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 강국진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읽고
은영지 l 사드저지 평화활동가
<선을 넘어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었다. 유무형의 온갖 선들이 그물망처럼 그어져 차별과 편견, 장애물로 작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풍경이 그 첫 번째다. 헌법 제11조 1항에도 누구든 사회적 신분에 의해 그 어떠한 차별을 받지 않는 평등한 권리를 누린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육법전서에 폼 잡으려고 나오는 기만적인 썰에 불과하다. 돈과 학벌, 지위, 권력이야말로 불변의 진리로 생명력을 뿜어내며 민중이 설 자리, 앉을 자리를 옥죄고 있다. 가난한 자들에게서 풍겨나는 비루한 냄새도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 냄새가 부자인 이선균을 불쾌하게 하는 바람에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 이야기다.
또 하나, 소성리 사드철거투쟁 현장에도 분노를 유발하는 ‘선’이 등장하고 있다. 폴리스 라인이라고 부르는 ‘질서 유지선’이다. 문재인의 군경이 불법 미제사드기지 완수작업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선 밖으로 내동댕이치고 고착시키는 공권력의 상징물. 그러나 그 ‘질서 유지선’ 정도로는 불안했던지 경찰들이 들고 있기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며 어느 날 쇠창살로 만든 엄청나게 길고 튼실한 바리케이트 구조물을 들여왔다. 소성리 전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락없는 감옥, 딱 그 짝이었다.
이러한 때에 마주한 박한식 강국진의 <선을 넘어 생각한다>라는 책은 많은 걸 사유하게 하지만 우리 민족을 갈라놓은 그 모든 편견과 장애물을 걷어내고 평화와 통일로 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76년 분단국가로 미국의 온갖 억압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현실을 이보다 더 잘 진단할 수 있을까 감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촛불의 염원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권력유지에 눈이 멀어 미제 호구노릇 하기 바빴고,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눈 시퍼렇게 뜨고 반미와 자주, 통일 얘기만 해도 잡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라는 전쟁연습도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대책없는 반동의 땅이다.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남북이 나아갈 길을 등불처럼 밝혀주고 있다.
‘북한(조선)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 ‘미치광이 혼자 북한을 지배한다는 착각’, ‘선군정치는 군부독재와 같은 말이 아니다,’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통일은 곧 손해라는 생각에 관하여’ 등 꼭 알고 싶은 흥미로운 주제들이 소복이 담겨 있다. 미제가 강요한 분단으로 인해 남북이 서로를 증오하는 광기어린 행태를 이젠 끝장내야 할 때라는 저자의 외침이 더없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강국진 기자가 질문을 하고 박한식 교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서술된 이 책에서 강 기자가 토로한 탄식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는 독일처럼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분단이 되었습니다. 정작 일본은 분단이 되지도 않았고 전쟁 책임을 제대로 지지도 않았는데 피해자인 우리는 가해자보다 더 가혹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외세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자라 지금도 한민족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230 p)
‘지금도’라는 표현에 울컥거렸다. 아직도 이 땅을 점령, 전쟁 준비에 혈안인 미군 때문에 민중들 가슴에 피멍 든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외침이었다. 제주 강정마을이 그렇고, 성주 소성리가 그러하고, 군산, 평택, 부산 부둣가 생화학 실험실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박한식 교수는 이북도 아니고 이남도 아닌 미국에서 50년을 살면서 남북을 오가며 통일운동을 해 온 분이다. 어린 시절 두 차례나 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의 잔혹함과 참담함을 겪은 그는 북한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대학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통해서였다. 그를 통해 지미 카터를 알았고, 카터를 통해 덩샤오핑을 알았고, 덩샤오핑을 통해 황장엽과 이어지면서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다시 미국 정부와 연결되고 북미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북ㆍ미 평화 설계자상’도 받게 된다. 50여 차례나 북한을 오고 간 그는 전쟁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려면 평화와 통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는 한 마디했다. “신뢰라는 것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라고. 북한에 대해선 빠삭한 그는 북한에 대한 온갖 억측과 과장, 왜곡 등의 오해가 많은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폐쇄적인 북한의 정보 자체도 원인이지만 의도적인 ‘악마화’나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1)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오래되고 끈질겼다. 1948년 북한의 정부 수립 때부터 그 말이 나왔으며 동구권이 붕괴되던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북한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미국이 설레발을 쳤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빠르면 사흘, 늦어도 3년 안에 무너질 거라는 말이 버젓이 나돌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때도 붕괴론이 등장했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건재하고 앞으로도 붕괴될 가능성은 없다. 