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노동운동과 국가

홍승용 | 현대사상연구소[1]이 글은 2019년 노동전선 여름 수련회에서 제출된 강의안을 수정 보완하여 『현대사상 21 국가』에 게재된「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 Continue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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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기존의 국가 상태를 자연조건 혹은 숙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심각한 생존의 문제나 인간적 존엄이 걸린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국가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우리는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국민 99%가 개돼지’라는 정부 고위관료의 발언은 한국사회의 실질적 지배관계와, 이에 대한 지배자들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는 국민이 주인인 사회 곧 민주사회의 일원이라는 추상적 자부심을 돌아보고, 정말 우리가 주인인지, 그렇지 않다면 실제의 주인이 누구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각의 밑바닥에는, 그리고 촛불에 불을 붙인 국정농단에 대한 범국민적 분노의 배후에는, 수십 년간 노동자대중을 짓눌러온 양극화와 견고한 지배관계의 결과들이 ‘헬조선’의 마그마로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자각은 불충분했고, 분노는 통제되는 것이었다. 통제의 기본 주도권은 분노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자본 쪽에 있었다. 촛불의 물결은 양극화 과정에서 부와 권력을 쓸어모아온 자본의 입맛에 맞춰 누그러지고 길들여진 혁명 에너지였다. 그것은 억압받고 있는 전 세계 민중의 부러움을 살 만한 사건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지만, 근본이념⋅당면목표⋅실천전략의 영역 어디서도 자본이 그어놓은 가이드라인을 넘어서지 못했다. 자본의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서툴러 인기도 효율도 없을 뿐 아니라 제 분수마저도 잃어버린 그 대리인만 바꿔주고, 근본적 지배관계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촛불은 다시 잠들었다. 이제 자본은 최소의 출혈만으로, 조금 더 합법적으로, 모양새 구기지 않고 다시 착취와 무한축적의 대로를 거침없이 달릴 태세다.

