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25호 노동조합에서의 사회주의자의 역할과 임무

자유기고가 l 노제혁

1. 의의와 한계 –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은 거대한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본가와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기구를 탄생시켰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민주적 조직이며, 자본과의 투쟁을 위한 강력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하지만, 항상 자본가와의 협상이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투쟁은 귀결되었다.

자본주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노동조합 속에서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지만, 결국 자본가와 협상으로 마무리 짓는 노동조합 투쟁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은 일상적 시기에 소수일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영향력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모순은 끊임없이 노동자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며, 투쟁의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모순을 폭로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2.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투쟁 등은 경제투쟁이고, 법 제도 개선, 국가 권력에 대한 투쟁은 정치투쟁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의 근본적 바탕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자본주의 의회에 대한 전복 없이 선거에서 표를 얻어 의회를 통해 정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을 하고, 법 제도 개선 등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현재의 ‘자본가 정당’을 단순히 ‘사회주의 정당’으로 교체하는 그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현재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을 선거를 통해 또는 ‘혁명’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회주의 정당’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투쟁은 단지 ‘사회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일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생각은 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국유화를 통해 계획경제를 실현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분리될 수 없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자주적, 민주적 조직인 ‘소비에트(평의회)’를 건설하고, 바로 그 소비에트(평의회)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 시작은 임금 인상 등의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위한 투쟁이지만, 그것이 전국적 투쟁으로 확산이 되어 전국적 지도부를 건설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

3. 단 한 번 승리를 위한 아흔아홉 번 패배 –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 집단적 권리를 주장하고 경험하는 자주적, 민주적 조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 투쟁의 결과물이며, 그러한 노동조합 조차 아직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이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집단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투쟁을 경험하도록 해야 하며, 자주적, 민주적 조직에 대한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과 노동자 국가 건설에 대한 필요성 들을 알 수 있도록 선전·선동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큰 갈등과 고민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 지도부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 결정적으로 자본가와의 협상을 통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고민하는 것이다. ‘끝까지 투쟁할 것인가? 적절한 협상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가?’

이러한 고민은 노동조합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민주적 조직이다. 즉, 아무리 사회주의 지도부라고 해도 노동자 대중의 뜻을 가스 러는 행동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만일 ‘사회주의적 대의’라는 명분으로 노동조합원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민주적 의사결정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 대중의 집단적 투쟁과 의식 발전 없이 성공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에서 몇 %로 합의해야 하는가? 그것은 조합원 총회의 다수 결정에 따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총회를 하기 전에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느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노동자 투쟁 속에서 투쟁의 확산을 조직하고, 노동자 국가의 필요성을 선전·선동하는 것이며, 최종적인 합의 결과는 오로지 조합원 총회 결과에 따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 투쟁 속에서 얼마나 조직화, 의식화가 이루어졌는가이지 임금을 몇 % 인상했는가로 투쟁이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 자본가들의 연합에 맞선 노동자들의 연대투쟁, 자본과 결탁한 경찰, 검찰, 정부의 행태를 폭로하면서 모든 노동자의 연대투쟁의 필요성을 알려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가 아닌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하고 사회를 운영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노동자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선전·선동해야 한다.

4. 그래도 지구는 돈다 – 사회주의 사상의 학습

현시대에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동설은 초등,중등 교육을 통해 배우게 되며, 지동설을 믿기 위해 많은 실험과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시대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의 학자들은 수많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지동설을 믿고 주장했다. 심지어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심문을 받으며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야 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사회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해야 하는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학습과 토론은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필요성을 확인하고 믿음을 갖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하고, 이러저러한 사회주의 정치, 경제적 이론에 숙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이윤을 위한 축적과 경쟁, 상품 생산이 아닌 노동자의 필요와 풍족한 삶을 위한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가 공장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 그것을 위한 노동자 국가 건설, 보다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과 평화를 위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함께 투쟁하면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학습과 토론은 사회주의에 동의를 못 하는 노동자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모든 노동자를 사회주의 ‘정치 경제학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참고 도서

알렉스 캘리니코스, 랠프 달링턴, 던컨 핼러스 『노동조합속의 사회주의자들』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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