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8호 코로나 19, 총선, 진보 노동진영

홍승용 ㅣ 현대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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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장을 총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팬데믹의 충격이 일시적인 수준에 머물고 빠른 기간 안에 자본주의 국제질서가 원상회복될지, 장기화로 대량해고 및 기업들의 줄도산과 함께 국제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게 될지, 혹시라도 기존의 생산⋅소비 질서 전반에 대한 범인류적 자성과 문명사적 일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없는 한, 위기의 최대 희생자는 노동자 민중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된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닥쳐온 축적 위기를 비상한 생산력 발전과 생산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로 타개하기보다, 손실을 가능한 한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김으로써 충격을 완화하려는 유혹에 훨씬 더 끌릴 것이다. 자본이 스스로 무한증식 본성을 버리고 노동자 민중의 풍요로운 삶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꿈꿀 리는 없을 듯하다. 실제로 이 환란의 와중에 벌써 경총은 법인세 인하, 규제완화, 노조 파괴 합법화 등의 숙원사업을 노골적으로 꺼내 들어 민주노총의 빈축을 사고 있다.

경제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내놓는 정책은 나라마다 정치세력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근본적으로 금융과 기업의 안전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친자본 정책과, 고용 안정에 역점을 두는 친노동 정책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시행되어야 할 긴급지원 정책에서도 법인세 인하나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하 등의 방식으로 자본의 요구에 따를 수도 있고, 재난기본소득 형태로 광범한 재분배 및 경기부양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 또 공공의료체계를 살려놓았느냐 의료민영화를 일반화했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갈라지기도 한다. 이 점에서 국가권력의 성격은 노동자 민중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총선은 국가권력의 성격을 일정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 민중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마땅하다. 총선이 저들만의 리그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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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동자 민중이 총선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재의 정치지형이 너무 험하고 추하여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기득권을 누려온 정객들과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권력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자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무장한 진영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이에 어긋나는 어떤 명분이나 논리도 모두 사치스러운 헛소리로 내몰리기 일쑤다.

통합당이 비례 위성당을 만든 것은 일관성이라도 있다. 처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했으니까. 그러나 이를 추진한 민주당까지 비례 위성당의 진흙탕에 뛰어든 것은 실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다. 반칙에 맞서려면 반칙도 불사해야 한다는 궁색한 논리는 집권 3년간의 업적에 대한 자신감 결여의 표현 아닌가? 선거법 개정의 주요 취지인 군소정당 배려라는 것부터가 공수처 신설을 위한 미끼였을 뿐인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한 공수처 신설과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실제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얼마나 바꿔줄 수 있을까? 그것이 ILO핵심협약비준, 비정규직 폐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국가보안법 철폐 등 노동자 민중의 삶과 직결된 주요 현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큼이라도 중요한가? 그동안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의 풍요롭고 평등한 삶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진해 왔는가? 팬데믹 속의 선진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민주당은 진영논리가 모든 것을 삼키는 이전투구 속에서 나름 선전할 테지만, 분명 노동자 민중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진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통합당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막장드라마 같은 모습은 선거판의 다반사라 쳐도, 차떼기나 총풍 혹은 무수한 공안몰이,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원죄를 탄핵만으로 다 갚았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그들이 핵심정책으로 내놓은 이른바 ‘민부론’은 경총의 요구를 고스란히 복사하는 수준 아닌가? 그들의 창의력 부족을 경멸하기 이전에 자신의 본색을 너무 솔직히 드러내 준 점을 고마워해야 하는가? 그들은 표를 위해 끊임없이 민생⋅서민⋅안보 등을 들먹이며 정치판을 혼탁하게 만들 테지만, 그들이 극우 반공 친재벌 체질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에 대한 불만 때문에, 특히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역겨워, 민주당과 통합당을 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통합당을 돕는 것은 결코 노동자 민중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통합당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자본과 노동의 진지한 대결은 자꾸 뒤로 밀려날 것이다.

