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ㅣ 노동예술단 선언
집회 중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발언을 듣게 된다.
“우리가 정규직과 똑같은 대우를 받겠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월급 좀 더 달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뭐 대단한 거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처한 상황이나 억울함이 이해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약자 혹은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도록 짜인 이 사회의 프레임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 그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기 검열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게 되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부당함보다, 그로 인한 억울함보다 그걸 주장하거나 말함으로 인해 받게 될 온갖 눈총과 오해가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는 걸 각인해온 삶이었고 대체로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살피는 마음이 강한 이들이 더욱 그렇기에 그 선함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어릴 적 동네 덩치 큰 형들에게, 가지고 놀던 야구공을 빼앗기고 심지어 안 뺏기려다 두들겨 맞기까지 한 친구가 부모님께 이르라는 내 말에 더 사색이 됐던 적이 있다. 공을 빼앗기고 맞은 고통보다 부모님께 혼 날 게 더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자기 부모님께는 절대 알리지 말라던 그 친구의 모습처럼
약자, 피해자들은 자신이 받은 부당함과 고통보다 그것을 호소하는 순간 소위 ‘문제’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더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마치 한밤중 강도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비명을 지르면 사람들이 ‘야밤에 왜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서 소란을 일으키냐’며 손가락질 할까 봐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것 같은 답답함이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혹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구체적 사건만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왜 파업해서 문제를 일으키냐고 하는 시선들, 같이 살자고 시위하는 장애인들에게 왜 소란을 피워서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냐고 떠들어 대는 입들, 서울 한복판에서 비통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놀러 가서 죽은 거로 웬 소란이냐고 손가락질하는 그 손모가지들…
우리가 정규직과 똑같은 대우 해달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가 아니라…우리가 정규직과 같으면 도대체 왜 안 되는 거냐고. 우리가 월급 좀 더 달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가 아니라 우리가 월급을 더 받으면 도대체 왜 안 되는 거냐고 우리가 대단한 거 요구하는 거 아닙니다가 아니라 우리가 그 잘난 대단한 거 요구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 됐냐고 장애인이 죽지 않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이동하고 공부하고 일하면 왜 안 되느냐고 우리가 하루라도 웃고 즐기고 마시고 놀면 도대체 왜 안 되느냐고 그렇게 노는 게 어째서 죽어도 싼 일이냐고
문제로 규정된 자들이 그 문제를 재규정할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말처럼 지배계급에 의해, 권력에 의해 소위 ‘문제‘로 규정된 이들이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고 너희들이 짜놓은 프레임이고 지독하게 수호되고 있는 이 시스템이라고 재규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호하고 있는 그들의 거짓말을(아마 너무 일상화해서 스스로들은 자신들의 말이 거짓말인지조차 모르고, 진실이라 착각하고 있겠지만)폭로해낼 수 있을 때 생각보다 빠르게 시스템은 붕괴하고 누군가 말했듯 도둑처럼 혁명은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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