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6호 6-7 과학의 당파성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1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명호 ㅣ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핵심에 바로 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구분이 있다. 또한 느리게 변하는 것과 빠르게 변하는 것을 나누고 변화의 속도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알아내는 것도 역시 과학이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과학의 핵심이 아니라, 바로 이 상수와 변수, 속도와 변화율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형식은 변해왔지만,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미지의 것들을 다루기 위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루는 개념과 생각들은 변해왔지만, 현실을 다루기 위해 개념과 생각을 창조해 내는 것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죽음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죽음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 간 역사이며, 변하지 않는 것 속에서 변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느리게 변하는 것과 빠르게 변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논문들이 수많은 숫자와 데이터, 사례들로 주장하고 있는 것들도 이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들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명백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일관한다. 죽음과 삶에 관련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과학은 마치 죽음과 삶을 초월한 불멸자처럼 죽음과 삶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은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를 그 자체에 갖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 세계관이라고 논해보아야 아는 것이 모르는 것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증명하지 못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가설들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서 세계와 자신을 스스로 모델링하게 된다. 학자들은 항상 수많은 변수와 외란이 존재하고 서로가 서로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비선형적이고 복잡한 자연계와 인간사회를 단순화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일반화시켜 버리지만, 사실은 그 주장은 특정한 조건과 환경에서 국소적으로 작동할 뿐 신화보다도 더 못한 것이 되어 오히려 필요한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기 일쑤이다.

가치와 권력의 문제가 기본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두고 투쟁과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 모든 사회과학이 그러한 전장이다. 주류라고 하는 것들은 그들의 주장을 객관적인 결과와 데이터로 입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힘으로 주류를 만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드러눕게 된 행인들은 자기 키가 침대보다 작다고 혹은 크다고 이야기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결국 늘여지거나 절단이 되어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프로크루스테스를 때려잡을 수 있을 만큼의 힘과 기술을 가진 테세우스와 같은 이가 나타나 그를 해치워야만 그 침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의 과학은 당파성을 갖는데, 침대가 행인의 키에 비해 짧고 길다는 것을 논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대 밖에 있는 악행의 프로크루스테스를 확인하고 그를 때려잡을 힘과 기술을 갖추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침대와 행인의 길이를 재고 비교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과학은 곧 죽음과 삶을 가르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침대의 길이나 키를 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를 때려잡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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