민중당과 녹색당이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동참하여 민주당의 위성정당 급조를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다 배제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에 비해, 정의당은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끝까지 거부하여 최소한의 체면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개정선거법의 맹점에 대한 논란이 이미 분분했는데도 법제정 과정에서 그것을 간과했다는 책임은 정의당 몫으로 남는다. 그 이전에 진보정치를 내세우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선명하게 각인하지 못해왔다는 것은 더 큰 고질병이다. 주요 현안마다 당의 사활을 걸고 명료한 메시지를 내놓았어야 했는데, 그동안 통합당과 예각을 세워 싸우는 측면에서도 별로 존재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민주당의 극성스러운 여론전에 끌려다니며 정체성마저 잠식당해왔다. 이 점은 조국사태에 대한 미온적 입장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린뉴딜이나 불평등 해소 등을 약속하는 정책공약만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다. 원칙을 지켰다느니, 극단적 양당제를 견제하고 민생을 위해 양당의 조율자 역할을 한다느니 하는 말은 민생당이나 국민의 당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덕담이며, 노동자 민중의 감흥과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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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극렬한 진영대결 속에서 민중당이나 녹색당 등의 소수 정당은 물론 교섭단체를 꿈꾸는 정의당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는가? 선거 때마다 블랙홀처럼 모든 대안을 삼키는 거대 양당의 진영논리 앞에서 노동과 진보는 언제나 들러리 노릇에 만족해야 하는가? 이런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진영논리 자체를 거부하고 다원주의 같은 정치철학을 동원해야 하는가?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진영논리는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무기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보수당들의 이중대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대안으로 강력히 성장하려면 먼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정치 진영에는 극우 반공 친재벌 진영과 온건 보수 친재벌 진영만 아니라 이들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진보 노동진영도 엄존한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선전해야 한다. 자신의 배후에 노동자 민중의 대군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결코 민주당과 손잡고 혹은 민주당에 의지해서 의석을 조금씩 늘이겠다는 생각에 머물거나, 진영논리 자체를 회피하여 다원주의나 절충주의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둘째, 진보 노동진영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세력으로서, 자본주의 너머의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의 주역임을 자임해야 한다. 따라서 자본축적의 지속적 효율성을 위한 개선⋅개량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류가 발전시켜온 고도의 생산력과 무궁무진한 문화유산을 누구나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누구도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통해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할 수 없는 실질적 민주사회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셋째, 진보 노동진영은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에서 국가권력이 차지하는 결정적 의의를 철저히 자각하고, 극소수 대자본가가 아닌 절대다수 노동자 민중이 국가권력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 노동자국가 건설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노동자국가 건설 문제를 회피하면서 진보 노동진영이 보수 정치의 대안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진보 노동진영은 설득력 있는 노동자국가의 미래상을 구체화하고 그 효율적 실현 방안을 마련하여 노동자 민중들과 폭넓게 공유해 가야 한다. 공유의 범위에 비례해 진보 노동진영은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고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도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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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유권자는 단순히 기성 상품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고객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심판은 기존 정치세력을 바꿔놓는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상의 조건을 기준 삼아 진보정당들의 기존 성격과 잠재성을 평가하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진보정당들의 진로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제 극우 야당만 아니라 보수 여당에도 맞서 제대로 된 대안 진영을 형성하라고 큰 소리로 응원하고 힘을 보탤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직과 인맥 차원에서 혹은 세부적인 이론과 방법론 차원에서 나뉘어 있는 진보정당들이 거대 기성정당에 맞서 획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결투쟁이라는 절대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본주의를 인류발전과정 속의 짧은 한 단계로 파악하고 절대화하지 않는 관점을 공유한다면, 그리하여 자본주의 너머의 좀 더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정의당이든 민중당이든, 노동당이든 변혁당이든, 어느 조직이든 개인이든 이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새로운 진로를 만들어가자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허약성이 확연히 드러나기 이미 오래전부터 자본은 엄청난 생산력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 그 때문에, 끊임없이 축적위기에 부딪쳐왔다. 자본권력이 이 위기를 대량실업, 환경파괴, 전쟁 등의 전지구적 재앙으로 타개하려 시도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을 합리적으로 제어하여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자본권력에 끌려다니며 극소수를 위한 낙원과 절대다수를 위한 지옥이 출현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방관할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총선 역시 중요한 선택의 일환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진보 노동진영이 보수 기득권 정치세력들을 밀어낼 강력한 대안세력으로 성장해갈 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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