물론 촛불의 열기가 아예 무의미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유신독재체제로의 회귀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일단 막아낸 것이 그 가시적 성과다. 뿐만 아니라 그 밋밋한 승리는 허약한 국민적 자신감만 아니라 절실한 교훈도 남겨주었다. 그 동안 우리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준비한 것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 헌법조문이나 ‘중고생 혁명지도부’ 혹은 재벌언론 등에 혁명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 제대로 된 이론으로 단련되고 조직화된 다수의 전면적 적극적 효과적 개입 없이는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털끝도 건드리기 어렵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혁명 에너지가 다시 잠들었다는 말이 영영 죽어버렸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이 무자비하게 돌아가며 견디기 어려운 모순을 누적시키는 한, 지배체제의 심장부에서는 그 극복의 에너지도 부단히 응축되며 폭발의 순간을 노린다는 근본 경향 또한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잠은 꿈의 어머니다. 촛불이 잠들 때에도 우리는 꿈을 꾼다. 물론 우리는 대개 꿈의 내용 대부분을 상품들로 채우고 꿈꾸는 방식을 자본으로부터 배운다. 그러나 꿈은 자본의 지배영역 바깥으로도 펼쳐질 수 있고, 그래서 꿈의 영역도 자본과의 치열한 전쟁터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생산력으로 지금 당장 이 땅을 전쟁의 위협 없는 낙원으로 만드는 꿈을 꾸면 왜 안 되겠는가. OECD 국가들 중 최고의 산재사망률과 최장의 노동시간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내고, 먹고살기 위한 장시간 소외노동⋅노예노동의 강압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활동 혹은 의미 찾는 활동을 누리자는 꿈을 이웃들과 함께 꾸면 또 왜 안 되겠는가. 오늘날 당연시되는 8시간 노동제는 20세기 초까지 자본이 악착같이 금지해온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이루어진, 또 앞으로도 예측불허의 속도로 성장하는 생산력에 어울릴 만큼 최소한의 노동일을 꿈꾸면 왜 안 되는가. 무주택이니 실업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개념들을 역사박물관에 가두어둘 만큼의 생산력은 이미 충분히 갖추지 않았는가. 가난한 쿠바가 이미 실현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의료비 교육비 전액 무료 시대를 꿈꾸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아무 문제도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의 자본주의 현실은 그런 생각들이 꿈에 나오는 것조차 막으려 든다. 자유로이 꿈을 꾸고 이를 구현하려면 자본의 절대명령을 거부해야 하는데, 이는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장기적인 전쟁을 전제한다. 물론 우리는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하며 평화를 사랑한다. 그런데 ‘세계대전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구호가 말하듯이, 제국주의가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대량살육전에 가장 강력히 맞서기 위한 실질적 방법,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서도 내전은 불가피했다. 엥겔스가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2]F. 엥겔스: 「프랑스 내전 서문」,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297쪽. 이하 ‘서문’으로 약칭.라고 규정한 파리코뮌 역시 티에르 중심의 반혁명 반민족 세력과의 전쟁 없이 불가능했고, 이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과 함께 무너졌다.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다양한 내적 외적 원인들을 추상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하자면 자본과의 총체적 전쟁에서 일단 패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현실정치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848년 혁명, 그리고 1871년의 파리코뮌, 특히 현실사회주의 성립 이후에도 부단히 지속된 이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고 감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꿈은 그냥 꿈에 머물거나 현실의 악몽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권력이 우리를 천한 개돼지로 규정하건 순한 양이나 소 혹은 심지어 레밍이라고 놀려대건 하루하루의 생존과 범사에 감사하며 신을 예찬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이때에도 지금의 기본적 인권조차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피 흘리며 싸워 얻어낸 성과물이라는 사실, 또 무엇보다 분할해서 통치하고 매수하고 협박하는 자본권력에 맞서 더 이상 싸우지 않을 때 부와 권력의 극단적 독점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경우에 따라서는 파시즘,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는 아우슈비츠가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최근 고조되고 있는 전쟁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헬’조선의 헬을 떼어내고자 할 때, 그리하여 누구도 생존권의 위협을 받을 필요 없는 풍요로운 사회, 누구도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멋대로 갑질할 수 없는 평등사회를 단지 꿈이 아닌 일상 현실로 만들고자 할 때, 레닌의 구호를 다시 상기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를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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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명칭을 다시 살려내는 일부터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독재’라는 말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민주’라는 말과 대립시킨다. 이런 반응은 무엇보다 민주주의 개념에서 계급적 내용,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아니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냐 하는 문제를 지워버린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것이다. 또 군사독재 치하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독재타도’를 외쳐온 역사적 경험도 어느 정도 그러한 반응을 부추긴다고 할 수 있다. 독재라는 개념을 선호하는 성향은 진보적 노동자들 사이에서보다 오히려 반공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극우파들 사이에서 찾기 쉬울 듯하다. 뿐만 아니라 기존 현실사회주의운동과 관련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상대로 하는 독재’ 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침묵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따위의 관념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부정적 색깔을 입혀놓기도 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내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운동⋅정치문화를 만드는 일부터가 난제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만들고 퍼뜨리는 사람들의 내면화된 자기검열과 이로 인한 노예언어 극복이 필요하다. 한 번 패배하면 두 번 다시 싸워서는 안 되고 영원히 노예노릇을 해야 한다는 듯이,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한 낡은 운동이므로 다시 돌아볼 필요 없다는 논리로 그러한 자기검열을 정당화하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을 절대화하지 않는 사유방식을 맹렬히 가동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에 대한 무의식적 예속관계에서 벗어나, 자본의 본질을 변증법적으로, 즉 제반 모순들을 중심으로, 특히 노동과 자본의 모순관계를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부정의 부정을 고려하며 파악하는 일이 불가피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지 부르주아 독재와의 계급적 대립을 기본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는 말에서는, 소수 자본가 및 그 대리자들의 민주주의와 노동자대중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관계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전제하는 장구한 전쟁의 난관에 대한 인식이 다소 희미해질 수 있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에는 프롤레타리아 해방운동 내부의 민주주의, 혹은 궁극적으로 지배관계가 소멸한 사회적 관계의 문제가 뒤로 밀려나는 듯한 어감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1) 부르주아 독재를 끝내고 그 저항과 복귀운동을 무화시키며, 2) 노동자대중에 의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3) 궁극적으로 지배관계 자체의 소멸과 이에 따른 국가소멸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민주주의)는 상호 연관된 이 세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그만큼 그 이름값을 못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독재 내지 자본독재와의 전쟁을 회피할 경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첫발도 뗄 수 없다. 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시적으로 성립되어도 부르주아지와의 불가피한 전쟁에서 패배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비판적 입장은 무엇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과 현실적 감각을 근거로 한다. 이때 국가권력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레닌에 따르면 맑스는 “결코 계급 소멸과 더불어 국가권력도 소멸될 것이라든가 혹은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도 폐지될 것이라는 데 반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무기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데, 그리고 조직적 폭력 즉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한다는’ 목적에 봉사해야 할 국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데 반대한 것이다.”[3]V. I. 레닌: 󰡔국가와 혁명󰡕, 문성원/안규남 역, 돌베게 2015, 108쪽 참조. 이하 ‘국가’로 약칭 또 레닌이 다양한 형태로 투쟁을 회피하려는 자유주의자들 및 멘셰비키의 움직임을 가차 없이 비판했듯이[4]V. I. 레닌: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술󰡕, 오영민 역, 녹진 1988 참조. 이하 ‘전술’로 약칭, 맑스와 엥겔스 역시 현실적 계급모순을 은폐⋅무마하려 들고 결정적인 순간에 혁명을 배반한 중간층의 행태를 특히 혐오하고 경멸했다.[5]K. 맑스: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F. 엥겔스: 󰡔엥겔스의 독일 혁명사 연구󰡕, 박홍진 역, 아침 1988 참조. 뿐만 아니라 맑스와 엥겔스는 파리코뮌의 의의를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도, 당시 노동자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점, 즉 베르사유의 티에르일당을 제때에 타도하지 못한 점,[6]K. 맑스: 「프랑스 내전」,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7쪽 참조. 이하 ‘내전’으로 약칭. 프랑스은행을 접수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서문293)[7]레닌도 거의 비슷하게 코뮌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코뮌정부는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했고, 또 할 수도 없었으며, … Continue reading)

이때 부르주아 독재체제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해 나아가는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가 이루어진 이후의 투쟁은 긴밀히 융합되어 있지만, 일단 편의상 그 두 가지를 구분해서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우리의 일차 관심은 전자에 집중될 수밖에 없더라도, 후자에 대해서만 아니라 국가소멸의 궁극적 전망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 있다. 그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오늘의 운동을 본질적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독재를 넘어서는 변혁운동은 부분적 개량운동과 구분된다. 개량운동의 본질이 자본을 절대상수로 놓고 착취 및 지배의 효율성 내지 지속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한에서 그렇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지배관계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정권교체만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경험했고, 그래서 친재벌이라는 측면에서 동질적인 여야의 교체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과 그 대리자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노동자대중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맑스나 엥겔스의 지적처럼 국가가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지배도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적으로 한국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언제 몇 명이나 등장했는지 돌아보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국가권력이 실질적으로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착취에 의해 정해진 협소한 틀 안에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실제로는 언제나 소수를 위한, 유산계급만을 위한, 부자들만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이다.”(국가148)

