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을 비판하며

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 / 20260527)

김장민의 「삼성노조 투쟁에 대한 일부 운동권 냉소주의 비판」은 최근 삼성 노조 투쟁을 둘러싸고 형성된 노동운동 내부 논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삼성 노동자들의 성과급·이윤 배분 투쟁을 단순한 임금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 내부의 균열 가능성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운동권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한다면, 삼성 노동자들의 집단적 조직화와 교섭, 그리고 자본에 대한 일정한 양보 강제는 단순한 개별 사업장 투쟁 이상의 상징성과 파급력을 가진다. 삼성은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 전체를 상징하는 기업이며,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조합 조직화를 억압해 온 핵심 자본이었다. 따라서 삼성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자본과 대립하며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김장민이 비판하는 일부 운동권의 냉소주의 역시 실제 존재하는 문제다. 현실에서 일부 활동가들은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임금 정규직의 이기주의” 혹은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 정도로 단순화하며 폄하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추상적 계급의식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노동조건과 생존 문제 속에서 조직되며, 특히, 기업별 노조 체계 아래에서는 더욱 자신의 사업장과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운동은 처음부터 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형태로 등장하지 않았다. 초기 노동운동은 기업별·직종별 이해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자본과 국가의 구조적 압박 속에서 계급적 연대와 정치적 의식을 형성해 왔다. 그런 점에서 삼성 노동자들이 우선 자신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중심으로 투쟁한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곧바로 “이기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실 노동운동의 복합성과 발전과정을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으로 재단하는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장민의 평가 자체가 충분히 타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삼성 노조 투쟁의 의미를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면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와 임금·잉여가치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특히, 성과급과 이윤 배분 문제를 자본주의 자체의 균열처럼 해석하는 부분은 상당한 이론적 비약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임금과 잉여가치의 관계를 지나치게 실체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김장민의 논리 속에서는 삼성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몫 일부를 제도적으로 가져오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단순한 노동소득이 아니라 이윤소득 일부를 노동자가 확보하는 현상이라고 설명된다. 여기에는 자본가의 몫과 노동자의 몫이 객관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이 기존 자본가 몫 일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판매하는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점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능력을 일정 시간 동안 자본가에게 판매하며, 자본가는 그 노동력을 사용해 노동자가 임금 이상을 생산하도록 만든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가운데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이 임금으로 지급되고, 그 이상이 잉여가치가 된다.

이를 가장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 = c+v+s (여기서 c는 기계·설비·원료 등 생산수단에 해당하는 불변자본, v는 노동력 구매 비용인 임금, s는 노동자가 임금 이상으로 생산한 잉여가치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v와 s의 경계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회계적 숫자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 속에서 계속 이동하는 관계다.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하고, 자본은 가능한 한 더 많은 부분을 잉여가치로 전환하려 한다. 즉, 임금과 잉여가치의 경계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자연법칙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세력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되는 사회적 관계다. 김장민의 논리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바로 이 경계를 지나치게 실체화한다는 데 있다. 성과급과 이윤 배분을 두고 “노동자들이 자본가 몫 일부를 가져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성과급을 단순한 임금 형태의 변형이 아니라 자본소득 자체의 일부처럼 이해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성과급과 이윤 배분 역시 기본적으로는 임금체계 내부의 변형이다. 노동자들이 높은 성과급을 받더라도 생산수단 소유권은 여전히 자본가에게 있으며, 투자결정권과 경영권, 생산 과정 통제권 역시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성과 일부를 성과급 형태로 가져온다고 해서 임노동 관계 자체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에서 성과급과 이윤 배분 체계는 노동자들을 기업성과와 결합시키고 자기통제를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삼성과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는 실시간 생산관리, KPI(핵심성과지표)압박, AI 기반 공정통제, 다기능 노동체계, 성과주의 경쟁, 인력감축 후 업무 전가 등이 결합되며 노동강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노동자들은 기업성과를 자신의 문제로 내면화하게 되고, 동료 노동자들과 경쟁하며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게 된다.