저자는 “우리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면서 “붕괴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닳고 닳은 북한 붕괴론”이라며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북한은 9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식량난과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망하지 않았다.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라고 하면서 “북한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김일성 주석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미국 등 외세에 맞서 자주성을 지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 저자는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체제유지를 위한 환상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데 미국인들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환상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러한 착각과 꼴불견은, 물신이 지배하는 천민자본재벌국가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의 힘을 하찮게 취급하고 무시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망하기를 바라는 것도 놀부 심보이지만 실제로 북한엔 민중봉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 인구의 50퍼센트인 당원과 당원가족, 지성인들이 체제를 벗어나지 않는 부류이고 사회의 각 단위별로 ‘자아비판’제도를 통해 각종 불만을 순치시키고 있어서이다. 무엇보다 주권을 가진 나라가 주권을 가진 다른 나라를 폭망하기를 바라고 고립작전을 펴는 것도 폭력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쓰고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보수세력과 부르주아들은 북한이 붕괴하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한반도에 극심한 혼란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흡수통일이 아니라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붕괴의 결말은 ‘독일’이라기 보다는 ‘시리아’에 가까울 거”라고 내다봤다. 정확한 해석이다.
2) 미치광이가 지배하는 나라인가?
북한에 대한 가장 심각한 ‘허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친 놈’이며 그 미친 놈이 핵을 무기 삼아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혀 상황판단을 못하고 헛다리 짚고 있다. 2016년 9월9일 <뉴욕타임스>도 이렇게 썼다.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도발을 하는 배경에는 생존을 위한 이성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국가 정통성의 바탕’을 만들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물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선군사상’을 내놓는 등 정통성과 안보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를 살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1인 독재국가인가?”라는 질문에서 “아니다”가 정답이었다. 북한을 지배하는 것은 조선노동당으로, 당원이 360만 명이나 되는 거대하고 구심력이 강한 복합체로 능력주의로 운영하는 세계 최대정당이다. 1945년 해방 직후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으로 결성, 조선신민당과 합당해 북조선노동당을 거쳤고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과 합당하면서 조선노동당으로 발전했다. 한국전쟁 때 박헌영의 실각 후, 1958년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1930~40년 동북항일연군 동지들을 중핵으로 뭉친 정당으로 발돋음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조선노동당이 관용하는 범위 안에서 종교 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나라 밖에서 선군정치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선군정치는 군부 지배가 아니라 군인들을 존경하고 흠모하게 만들기 위해 군인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차원이고,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군인들이 해결해 주는 시스템”으로 주체사상과 함께 북한을 떠받치는 또 한 축인 선군사상의 실현이라고 한다.(70P)
3) 북한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북한 인권의 현주소가 어떠한 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말했다. “자연적이고 양도 불가능하며 신성불가침한 기본권인 인권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 (79p)이라고 하면서 생명권, 평등권, 선택권으로 분류했다. 권리의 소재 차원에서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인권을 볼 수도 있고 ‘집단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는데 북한은 공동체의 인권을 개인의 권리보다 앞세우는 나라다. 그럼에도 국제 정치 현장은 인권이 외교정책의 한 수단으로 동원되어 인권 정치로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됐다.