오늘날 계급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은폐되거나 다변화되고, 국가기능도 노골적인 계급지배에 국한되지 않으며, 계급지배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계급갈등을 벗어난 듯한 외관을 취해야 하고, 이를 위해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일도 적절히 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문제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강력한 계급지배 도구인 국가권력 문제를 회피하고, 그때그때 제기되는 화급한 당면과제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나, 소규모로 고립되고 느슨하게 연대된 공동체운동들만으로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자본의 독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동자대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으로 자리 잡는 것, 곧 민주주의를 말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변혁운동의 일차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외견상 국가권력 쟁취와 동떨어져 보이는 일까지 포함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자본주의적 착취에 바탕을 두는 오늘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인간을 원리상 평등한 존재로 보고 특히 지배관계를 바꿀 수 있는 인간의 주체적 능력을 인정하느냐 하는 근본적 인간관의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는 유물론적 변증법적 사유방법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흐리는 온갖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사고틀을 고수할 것이냐 하는 전문 철학 영역에서의 사상투쟁과 직결된다. 노동운동사⋅혁명사⋅현실사회주의운동사의 역사적 현재적 의의에 대한 평가 문제 역시 사상투쟁의 핵심영역을 이룰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직접⋅간접으로 옹호하는 온갖 이데올로기들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와 제반 모순들, 그리고 특히 자본축적의 위기 등 자본주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이론적 무기가 될 것이다. 오늘날 예측하기 어려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 혹은 생산력이 초래할 변화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도 그러한 과학적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의식적 무의식적 욕구⋅체질⋅미감 등과 관련한 문제들은 흔히 주관적 영역으로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쉽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요 전쟁터이다. 자본의 지배는 제도적 법적 통치기구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즐거운 마음으로 혹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감각의 영역 전체에 스며들어와 있다. 제도교육과 대중매체, 나아가 안락한 생활의 물적 조건들 자체가 지배도구로도 기능한다.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길들이기 위한 차별⋅서열화⋅고립화⋅매수 혹은 노동귀족화론⋅노동운동무용론 등에 노동운동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노동자들 스스로 자본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변혁운동이 풀어야 할 본질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지배받기를 원하고 이에 따라 총체적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여러 현대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은 특정 사회의 성격에 대한 현실적 진단으로서보다 현실의 발전경향에 대한 경고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맑스주의 공리의 변형들이며, 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서 쉽사리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더라도, 자본주의적 지배체제가 생산하는 객관적 모순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그들의 이론적 과장과 결정론적 냉소적 경향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 자본이 야기하는 객관적 모순과 적대관계를 명확히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미감⋅욕구⋅무의식 등의 영역을 자본권력에 내맡기지 않고 재구성해가는 싸움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8]객관적 모순과 적대관계에 대한 인식의 우선성은 탈식민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여러 사유방식들에도 마찬가지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싸움은 국가나 정치조직 혹은 집단 차원에서만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또 궁극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도 실효를 거두어야 의미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레닌이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사회에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사회로 나가기 위해 전제한 ‘습관’의 문제와도 관련되지만,(국가91, 140) 그 이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들어가는 과정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개개인이 자생적으로 자본의 지배기제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 극복을 위해서는, 이론적인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적 지배관계의 본질에 대한 포괄적 인식과 대안질서의 밑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선결과제이지만, 전문 연구자들의 인식 생산에 그쳐서는 안 되고, 변혁적 인식들을 대중들이 널리 공유하고 조직적 실천을 통해 깊이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동자들 가운데에도 자본주의 너머를 추구하며 이론적으로 탄탄히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만 아니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충만해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가 공존한다. 이런 현실로 인해 노동자대중의 자발성에만 의지할 수는 없고, 변혁적 의식과 체질을 갖춘 사람들의 조직적⋅전략적 운동을 확대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레닌은 혁명의식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곧 ‘이상적인 사회민주주의자’의 자질을 노동조합의 서기와 대조되는 ‘인민의 호민관’이는 말로 설명한다.

“이상적인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전횡과 억압−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이 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그리고 이 모든 현상들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종합할 능력이 있는,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표명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의 전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그런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주장해도 충분치 않다.”[9]V. I.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역, 박종철출판사 2001, 105-106쪽. 이하 ‘무엇’으로 약칭함. 이때 전위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 레닌주의의 … Continue reading)

호민관의 능력을 갖추고 변혁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떤 조직을 이루며 활동하느냐 하는 것은 운동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다. 이때 호민관이 지식인, 공장노동자, 조합원, 정치가 혹은 노조나 시민단체 상근자 등과 같은 특정 신분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레닌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자질을 갖추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 자격기준이다. 또 누가 지난날 특정 조건에서 호민관 역할을 해냈다고 해서 호민관으로 늘 남을 필연성은 없다. 호민관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꼭 폐쇄적인 조직을 형성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무형의 조직’(무엇153)이 효율적일 수 있다.[10]“만일 우리가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을 원하되 광범위한 패배를 원치 않는다면, 헌병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이 조직이 … Continue reading) 소수 선각자만 아니라 누구나가 호민관의 자질을 더 풍부하게 갖춰갈수록, 그들과 공감하고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어갈수록, 프롤레타리아 독재(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의 승산은 높아진다. 따라서 인민의 호민관이 맡아야 할 주요과제에는 인민 자신을 호민관으로 만드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변혁운동을 적극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소수 운동엘리트들이 대중을 가르치려 든다는 식의 비난에 응답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그러한 방법이 성과를 거둘 경우 당이나 관료 혹은 개인에 의한 대중의 지배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달라붙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 즉 단결의 이름 아래 차이나는 각 개인들의 다양한 요구들이 묵살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도 적극적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호민관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하여 자본주의체제로 인한 억압과 착취의 문제들을 밝히고 그에 맞선 투쟁의 의의를 드러낼 수 있는 한, 개별요구들을 절대화하여 주요모순이라고 고집할 수도 없겠지만, 주요모순을 앞세워 개별요구들을 억누르는 일도 없을 것이며, 양자의 유기적 관계와 비중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단결투쟁과 차이 인정의 양자택일을 대신할 것이다. 이로써 오늘날 엄격히 나뉘어 있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기타 여러 부문운동들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서, 부문운동과 변혁운동의 실질적 연관을 드러내고 부문운동에서 시작하더라도 변혁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러 경로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거대 자본이 국제적으로 긴밀히 얽혀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변혁을 위한 연대의 범위는 국제적인 규모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인터내셔널의 해체와 함께 소멸했다고 못 박을 것이 아니라, 그 강력한 부활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 단계에서 대중의 자발성은 레닌이 비판했던 경제주의나 조합주의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호민관의 자질을 갖춘 다수 대중의 자발적 운동은 소수의 지도 또는 안내에 의지하는 운동보다 더 큰 폭발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 붙인 1895년 ‘서문’에서 엥겔스는 대중들의 의식적 자발성과 이를 위한 준비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습 공격의 시대, 자각하지 못한 대중들의 선봉에 서서 자각한 소수가 수행하는 혁명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사회 조직의 완전한 변혁이라는 문제가 있는 곳에서는, 대중들 스스로가 변혁 과정에 참여하여, 그들 스스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야 하는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50년의 역사가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게 하려면 장기간의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11]F. 엥겔스: 「서문」,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쪽. 이하 ‘서문’으로 약칭함.

