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8호 사드반대 투쟁 현장에서 『현장과 광장』을 탐구함

김종희 l 사드반대김천시민대책위 기획팀장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이맘 때 풀꽃들은 그냥 흘깃 보아도 예쁘다. 저 혼자 피지 않고 많은 여린 포기들이, 아니면 한 포기에서 여러 송이들이 서로 기대어 피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봄꽃들이 잎이 나기 전에 서둘러 피어 오롯이 예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말이다.

나도 오늘 방금 보고 온 풀꽃의 잔상이 눈에 어른거리는 채로 지난 4년 동안 함께 했던 무수한 ‘너’에게 시인처럼 ‘너도 그렇다’고,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니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3월의 봄을 지나 찾아올 오래도록 잔인한 4월의 봄과, 『현장과 광장』이라는 묵직한 책을 앞에 두니 더욱 그렇다.

2016년 7월 13일 국방부가 성주에 사드발사대와 레이다 배치를 발표했다. 박근혜 없는 봄은 왔지만 2017년 4월은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틈타 미국의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이 드나들고 마침내 사드 발사대가 성주 소성리에 들어갔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던 후보가 투표일이 가까울수록 입장 변화를 거듭하였지만 그래도 그가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처럼 사드로 북한의 핵을 막거나 미사일을 막겠다는 무식하고 무법적인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2016년 7월부터 시작한 사드배치 반대 투쟁과 그 해 겨울 광화문의 촛불과 2017년의 봄은, 나로 하여금 그런 기대를 충분히 갖게 했다. 적어도 또 다른 4월 26일(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은 대선을 보름 여 남겨놓고 4천명이 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사드발사대 2기를 알박기했다)은 없을 것이라며 위로하게 했다. 위로가 무위로 돌아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박근혜의 그것보다 더 불법적으로 폭력적으로, 그리고 더 무식한 핑계 아래 나머지 4기마저 배치되어 마침내 사드는 레이다와 6기의 발사대라는 완전체를 이루었다.

당신들 촛불권력도 녹슬어 가는가?

서로 파르르 몸 떨어가며

애타게 되묻는다

당신네들은 어떤 권력이냐고

우리를 수장시킨

박근혜의 권력과 그

들의 농단과 야만을 비웃으며 집권한

문재인 촛불권력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조창익 <세월호 편지>

바뀐 정권이 번쩍이는 칼날을 한번쯤은 휘두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칼날은 처음부터 무뎠다. 어쩌면 녹슬었는가 물을 것도 없이 처음부터 칼집에 칼날이 들어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2017년 9월 7일,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자 소성리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란 길에는 모두 촘촘히 들이닥친 1만 여명의 경찰이 쏘아올린 조명탄과 함께 시작된 진압. 깜깜한 밤을 분노로 밝히며 미국사드에게 한 발짝도 길을 내주지 않겠노라고 싸웠던 18시간은, 촛불권력의 기만과 배신과 태생적 본질을 간파하기에 충분한 교훈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순진했다. 박근혜의 권력과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가, 우리가 쏘아 올렸다고 소성리 마을 회관에서, 김천역 광장에서 어머니아버지들 손잡고 기뻐했는데…청와대 어딘가에 한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2016년과 2017년의 겨울.

그때 나는 공권력의 불법과 폭력 앞에서 수없이 되물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라고. 광화문에서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외쳤던 나의 손에는 촛불 대신 투표용지 한 장이 놓였고, 그게 전부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며 광장으로 나온 천 몇 백 만 명의 ‘나’들이 [자발적 헌신적으로 발휘한 주인의식(홍승용 <노동운동과 국가> 중에서)]은 다시 수탈당해 버렸다. 광화문에서 같이 촛불을 들었던 그들이 박근혜가 쫓겨난 권력의 왕좌에 후속으로 들어앉았을 뿐이다. 그들은 폭정을 예고하는 인자함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추억을 소환하며 박근혜보다 더 지독한 폭력과 불법과 편가름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짓밟았다. 세월호 김용균 김수억 김용희 문중원……그리고 소성리. 거짓과 불법과 비상식과 몰염치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던 소성리. 그곳에서 나는 너무나 직접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막연히,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계속 서 있다.

“우리는 대개 기존의 국가상태를 자연조건 혹은 숙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심각한 생존의 문제나 인간적 존엄이 걸린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국가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홍승용 <노동운동과 국가>

“국가는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이며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착취에 의해 정해진 협소한 틀 안에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실제로는 언제나 소수를 위한, 유산계급만을 위한, 부자들만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

레닌 『국가와 혁명』

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광장의 경험과 소성리에서의 경험 속에서 의식적으로 길을 잃고 있다.

