 서평을 쓰기가 만만치 않았다. 고민하다가 원고마감에 쫓겨서 부족한대로 이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여성은 그 어깨에 하늘의 절반을 지고 있다.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모택동이 한 말이다. 이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표현한 것으로 클라라 체트킨이 “여성해방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통해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의 중국판이다.
『하늘의 절반, 중국의 혁명과 여성해방』은 동녘에서 1985년에 번역·출판되었다. 프랑스의 여성 12명이 1971년 6 주 동안 중국을 여행하고 난 뒤, 그 중의 한 명인 클로디 브로이엘이 1973년에 쓴 것이다. 원래 부제는 ‘현대 중국에 있어서의 여성해방운동’이었으나 옮긴이 김주영(1952년 경북 출생, 사회경제평론가)이 ‘중국의 혁명과 여성해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저자인 프랑스의 여성활동가 클로디 브로이엘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내용으로 보아 68혁명에 참가한 친마오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또한 그녀가 중국을 방문한 때인 1971년은 문화대혁명(1966~1976)의 전반기이며, 문화대혁명의 과오보다 장점이 더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중소분쟁과 중소이념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역사적 상황이라 코민테른과 소련에 대한 적대적인 언급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2.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중국혁명을 바라보다
이 책의 제1부는 <노동은 여성을, 여성은 노동을 변화시킨다>라는 주제로 중국의 근대화와 여성해방, 농촌의 사회화와 여성해방을 다루고 있다.
“1949년의 해방 직후 중국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것은 좁은 가정 안에서의 일에 변함없이 얽매여 있는 막대한 수의 여성들을 어떻게 하여 사회적 생산활동에 참여시키느냐 하는 문제였다. 중국은 이 일대 전환을 수행하는 데 지극히 유리한 비방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항일전쟁과 국내전의 20년을 장식하는 혁명의 승리는 옛 사회를 근본으로부터 변혁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타파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항일전쟁에 적극적으로 많이 참가했다. 그녀들은 해방구에서도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들은 많은 지방에서 농업생산에 종사했다. 그녀들의 해방을 더욱 추진하는 문제는 이와 같은 풍부한 경험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여성해방운동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의거할 수 있는 지극히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20쪽)
특히 제1부에서 저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와 여성해방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구분하면, 여성들의 대부분은 육체노동편에 서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중으로 그렇다. 모든 노동자와 똑 같이 지식으로부터 배제될 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 격리되어 전체적 시점 혹은 통일적 견해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세계란 부엌이고, 아이들의 방이고, 부부의 침실이다. 그녀들은 가사전문공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배우고 전체적인 관점을 갖기 위해 여러 직업을 통해 경험을 쌓고 훈련을 하는 것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해야 했고, 중국은 인민공사를 통해 그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제2부는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주제로 소련과는 또 다른 중국식 사회주의건설에서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처럼 낮은 생산력의 사회, 그리고 오랜 전쟁으로 황폐한 사회에서 기계화를 먼저 이루고 집단화를 이루려고 하면 안되고, 먼저 집단화를 하고 이후에 기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방식은 봉건적이나 생산관계는 사회주의화 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가사노동과 농업의 사회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건축정책에 있어서도 기술적 수단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대중동원 즉 집단화에 먼저 의존했다. 중국 최대의 유전지역인 다친유전은 1960년에는 목장에 지나지 않았으나 10년 후에는 노동자와 기술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4만 명이나 살게 되었다. 처음에 엘리트들이 내놓은 대규모건설계획은 대다수의 주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수정되었다. 노동현장과 주거지의 거리가 가깝고, 값싸고 질좋은 건축재료를 이용하고,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는 계획이 건축가, 노동자, 기술자, 양치기, 주부,당 간부로 이루어지는 건축위원회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다. 또한 여성들의 노력에 의해서 공업도시 다친은 공업과 농업이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다양한 가사노동 가운데 최초로 조직화된 것은 식사였고, 공동식당은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가장 오래된 공동건축물이었다.
