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7호 <서평>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속에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해

송서경 ㅣ 배달 노동자

롯데쇼핑이 2025년까지 오프라인매장 200곳을 폐점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도부터 악화되는 적자가 문제가 아니라 적자를 버텨도 미래에 가망이 전혀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늘어나는 온라인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쿠팡에서는 피킹 및 포장하는 엄청난 수의 일용직을 24시간 사용하고, 늘어나는 배송량을 맞추기 위해 배송원이 아닌 일반인도 누구나 배송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온디맨드 서비스(On-demand: 수요에 따라 일감을 배정 받은 후 서비스 제공)가 사용되는데 이는 노동환경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일부이다.

상·하차나 배송에 필요한 인력이나 기계는 오래전부터 고용이 아닌 일감주기 형식으로 구해 왔다. 이제는 그 형식을 다른 산업에서도 따라하여 노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감을 받은 후 일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제조업계도 자동화로 인해 숙련 의존도가 낮아져서 비정규직, 사내하청, 아웃소싱 용역, 일용직, 주말 및 성수기 파트타임 고용 등을 사용한다. 알고리즘(서비스 플랫폼에 노동과정을 지휘·감독하고 단가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포함하고 있다하여) 노동자, 공유경제, P2P(Peer to Peer: 개인간)경제, GIG(임시직)경제 등 온디맨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에 따른 다양한 용어들이 있지만 사용자성, 노동자성, 그리고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음에는 모든 견해가 인정한다. 온디맨드 노동 형태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만으로 포함하기 어려운 다사용자 계약과 파견, 다중 하청, 대기 시간이 노동시간 보다 긴 온디맨드 노동 등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 노동계급이 분화되는 불가항력적인 흐름 속에서 최근에 생기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의 질을 고용의 증감으로 대신하기 위해 제조업은 자동화와 공정관리에 힘쓰고, 서비스업은 단시간 노동과 파견을 사용한다.

