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74호2-7 세상이 변하는 모양새

이범주 ㅣ 한의사

윤의 최후진술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응에서 야당이 북의 지령을 받았고 민주노총이 북과 내통했다는 등…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북 악마화 및 북과 내통하는 국내의 반국가세력’ 프레임을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명색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자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1970년대 ‘반공도덕’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기존 세상질서가 하루하루 다르게 격변해가는 지금 시점에서 말이지.

윤은 정녕 그렇게 생각할까….만약 그렇다면 그는 바보다.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면 사악한 자다. 어쨌거나 그는 최악의 인간이다. 바보거나 혹은 사악하거나 혹은 둘 다인 것이니.

문제는 그의 저열한 인식수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가 등장한 동영상에 숱하게 달리는, 그들 두둔하는 답글들을 보면 안다. 그를 변호하겠다며 나선 여성 변호사가, “그의 비상계엄을 통해 야당의 행태를 알게 되었고, 자신은 ‘계몽’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것도 들었다. 비로소 ‘계몽’되었다니!!! 홍장원에 반격당하며 숱한 비웃음 받았던 그녀가 뱉어냈던 그 ‘계몽論’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될 것 같다. 허우대는 멀쩡하던데….허우대가 곧 그 사람 자질은 아니라는 걸 그녀를 통해 새삼 알았다.

어제 오랜 친구를 만나 내가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戰의 전황과 전쟁의 원인 및 진행과정, 러시아의 입장과 우크라이나의 오류, 그리고 ‘對러시아 북의 군대 파견설’의 진위여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녀석은 내게 화를 냈다. 단편적인 지식에 근거해 잘못 판단하는 주제에 “지가 모든 것을 알고있는 것”마냥 오만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북의 파견설은 사실이냐고 물으니, “아니 그 당연한 것을 새삼스레 물으면 내가 뭐라 대답하겠냐?”며 역정을 냈다. 이런 식으로 내게 화를 내며 떠난 이들이 한 둘 아니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는 건 가능한 것일까…난 지금껏 지내오면서 나의 글과 말로 사람을 설득해 본 경험이 없다. 넘어서기 힘든 이견을 매번 확인하고 기분만 상한 채로 대화가 끝난 게 거의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나는?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보기에 합리적이라 판단하면, 늘 설득당하고 감동받아왔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하지만 나와 이야기해 본 상대방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 “저 꼴통자식의 대가리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내 정다운 오랜 친구 고**이도 이 생각 하면서 이불킥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 했으니…

세상의 변화는 대체로 어느날 갑자기, 한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압도해 버리는 어떤 거대한 힘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모양새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戰 종전임박 , 러-미간 협정, 러-미협정 통한 세상질서의 변화, 우크戰 과정에서 드러난 유럽과 미국 군사력과 경제력의 허접함….등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냐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이미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세상의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 우리의 상상과 판단의 한계를 간단히 무시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우리의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기정사실화, 상식화, 조건화 하는 모양으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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