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욱 ㅣ 목사
나는 어떤 주제나 사안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분야의 책을 꼭 읽는다. 인터넷 검색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아날로그 세대다.
지금 한국사회는 친일이 뜨거운 감자가 돼버렸다. 권력은 이상한 놈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해서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나라 전체의 공기를 친일로 몰아가는 데 골몰하고 있다. 성서에 비추어서 권력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이지 권력은 하나님급의 전능성이 있다. 그래서는 안 되고 또 전혀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 일들을 실현 가능하게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더욱 권력의 전능성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사도신조의 첫 대목,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는 매우 심오한 신앙고백이다. 전능성은 인간 세계 권력이 아닌 오직 신께만 있다는, 다른 말로 인간 세계의 전능성은 매우 위험하며, 특히 권력의 전능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겸손하면서도 결연한 의지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반가웠다. 제목 자체가 문제의식이 충만하다. 제국과 대학, 조센징. 식민지 조선 청년과 제국대학의 관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부제 또한 그렇다.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지금 한국 사회 문제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제국에서 배우고 돌아온 그들이 이 땅에 퍼질러 놓은 게 뭐냔 말이다.
모든 책들이 목차 제목 뽑는 것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 제목이 참 적절하다고 감탄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도 끝내준다. 제목만 일별해도 대강 책의 요지를 파악할 정도이다. 1장. 제국대학,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장치 2장. 조선인 교토제국대학생, 제국의 사업가가 되다. 3장. 누가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갔는가 4장. 관비유학, 가난한 조센징에게 건넨 제국의 장학금 5장. 기숙사에서 제국 엘리트의 정체성을 익히다. 6장.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누구인가. 7장. 총독부 ‘나리’가 되어 돌아온 조센징들 8장. 식민지인, 과학기술을 통해 제국의 주체를 꿈구다 9장.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들 10장. 금녀의 영역, 제국대학으로 유학 간 여성들 11장 식민지인들의 제국대학 동창회 12장 제국대학 유학생들은 해방 후 무엇을 하였나 13장 남한의 지식 재편을 주도하다 14장. 북한 지식 제도를 확립한 제국대학의 졸업생들. 나는 큰 제목만 소개했는데, 각 장마다 세분화한 작은 제목들을 보면 더 적절하다. 우스개소리로 깔맞춤 제목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 중 몇 가지만 추려서 소개하겠다.
2장. ‘조선인 교토제국대학생, 제국의 사업가가 되다’는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 이야기다. 김연수는 식민지 시기 조선을 대표하는 기업가였다. 김연수의 ‘경방’은 한국형 재벌의 기원이었다. 김연수의 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사회자본이 그의 아들, 손자에게 어떻게 대물림되는지 보자. 김연수의 둘째 아들 김상협 역시 1942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 총장과 문교부장관을 거쳐 전두환 때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구한말의 지주(김연수 부친)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은 것이다. 김연수-김상협 부자에게서 확인하듯이, 제국대학은 한국 사회 지배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도 기능했다. 이 구조는 김연수의 손자 김윤에게까지 이어졌다. 삼양홀딩스 대표 김윤은 할아버지의 사업파트너인 미쓰비시와 합자해서 전북 군산에 비스페놀-A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해방 이후에도 제국대학의 네트워크가 견고하다는 말이다.
4장, ‘관비 유학, 가난한 조센징에게 건넨 제국의 장학금’에는 특이한 사례가 등장한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이다. 우장춘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 무인 우범선과 일본 여성 사카이 나카 사이에서 출생했다. 우범선이 암살된 후 어려운 형편에 있던 우장춘은 아버지의 옛 동지들의 도움으로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 지원을 받게 된다. 모든 네트워크의 뼈대인 인맥은 얼마나 질기고 견고한가.
4장에는 ‘관비 유학생은 친일파일까?’라는 소제목이 있다. 결론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최현배도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교토제국대학 문학부를 거쳐서 한국어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국어학자다. 1943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뤘다.
