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이 글은 노동전선 대중강좌 6강 (2020. 11. 24) 강의 원고입니다.
- 한형식 l 교육활동가
“노동자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다” 이십 세기 사회주의에서 이 구절은 너무나 많은 논쟁과 연구의 주제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지배가 민주주의일 수 있는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는 전제적이라고 한 것은 바로 마르크스 자신 아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가 민주적이려면 어떤 방식의 지배이어야 하는가? 이것은 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사회가 태어난 순간부터 사라진 날까지 고심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위의 문장에 바로 이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지배 흔히 ‘프롤레타리아 독재’ 에 대한 설명이라 해석되어온 구절이 나온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해”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수단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 조치들은 결국 “생산양식 전체의 변혁”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으로서 조직되어 운영하는 정치체가 된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통해 실행된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은 우선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해서다. 이 짧은 구절에서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과 “민주주의의 쟁취”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독일어 원문을 보자. “Wir sahen schon oben, daß der erste Schritt in der Arbeiterrevolution die Erhebung des Proletariats zur herrschenden Klasse, die Erkämpfung der Demokratie ist.” 독일어 원본에서는 둘을 동격으로 사용한다. 둘은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계급이 되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쟁취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전복시키는 것이니 그 자체로 민주주의라는 뜻일까? 아니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영어판에서는 “victory for democracy” 혹은 “win the battle of democracy”로 번역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된다는 의미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것은 사회의 구조 자체가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이다. 사회 체제 자체가 다른 체제로 변화하는 것을 사회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최초의 단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정치혁명의 형태로 전개된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라는 의미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가 이전까지의 계급지배와는 다르게 민주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는가? 우선 마르크스가 사용한 독재의 의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19세기 중반까지의 유럽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의미의 ‘독재’를 지칭하는 단어들로는 despotism, tyranny, absolutism, autocracy 등이 있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서 ‘독재’를 의미하는 단어는 dictatorship이다. dictatorship은 앞의 단어들과 동의어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 단어가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쓰인 것은 최근에 와서이다. 1848년 혁명기에도 이 단어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아니었고, 민주주의자들의 운동의 한 측면으로 여겨졌다. 또 dictatorship에는 평상시의 통치방식과 구별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동안의 권력사용이라는 의미가 기원에서부터 있었다. dictatorship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외침을 받는 등의 위기상황이 오면 집정관이 한시적으로 독재관(dictator)을 임명해서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이런 체제를 dictatura라고 불렀다. 그 이후로 dictatorship은 위기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운영되는 어떤 통치형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제일 일반적으로는 지배(rule)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초중반에는 이 단어를 ‘지배’나 ‘특정 집단의 우세’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했다. 마르크스의 용법에서도 dictatorship과 rule은 대체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정부 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세력인 정치 체제다. 그리고 이 때문에 부르주아지 독재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대비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는 부르주아지 독재이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정치 체제이다. 19세기에는 지금 보기에는 이상한 용어,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독재’ 같은 말을 사용한다. 지금 보면 용어모순이지만 이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통치’라고 읽으면 이해가 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이 되어서 통치하는데 그 통치형태가 민주적인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독재’인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말~20세기 초로 넘어오면서 dictatorship이 오늘날의 의미에서의 ‘독재’로 의미가 변한다. 용법의 변화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 경우에는 용법의 변화과정에서 인위적인 개입과 정치적인 해석이 있었다. 특히 러시아혁명 이후에 반공주의자들이 러시아혁명을 비판하기 위해서 dictatorship이라는 용어를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에 주로 의존하는 전제정치’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물론 여기에 이행의 과도기라는 특수한 상황의 정치적 지배라는 의미도 덧붙여진다. 그러나 예외적 상황이 반드시 오늘날 용법에서의 독재, 즉 비민주적이고 억압적, 통제적인 정치권력의 작동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dictatorship과 democracy는 범주가 다른 말이다. dictatorship은 통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democracy는 통치의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상승, 민주주의의 쟁취” 구절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해 지배하는 시기의 정치는 완전한 무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부르주아지의 계급지배보다는 더 민주적일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범주가 다른 말을 같은 범주 안으로 옮겨 놓고, dictatorship과 democracy를 다 통치의 성격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19세기부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용어를 썼는데, 용법이 바뀌면서 이제는 자기들 입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독재를 옹호하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므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반의어라는 냉전 시대의 개념쌍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이런 용법이 확산되는 계기는 냉전 시대의 반 소련전선이다. 그리고 반공주의자들에게 그런 논리를 제공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카우츠키와 레닌의 논쟁이다. 카우츠키가 러시아혁명을 비난하기 위해서 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책이 이런 용법이 고착화되는 원천이다.