문제는 자발성의 형식보다 자발성의 내용에 있다. 오늘날 대중적 자발성의 형식을 도외시할 경우, 대중들을 위하려는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기는 쉽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자발성을 절대화할 수도 없다. 자발성은 이데올로기적 물적 조건들의 산물이며, 이 조건들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일정하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그 자발성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 가느냐에 따라 운동의 성격과 의미가 결정된다는 전제 하에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발성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장기간의 지속적인 작업’ 자체가 이미 자본의 처분에 내맡겨져 있는 전쟁터에 들어가 주도권을 바꾸고 그 지형지물들을 개조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자발성과 의식성은 기계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의식적 자발성’ 내지 ‘변혁적 자발성’이라는 복합적 개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의식적 자발성’ 형성은 변혁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확대로 나타날 것이다. 레닌은 대중적 지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전체 계급, 곧 광범한 대중들이 전위를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적어도 전위에게 우호적인 중립을 취하고 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 서기도 전에, 전위만으로 결전을 치르는 것은 멍청할 뿐만 아니라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12]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게 1995, 104쪽. 이하 ‘소아병’으로 약칭함. 설득력 있는 미래상과 변혁적인 사상을 무기로 대중들의 자각과 절대적 지지를 이루어내는 것이 변혁운동의 일차목표인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전위 내지 활동가들의 조직이 떠맡아야 할 과제다.

이러한 일은 결코 쉽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오히려 자본권력의 총체적 공세 앞에서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 일은 일견 가망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을 부단히 만들어내며, 축적의 위기에 부딪칠 때마다 고통을 노동자대중에게 전가하려 들 수밖에 없다. 이 객관적 조건 자체가 변혁운동에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에 근거해, 자본을 절대화하지 않고 그 역사적 성과들을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물적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운동, 변혁적 의식을 갖춘 자발적 대중운동⋅대중조직의 질적 양적 성장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3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한 어느 한 나라에서 노동자대중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를 이루어냈다고 해서 그 주요 목적인 지배관계 자체의 소멸이 단시일에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국가 건설은 그 첫째 관문일 뿐이며, 대내외적으로 격화되는 자본의 반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그 목적을 이루려면, 국제자본의 반격에 맞선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기존의 국가와 다른 성격의 국가, 즉 지배관계 자체를 없애가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국가, 지배수단으로서의 국가 자체를 소멸시키기 위한 현실적 조치를 취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최초로 구현한 파리코뮌에서 그처럼 다른 성격을 띠게 된 국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코뮌은 물리적 억압기구인 경찰과 상비군을 폐지하고 가능한 모든 인민을 무장시켜 국민방위군을 만든다.(서문288) 이어서 정신적 억압기구인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하기로 선언하고 교회의 특권을 모두 없앤다.(서문289) 무엇보다도 코뮌은 자신들의 대표가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하는 현상을 막을 두 가지 “절대 확실한 방책”을 마련했다.

“첫째로, 코뮌은 입법, 사법, 교육 등의 모든 직책을 관계자들의 보통선거권에 근거하여 인선하되 동일 관계자들에게 언제라도 자기들의 파견 대표를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리고 둘째로 코뮌은 모든 공무원들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단지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 지불하였다.”(내전296)[13]보통선거와 국민소환,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임금만으로는 ‘사회의 종복’이 ‘사회의 주인’으로 되는 것을 막는 데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 Continue reading

맑스는 파리코뮌의 주요 특징으로서 낡은 정부들의 한결같은 속성인 ‘무오류성을 가장’하지 않았다는 점,(내전335) 위계적 서임 따위로 보통선거권을 대신하는 것보다 코뮌의 정신에 생소한 것은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내전346) 사회주의를 일반적으로 옹호하는 맑스주의자들 가운데에도, 당의 무오류성이나 권력서열 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코뮌의 이러한 특성을 밝히는 맑스의 말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파리코뮌의 이러한 특성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구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수준과 아울러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지배관계 및 국가 자체의 궁극적 소멸 가능성을 보여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맑스가 밝히는 파리코뮌의 ‘진정한 비밀’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노동계급의 정부였으며, 생산계급의 착취계급에 대한 투쟁의 성과였으며, 노동에 대한 경제적 해방이 이루어질, 궁극적으로 발견된 정부 형태”(내전347)라는 점이었다. 코뮌은 ‘계급재산의 철폐’ 내지 ‘착취자에 대한 착취’를 목표로 하고, 노동의 노예화 및 착취의 수단인 생산수단을 ‘자유롭고 협동적인 노동의 도구로 변형’하여 진정한 ‘개인적 소유’를 구현코자 했다. 맑스는 그 구체적 방안인 ‘협동 생산’이야말로 공산주의라고 규정한다. “만일 협동 생산이 자본주의체제를 대체하게 된다면, 만일 단결된 사회들이 공동 계획에 의거하여 국민생산을 규제하게 되고, 따라서 국민경제를 그들 스스로가 통제하게 되고, 자본주의 생산의 참화인 항구적인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인 변동을 종식시키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신사 여러분, 이밖에 무엇이 공산주의, 그것도 ‘가능한’ 공산주의가 되겠습니까?”(내전348) 엥겔스 역시 코뮌이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 경영 계획과 이 협동조합들을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로 조직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결국 공산주의로 귀결되리라고 보았다.(서문289, 294)