제3부는 모성기능의 사회화라는 주제로 육아문제, 교육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프랑스의 수하물보관소와 같은 탁아소를 비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서 보육과 교육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가 하는 주요한 기능은 학교이외의 장소에서도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비근한 현실을 지식으로서 가르치고, 그 현실이 달리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질서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도 학교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가정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이 습관화된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럽고 정당한 불변의 질서라고 배우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남녀가 해야 할 역할을 이야기해주는, 다음과 같은 교과서의 글(어머니의 병으로 언니가 집안일을 한다는 내용)을 누구나 한번쯤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115쪽)
“아이들이 홀로 자립하지 않는 한, 여성들은 계속 억압받는다. ··· 아이들도 사회활동의 일역을 맡고, 어른과 아이가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아동교육관이 여성해방에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새로운 학교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변혁하는데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여성해방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교육혁명을 지향하며 싸우는 것은 ‘여성의 특수성’문제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아니다.”(117쪽)
중국혁명의 과정에서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드는 학교, 사회를 교실로 삼고 거기서 배운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3-4세의 어린아이들도 남녀차별 없이 단추다는 법을 배운다. 병든 친구를 돕는 것도 집단적으로 나누어서 한다. 교육과정에 노동이 포함되어있고, 중국의 아이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 학교문제에 교사와 학부모와 동등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진정한 남녀공학으로 여자아이도 소총을 잡고, 남자아이도 바느질을 한다.
제4부는 중국의 가족-새로운 기초공동체를 주제로 한다. 봉건사회에서 여자아이는 4,5세가 될 무렵 발을 긴 천으로 감고, 엄지발가락 외의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굽도록 단단히 묶어 발이 커지지 않게 하는 전족을 했다. 가난한 집안의 딸은 일찍 결혼시켜 시부모를 모시게 했고, 때로는 채찍으로 매를 맞으며 시부모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봉건적 가족에서 여자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허용되었다. 여자를 사는 것ㅇ, 파는 것, 때리는 것, 범하는 것,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 아이들을 빼앗는 것, 전족을 위해 발을 묶는 것, 폭력에 의해 가능했던 강제결혼. 남자들도 강제결혼의 희생자였는데, 7·8세에 휠씬 연상의 여성과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은래 수상도 이 풍습을 피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에 가담한 경우라고 한다.
중국혁명은 위대한 역전을 가져왔다.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홍군에 의해 해방된 곳에서는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팔로군이 오면 남녀평등이 실현된다고 여성들은 믿게 되었다. 여성들은 감시반을 조직하고 전형적인 사례, 즉 여성을 특별히 심하게 취급하는 전형적인 가족을 발견하면 그 여성을 만나서 설득했다. 마을 여성들의 집회를 조직하고 거기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소환하여 아내와 며느리의 고발에 대해 변명할 것을 거부하면, 상황은 달라졌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여성들이 남성들을 구타하는 일도 있었다. 부녀연합회가 감시하고 있었다. 집회에 나갔다는 이유로 아내를 때린 남편을 구타하는 ‘치료’를 했다. 이렇게 하여 여성들은 ‘위대한 역전’을 이루었다.
1950년에 제정된 혼인법은 중혼제와 축첩제가 금지되었고, 18세 이하의 소년, 소녀의 결혼도 금지되었다. 서로간의 자유로운 동의가 결혼을 위한 유일한 조건이며, 엄밀한 이유가 없어도 이혼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대토지 소유를 타파하는 ‘토지개혁’은 낡은 가족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농민의 가족에게 만이 아니라 혼자서 생활하고 있거나 남편과 헤어지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도 각각 토지가 분배됨으로써 남편의 힘은 매우 약해졌다. 거대한 이혼의 물결이 중국 전역에서 일어났고, 많은 청부결혼이 파기되었다.