아직 계급 소멸이 되지 않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전복하고 국가 권력을 장악해 이 권력으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부르주아 독재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쟁취다. 중요한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쟁취일 수 있는 조건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이 민주주의의 쟁취일 수 있는 조건 두 가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1.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 의식을 가진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할 만한 역량을 가져야 한다. 마르크스가 사용한 “고양(Erhebung)”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권력 장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정치세력(노동자 계급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처럼)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지배 계급으로의 고양이 아니다. 또 노동자 계급 스스로가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 하더라도 객관적 상황의 덕분으로 우연히 권력을 잡은 경우도 지배 계급으로 고양된 것이라 볼 수 없다. 마르크스는 이 구절에 앞서 노동자 계급이 계급적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주객관적 조건을 상당한 분량으로 다루었다. 협의의 정치적 조건의 우연한 결과로 기존 정치체제의 권력을 빼앗아 온다고 해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지배 계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2. 프롤레타리아트가 장악한 권력을 사용할 이때의 국가는 계급지배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없애고, 계급지배 철폐를 위한 조치를 수행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무계급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지만, 당면 목표는 정치적이다. 즉 국가권력을 장악해 그것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 즉 민주주의의 쟁취가 노동자 혁명의 첫 단계다.” 정치적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나키스트와의 차이를 보여주는 특징이다. 이때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과 행사가 또 다른 계급지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쟁취’다. 전적으로 민주적인 계급지배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다. 이 지배의 목적은 계급을 소멸하고 국가를 없애는 것 뿐이다.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국가의 주인을 바꾸고 국가기구를 장악함으로써,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던 기존의 체제를 전환하는 것이다. 그 전환의 핵심적 조치가 부르주아지 독재의 억압적인 수단을 파괴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방식에 대한 대안이 사회적 소유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 그 권력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진행할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과정에서 생산력의 급속한 증대가 핵심 과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정치 권력의 장악은 혁명의 기초 단계일 뿐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은 분배보다 생산에 우선 관심을 가진다. 생산수단을 쪼개어 개인에게 나누어 주거나 생산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말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통해 시급히 해야 하는 과제는 생산력을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늘리는 것이다. 생산력주의라고 비판 받아온 입장이기도 하다. 또 마르크스가 러시아 혁명처럼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혁명을 염두에 두고 이 주장을 한 것도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에서 혹은 전세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전제에서 혁명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해야할 과제를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생산력이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늘어나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라고 이해해야 한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함으로써 생산력이 증대하고 이윤추구와 경쟁의 원리는 배제된다. 이것이 사회적 소유의 목표다. 목적과 수단의 모순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과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도기가 역사적 퇴행으로 귀결되지 않아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지배가 곧 “민주주의의 쟁취”일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권력을 장악해 장기간 유지한다 하더라도 계급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기존의 지배 계급을 다른 지배 계급으로 대체한 새로운 계급 사회의 계급 독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이 민주주의의 쟁취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 장악 이전이나 과정에서 지배계급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어야 하며, 정치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계급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서 사용될 때만 권력 행사는 정당한 것이 된다. 정치 권력만 장악하면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보장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협소한 의미의 정치 투쟁에 매몰된 관점(주사파의 입장이 전형적인 예다.)이나 노동자 계급의 역량 강화를 통한 주체로의 상승을 등한시하고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의 정치권력 장악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과 동일시 하는 관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를 계급지배로 퇴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국가권력을 수단으로 한 국가의 해체, 계급의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과도기라 하고 국가권력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국가권력은 계급지배를 굳건히 유지하려는 성격을 버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정치권력, 국가기구의 장악을 거부한다. 비정치적인 집단적인 사회적 실천을 통한 역사적 변화만이 대안이다. 이런 시도는 지금의 역사적 조건에서 얼마나 실현가능할까? 국가가 항상 악하다는 생각은 국가에 대한 또 다른 물신화 아닌가? 또 소위 시민사회, 연합, 공동체의 힘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21세기의 거대한 국가권력과 소규모 공동체가 가진 힘의 현실적 차이는 과연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또 작은 공동체, 시민사회, 새로운 연합은 과연 옹호자들의 주장대로 실제로 민주적일까? 시민사회, 공동체를 주도하는 기존 사회의 엘리트 출신들의 영향력을 제어할 힘이 국가권력 외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분권화,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의 수십 년의 결론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많은 연구들이 시민사회의 심층 구조에서 기존 사회의 불평등이 강화되고 확대되는 경향을 발견했다. 신자유주의 40년의 경험은 국가, 계급정치가 더 이상 좌파에게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사례를 제공했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두 얼굴
근대 이후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는 국가라는 정치 단위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근대인들은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확대하면서도 공동체를 유지하고, 그 공동체를 통해 개인의 이익을 보장받는 정치적 절차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절차를 고대 그리스에서 빌려온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민주주의란 사회구성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들을 결정하거나(직접민주주의) 그게 불가능하다면 개인의 의사, 이익을 국가 안에서 다른 개인이나 기구를 통해 원래의 것에 가깝게 다시 실현하는 것, 즉 대의의 방식(대의민주주의)이라고 생각했다. 근대인들은 민주적 국가를 통해 어떤 제약도 없이 자행되던 폭력을 규제하고 감소시키기도 기대했다. 하지만 국가가 등장한 이후 인류는 역사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대규모의 잔인한 폭력이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역설을 경험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이 전제 위에서 정치적 활동을 한다.