이를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서 노동지출량 증가⇒잉여가치 확대

즉,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받더라도 자본은 동시에 노동강도 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훨씬 더 큰 규모의 잉여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과급 확대 자체를 곧바로 “자본주의 기본원리의 붕괴” 혹은 “임노동 체계의 균열”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더욱이 김장민은 “기업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윤 일부를 배분받는 현상”을 일정한 “공산주의적 요소”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다. 자본주의 기업 내부에서도 집단성과급, 연공급, 복지제도, 스톡옵션, 기업복지 체계 등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집단적 성과 배분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생산수단 소유 관계와 계급 권력을 변화시키는가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복지와 고임금 체계를 일정하게 수용하며 발전해 왔다. 유럽식 복지국가, 미국 전후 대기업의 고임금 체계, 일본식 기업복지 모델 등은 모두 자본주의 내부에서 존재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들이 존재했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핵심 생산 관계가 해체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 소유권과 생산 과정 통제권은 여전히 자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는 단순히 “노동자 몫을 적게 주는 체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체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과 이윤배분을 받는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관계가 곧바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김장민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의 한계를 지나치게 발전주의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는 삼성 노동자들이 아직 하청·비정규직과 충분히 연대하지 못하는 것을 노동운동 발전과정의 자연스러운 단계처럼 설명한다. 물론 현실 노동운동이 일정한 기업별·직종별 이해관계 속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계급적 연대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은 자본주의 축적체계 내부에 일정하게 통합되기도 하며, 하청·비정규직과 이해관계가 분리되는 경향 역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실제 한국 노동시장 구조는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분절 구조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자본은 바로 이러한 노동자 내부 분절을 활용하여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약화시켜 왔다. 따라서 문제를 단순히 “운동권이 연대를 조직하지 못해서”라고 환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기업별 노조 구조 자체와 자본주의 경쟁체계가 노동자 내부 분절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는 점 역시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더욱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확대하려 한다. 노동시간 연장과 생산성 향상, 노동강도 강화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역시 중요한 수단이 된다. 즉, 노동자들이 명목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물가상승이 더 빠르게 진행되면 실질적 삶의 조건은 다시 악화 될 수 있다. 특히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생활물가 상승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다시 자본축적 구조 속으로 종속시킨다.

여기서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자본의 노동시간 연장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자

자본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임금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확대하며 자신들의 축적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를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여기에 노동강도 강화와 인플레이션까지 결합되며 훨씬 복합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잉여가치 증대 방법 1 – 절대적 잉여가치 증대

먼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다. 노동자는 하루 노동시간 중 일부 동안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자본가를 위한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예를 들어 하루 10시간 노동 중 4시간이 자신의 임금에 해당 하는 필요노동이고, 나머지 6시간이 잉여노동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10시간=4시간(필요노동)+6시간(잉여노동)

여기서 자본은 노동시간 자체를 연장함으로써 잉여노동 시간을 확대하려 한다. 연장근로, 특근, 야간노동, 휴일 노동 확대가 대표적 방식이다. 노동자들이 일정한 임금인상을 쟁취하더라도 자본은 다시 노동시간을 늘려 더 많은 잉여노동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오랫동안 장시간 노동체계를 핵심 축적으로 활용해 왔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 첨단산업에서도 형식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괄임금제, 암묵적 초과노동, 프로젝트 집중노동, 교대제 확대 등을 통해 노동시간이 유연하게 연장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반도체·IT·배터리 산업처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납기 압박”과 “생산목표 달성”을 이유로 장시간 노동이 반복된다.

잉여가치 증대방법 2 – 상대적 잉여가치 증대

두 번째 방식은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다. 이는 노동시간 자체를 늘리지 않더라도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필요노동 시간을 줄이고 잉여노동 시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데 4시간이 필요했다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이후에는 3시간 만에 동일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8시간=3시간(필요노동)+5시간(잉여노동)

즉 노동시간 총량은 동일하더라도 자본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잉여노동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 현대 삼성과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는 자동화, AI 기반 생산관리, 공정혁신, 데이터 통제 등이 이러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핵심 수단이 된다. 반도체 공정 자동화, 실시간 생산 데이터 분석,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등은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극단적으로 높인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자유시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본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더 높은 생산목표와 더 빠른 노동속도를 요구하게 된다.

