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승 용 ㅣ 현대사상연구소
1.
노동자민중을 기만하는 데 이용되는 지배이데올로기들은 흔히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 문제들에서 출발한다. 거짓말이 먹히려면 거짓말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이 대체로 그럴듯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자료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불순한 지배적 의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지배관계를 명백히 밝히는 불씨가 될 만한 자료들을 가능한 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가려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 선별된 자료들을 일반화하고 해석하여 이론의 외양을 갖춰 갈 때는 좀더 자유롭게 지배적 의도가 왜곡의 기술을 발휘한다. 자료를 혼란스럽게 배열하여 인과관계를 뒤집거나 특정 요소를 과장하거나 피상적 현상들로 문제의 핵심을 덮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하는 해법이라는 것들은 대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문제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데에 쓰인다. 예컨대 거대 양당체제의 과거 폐해를 일일이 늘어놓고, 개혁이 안 되는 이유를 소선구제 혹은 ‘혐오와 배제의 정치’ 탓으로 돌리며, 정치적 다양성이나 비례성을 위해 비례대표 의석 확대나 중대선거구제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가운데 기득권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내각제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그러는 사이에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문제는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노동과 자본의 근본 모순은 정치와 무관한 것처럼 은폐되며 자본독재는 성역화된다. 자본독재 세력을 ‘혐오’하고 지구 밖으로 ‘배제’하려는 거대 정당이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정치적 도의인 것처럼 전제된다.
이 교묘한 속임수는 정치라는 이전투구의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들은 자본이 거두어들이는 온갖 형태의 이윤들이 노동력 착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감추고 자본의 업무상 비밀을 지키는 데에 방해가 될 만한 가치⋅가변자본⋅불변자본⋅유기적 구성⋅일반적 이윤율 저하 등의 핵심개념들을 금기시한다. 그리고는 생산수단의 소유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정의로운 분배 따위를 자본주의적 재앙 극복의 최고 처방으로 추천한다. 이러한 처방을 뒷받침할 세밀한 통계자료들도 적절히 활용된다. 문화예술이나 철학 영역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전투의지와 감각을 마비시키는 흑주술들이 난무한다. 이 영역이 토대 영역에서 벌어지는 “충돌들을 의식하고 싸워 끝장내는”[1]K. 맑스: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저작 선집 2, 최인호 역, 박종철출판사 1992, 478쪽. 영역임을 명시하는 토대-상부구조론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낙인찍힌다. 현실의 핵심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중들과 공유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리얼리즘은 포스트모던하게 이단시된다. 모순이 차이로 대체되는 가운데, 자본독재에 맞선 해방투쟁에서 노동자정치가 떠맡을 중심적인 몫은 1/n로 쪼개져 증발한다. 이들 이데올로기에는 현실사회주의의 패배, 자본독재의 위력, 해방운동의 부진 등에 기인하는 무수한 단편적 현실인식들이 그럴듯한 근거로 쓰인다.
그러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단편적 현실인식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 “진리는 전체다”[2]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Frankfurt/M. 1970, 24쪽. 이하 ‘현상’으로 약칭 라는 헤겔의 명제를 치유제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태의 ‘살아 있는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헤겔은 인식의 출발원리나 목적⋅과정⋅결과 모두를 중요시하며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 머물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태는 그 목적을 통해 모두 해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현과정을 통해 비로소 모두 해명되며, 결과가 현실적인 전체는 아니며 그 형성과정과 더불어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현상13) 이런 관점에서 그는 절대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의 장구함을 견딜 것, 각각의 계기를 소홀히 하지 말 것, 또 ‘전체적인 것 혹은 구체적인 것’이라는 그 규정상태로 전체를 고찰할 것 등을 요구한다.(현상33)
2.