사드배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도 이 정부도 사드기지의 완성이라는 망령을 붙들고 춤추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2021년 국방예산을 통해 사드의 확장과 이동 배치에 이어 추가배치까지 요구할 태세를 드러냈다. 이미 성주 소성리 사드배치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한을 한미일 삼각동맹에 완전히 편입시키고 남한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오래된 계획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우리에게 방위비분담금 명목으로 50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우리나라 노무자들에게 무급휴가를 통보했다. 이미 직•간접적으로 매년 6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주한미군 주둔에 강탈당하고 있는데 이제 무려 11조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한에 주둔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트럼프가 ‘브루클린 임대아파트 월세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고 조롱하며 우리를 국제사회의 봉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이나 1개 포대에 1조원이 넘는 사드비용을 전가하려는 미국의 속내와 마주칠 때마다 이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가 몇 개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존권 투쟁에 국가보안법을 들이대고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도착된 현실 앞에 서 있는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드반대 투쟁의 현장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화물노동자들, 금속연맹 노동자들, 서비스직, 공공부문…5년째 복직투쟁을 하는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과 75미터 굴뚝에 올라 400일을 넘도록 고공농성한 파인텍 노동자들과 10년이 넘게 복직투쟁을 하던 콜트콜텍 노동자들.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서비스 노동자들과 대우조선의 해고된 노동자들. 이들과 함께 하면서 왜 사드투쟁 현장에서 노동문제를 얘기하냐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사드투쟁과 노동자’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할까에 봉착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각 계급, 즉,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 및 민중들은 한반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전술적으로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분단과 미 제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적 지배가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19년 노동자계급의 투쟁 평가와 2020년 정세전망>

무엇보다 사드반대 투쟁의 주체들이 대다수 농민이자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사드반대 투쟁은 곧 주체들인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존권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을 해고하여 길거리로 내쫓고 비정규직으로 몰아내는 자본의 착취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분단과 미 제국주의의 군사적 경제적 지배이기 때문에 사드반대 투쟁이 곧 노동자들의 복직투쟁과 비정규직 철폐투쟁 등과 함께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드반대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전쟁을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를 외칠 수 있었다.

2018년 1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부터 불어온 한반도 평화의 바람은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우리들의 속만 끓인 채 미 제국주의와 분단 고착화 세력의 반평화적인 본질을 더욱 철저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여전히 한반도는 분단 상태이며 안보라는 이념에 올라선 자본의 공세와 미국의 군사패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인하여 전세계 민중들의 삶이 더욱 힘겨워지고 당장은 우리 사회 민중들의 삶이 더욱 구석으로 바닥으로 몰리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2020년은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자본가계급과 분파 간의 헤게모니 경쟁이 격화하고 중간계층의 몰락이 가속화하는 상황,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가 강화될 개연성이 농후”

<2019년 노동자계급의 투쟁 평가와 2020년 정세전망>

하다

2020년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나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또 얼마나 거센 여론몰이를 할까? 안정과 호황은 한 번도 누리지 못하고 늘 사회적 경제적 위기 앞에만 내몰린 채 희생과 애국심을 강요당하는 이 못돼먹은 질서!

사람들에게 방이 와서

노동자들도 날개를 접는 것처럼 보이지만

날개를 깔거나

날개를 덮거나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를 악물고

사람들이 또 하루를 바삐 시작하기 전에

날개를 힘껏 폅니다.

노동이란 가치와 듣기만 해도 자유로운 해방이라는 말씀이

곧 인간의 삶

고희림 <새>

이 되는 그 날을 위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전기가 차단된 컴컴한 화장실 차가운 물로 찌든 냄새를 씻어내며 5개월을 넘게 대법원 판결을 피해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던 이강래 사장과 노동자들의 정당한 복직요구에 귀 닫고 눈 닫고 돌아앉은 소위 촛불정권을 향해 흔들림 없이 싸웠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투쟁은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와 만날 것이며, 13년의 노조파괴와 해고에 맞서 227일을 고공에서 싸워 승리한 박문진은 또 다른 이름의 박문진으로 우리와 연대할 것이다. 복직투쟁 중임에도 멀리 거제에서, 울산에서 굴이 제철이라며 사들고 또 후원금 봉투를 들고 소성리에 찾아와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울먹이던 그 노동자들. [모르는 낯선 사람들마저 눈물처럼 쏟아져 우리 곁으로] 오던 그 뜨거움과 애잔함은 [그래요 우리 조금만 더 당분간 벼랑 끝처럼 이렇게 버텨 보아요]하며 서로의 눈물을 닦고 또다시 몰려올 경찰 앞에 이음새 없는 인간 바리케이트가 되어 우리를 싸울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이 비정규직 철폐의 외침이든 미군트럭을 가로막는 외침이든!

『현장과 광장』 창간호의 표지를 넘기자 발행인 김형계, 편집위원 손호만, 조남수. 얼굴도 알고 투쟁현장에서 함께하기도 한 분들의 이름이 반갑게 눈에 쏘옥 들어온다. 이 분들을 비롯해서 책 속에 아는 분들의 이름이 많다. 지난 4년 동안 사드반대 투쟁을 하면서 함께 한 많은 분들과 나눈 연대의 정은 내 앞에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게 해 줄 것이다. 우선은 『현장과 광장』 창간호를 먼저 탐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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