잉여가치 증대 방법 3- 노동강도 강화

세 번째는 노동강도 강화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특히 중요해진 방식이다. 과거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노동시간 연장”에 가까웠다면, 노동강도 강화는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은 노동을 압축하는 방식이다. 이를 개념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서 노동지출량 증가⇒잉여가치 확대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동자가 하루 100개의 제품을 생산했다면, 현재는 동일한 8시간 동안 150개를 생산하도록 요구받는다. 겉보기에는 노동시간이 늘어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노동지출량이 증가한 것이다. 삼성과 같은 기업에서는 노동강도 강화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KPI 평가, 실적경쟁, 성과주의 임금체계, 실시간 모니터링, 다기능 노동체계, 인력감축 후 업무 전가 등이 결합된다. 노동자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긴장과 압박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특히 성과급 체계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고 서로 경쟁하도록 만드는 자기통제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인원을 줄인 뒤 남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공정을 맡기거나, AI 기반 작업관리 시스템을 통해 작업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방식은 노동강도를 극단적으로 강화한다. 이러한 방식은 노동자의 피로와 스트레스, 건강악화를 동반하지만, 자본 입장에서는 동일한 임금으로 더 많은 노동을 끌어낼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또다른 방법 – 인플레이션

네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많은 경우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 문제는 단순한 경제 현상 정도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축적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잠식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가장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실질임금 = 명목임금 / 물가수준

즉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물가상승 속도가 더 빠르면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임금이 5% 인상되었지만 주거비·식료품·교통비·교육비가 8% 상승하면 노동자의 실제 구매력은 감소한다. 겉으로는 임금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력 재생산 조건은 오히려 악화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서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시장 자연현상”이 아니다.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는 막대한 유동성 공급과 신용팽창이 지속되며 자산가격과 생활물가를 끌어올린다. 자본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윤율을 방어하기 위해 통화팽창과 금융완화를 활용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물가상승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직접적인 압박을 가한다. 삼성 노동자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조차 서울과 수도권의 주거비 상승 속에서는 장기 대출과 높은 생활비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임금인상분 상당 부분이 주거비·교육비·의료비로 다시 흡수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노동자계급 내부 분열을 강화하기도 한다. 일부 고임금 노동자들은 자산투자와 금융투기를 통해 일정 부분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은 생활물가 상승에 훨씬 직접적으로 타격받는다. 그 결과 노동자 내부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러한 여러 방식들이 동시에 결합된다는 점이다. 자본은 단순히 노동시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노동강도 강화, 기술통제, 금융화, 인플레이션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며 잉여가치를 확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확대를 쟁취했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 축적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잉여가치를 확대하려 하며,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력을 더 깊게 통제하려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문제는 단순한 “분배 비율” 문제가 아니라 생산 관계와 권력 관계 전체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산영역에서만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와 부채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미래소득까지 포섭한다. 주택담보대출, 학자금대출, 신용대출, 연금체계 등은 노동자들이 미래 노동까지 담보로 잡힌 상태에서 살아가도록 만든다. 따라서 삼성 노동자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급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흔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은 고임금 노동자층 일부를 부분적으로 포섭하면서 노동자 내부 분절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결국, 삼성 노조 투쟁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더 많은 몫을 가져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삼성 노동자들이 무노조 경영 체제 속에서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자본의 통제에 맞서 싸우며 일정한 집단적 힘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그 과정은 기업별 노조 체계와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 역시 드러낸다. 따라서 삼성노조 투쟁은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냉소적 폄하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속 노동운동이 가진 가능성과 동시에 모순, 그리고 계급적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복합적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순한 분배문제로 환원하거나, 반대로 단순한 이기주의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노동자계급 내부 구조의 모순 속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김장민의 원글 : https://ohhangang.blogspot.com/2026/05/blog-post_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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