엥겔스가 말하는 협동조합들의 ‘거대한 연합체’라는 것은, 자본주의 틀 내부의 노동조합들 및 그 연합체들과는 구분된다. 그것은 이미 혁명을 통해 노동자국가가 이루어진 단계에서 가능한 ‘거대 연합체’이며, ‘공동 계획에 의거하여 국민생산을 규제’하는 조직형태다. 그것은 물론 레닌이 비판하는 조합주의와도 별 상관없다. 자본주의 내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14]레닌은 독일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반동적인 노동조합들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거나 … Continue reading) 파리코뮌을 근거 삼아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중심 과제를 조합운동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합당치 않다.

파리코뮌에서 언급되는 협동조합은 소비에트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 및 협동조합에 더 가깝다. 스탈린은 이 조합들 및 또 다른 대중조직인 소비에트와 청년동맹, 그리고 ‘대중조직들을 지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의 중추적 지도세력으로서의 당’ 등을 결합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모습을 그린다.[15]J. 스탈린: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관하여󰡕, 윤시인 역, 두레 1990, 189쪽. 이하 ‘문제’로 약칭함. 그는 협동조합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공고해진 뒤의, 활발한 건설기에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파악한다.(문제187) 또 그는 당이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소비에트와 그 지부들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한다’고 명시한다.(문제190)[16]레닌은 소련체제를 위한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경제적 건설에서뿐만 아니라 군사적 건설에서 노동조합들과의 밀접한 접촉이 없었다면, … Continue reading) ‘당의 지도지침’ 없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조직들은 단 하나의 중요한 결정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문제193)

이 경우 당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지도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맑스가 강조한 파리코뮌의 주요 특징, 즉 자신들의 대표가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하는 현상을 막을 ‘절대 확실한 방책’을 마련했다는 사실과 원칙적으로 어긋나지 않는지 물을 수 있다. 또 나름 근거 있는 이런 물음에 근거해 구소련의 사회주의적 성격과 아울러 현실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일괄하여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도세력’으로서의 당과 ‘사회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지배세력 사이에 어떤 실질적 차이가 있을지 스탈린의 논리를 좀 더 따라가 보자.

우선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독재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당을 국가권력이나 소비에트와 동일시하지도 않는다.(문제195)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그 범위상 당의 지도적 역할보다 광범위하고 풍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의 지도지침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조직에 의한 이러한 지침의 실행 그리고 주민에 의한 그것의 완수로 구성되어 있다.”(문제193-194) 스탈린의 주장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독재를 동일시한다면, 이는 당의 권위가 ‘노동계급에게 사용하는 폭력’ 위에서 확립된다는 ‘터무니없는 가정’에 근거하는 것이다. 당의 권위는 ‘노동자계급의 신뢰’를 통해 확보되며 이 신뢰는 폭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 노동자계급에 대한 헌신, 노동계급 대중과의 결합’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문제197)[17]레닌은 독일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위로부터의 독재냐 밑으로부터의 독재냐 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응수한다. “조그만 비합법 … Continue reading)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서도 ‘지도’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지배’를 의미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시 당과 노동계급의 상호신뢰에 대한 스탈린의 설명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 당이 대중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대중의 혁명적 본능에 깊이 신경을 써야 하며, 대중의 실천적 투쟁을 연구하여 그 바탕 위에서 자신의 정책이 올바른지를 검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대중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것은 당이 매일매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야 하며, 정책과 사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야 하며, 대중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설복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당의 정책이 올바름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그것은 당이 그 계급의 인도자이자 지도자 그리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문제198)

여기서 당이 ‘대중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해야 한다’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당의 지도는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설복을 통해 대중의 자각을 돕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당은 ‘대중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해야 한다’는 것, 즉 교사이이면서 학생이 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당이 ‘매일매일’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도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때의 신뢰관계가 언제라도 깨지고 당이 대중과 대립할 수 있으며, 과거의 지도자가 과오를 범하여 대중의 질타를 받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자각과 긴장감이 없다면, ‘사회의 종복’이 ‘사회의 주인’으로 바뀌어 대중 위에 군림하는 일도 쉽게 벌어질 수 있다.

스탈린은 당이 대중과 대립하게 되는 경우들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힌다. “1) 당이 당 사업과 대중의 신뢰가 아니라 ‘무제한적’ 권리를 바탕으로 하여 대중들 속에서 당의 권위를 세우기 시작하는 경우. 2) 당의 정책이 명백히 잘못인데도 그 오류를 다시 살펴 교정하고자 하지 않는 경우. 3) 당의 정책은 대체로 올바르지만 대중들이 아직 정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당이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당의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납득하게 될 기회를 대중들에게 주기 위해 때를 기다리려 하지 않거나 기다리지 못해 그것을 대중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문제203-204) 이로 인해 당이 대중들의 도덕적 정치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경우, “당은 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18]J.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윤시인 역, 두레 1990, 134쪽 참조. 이하 ‘기초’로 약칭함.

