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1호 1-1 다시 심기일전하여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을 점검하다

문국진 ㅣ 맑스사상연구소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지향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존재인가? 나의 삶은 과연 올바른가? 나의 삶의 구체적 실천은 과연 의미있는 것인가?

새삼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러한 물음 앞에서 자못 주춤하게 된다. “회의하는 자아”로서 자아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이 근본적 물음 앞에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고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되돌아 보게 된다.

맑스가 자신의 좌우명이라 했던 “모든 것을 의심하라”라는 말은 나에게는 이제 ‘나의 모든 것을, 근본적인 것을 의심하라’는 말로 다가온다. 나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존재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실존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절대로 문제가 옳게 해결될 리 없다. 실존철학은 인간을 로빈슨크루소처럼 무인도의 개인을 상정하고 오로지 인간의 문제를 개인주의적 차원에 두고서 풀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초적으로 사회에 영향받고 역사에 규정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존재’인 것이다.

사회는 근본적으로 갈갈이 찢겨져 있다. 즉 유산계급이 있는가 하면 무산자계급이 있다. 유산계급은 모든 통제수단을 이용하여 무산계급을 무산계급인 채로 남겨두기 위하여 ‘통치’한다.

교육, 이데올로기, 정치, 종교, 언론, 성차별, 법적 통치, 학교, 기업내 지배구조, 등등 무수한 억압장치로 교묘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사회의 하층계급을 억누르고 지배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와 억압은 역사 속에서 늘 확대재생산되어 왔다.

이런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기만의 고담준론에 빠지거나 이와 같은 구조적 모순에 눈을 돌리거나 자기만의 안위에 빠진다면 그의 삶은 노예적 굴종의 삶이라 하겠다.

까뮈는 “인간은 저항하는 존재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없이 그 사회는 한발자욱도 전진하고 발전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역사 속에서의 이러한 역사적 저항과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해졌다.

세계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결, 계급 간 투쟁으로 바라보는 세계관과 역사관은 우리를 과연 누구의 편에 선 인생의 길로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나아가게 한다.

즉 지배자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피지배자, 피억압자의 편에 설 것인가–문제는 이렇게 선명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제기된다.

변혁! 사회의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변혁없이 피억압자의 해방은 불가능하다.

근본적 변혁! 단지 자본과 지배자의 떡고물이나 바라고 추구하는 개량주의가 아니라 사회변혁을 근본에 있어 지향할 때에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사회적 모순을 총체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타도한 이후에 인류는 사회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우리의 대안은 바로 이 ‘혁명적 사회주의’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자! 고립되고 분산된 일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근본모순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또 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으로 무장하고나서 비로소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고립되고 무력한 개인주의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힘있는 자기 인생의 길과 사회적 실천을 상호 결합시켜 나아갈 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소위 자유민주주의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이러한 모순과 저항을 은폐하는 기만적인 지배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니다.

자유민주주의적 세계관, 인생관을 타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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