“지금의 자리에서 총독부의 더러운 자금을 받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더 큰 지식을 구하려는 식민지 청년들의 꿈을 가난이 가로막았을 때, 총독부의 장학금은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을지도 모른다.”(85쪽)
누가 이런 일까지 비난하겠는가. 요는 그들이 관비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디에 썼고,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가 문제일 터.
9장.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들’은 빠뜨릴 수 없는 장이다.
‘별이 된 청년, 송몽규’는 교토제국대학 유학 중,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윤동주 등과 함께 체포되어 1945년 3월 7일에 29세의 나이로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다. 천재시인 윤동주가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송몽규, 장차 조국을 위해 한 몫을 하리라 기대했던 젊은 제국대학생은 그렇게 스러졌다.
‘곰이라 불린 투사, 박영출’도 있다. 1934년 봄,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졸업과 함께 귀국한 박영출은 이관술을 통해 1930년대 좌익운동의 핵심이었던 이재유를 만나 조선공산당 재건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검거된다. 이후 1936년에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8년 8월 옥사했다. 고문후유증이다. ‘곰’과 같은 우직함과 불꽃같은 열정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남선, 최한검 부자이야기다. 총독부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군대지원을 위한 ‘선배격려대’를 조직하여 권유단을 파견했다. 김연수, 최남선, 이광수 등 9명이다. 아들 최한검은 수치심에 자기 아버지가 일본에 오기 전에 종적을 감추었다. 아들이 사라진 강당에서 최남선은 솔선해서 입대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당시 법학부에 다니던 신상초는 최남선 등을 찾아가 “일군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훌륭하고 좋거든, 당신들이나 당신들 자식부터 내보낼 노릇이지, 우리 보고 권유는 왜 하느냐”라고 따져 최남선 등을 당황케 했다.
일본 유학생들의 정신세계, 의식구조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저자의 머리말이다. 여기에 저자의 문제의식이며 지금 한국 사회가 친일의 망령에서 헤매는 근본적인 이유까지 담겨 있다. 찬찬히 보자.
“조선인 유학생들은 ‘식민지(인)/제국(엘리트)’의 사이에서, ‘출세’와 ‘지사’ 사이에서, ‘일본인화의 과정’과 ‘조선인 된 슬픔’ 사이에서 분열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식민 권력은 조선 청년들의 일본 유학을 조선 지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친일적인’ 엘리트의 양성 과정이면서 역설적으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 세력을 육성하는 “조선 독립운동의 수원지”라며 골치 아파했다.
‘출세’와 ‘지사’라는 화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지향 사이의 갈등을 제국대학의 조선인 유학생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 하나의 논리가 ‘동족을 위한 출세’ 혹은 ‘실력양성론’이었다.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식민지 관료가 된 많은 제국대학 출신들은 자신의 출세를 고통에 신음하는 식민지 동족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도쿄의 자본주의 근대 문명을 직접 대면한 많은 유학생들은 그 빛에 눈이 멀었다. 많은 학생들이 일본에서의 유학 기간에 제국 일본이 먼저 이룩한 문명에 압도되었다. (미국 유학생들이 미국문화와 문명에 포획되어 검은머리 미국인이 돼서 돌아오는 양상과 똑같다.) 일본 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유학생들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뒤처진 자가 감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일본의 통치 안에서 그들이 성취한 자본주의 근대 문명을 식민지에 이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18-20쪽)
한국사회는 어느 분야든 유학을 가야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풍토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떤가. 유학갔다 온 사람들은 예외없이 제국의 문화와 문명에 포획되어 버린다. 그리고는 되레 제국의 일꾼이 돼서 조국을 포섭하는 일을 한다. 실로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요즘 인기드라마인 ‘폭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쪽에서 월급 받으면서 저쪽을 위해 일하는 검은머리 아메리칸이 너무 많아” 오죽하면 이런 대사가 나올까.
한국사회가 미군의 한국 점령을 용인하는 종미사대 의식구조, 한국권력의 주권과 자주 없는 대미종속 형태가 여전히 친일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