스탈린이 제시하는 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당의 ‘지도’를 단순히 ‘지배’와 동일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문제를 잘 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때를 기다리지 못해’ 불가피하게 ‘대중들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이로 인해 신뢰가 흔들리거나 근본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뢰관계가 남아 있는 듯한 외관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대개 당의 ‘무제한적’ 권리와 권위 혹은 폭력이 대중들의 무의식에까지 스며든 덕분이라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당은 신뢰의 외관 밑바닥에서 싹트는 대립과 위기를 감지하고 그 원인을 실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위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 내부의 문제들로부터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의 부르주아 세력과 국제적인 자본권력의 저항⋅역공⋅간섭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나아가지 못한다. 맑스는 노동계급의 해방과 아울러 좀 더 고차적인 형태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투쟁을 거쳐야 하고, 환경과 인간을 변모시키는 일련의 역사적 제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내전349) 스탈린은 레닌을 끌어들여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타도되더라도 장기간 강력한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 근거는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상당량의 동산과 국제자본의 힘, 다양한 인적 자산, 관습과 소생산의 힘 등이다.(기초63)

이 적대적 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외부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이든 대중조직이든 어디라도 파고들어 그 구성원들의 욕구와 의식을 과거로 돌려놓으려 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낡은 사회의 힘과 전통에 맞선 집요한 투쟁으로서, 유혈 투쟁과 무혈 투쟁, 폭력 투쟁과 평화 투쟁, 군사 투쟁과 경제 투쟁, 교육 투쟁과 행정 투쟁’이라고 규정한다.(소아병43) 스탈린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전과 외환, 지속적인 조직사업과 경제 건설, 진보와 후퇴,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시기’라고 본다.(기초64)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과제로 1) 자본 권력의 저항 일소, 2) 계급 소멸에 대비하는 노선에 따른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의 건설 조직 실행, 3)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한 혁명군 조직 등을 제시한다.(기초61)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은 이 전쟁에서 ‘참모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기초133)

맑스와 레닌 그리고 스탈린의 이상과 같은 논의들은 자본권력과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를 지키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발전해가기 위한 현실적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스탈린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즉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완수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당이 ‘당내 권력 분산을 배제하는 의지의 통일을 대표한다’는 관점에서, ‘분파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고 그 원천인 기회주의를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기초146) 뿐만 아니라 그는 당내의 사상투쟁에 대해서도 제동을 건다.

“당내 사상투쟁으로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패배시킨다’는 논리, 하나의 단일적 당이라는 경계 내에서 이들 분자들을 ‘극복한다’는 논리는 당을 활동불능과 상시적인 허약상태로 내몰고, 당을 기회주의의 밥이 되도록 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당이 없는 상태로 만들며,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데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주무기를 앗아갈 우려가 있는 썩어빠진, 위험스러운 논리이다.”(기초148)

레닌주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원론적 비판[19]R.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주의: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저작집󰡕, 편집부 역, 도서출판 풀무질 2002, 288, 297쪽 등 참조.이나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반발[20]L.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김성훈 역, 갈무리 1995, 123쪽 이하 참조.을 떠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호를 위해서도 당내 분파의 자유나 사상투쟁을 금지하는 것[21]위의 인용문에서 스탈린이 당내 사상투쟁을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24년 이후 스탈린의 지위와 󰡔레닌주의의 기초󰡕가 … Continue reading이 과연 불가피했는지, 또 유익했는지는 의문이다. 당대의 정치투쟁 맥락에서 한 발 벗어나서 보면, 대중의 신뢰에 기초하는 당 내에서 사상투쟁이 벌어진다고 해서 당이 ‘활동불능과 상시적인 허약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레닌이 지적하듯이 1903~1912년에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공식적으로 단일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있기도 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의 영향을 끼치는 선발대이자 기회주의자인 그들에 맞서 이념적, 정치적 투쟁을 멈춘 적은 결코 없었다.”(소아병78) 볼셰비키는 이러한 ‘이념적, 정치적 투쟁’을 통해 기회주의를 극복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으로서 발전했던 것이다.

당내의 이념적, 정치적 투쟁 혹은 사상투쟁 없이 특정 사안들에 대한 의견차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누군가의 ‘무제한적 권리’와 권위를 위해 여타 의견들은 침묵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는 길이 남는다. 이로 인해 당내에서 발생하는 침묵과 경직화는 대중들에게도 확산될 테고, 당에 대한 대중의 신뢰 자리에 당의 권위와 대중의 공포가 들어설 것이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외부 적과의 전쟁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내부에 끼치는 최악의 영향이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함의한다는 측면에서 분파 및 사상투쟁의 금지는 원칙적으로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스탈린의 사상투쟁 금지론 앞에서 우리는 당이 교사이면서 학생이기도 하며, 당은 매일매일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스탈린 자신의 지론을 다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레닌과 함께 유물변증법적 사유를 적극 가동해, “역사 일반, 특히 혁명의 역사는 가장 의식 있는 전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언제나 더 다양하고 더 다면적이고 더 약동적이고 ‘더 기묘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소아병107)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4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이유로 스탈린의 분파 및 사상투쟁 금지를 역사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것을 고스란히 반복하기보다는 자본에 맞서는 전쟁의 어려움을 폭넓고 깊이 있게 파악하여 좀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전쟁방법을 창안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대중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발적⋅지속적으로 적극 옹호하도록 만드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한편 스탈린의 그러한 조치를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로 여기고, 현실사회주의 패배의 궁극 원인을 비민주적 정치문화 및 이와 함께 가는 관료주의, 그리고 이에 따르는 당과 대중들의 괴리 등에서 찾는 관점에서, 󰡔자본론󰡕에서 간략히 언급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22]‘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명칭은 쉴러의 ‘자유로운 시민들의 연합’을 연상시킨다. 쉴러는 원칙 없이 자의적 폭력에 의지하는 미개와 … Continue reading을 현실사회주의 운동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김수행은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자들 모두가 현재 현실적으로 공동 점유하고 있는 공장 전체나 회사 전체를 자기들 모두의 공동 소유, 즉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켜, 자기들의 집단적 지성에 따라 운영하게 된다면 ‘임금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지면서 자기들의 개성과 능력을 자발적으로 헌신적으로 기분 좋게 발휘함으로써 사회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새로운 사회모형인데, 소련의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민주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다.[23]김수행: 「2015년의 개역에 부쳐」, K. 맑스: 󰡔자본론 1󰡕,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15, viii쪽.” 또 그에 따르면 기존의 ‘이른바 좌파지식인들’은 대체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소련⋅쿠바⋅북한의 공산주의체제로 이해했다는 것이다.[24]같은 글, ix쪽 참조. 그는 심지어 “옛날 소련경제를 전형으로 하는 ‘중앙지령형 통제경제’에서는 국가가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동원한 노동하는 개인들은 사실상 국가에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 또는 노예”[25]김수행: 󰡔맑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도서출판 한울 2012, 123-124쪽.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또 소련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노동해방과는 무관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미래4)