“1950년 혼인법에 관하여 주은래의 부인인 등개초는 팜플렛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첫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인정하고 여성을 놀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지금도 역시 남아 있는 봉건주의의 영향을 일소하기 위해 간부사이에서 혼인법을 학습하고 사상개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둘째, 법을 고려하여 당조직과 행정조직 또는 모든 계층의 인민조직은 봉건적 혼인제도에 반대하는 광범한 대중운동을 주도하고 그 대중화와 대중 속에서의 폭넓고 철저한 교육에 진지하게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당은 혼인법의 단호한 실시를 보장하는 선전과 조직화의 일을 현재 영구 강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양성의 사회적 관계의 자유와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연애의 자유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167쪽)
사회주의 중국에서 늙은 노동자도 쓸모없는 짐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정열과 대담성을 갖춘 젊은 세대의 자질과 오랫동안에 걸친 계급투쟁의 실천으로 얻어진 노인들의 정치경험을 융합시킬 수 있다면, 혁명에 보다 큰 힘을 주는 폭약을 만들 수 있다.
중국에는 고아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사회에서는 특별한 불행이나 사생활상의 사건은 계급적 연대와 혁명적인 의식의 힘으로 해결되고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행정기관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친척이나 이웃에게 양자로 들어간다. 국가는 그 아이의 양육비를 지급한다. 또 중국의 여성들은 임신중절은 완전히 자유롭고, 사실상 무료(약 3원)이다. 다른 치료를 받은 경우와 똑같이 100% 유급휴가가 있다. 임신 중의 검진은 6개월까지는 매월 1회, 8개월까지는 매월 2회, 그 이후부터는 매주 실시된다.
제5부는 중국에서의 성논쟁이란 주제로 자연적 욕구와 문화적 욕구, 새로운 성문화의 출현, 사랑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혼인법은 양성의 평등, 여성에 대한 보호에서 나아가 남성에 대한 차별조항이 있다. 제 18조에서 남년은 아내가 임신 중에, 그리고 출산 후 일정기간(분만 후 1년 간)안에 이혼을 신청할 수 없지만 여성은 신청할 수 있다. 21조 1항은 이혼 후 아이를 어머니가 맡을 경우에는 아버지가 필요한 양육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를 아버지가 맡은 경우 어머니가 양육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24조에 의하면 남편은 아내와의 공동생활 상의 채무를 아내와 분담하지만, 채무의 변제자금이 부족할 때에는 남편에게 변제의 책임이 있다. 23조에는 이혼 후 재산 처분에 관하여 여성의 재산을 특별히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11조에 부부는 각기 자기의 성명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경제적 의존과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여성의 열등성이 있다. 혼인법의 팜플렛에서 등개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은 사랑에 관한 올바른 사고방식에 찬성하고, ‘지상의 사랑’이라는 사고방식, 그리고 모든 사랑에 대한 희롱에 반대한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사회적 지위와 돈과 미모, 그 밖의 사랑의 불변성을 보장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사랑과 결혼의 조건으로 간주하는 데 반대한다.”
3. 글을 마치며
부록에서 저자는 <간부조직 속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준다. 하급간부는 여성의 비율이 높지만 직책이 높아질수록 여성의 비율이 낮아짐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근거로 사회주의에서 여성해방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 중국에서는 봉건제사회의 잔재들과 투쟁하면서 성장해가는 사회이다. 혁명이전의 중국의 여성과 이후 ‘위대한 역전’이 이루진 상황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비교해보라. 역사가 단숨에,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다. 등소평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은 여러 차례 헌법 개정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해방의 문제도 후퇴하고 있다. 저임금노동자로 활용당하고 있는 중국의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중단 없는 혁명만이 여성해방을 완성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모성보호법은 1950년의 중국의 혼인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라고 볼 수도 있는 보육제도와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의 속성상 여성해방에 기여하지 못하고 자본의 이윤추구의 새로운 영역이 되고 있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라는 사회주의적 조치가 없는 가운데 어린이집은 대부분 민간어린이집이며 그나마 소수에 불과한 국공립어린이집도 민간위탁이다. 그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를 결성했다고 하면 각종 부당행위와 해고가 기다리는 게 현실이다. 결국 전체적인 여성해방의 문제도,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문제도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하루 빨리 각개로 진행되는 투쟁을 하나로 모아 노동자권력을 쟁취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그 길은 남·녀노동자의 단결로 만들어질 것이다.
<참고자료>
클로디 브로이엘 지음, 김주영 역 『하늘의 절반, 중국의 혁명과 여성해방』 동녘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