유한한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절대적 인식에 도달하자는 것은 헤겔의 관념론적 과대망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인 것을 추구하는 헤겔의 부단한 노력 자체를 폄하할 일은 아니다. 엥겔스는 헤겔의 체계에서 비로소 “자연, 역사 및 정신의 전세계가 하나의 과정, 즉 부단한 운동⋅변화⋅전환 및 발전으로 파악되었고, 이 운동과 발전의 내적 연관이 지적되었다”(듀링31)고 평가한다. 그도 절대적 인식에 대한 욕구까지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이는 다음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사유의 지고성은 극히 지고하지 않게 사유하는 일련의 인간들을 통해 실현된다;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 요구를 가지는 인식은 일련의 상대적 오류들을 통해 실현된다; 그러한 것들은 인류의 생활이 무한히 지속되지 않고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듀링97) 그는 무조건적으로 참인 인식이 인류 생활의 ‘무한한’ 지속 없이 실현될 수 없고 따라서 어떠한 개별 인식도 절대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사유에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표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듀링97)
맑스 역시 상품에 대한 추상적 분석을 통해 잉여가치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인식해가는 장구한 과정을 감당한다. 자본론전체가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맑스는 이처럼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것이 과학적으로 올바른 방식임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헤겔이 비록 관념론으로 인해 현실적인 것을 사유의 산물로 파악하는 환상에 빠졌다고 비판하지만, 그처럼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방법’이 헤겔의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3] K.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 김호균 역, 그린비 2007, 71쪽 참조. 이하 ‘요강1’로 약칭. 구체적인 것에 대한 맑스의 규정, 즉 “구체적인 것은 그것이 수많은 규정들의 총괄, 다양한 것들의 통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며, 따라서 구체적인 것은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이라고 할지라도, 총괄과정, 결과로서 현상하지 출발점으로 현상하지 않는다”(요강1,71)는 규정도 헤겔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도르노의 설명에 따르면 헤겔의 경우 전체로부터 분리된 개별 규정은 추상적이다. 그리고 “전체를 향한 운동인 사유의 운동 자체는 헤겔의 의미에서 ‘구체적인 것’, 즉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향한 운동”[4]Th.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21, 71쪽.이다.
그러면 인식을 어디까지 넓혀야 구체적 인식이라는 자격을 얻게 되는지 물을 수 있다. 해방전쟁의 주체인 노동자민중에게는 인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곁가지를 무한히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지배관계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해방전쟁을 효율적⋅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할 만큼 넓히는 일이 관건일 것이다. 이처럼 구체적 인식을 통해 지배이데올로기의 허위를 폭로하는 일은 맑스나 엥겔스 혹은 헤겔이나 아도르노 같은 전문 지식인들이 맡아야 할 과제이지 노동자민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 지식인들도 곧잘 오류에 빠진다. 또한 노동자민중 각자가 자신의 운명이 걸린 해방전쟁의 문제들과 관련해 누구나 전문지식인이 될수록 승산은 커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엥겔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습 공격의 시대, 자각하지 못한 대중들의 선봉에 서서 자각한 소수가 수행하는 혁명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 조직의 완전한 변혁이라는 문제가 있는 곳에서는, 대중들 스스로가 변혁과정에 참여하여, 그들 스스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야 하는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5]F. 엥겔스: 「1895년 서문」,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쪽.
3.