지배와 관리라는 국가의 두 얼굴
민주주의의 역사는 새롭게 형성되던 근대국가를 무대로 대중의 뜻이 관철되는 정도와 방식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과정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문제는 국가의 성격과 기능의 영향을 받는다. 국가의 기능은 흔히 관리와 지배 두 가지라고 생각되었다.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성격이 달라진다.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일을 가치중립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는 도구가 국가라는 시각은 국가의 관리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국가의 지배기능에 주목하는 관점에서는 갈등하는 사회집단들 사이에서 더 힘센 집단이 자신들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국가라고 본다.
국가의 관리기능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주의는 국가 내부에서 실현될 수 있고, 또는 중립적 장치인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더 잘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한다. 의회가 국가 전체 혹은 행정부를 충분히 통제해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가가 갈등하는 사회집단 사이에서 더 강력한 집단이 약소한 집단을 지배하는 수단이고 그 방식이 억압적이라면 피지배 집단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는 국가 내부에서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국가와 양립 불가능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가를 넘어서야 가능하다. 근대국가의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방식인 의회민주주의는 두번째 관점을 가진 이들로부터 계급지배의 유지를 위한 정치적 기만절차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더 높은 이상의 추구를 가로막는 세속적 장애물이라는 보수주의로부터의 비난도 받아야 했다. 첫번째 비판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에서, 뒤의 비판은 파시즘에서 나왔다. 극좌와 극우는 의회민주주의를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국가를 중립적 도구라고 보고 의회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최선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파시즘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나 테러에 불과하다.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는 국가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오랫동안 존재했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계급지배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의견이 일치하지만 계급갈등을 근본 문제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국가 자체가 민주주의의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가를 먼저 해체하면 지배와 피지배도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적 갈등이 계급사회의 본질적 성격이기에 국가 역시 계급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급부상한 의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힘든 현실을 개선하고 궁극적인 해방에 전술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여 활용하려 했다.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노동자가 의회에 진출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입법을 하는 등의 이른바 의회전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런 태도와 함께 당의 지도적 역할, 혁명 이행기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과도기에는 기존 국가제도와 기능의 일부는 아직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 혁명 이후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 역할의 확대 등은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가 국가주의에 지나지 않는 증거였다.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인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전자가 의회민주의의를 수용해 자유주의로 수렴되었고 후자는 권위적인 방식에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둘 다 거대하고 관료적인 국가기구에 의존한 것도 사실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는 사람의 사람에 대한 통치를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사람의 사물에 대한 관리 문제에서 의견이 갈라진다. 관리해야 하는 사물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력을 계승하는 것이라면 사물에 대한 관리 역시 그에 맞는 규모와 형태를 가져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규모 생산력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사람간의 지배관계를 낳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지배는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적 의미의 정치이기에 폐지하고 사물에 대한 사람의 관리만 남는 사회를 지향한다. 반면에 아나키스트들은 대규모 생산력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사람에 대한 지배를 낳는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소규모의 자급자족적 공동체에 적합하게 경제의 규모와 운용방식을 전환하려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갈등은 정치적 관점뿐만 아니라 미래사회의 경제적 성격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반자본주의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면 이 차이가 가려질 수도 있다.
현실에 존재한 국가의 성격은 다양했고 역사 과정 속에서 극적으로 변화했다. 자국의 자본가를 위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식민지를 점령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것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였다. 동시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을 중재하고 복지제도를 운영한 주체도 국가였다. 후발 자본주의 지역에서 국가는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민중들을 동원하고 교육시키고 통제한 것 역시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국민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것도 국가고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이들에게 연금을 주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오늘날도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이름으로 관철되는 독점자본의 이익은 소속 국가의 강력한 힘에 의지하고 있으며 반대편에 있는 약소국 민중들은 그나마 국가에게 마지막 보호막을 기대한다. 대규모 전염병과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주장하고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시장만능의 광풍과 강대국의 자유무역 공세에 맞서 사회의 공적 성격을 그나마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장치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희망은 대개의 경우 실망, 좌절, 분노로 끝나지만 말이다. (앞의 일에는 적극적이고 뒤의 일에는 어느 국가나 소극적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 비대칭이 국가의 본질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국가의 기능이다.