“냉전 시대 미국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중심에 두고 구소련 등 사회주의권 국가의 인권 문제만 거론했으며, 구소련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중심에 두고 자본주의 진영의 인권문제만 거론했다”
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한 예로, 30년 가까이 양심수로 감옥에서 지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역임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만델라는 국제앰네스티에서도 거부당한 투사였다. 폭력행위에 가담한 인사는 ‘양심수’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따르고 있어서였지만 영국 외무부와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가진 앰네스티는 영연방 국가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비정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영연방 입장을 옹호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북한 인권’에 대한 다양한 혼란과 모순, 위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81~82p)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인권 현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북한에 대한 가혹한 경제제재와 봉쇄, 고립작전으로 고통을 가하거나 국제 난민인 탈북민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고 주민의 생존권과 삶을 피폐화시킨 사악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북한의 경제난과 선교단체의 감언이설, 혹은 자본주의에 대한 거짓환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탈북한 이들의 왜곡된 증언도 북한 인권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했다. 주체사상의 연구자 황장엽, 정무원 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 외교관 출신 태영호 등이 탈북 후 북한에 해악을 끼친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명도는 북한이 핵탄두 5개를 보유하고 있고 추가로 5개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1994년 기자회견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청와대 지시로 조작된 해프닝이었다. 탈북자들이 인터뷰하면 돈을 받고, 그 내용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여론의 관심을 더 받고 돈 액수가 커지는 자본주의 생리가 작동하므로 탈북자들은 북한 인권에 대해 전세계가 듣고 싶어 하는 자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예가 많았다.
4) 대북 지원이 핵개발을 도왔으며 북한 비핵화는 가능한가?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10년간 ‘통일’이 눈 앞에 온 듯 모두 얼마나 기대감에 부풀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정권을 잡은 이명박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10년간 북한에 퍼주기를 하여 핵무기 개발로 이어졌다고 어깃장을 놓으면서 남북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고야 말았다. “현금으로 준 적이 없고 매년 20~30만 톤씩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다. 그것 가지고 핵을 못 만들지 않느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반박을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10년간 대북 지원액 2조 7658억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식량차관 (8872억 원)과 비료 지원(7872억 원)이었고 현금은 없었다. 다만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사업비용 지출은 공단건설을 위한 기업의 투자 차원이므로 ‘퍼주기’로 볼 수 없는 사안이었다. 한 예로, 경남 마창대교와 주변 도로를 건설하는데 쓴 예산이 3800억 원이었다. 그보다 적은 연평균 예산 2766억원(5천만 국민이 1인당 연평균 6000원도 안 되는 액수)을 인도적 차원에서 북에 지원한 것을 어떻게 퍼주기라고 욕을 할 수 있는가 저자는 따져 묻고 있다.
결국 그런 맹비난 때문에 남북 갈등이 커지면서 군사력 증강 비용을 늘이고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무기를 사들여 미국만 엄청난 돈을 챙기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남 정권은 이북에 퍼준 게 아니라 미국에 퍼주고 있었고 삥을 뜯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이끌고 미국에 가서 55조를 투자하겠다고 인심 거하게 쓰고 돌아와 우리 모두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느니, ‘통일은 대박’이라느니 요란한 말장난을 늘어놓고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하더니 결국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모든 사업을 단절시켜 버렸다. 부시에 이은 오바마 행정부 역시 ‘북한 무시 전략’이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한 가운데 북한은 2012년 인공위성을 발사했고, 3차(2013년), 4차 핵실험(2016년)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 모두 한반도 분단체제 지속이라는 미국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란은 핵무기를 원하지 않아요. 핵무기를 원했던 적도 없습니다. 우린 30년 동안 제재 때문에 힘들었고 그것을 풀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원심분리기를 돌리기 시작했지요. 그랬더니 주의를 좀 끌게 되더군요. 그래서 더 돌렸습니다. 더 관심을 받았어요. 결국 우리는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던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과 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홈랜드>라는 드라마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관계자가 말한 대사다.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도 같은 맥락으로 대입해 볼 수 있다.