이로써 김수행은 현실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오늘날 자본주의 이후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긍정적 교훈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예컨대 소비에트 정부를 “인민, 특히 피억압 인민을 행정업무에 끌어들인 세계 최초의(아니, 엄밀히 말하면 파리코뮌이 똑같은 일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두 번째의) 정부”[26]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허교진 역, 소나무 1988, 35-36쪽. 이하 ‘배신자’로 약칭함.라고 자랑하거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그 어떠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백만 배나 더 민주적”(배신자37)이라고 규정하면서, 레닌이 제시하는 여러 근거들은(배신자36-38) 김수행의 청산주의적 논의 속 어디에도 발붙일 데가 없다. 이 거창한 논의가 일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적 공동 점유물을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키는 합당한 방법이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개별 노동자들을 임금노예가 아닌 사회의 주인으로 만드는 과정은 현실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상대로 치른 전쟁과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 경로를 보여줄 것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김수행이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를 붕괴시키는 이 엄청난 ‘수탈자의 수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수단의 ‘공동 점유’를 만천하에 사실로써 인정하는 것뿐이므로, 국회 의장이 방망이를 한 번만 치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미래7)

그런데 말 안 듣는 국회 의장이 이 요술방망이를 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 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렇게 등장하게 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자본과 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놓여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으니, 이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고타385-386)는 맑스의 말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아울러 국가사멸과 국가의 폐지에 대한 레닌의 명료한 주장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국가는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폐지’된다. 이 혁명 후에 사멸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국가 또는 반(半)국가이다.”(국가44)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사실적 공동점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단계라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와 다를 바 없다. 이 경우 어떻게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자본의 반격을 물리치고 더 효과적으로 미래 사회로 나아갈 것이냐가 관건인데, 소련의 이마에 자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인다고 해서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소련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은 적극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분별적 사고가 더 필요하다. 배워야 할 것들 가운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를 건설해가는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기여한 사유방식, 특히 레닌의 유물변증법적 사유방식과 주체적 투쟁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반면에 노동자대중이 집단적 지성에 따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자발적 헌신적으로 기분 좋게 발휘’하여 사회를 풍부하게 하는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면, 이는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차원을 넘어, 국가가 이미 소멸하게 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미래사회의 요체는 이미 인류가 이룩한 풍부한 생산력을 토대로, 단지 지배자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배관계 자체를 소멸시키는 데에 있다.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새로운 사회의 싹이 자라난다는 맑스의 논리를 감안하면,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그 미래사회의 싹을 찾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사회의 건설을 먼 미래의 숙제로 기약 없이 미루고, 그것을 위해 오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미래사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미래사회의 맹아는 빈약한 생산력과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파리코뮌에서 초보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았던가.

파리코뮌은 파리에 고립된 채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존속했던 특수한 사례이며, 전국으로 확대되거나 장기화되었을 때 어떻게 변화했을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궁극적 형태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파리코뮌이 보여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역시 맹아상태로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미래적이다. 레닌은 그 중요성을 이렇게 평가한다.

“여기서 우리는 ‘양이 질로 전환하는’ 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즉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완전하고 철저하게 수행될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하며, 국가(특정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특수한 권력)에서 더는 고유한 의미의 국가가 아닌 어떤 것으로 전화한다.”(국가81-82)

이 ‘더는 고유한 의미의 국가가 아닌 어떤 것’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내지 국가사멸의 출발을 함의한다. “인민 자체의 다수가 자기들의 억압자를 억압한다면 ‘특수한 억압권력’은 이미 더는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사멸하기 시작한다.”(국가82) 궁극적으로 국가가 사멸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전면적 변화를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부르주아 독재를 무너뜨리고, 혁명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과 욕구가 획기적으로 변화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관점과 욕구의 많은 요소들이 남아서 역사진보의 발걸음을 늦추거나 일시적으로는 뒤로 돌리려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런 사회는 아직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 즉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도 아직도 들어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27]K. 맑스: 「독일 노동자당 강령에 대한 평주」,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선집4󰡕, 이수흔 역, 박종철출판사 2007, 375쪽. 이하 ‘고타’로 약칭함.이기 때문이다. 국가사멸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낡은 사회의 모반’이 사라지는 장구한 과정을 거쳐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맑스는 높은 단계 공산주의 사회의 대략적 밑그림을 흔히들 알고 있는 유명한 정식으로 요약했다.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고 난 후에−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고타377)

