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8호 스스로 희망이 되어 봄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권혁이 ㅣ 전교조 조합원

봄 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3년 전이었다.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과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며 앉아있던 안국동 길가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묵묵하게 앉아있던 어느 노신사분은 생전 처음보는 나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름진 눈가에 번지는 그 분의 눈물을 보며 나 역시 가슴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그간 피눈물로 지켜왔던 민주주의와 역사 파괴에 얼마나 치를 떨었던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눈물을 찍어내지 않는 이가 별로 없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만난 세월호 유가족 예은어머니 역시 울고 계셨다. 내 손을 잡으며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짧은 인사말만 남기시고 어디론가 서둘러 가셨다. (사실 예은어머니의 눈물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지만). 박근혜 퇴진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들은 실로 오랜만에 그야말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신나게 걸었다. 오늘 갑자기 그 봄 길이 떠올랐다.

다시 봄이 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이파리들이 어김없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사실 이번 겨울은 유례없이 기온이 높아 별로 추웠던 기억도 없다. 겨울이 좀 추워야 해충도 죽고 해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다는데, 기후변화로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던 차에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고 그러는지. 얼마 전 호주에서는 큰 산불로 수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 있었다. 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적지않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또 이란과 이탈리아로, 이제는 전세계로 확산되며 사실상 판데믹(감염병의 범지구적유행)이다.

3월 2일 교실에서 직접 얼굴 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담임과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일터.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담임을 맡은 고2 남학생들과 인사를 나눈 것은 20여 년 전 교직에 나온 이후로 처음이다. 개학이 3주 연기되었는데 추가 연기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개학을 하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의 체온을 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수업활동 역시 모둠활동 등을 하기 어려워 한 동안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듯싶다. 바이러스는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가를 몸서리치게 깨닫게 해주는데, 자연을 철저하게 파괴해 온 자본은 자신의 잘못을 중국과 신천지에 대한 혐오로 탈바꿈하고 있다. 감염병과 기후변화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는 자연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 텐데 우리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가. 실로 우울한 봄이다.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촛불에는 단지 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요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촛불이 되고 횃불이 되어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촛불을 통해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과 비정규직, 세월호 진상규명 등에 적어도 표면적인 관심과 조치를 ‘보여주어야’ 했을 것이다. 당선이 확정되자 광화문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집권하자마자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이것이 모두 ‘쇼’였음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하며 출범한 정부가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만나자는 호소는 철저히 외면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스물네 살의 청년 김용균님이 끔찍하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영남대의료원 해고자가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것이 모두 촛불정부라던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약속을 어긴 것이 어디 한 두 개여야지 말인가.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 재합법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여전히 34분의 해직 교사들이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다’던 세월호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고 세월호 유가족 경빈 어머니는 오늘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상규명 피케팅을 하고 계시다. 겨울방학에 청와대 앞에서 경빈 어머니와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 피케팅을 하고 있는데 김용균 열사 어머님이 나한테 걸어오셨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함께 해야 하는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청계천에서 분신하여 산화해간 아들을 통해 노동운동의 어머니로 거듭난 이소선 어머니가, 또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니에요. 저희가 어머니 도와 드려야죠’. 안타까운 눈빛만 교환하고 어머니는 옆에서 피케팅하던 전교조, 공무원 노조 동지들과 한 분 한 분 씩 인사를 나누었다. 그 시각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농성 중이었다. 촛불혁명의 열매만 가로챈 기회주의 정권 하에서 우리 노동자·민중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난여름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현장교사들의 연좌농성이 마무리되고 있을 무렵, 조창익 선생님으로부터 세월호 관련 글을 하나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내 글이 실릴 책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지만 전교조 본부 전임활동을 함께했고 내가 존경하는 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님의 부탁에 흔쾌히 글을 쓰겠다고 했다. 사실 내 글이 실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현장과 광장』의 존재조차 알기 어려웠으리라. 진보진영의 기라성 같은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의 글들 속에서 필자는 아무래도 현장 노동자들의 글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노조가 잔인하게 파괴되고 해고되면서 13년 동안 우린 멍하니 시름을 잊고 지낼 시간도 없었고 밟힐 대로 밟힌 상처뿐인 몸뚱이로라도 악다구니를 써야했습니다.

고공에서도 아직 수없이 악몽을 꾸는 것은 그 무참히 밟힌 자존심 상한 깊은 ‘상처’가 울먹이며 피속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나 돌아가리라’(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현장과 광장중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광명에서 전교조 지회활동을 하며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에 연대한 적이 있다. 당시 광명에 소재한 보건의료노조 성애병원 지부는 강한 노동조합이었다. 파업도 두 차례 벌이며 노동조합으로서 당당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에 보조를 맞추어 지역의 시민단체와 다른 노조들도 연대투쟁을 했다. 성애병원 지부는 지역 시민사회 활동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애병원 지부장님과 조합원들과 함께 용역깡패까지 동원된 그 지긋지긋한 세종병원에 원정 투쟁도 갔던 기억이 난다. 지역 만기가 되어 부천으로 근무지를 옮겼다가 2013년 광명에 다시 돌아왔을 때 성애병원 지부는 예전의 그 노조가 아니었다. 조합원 수도 대폭 줄어있었고 활동력도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고 했다. 지부장님으로부터 노조파괴가 있었다는 이야기만 짧게 들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더 물을 수 없었다. 전교조 역시 법외노조 통보 등 이명박과 박근혜의 집중 탄압으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장과 광장』에 실린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동지의 글을 통해 노조파괴 공작의 실체를 그리고 고공농성을 하는 또 다른 김진숙 동지를 느낄 수 있었다.

캄캄한 벼랑 끝에서 허우적거리던 날들을 걷어차고 문지방을 넘어 팔뚝질과 거리거리에서 온 몸으로 저항하는 익숙한 나를 진정으로 만날 때 희망이라는 말을 용서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추위는 시베리아 벌판 같겠지만 우리들은 잘 견디며 싸울 것이고, 살아서, 승리해서 여러분들과 환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나 돌아가리라’(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현장과 광장중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용서했다’는 박문진 동지의 글에 울컥했다. 대체 사람이 어떠한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 희망이라는 말을 증오하게 될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박문진 동지와 그의 투쟁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음을. 캄캄한 벼랑 끝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함을. 서른 분의 죽음, 그 잔인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부여잡고 버텨내어 결국 승리를 일구어낸 쌍용자동차 동지들처럼, 그리고 그것이 설사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 되더라도 말이다.

나는 『현장과 광장』에 소개된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 톨게이트 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 이제그만> 투쟁이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그것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자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광기로 이제 전 인류와 지구의 생명조차 위협받는 그리하여 도저히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워진 절망의 시대에 스스로 희망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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