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6호 세계 각국 노동자·민중들의 투쟁, 심상치 않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국내외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대규모로 장기간에 걸쳐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근래에 보지 못한 양상이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양상의 구조적 위기가 지속하고 있고, 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각국 지배층의 노력은 체제의 결함을 근본적으로 혁파하려는 시도보다는 결국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의 해결책도 아닐뿐더러 민중생활의 악화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누가 가만히 앉아서 견디고 있겠는가!

각국 사례를 몇 가지 얘기해 보도록 하자. 작년 10월 18일 칠레에서는 출근시간대 지하철요금의 인상을 계기로 고등학생 중심으로 지하철역 점거시위가 있었다. 곧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지하철요금 인상에 국한하지 않고 저임금, 높은 교육비와 의료비 등 민중생활 악화, 부익부빈익빈, 소수 엘리트가문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 등에 대한 비판과 항의로 번졌다.

10월 25일 시위엔 100만명이 넘게 참가하였고, 이후 계속된 시위에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투옥되었다. 국민의 75%가 시위대를 지지했고, 시위대는 개헌을 요구했는데 이 요구는 그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결국 대통령은 전 각료의 사표를 받아 각료를 대폭 교체하였고 전 정치세력이 올해 4월까지 개헌을 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에 서명하였다. 개헌안은 더 개선된 인권조항, 시민의 참여 기제 강화, 교육과 의료의 국가책임 명시 등이 담길 예정이다. 전임 중도좌파 바첼렛 정권이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해 놓은 바 있고 신임 피녜라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개헌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는데 피녜라 정권이 민중들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칠레는 1973년 아엔데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먼저 시행된 나라로 유명하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남미의 유일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칠레를 남미의 모범생으로 추켜세워 왔지만 민중들은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낳은 칠레사회의 모순을 실천적으로 폭로했고, 이 모순들을 투쟁을 통해 교정해 나가고 있다.

유사한 시위는 레바논에서도 작년 10월 이래 아직까지 세달 넘게 진행되고 있다. 가솔린, 담배, 인터넷메신저 등에 대한 과세계획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고, 투쟁과정에서 수상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반체제 성격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성 정당이나 복잡한 종파를 가로지르는 민중들의 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에쿠아도르, 이라크 등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벌어졌다.

한편 프랑스에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악에 항의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전후 역사상 가장 장기간에 걸친 파업이고 최근에는 소방노조가 파업과 시위에 가담해 경찰과 부딪히기도 했다. ‘개혁’안을 마련한 연금개혁위원회는 42개의 연금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더 공정한 연금개혁안이라고 주장하나 여러 직종에서 은퇴시기를 늦추도록 되어 있다. 투쟁과정에서 연금개혁 위원장이 보험산업연맹에서 유급 활동을 한 사실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임을 하기도 했다.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한편 이런 강고한 대중투쟁은 아니고 합법적인 선거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이긴 하지만 미국 대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세계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적이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그리고 장기불황에 지친 백인노동자들에게 포퓰리즘을 선동해 정권을 잡은 트럼프가 재선되느냐 아니면 물꼬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대항마로 누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것인가가 관심사다. 특별히 이번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는 2016년에 이어, 민주당원은 아니지만 독립정파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해 온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의 경선 승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물꼬를 돌리되 혹시 그 방향을 사회주의운동의 활성화 쪽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샌더스 후보는 첫 경선지 아이오와주에서 전체 득표율은 약 3.5% 포인트 차이로 1위, 주 대의원수 배정과 전당대회 대의원 확보는 아이오와주 일정돌파 전략을 구사한 득표율 2위 부티지지 후보와 거의 엇비슷한 결과를 받아 쥐었다. 대세라 불리던 전 부통령 출신 바이든 후보는 4위로 밀려나 각종 예측을 무색케 하면서 대세론에 큰 타격을 입었다. 아이오와주 경선을 전후로 해서 많은 선거예측 기관들이 샌더스의 경선 승리를 점치고 있다.

샌더스 후보는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트럼프는 의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이를 겨냥하여 사회주의라고 비난하였다), ‘그린뉴딜’을 통한 기후위기 대처(세계 각국이 협의해 전쟁무기에 사용하는 예산 1.8조 달러를 기후위기 대처에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출하고 있다), 임기내 노동조합 가입률 2배로 늘리기 및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금지 입법화 등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 진보적인 미등록 이주민 정책, 대학생 등록금 빚 전액 탕감, 마리화나 합법화로 수감자수 줄이기,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현재 연방 최임 7.5달러), 동일 노동을 하는 데 남성 노동자 임금의 87%를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 차별 문제 해소, 그리고 이런 각종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소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가, 보험회사, 제약회사, 석유회사, 군산복합체, 교도소산업복합체에 중과세하거나 불법적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얼핏 반자본의 색채를 띤 공약을 제출하고 있다. 그런데 샌더스의 대통령의 당선과 공약의 성실한 이행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2016년 샌더스의 대선 경선 참여 이후 미국의 대학생 등 청년층 사이에 불고 있는 사회주의(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내용이나 상이야 천자만별이겠지만) 지지 바람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자본주의에 의문을 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사회주의 세력이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대선 출마를 매개로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 후보야 큰 틀에서 보면 사회민주주의를 벗어나기는 힘들겠지만 이들 젊은 사회주의자들이 어디까지 나아가고 어느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아직 열려진 문제라 해야겠다.

한국사회의 지배층과 노동자·민중 사이의 대립과 갈등도 이들 나라 못지않게 매우 치열하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정권의 공약파기나 역주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도 외면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집권여당과 그 지지세력들은 몇 개월간 치열하게 전개된 톨케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경마기수 문중원열사 문제, 영남의료원 해고노동자 고공농성, 한국지엠 비정규직 투쟁 등에 철저히 등을 돌리고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조국지키기와 자신들의 범죄적 행위를 은폐하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치열한 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민중들은 밑으로부터의 연대를 통해 자그마한 성과들을 쌓아가기도 하고 조직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가리워져 있던 촛불정부와 그 핵심 지지세력의 민낯을 훤히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장기저성장 속에서나마 성장을 해 오던 미국경제가 올해 다시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작년말과 올해초 진행되었고 지금도 계속되는 국내외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금까지의 투쟁의 성과에 힘입어 자신감을 회복하고, 차제에 다가오는 체제적 위기에 맞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우리도 기꺼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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