역사와 계급의식(1923)에서 루카치는 총체성의 관점을 맑스주의 방법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총체성이라는 범주, 즉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전면적이고도 결정적인 지배는 맑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완전히 새로운 과학의 토대로 독창적으로 변형시켰던 그 방법의 본질이다.”[6]G. 루카치: G.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박정호/조만영 역, 거름 1986, 85쪽. 이하 ‘역사’로 약칭. 루카치는 이 총체성의 관점을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추상적⋅합리적으로 분해되고 분업이 전면화됨에 따라 사회현상 전체 및 이에 대한 의식이 파편화되는 현상, 즉 사물화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물화된 의식은 제반 영역들을 고립되고 정태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관조적⋅정관적으로 대함으로써 변혁적 실천과 멀어진다.(역사304) 이와 반대로 총체성의 관점은 사회현상을 제반 연관 속에서 역동적 과정으로 인식하며 주체의 의식적 활동에 의해 변혁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경우 사유활동은 현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과정 전체의 요소로 나타난다.(역사305) [7]지젝은 이처럼 현실적 과정 전체의 요소로 파악되는 사유를 ‘묻혀(embedded) 있는 과정으로서의 사유’라고 표현한다. S. 지젝: 시차적 관점, … Continue reading
총체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전체주의적 억압과 한묶음으로 악마화되기도 했다.[8] J. F.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이삼출/민승기 역, 민음사 1992, 59쪽 참조 그러나 이글턴이 지적하듯이 “총체성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은 단지 자본주의를 고찰하지 않겠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다.”[9]T. 이글턴: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문학사 2000, 33쪽 자본독재 세력은 자본주의적 재앙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없다고 선동하거나, 총체적 파악을 필사적으로 방해하려 든다. 총체적 관점에서, 즉 제반 본질적 연관과 역동적 과정 속에서 주체의 실천과 관련지어 파악하지 않으면 자본독재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루카치는 생산관계 속의 객관적 위치, 즉 계급적 조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총체성의 관점을 취할 객관적 가능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한, 총체성의 관점은 루카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본독재 세력이 아닌 노동자민중의 주요 무기다. 특히 사유활동을 현실적 과정과 단순히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현실적 과정 전체의 요소라고 볼 때, 객관적 정세를 인식하는 방식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생긴다. 즉 개인적 혹은 집단적 주체의 사유활동⋅발언⋅이론⋅결정 등을 객관적 조건과 별개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이 초래할 변화를 감안하여 객관적 정세를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들의 예언은 맥베스 사건과 동떨어진 채 사건 바깥에서 사건을 기술했는데 그 예언이 들어맞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예언은 사건의 주요 요소로서 함께 사건을 만들어냄으로써 적중한 것이다. 이는 여론조사가 여론조작에 쓰이는 원리이기도 하다. 같은 원리로 노동자정치운동의 비약적 발전과 노동자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끝없이 되뇌고 있으면 실제로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길을 찾아내면 실제로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 사유방식 없이는 장기적 지배관계로 인해 불리해진 조건을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면 된다’는 식의 주의주의를 선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체들 자신의 사유활동을 비롯한 주체적 요인들을 빼놓은 ‘객관적’ 정세는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이지도 못하다. 객관적인 현실 과정 속에 주체적 요인들을 실천적으로 포함시켜 파악하는 사유방법이야말로 총체성의 관점이 노동자민중에게 제공하는 최강의 무기다.
루카치는 부르주아들이 사물화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발언 자체도 맥베스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독재 세력도 관조적⋅정관적 태도에 자족하지 않으며, 노동자민중을 향한 흑주술을 통해 현실 과정, 즉 지배관계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규정해간다. 그들의 흑주술은 자본독재가 인류의 최종 종착점이니, 노동자국가나 평등사회 따위의 몽상으로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낙수효과와 복지혜택이나 감사히 누리라는 것 따위다. 그것이 잘 통하던 물적 조건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흔들리고 있다. 해방전쟁의 새 국면이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독재의 속임수를 꿰뚫고 구체적 인식을 통해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열악한 운동결과 너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 진리에는 미래 차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주
↑1 | K. 맑스: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저작 선집 2, 최인호 역, 박종철출판사 1992, 478쪽. |
---|---|
↑2 |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Frankfurt/M. 1970, 24쪽. 이하 ‘현상’으로 약칭 |
↑3 | K.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1, 김호균 역, 그린비 2007, 71쪽 참조. 이하 ‘요강1’로 약칭. |
↑4 | Th.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21, 71쪽. |
↑5 | F. 엥겔스: 「1895년 서문」,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쪽. |
↑6 | G. 루카치: G.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박정호/조만영 역, 거름 1986, 85쪽. 이하 ‘역사’로 약칭. |
↑7 | 지젝은 이처럼 현실적 과정 전체의 요소로 파악되는 사유를 ‘묻혀(embedded) 있는 과정으로서의 사유’라고 표현한다. S. 지젝: 시차적 관점, 김서영 역, 마티 2009, 18쪽 참조 |
↑8 | J. F. 리오타르: 포스트모던의 조건, 유정완/이삼출/민승기 역, 민음사 1992, 59쪽 참조 |
↑9 | T. 이글턴: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문학사 2000, 3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