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l 노동전선 교육위원
안드레아스 말름은 스웨덴 사람인데, 자신을 활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글을 쓰는 활동가로 자기 규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인데, 박사라면 자신을 학자로 소개할 법도 한데 굳이 자신을 활동가로 소개하는 것이 이채롭다.
이 책(또는 그의 논문)은 ‘인류세’라는 명칭과 그 근저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소명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가 굳이 자신을 활동가로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인류세’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자본세’라는 점을 역사적이고도 생생한 사례를 들어 비판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 책을 읽으면 된다. 또한, 근대 초기 자본주의가 발흥할 때 새롭게 발명된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수력이 아니라 어떻게 화석에너지가 채택되었는지, 오늘날 기후 온난화의 기원이 어떠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메카니즘 속에서 불가피하게 채택되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또한 이 책이 제격이다.(이 책의 부제목은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 온난화의 기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자본주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당장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그의 해답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책을 후반부에 언급이 있기는 하다. 그의 정치적 성향을 알게 해주는 대안이다.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이 글의 목적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 내 나름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이 책의 후반부인 ‘옮긴이의 말’에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 잘못 전달하거나 곡해할 수도 있다는 결례를 무릅쓰고 불가피하게 목차에 따라서 간략하게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총 16장으로 되어 있고, 거의 800쪽이라는 분량의 두꺼운 책이다. 분량은 많지만 어렵지는 않아서 쉽게 읽힌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력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운데, 수력이 어떻게 석탄으로 대체되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추적하는 대목은 흥미롭기도 해서 잘 읽힌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서두에 해당한다. 4장부터 11장까지는 화석경제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12장부터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펼친다.
1장에서는 기후위기 현황을 개괄하고, 현재 자본주의의 경제를 화석경제로 정의하며, 기본적인 워밍업을 한다.
2장에서는 증기력이 발흥하게 된 원인을 분석한 기존의 주류 이론들을 소개한다. 수력의 결핍 때문이라는 결핍이론, 생산력의 진보를 위한 필요 때문에 발흥하게 되었다는 진보이론, 인류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과정이었다는 이론 등 세 가지 이론을 설명한다. 특히 인류의 본성으로 설명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인류세’ 용어와 관련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 이론에 저자는 모두 비판적인데, 3장부터 8장까지는 이 세 가지 주류이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3장에서 주목할 내용은 흐름, 동물력, 재고 등 세 가지로 에너지를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흐름’은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을 말하며 에너지의 일정한 흐름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전환시켜서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력’은 인간과 동물의 근력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재고’는 화석연료나 우라늄 등 일정한 에너지의 결정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여기에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즉, 증기력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수력은 상당 기간 주된 에너지원이었고 장점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증기력이 결국 수용되었느냐’하는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근본 물음이 등장한다.
4장에서는 증기력에서 수력으로 전환하던 1820년대와 1830년대의 영국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즉, 단결금지법이 폐지되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이 급증하였고, 1825년에 공황이 발생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5장에서는 전환의 수수께끼, 즉 여전한 수력의 장점에 대해서 말한다. 화석에너지가 주류를 차지한 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증기기관이 50년 동안에 걸쳐서 정착된 것을 보고 이러한 의문을 던진다. 증기는 왜 그렇게 늦게 정착되었을까? 그러나 저자는 거꾸로 묻는다. 여전한 수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증기력이 채택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6장부터 8장까지는 이 원인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6장에서는 수력을 확장하려던 일련의 시도들을 소개하고, 결국은 수력의 확장이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이 과정에는 자본의 논리가 관철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7장과 8장은 화력의 공간상, 시간상 장점을 이야기해준다.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는 점은 4장에서 본 영국의 시대적 상황 즉, 공황과 노동자계급의 도전에 대한 자본가들의 반응으로서 증기력이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즉 수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을 통제하는데 증기력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는 점이다.
9장과 10장에서는 이렇게 수력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증기력에 대해서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보여준다. 자본가들은 환호를 넘어서 기계와 증기를 신처럼 떠받들었고, 증기 물신주의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가서 저 연기를 멈추자’며 증기기관의 마개를 뽑기 위한 전국적인 폭동행진으로 대응한다. 영국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격렬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는 노동계급을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하면서 자본가들이 도입한 것이 증기력이다. 결국 9장과 10장은 ‘인류세’라는 명명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밝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4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 즉 지금까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은 영국의 면방직업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즉, 화석경제가 영국의 면방직업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11장은 박사학위 논문과 달리 이 책에 삽입된 내용이다. 영국의 면방직업 이외의 분야에서, 그리고 영국 이외의 국가에서 화석경제가 정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12장에서는 화석경제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주류이론들, 즉 결핍, 진보, 인류의 본성으로 설명한 것에 대해서 3장에서 11장까지 탐구한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해서 조목조목 반박한다.
13장은 화석경제의 구조를 마르크스 경제학의 공식을 이용해서 도식화하는 내용이다.
14장은 오늘날의 화석경제는 어떠한 모습인지를 중국을 대표로 해서 개발도상국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결국 최근에 와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어떻게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급증을 세 가지 양상, 즉 팽창효과, 강도효과, 통합효과 등을 통해서 보여준다. 즉,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저개발 국가까지 화석경제가 완성되면서 화석에너지 사용이 폭증하고, 에너지효율이 높지 못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서 이산화탄소는 더욱 폭증할 수밖에 없으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급망 다변화 때문에 원료와 중간재, 완성품이 세계 각국으로 이동하면서 이산화탄소가 폭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곡선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다.
15장은 흐름으로의 귀환할 필요를 말하고,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에 대해서 다룬다. 소비중독에 책임을 돌리는 설명에 대해서 반박하며, 이 책을 통해서 밝혔듯이 생산이 문제라는 점을 주장한다. 저자의 대안은 결국 생산 분야에서 ‘계획’이다.
16장은 ‘마개를 뽑을 시간’이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분발하자고 촉구한다. 아울러 이론의 역할에 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활동가인 저자가 보기에 이론이 제 역할을 못 할 뿐 아니라, ‘인류세’라는 명명으로 보듯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고 비판한다.
이상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이 글 외에도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옮긴이인 위대현 교수가 노동당 당원들에게 강의한 내용이 유튜브를 찾아보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직접 차분하게 숙독하는 것이 최고일 것이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증기력의 발흥과 화석경제의 기원, 즉 오늘날 기후 위기의 기원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알고 싶다면, 그리고 현재의 폭증하는 양상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알고 싶다면, 그리고 ‘인류세’라는 명명을 생생하게 비판하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두껍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요약본으로 수박 겉핥기를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붉은 수박의 풍부한 과육을 즐기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