국가의 성격과 기능이 이렇게 가변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국면에서는 아나키즘과 함께 국가를 해체하고자 하며 어떤 국면에서는 국가에 우호적이다. 국가권력의 억압적 사용과 침략전쟁 앞에서는 국가와 맞서며 자본의 전횡과 공공성의 훼손을 막기 위해 국가역할의 확대를 주장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는 계급사회에서 정치와 국가가 지배계급의 수단이라 보지만, 그 국가가 실제로 어떠한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국면마다 다르다고 본다. 국가를 절대악 혹은 절대선으로 보거나 아니면 가치중립적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게 마르크스주의의 국가관의 출발점이다.
폭력을 다시 생각하기
마르크스는 왜 국가를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 규정했을까? 인간이 집단생활을 했던 초기부터 오랫동안 사회는 평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사회 안에서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당하는 계급의 분리가 발생하면서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해진다. 사회 바깥에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장치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당대의 역사학, 인류학의 성과에 근거해 생각한 국가의 기원이다. 사회가 적대적 계급관계로 이루어진다면 그 계급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인 국가는 당연히 계급적이다.
근대 이후 성립된 국가들은 실제로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중립적이라고 선언했다. 국가는 명목상으로는 모든 국민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다. 국가가 중립적이라면 국가의 기능은 지배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보장과 복리후생이다. 국가가 국가 내부에서 수행하는 일상적 기능은 이전 시대보다는 폭력적이지 않다. 또 이런 근대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폭력은 전쟁이나 형벌처럼 예외적인 경우에 국가가 관장하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폭력은 불법이다. 국가가 이른바 합법적 절차에 의해 수행하는 폭력은, 심지어 전쟁이나 대량학살처럼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을 수반해도 폭력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잔인한 폭력인 두 번의 세계대전 전 과정은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인 행위의 책임자가 술에 취해 누군가의 뺨이라도 때렸다면 그는 수십만 명을 죽인 죄가 아니라 후자의 행위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이라도 합법성을 획득하면 폭력이 아니게 된다. 반대로 국가가 강제하는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행위는 낙서와 농담만으로도 처벌받기도 한다.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와 겹쳐진다. 기존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가장 큰 폭력으로 여겨진다.
오랫동안 비폭력적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노선으로 공격받아온 마르크스주의는 특히 폭력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해명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폭력은 과도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위반이다. 기존 사회의 모순이 더 이상 기존 사회 안에서 억압되거나 해결되거나 완화될 수 없을 지경까지 왔을 때, 모순은 사회체제라는 테두리를 넘어선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혁명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은 위반이라는 광의의 폭력 개념과 거의 같은 의미다. 혁명 과정에 물리적 폭력이 수반될 가능성이 높지만 물리적 폭력 유무가 본질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느냐 그렇지 않은가가 핵심이다. 이런 입장에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이유는 기존의 합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체제가 폭력을 독점하고 폭력 개념의 해석도 독점하면서 기존체제를 넘어서려는 모든 노력은 폭력으로 규정된다. 기존 체제가 자의적으로 정의한 폭력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사회의 근본적 변화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회를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모든 위반이 기존의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태도는 비현실적 환상이다. 예를들어 공중도덕으로부터의 일탈과 비주류 문화에의 탐닉은 세상을 털끝 하나 바꾸지 못하고 대중의 생산적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소진시킬 뿐이다.
폭력을 둘러싼 심각한 오해는 이것 말고도 많다. 우리는 흔히 점진적인 개혁은 비폭력적이고,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혁명은 많은 물리적 폭력과 혼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통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소작료를 조금 올리거나 내리기 위해 많은 목숨이 희생된 사회에서 전면적인 토지개혁이 평화적으로 시행되기도 했고, 어떤 근본적인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만 왕관을 쓴 사람 하나를 바꾸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근대 유럽사회가 선거권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흘린 피는 러시아 10월혁명에서 흐른 피의 수백 배는 쉽게 넘을 것이다.
자신 이외에게는 어떤 폭력도 금지하는 모든 기성의 체제는 실은 이전의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시키고 만들어졌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과 미국의 현 체제는 수백 년간의 오랜 폭력적 갈등과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대량학살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주의적 침략을 딛고 두 발로 서기 시작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폭력이란 말을 물리적 폭력으로 협소하게 사용하는 것도 오해의 중요한 원인이다. 폭력을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으로 협소화하면 비물질적 폭력에 오히려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통제와 억압과 규율화가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물리적 힘의 행사만 없으면 용인된다. 폭력 개념에 대한 오해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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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선원들이 열심히 낚시를 하러 가는데 보상을 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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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 Bushi는 서둘러 설명했습니다. “기공, 하급 관리들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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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ou Fangcheng을 생각하면 Ouchi Yoshiyan의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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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Daming이 취약하다는 말을 계속해서 퍼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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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晴らしい記事で、非常に教育的でした。感謝し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