“북한입장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선제공격 천명, 이라크 침공, 리비아 내전 개입, 거기다 ‘참수 작전’ 보도 등 모든 것이 생존을 위협하는 안보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14p)
실제로 1951년 한국전쟁 때 평양에 모의 핵폭탄을 투하하는 작전을 수행한 바 있고 1955년 1월에도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래드퍼드 미합참의장이 발언을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1957년 12월 한반도 남쪽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했으며 1972년 이남 전역에 핵탄두가 763개나 배치되었으니 북한 입장에선 방어 차원에서라도 핵무기 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나라가 탈핵으로 가는 게 맞지만 북한은 핵무기가 안 되고 미국은 가져도 된다는 건 해괴하기 짝이 없는 논리이다. 핵무기 보유를 허락하는 권한을 미국이 가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자칭 진보라고 하는 자들이 북한의 핵을 비판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가진 미국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할수록,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고립의 명분은 더욱 분명해지고 한반도 긴장이 극대화되며 분단체제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를 빌미로 안보 장사는 더욱 호황이고 미사일 방어체제나 무기를 수출하는 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군산복합체의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미제 정권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패트리어트와 키리졸브 훈련 등 각종 한미군사훈련을 통해 거대한 무기쇼를 펼친다. 이번 달 16일에 있을 한미군사훈련엔 북한을 상대로 한 핵전쟁 연습이 예정돼 있을 정도로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은 개도 안 물어갈 정도로 하찮은 것이 돼버렸고 이 땅에서 미군이 지배하는 ‘안보담론’은 민중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 이 억압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주한미군철수가 성사돼야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 정부와 교섭해야” 하며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질성을 인정하면서 남과 북이 정-반-합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인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리 있는 대안이고 명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도 더러 있었다.
“남북간의 평화와 협력, 통일을 통해 함께 번영하자”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개방할 경우 한국 자본가들의 천민적 셈법과 행태가 활개치는 돈벌이 시장으로 전락할까 우려가 되었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인민의 영혼까지도 상품화하여 공동체를 피폐하게 하려고 덤벼드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가 말이다. 또한, 저자가 북핵 문제를 잘 정리하여 공감하긴 했지만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아쉬움도 드러났으며 미국 핵의 본질과 전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폭력적이고 오만한 미제국주의의 행태를 비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공내전 때는 폭격은 없었는데 한국전쟁 때는 미국 비행기가 온 세상이 까맣게 되도록 폭탄을 뿌려댔고 그 공습 때문에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경험해 ‘평화주의자’가 되었다”는 표현에서는 진정성이 엿보였지만 청년시절 ‘빽’ 중에서 가장 센 ‘빽’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고백에서는 의식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강연회에서 북한에 대해 칭찬할 것이 있느냐고 어떤 노인이 고함을 질렀을 때 저자가 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남도 알고 이북도 아는 사람입니다. 이북이 분명 더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동강에서 생선을 잡아 회를 떠 주었는데 아주 맛있었습니다.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주면 누가 그걸 먹으려고 하겠습니까? 이북은 개발은 덜 된 대신에 환경은 훨씬 깨끗합니다.”
사람도 자연도 때묻지 않고 순수한 저 분단선 너머에 있는 조국 북한이 미래의 희망으로 와닿는 건 나뿐일까?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미제국주의와 그 아랫도리 노릇하기 바쁜 문재인 정부의 착취를 딛고 일어나 자주와 통일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 인민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길과 희망을 열기 위해 ‘선을 넘어 생각하자’는 저자 박한식 교수의 함의가 어느 선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변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민중이 주인되는 희망찬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단체제 남쪽 이곳 반동의 땅에서는 그 불의의 선을 넘고자 오늘도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자맥질은 쉼없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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