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직선 3기 지도부 결선 투표에 임하는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의 입장

‘금기를 깨고 선을 넘자’, ‘사회적 교섭’.

이번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 결선에 오른 1번 김상구 후보조가 내세운 주요 슬로건들이다. 언뜻 보면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아도 될 슬로건들처럼 보인다. ‘선을 넘자’라는 얘긴 투쟁사업장 지원을 열심히 하는 어느 문화단체에서도 했던 것 같고, 노동조합활동은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는 것이니 사회적 교섭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그 속뜻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김상구 후보조가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 투쟁사업장 지원 단체가 얘기하는 ‘선을 넘자’는 정부와 자본이 노동조합 활동의 한계라고 그어 놓은 선을 넘어 ‘노동자의 근본적 이익을 위해 과감히 투쟁하자’는 의미인데 1번 김상구 후보조가 하는 이야기는 그 정 반대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그어져 있는 대립과 갈등의 선을 깨고(지워 버리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것들을 과감히 없애겠다는 얘기다. 재벌 회장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나겠다는 것이다. 김상구 후보조가 주장하는 재벌회장들과의 만남은, 노동조합이 요구를 내걸고 전력을 다해 투쟁한 뒤의 마지막 담판 혹은 조인식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선거 토론회 과정에서 변명하기로는 산별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만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직력과 투쟁에 의지하지 않고 재벌회장 만나고 다니면 산별교섭이 성사가 될까? 아니 만나주기나 할까?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실권 없는 자본가단체 회장하고 노사화합, 노사협력의 상징으로 사진찍기용 만남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만 그게 민주노총 위원장이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적 교섭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이 힘 있는 총파업을 진행한 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와 담판을 하거나 조인식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김상구 후보조가 하는 주장은 노, 사, 정이 항상적인 협력 테이블을 가동한다는 얘기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직후의 노사정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대체로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자리다.

이들 후보 진영 인사들이 자주 하는 얘기로는, “그 투쟁이 되냐고?”, “또 뻥파업 선언이야?” 등의 얘기다. 투쟁이 안 되니 교섭으로 돌파(?)하자고 한다. 투쟁을 조직할 생각은 안하고 정부와 자본에게 청원하고 하소연하면 교섭자리에서 정부와 자본이 민주노총의 요구를 들어줄까? 어려운 조건에서도 최대한 투쟁을 조직하고 노자간의 힘관계를 조금이라도 바꿔내는 것이 노동조합의 할 일이다. 교섭자리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이 투쟁 정도에 달려 있다. 이런 기본적인 얘기를 민주노총 집행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가 공히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고, 각국 정부와 자본은 이 구조적 위기를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극복하고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는 신자유주의적 정세가 지속되고 있고, 노동자의 근본적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와 자본이 노동조합의 활동의 한계라고 그어 놓은 선을 넘어 과감히 투쟁해야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확보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명실상부한 제 1 노총이 된 후 처음으로 민주노총이 집행부 선거를 치르고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번 선거에는 그만큼 무게가 더해졌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번 선거는 코로나 19 펜데믹 와중에서 치러지고 있다. 코로나 19 펜데믹은 노동자·민중의 보건의료상의 위기를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도 촉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위험에 처해 있다. 새로 선출될 민주노총 집행부는 펜데믹 와중에서 위기에 처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적극 옹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펜데믹의 원인 및 그 해결방향 등과 관련해서도 조직내외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주도해, 이제까지 대자본이 틀지어온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내는 데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새로 뽑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임기 중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도 대응을 해야 한다. 노동·민중진영은 노동자 민중의 삶은 돌보지 않은 채 독점재벌체제를 유지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추종하고 지탱하는 것을 자신들의 정치의 최고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는 보수양당체제에 이번 대선에서야말로 커다란 균열을 내야 한다. 새로 뽑힐 민주노총 집행부가 힘을 쏟아야 할 사안이다.

촛불 이후 진행된 조직화 덕에 제 1노총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으로의 조직률은 5% 내외에 머물고 있다. 노조 조직화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하고 조직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또한 조합원 내부의 다양한 갈등이 해소되고, 단결이 강화되어야 한다. 투쟁을 통한 조직화와 단결 확보, 그리고 이를 통한 더 큰 단결투쟁과 조직화가 새 집행부의 주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의미와 과제를 가지고 있는 이번 선거에서 노동전선이 지지한 후보조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는 결선에 진출한 1번 김상구 후보조와 3번 양경수 후보조 두 후보조 모두에 대해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1번 김상구 후보조는 민주노조 활동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후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금기를 깨고 선을 넘어’ 정부와 자본의 품에 안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1번 김상구 후보조와 정책적 기조를 같이 하고, 인적으로도 얽혀 있는 과거 민주노총 간부들이 유독 민주당 등 보수정당으로 많이 갔다. 심지어는 어느 위원장은 한 국회의원 밑으로 들어가 우리 민주노조 운동 진영을 많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리의 이런 야박해 보이는 평가가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그럼 3번 양경수후보조는 찍어도 되는가? 문제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투쟁을 하겠노라 하고 있으니 1번 김상구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3번 양경수 후보조를 비판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 없 다. 어떻게 믿느냐고? 이제껏 민주노총을 일궈 온 것은 투쟁하는 조합원들이었고 민주노총의 사회적 표상도 이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만들어 왔다. 우리가 믿을 것은 이 투쟁하는 조합원들이고 이들이 ‘투쟁하겠다’ 약속한 집행부가 공약을 이행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멱살을 부여잡고서라도.

2020년 12월 17일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