한강의 기적은 연탄재 속에서 일어났다. 1960년대 공단의 하꼬방에서 1980년대 대규모 임대아파트까지 거의 모든 국민이 연탄으로 겨울을 보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석탄산업은 채굴장의 심부화, 영세탄광의 난립, 생산탄질의 저하, LPG 사용증가, 도시가스 도입 등으로 쇠락하여 정부는 1989년부터 석탄산업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위해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을 추진했다. 석탄산업 노동자는 1988년 6만 명에서 2018년 2500명으로 감소했고 생산량도 동기간에 2,400만 톤에서 120만 톤으로 하락했다. 1986년 기준 355개의 탄광 중에 315개가 연10만 톤 이하를 생산하는 영세탄광이었기 때문에,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은 광산업자로부터 폐광신청을 받고 폐광대책비와 노동자의 체불임금, 위로금을 지급하고 이직노동자를 관리하는 폐광지원 사업이었다. ‘한국 석탄산업 구조조정의 정치 경제학(2010)/홍성걸’에 따르면 정부예상보다 2배 이상의 탄광이 폐광 신청하고, 노동자가 지원을 요구했다. 추경예산과 석유사업기금을 사용해서 구조조정이 정부의 예상보다 빠르게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광산주는 정부를 상대로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노동자들이 떠나며 결국 지역공동체는 생존권을 위협받았다. 1995년 3·3투쟁으로 인해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1995)’이 제정되었지만 이후 IMF의 여파로 강원랜드(내국인 카지노)만 설립되었다. 이원갑 사북민주항쟁동지회장은 경향신문(사북항쟁 39년···“인간답게 살아보자” 잊혀진 광부의 절규)과의 인터뷰에서 폐광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관광산업을 육성한다며 정선에 카지노가 들어섰지만 카지노가 광산 대체 산업이 아니라 광부 배척 산업이 됐다고 했다.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자와 지역공동체의 참여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쳤으며, 석탄산업은 현재까지도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표적인 사양산업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 기존의 공정에 비해 현저히 낮아 2025년까지 2500명 정도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수소차에 들어가지 않는 엔진을 비롯한 부품들의 수요가 줄어들며 하청 부품업체들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변화에 대해 노동계급은 석탄산업 구조조정의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을 전략을 고민하여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토록 처절한 투쟁이 있었던 탄광노동자들은 완전한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떠났고, 광부를 채용하지 않은 카지노만이 있을 뿐이다. 투쟁의 전투성이 사회와 지역공동체에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 자체의 구조조정은 자본주의 발전상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대형마트든, 석탄이든, 내연기관자동차든 노동운동이 막아낼 수 없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가난이었다. 세상이 평등해져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편향되지 않은 가치관을 갖기 위해 다양한 견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알라딘 서점에서 <의자놀이(2012)/공지영>를 실수로 사게 되었고 ‘만약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균형 있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더욱더 편향되지 않기 위해 낙수효과, 자본의 집중을 통한 이윤율 향상 등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재무제표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면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고이고 그 만큼과 전후방 파급효과를 포함하여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수많은 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해야 하는 것인가, 납품해야 하는 물량이 점점 감소하면 해고를 해야 할 텐데 그럼 해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 아닌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당장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나가야하는가,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 계급의 착취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 않은가, 불로소득은 명백히 불평등을 넘어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등 수많은 풀리지 않은 의문을 갖고 균형 있는 공부를 위해 경제금융학부에 진학했다. 필자는 대학에서 진득하게 공부하지는 못했고 시간은 흐르지만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같은 계층이 아니라고 회자된다. 과학적으로 사회를 분석했을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같은 노동계급이지만 현장에서는 동일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입사시기 격차가 커, 근속년수와 세대가 달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가 정말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고 따라서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나이가 많고 더 이상 다른 곳에 가서도 정착하기 힘든 사람들, 오랜 기간 일해 왔던 사람들만 주로 나서고 그마저도 쉽지 않다. 30대 이하 비정규직은 5년 이상 일했더라도 나가라면 나갈 준비를 하고 직접고용이나 정규직화는 꿈도 꾸고 있지 않다. 자본이 노동계급을 분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원·하청연대나 노동계급단결을 이루어 함께 투쟁해야한다는 당위성 자체에는 동의한다. 이러한 과제가 있고, 당위성에 근거해 현장에서 실천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하는데, 필자는 어떻게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쟁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현장과 광장> 창간호의 김승호 대표의 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답을 주었다. 아직은 필자의 사상과 신념에 확신이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 못하지만 일부 답을 찾은 것 같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서 김승호 대표는 노동자가 눈앞의 각자의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그리고 미래의 이해관계까지 통찰하고 그 이해관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아야만 비로소 계급적 단결로 나아갈 수 있고, 곧장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기에 앞서 사회적인 것의 복구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계급의 의식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연발생성에 내맡기는 것이 아닌, 목적의식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노동이 유연화 된다고 해서 투쟁하기 어려워진다는 진단에 끝내기 보다는 각 현장에서 관심 있는 사람은 다 모여서 학습하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배달 라이더로서 ‘어떻게 하면 오늘 50개를 칠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는 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다. 주변 라이더들은 노동조합 가입이 이익이 된다면 2주 만에 70명이 가입했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노동조합보다는 이직을 선택한다. 우리는 라이더든, 마트 노동자든,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든, 학교 급식실 노동자든 어디서나 최저임금을 받으며 전전하는 비정규직 노동 계급이다. 한 곳을 떠나도 다른 곳에서도 최저임금을 받지만 계속 직종과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저숙련, 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간다. 임금을 올리거나 복지제도를 확대할 힘이 없는 대다수의 노동자는 현재의 정규직 일자리에 집착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연대와 사회의 가치를 우선할 수 없다. 성장하면 위에서부터 소득이 내려올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불평등의 심화를 만들었고, 경제 성장과 일자리 양산에 대한 집착은 노동시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 차별, 위험의 전가를 사회적으로 용인하게 했다. 최근에는 GIG 노동 또는 On-demand 노동처럼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고용형태마저 나타났다. 한 명의 비숙련 노동자가 오전에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 콜을 대기하며 콜이 뜨면 잡아서 나가는 배달 라이더 일을 하고, 주말에 경비 일을 하기도 한다. 작년 한 해에는 2022년부터 도입되는 스마트톨링의 전격화를 목표로 요금수납업무가 없어질 일자리라고 언급되었고,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배달 플랫폼에서 크라우드 소싱(불특정 다수인 사람 구름떼에 일감을 뿌리고, 그때 그때 필요한 수의 사람들과 위탁계약)을 시작해 기존 라이더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제조업, 배달업에서 자본의 공격의 시기가 일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 속 자본의 발악에 대해 노동계급이 막강하게 대항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조직력과 전투적인 투쟁력은 계급 의식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노동계급의 의식성을 목적의식적으로 높이기 위해 필자부터 노동자들과 함께 학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장과 광장>은 선배 활동가들의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과제에 대한 글들을 모았기에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광장에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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