맑스는 여기서 국가사멸에 대해 원론적으로 언급할 뿐, 그 구체적 시기나 경로에 대해 상론하지 않는다. 레닌도 국가 사멸의 불가피성을 말할 뿐 그 구체적 형태나 시기는 미해결로 둔다.(국가161) 레닌 사후의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은 국가사멸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자체의 존립을 위한 제국주의와의 전쟁 속에서 국가의 기능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근거해 국가사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상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는 엄연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 역사적 현실사회주의가 국가사멸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철칙은 없다는 점,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국가사멸의 방향을 바람직하다고 보고 추구하느냐 아니면 다시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고 아울러 지배도구로서의 국가를 강화하기를 더 바라느냐에 따라 국가사멸의 시기나 형태, 혹은 그 가능성 내지 불가능성 자체가 구체적으로 규정된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은 계급지배도구라는 성격을 버리고 공공성을 위한 도구로 변했다는 점에서 국가기능의 강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엥겔스에 따르면 국가는 “그 성원이 되고 있는 자들의 총체와는 유리된 특수한 공적 권력을 전제로 하는 것”[28]F. 엥겔스: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 김대웅 역, 아침 1987, 106쪽.이다. 그런데도 엥겔스는 계급의 소멸과 함께 국가가 ‘불가피하게 소멸할 것’이라고 본다.[29]같은 책, 195쪽 참조. 즉 국가사멸론은 설혹 공공성을 내세우더라도 사회구성원들과 유리되는 ‘공적 권력’을 비판하고, 미래의 그 존속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은 체제전쟁 차원의 국가기능을 강화했지만, 여타 측면에서는 많은 국가기능을 민중에게 이양했으므로 국가사멸 문제는 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 경우 국가사멸 경향을 양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우며, “주민의 다수가 공적 생활과 정치생활에서 배제되어”(국가148) 있었느냐, 아니면 체제전쟁의 주체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적극 담당할 수 있었느냐, 즉 “전체 주민대중이 모든 국가업무와 자본주의의 폐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복잡한 문제에 진정으로 동등하고 전반적으로 참가”[30]V. I. 레닌: 「P. 키에프스키(Y. 피아타코프)에 대한 회답)」, 󰡔맑스-레닌주의 민족운동론󰡕, 편집부 편, 도서출판 벼리 1989, 230쪽.할 수 있었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체제전쟁의 불가피성에 기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국가사멸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파묻어 버린 것은 아닌지도 따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집요하게 따지는 까닭은, 국가사멸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통해 구현되는 국가사멸 경향이야말로 인민이 ‘억압자를 억압’함으로써, 새로운 지배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배관계 자체를 없애가고 있다는 주요 징표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경향을 만드는 실질적 조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립과 동시에 제기되는 가까운 미래의 주요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설득력 있는 미래상을 그리는 오늘의 과제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사멸 자체는 자본의 독재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국민이 주인인 국가를 건설한 다음의 장기과제다. 그러한 국가, 진정으로 민주적인 국가는,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인 오늘날 노동자국가가 될 것이다. 오늘의 과제는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노동자국가 건설을 준비하는 일이다.

5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물론이고 노동자국가라는 말을 노동자들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현실이지만, 자본의 무한증식 본성이 초래해온 범인류적 재난들의 역사를 감안할 때, 자본을 절대상수로 설정하는 오늘의 관례적 통념부터가 무분별한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 대안질서를 만들어내는 데에 자본과 근본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노동운동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자명해 보인다. 물론 대안사회를 꿈꾸는 것부터가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진행형이기도 한 이 자본과의 전쟁을 회피하면서 노동자대중이 갈 수 있는 길은 외견상 차이나는 여러 형태의 노예상태에, 그것도 더욱 악화된 상태에 도달하는 길밖에 없다. 좀 더 일반화하면, 인류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력 증대를 통해 소수를 위한 천국과 절대다수를 위한 지옥을 만들 것이냐, 아니면 모두를 위한 낙원,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건설할 것이냐 하는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 풍요로운 평등사회의 모습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자본을 절대화하지 않는 가운데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는 미래 사회상을 구체화하는 일부터가 대안질서를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화급한 당면과제다. 이를 위해 기존의 특정 모델, 예컨대 북구 복지국가나 중국식 국유⋅국영기업 주도 시장경제체제 혹은 현실사회주의체제 등등 가운데 어느 한 모델을 정답으로 미리 정해 놓고 깃발을 흔들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자본을 절대상수로 놓지 않는다는 대 전제 하에, 각 모델들로부터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배울 것들을 배우면서 오늘의 조건들에 합당한 새로운 모델을 창안하기 위해 치밀하게 논쟁을 벌이고 검증하고 공감대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를 개별 연구자들이나 소집단에 일임할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서 미래 노동자국가를 위한 정책수립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주체적 비판적 관점에 의거한 공동연구⋅모델생산⋅검증 작업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단결을 가로막는 정파들 간의 칸막이를 허물고 자본을 넘어서는 거대한 전진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역시 프롤레타리아 독재 혹은 현실사회주의 운동과 대립하는 별도의 운동 이념이라기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한 가지 본질적 속성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표방하는 대안사회운동들이 자본주의의 유연성⋅탄력성에 대한 알리바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가는 변혁운동 속에서 전략적 사유를 최대한 가동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노동운동과의 유기적 결합은 불가피하다. 또 노동운동은 억압과 불평등의 다양한 양태들에 맞서는 어떤 부문운동이라도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멀리할 수 없고, 그러한 불평등과 자본권력의 근본 관계를 드러내고 합당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제반 부문운동들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변혁운동과 결합해갈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 거론된 여러 가지 필요성들이 곧 현실성은 아니다. 현실화를 위해 요구되는 희생과 헌신들이 어떤 성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지만, 운동 과정 자체도 이미 무궁무진한 의미들로 충만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이 운동에는 자본권력이 구사하는 현란한 전방위적 무기들보다 우월한 결정적 무기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자본 자체가 만들어내는 제반 모순들, 특히 자본절대주의 속에서는 해소될 수 없는 노동자대중의 고통이 그것이다.

1 이 글은 2019년 노동전선 여름 수련회에서 제출된 강의안을 수정 보완하여 『현대사상 21 국가』에 게재된「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2 F. 엥겔스: 「프랑스 내전 서문」,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297쪽. 이하 ‘서문’으로 약칭.
3 V. I. 레닌: 󰡔국가와 혁명󰡕, 문성원/안규남 역, 돌베게 2015, 108쪽 참조. 이하 ‘국가’로 약칭
4 V. I. 레닌: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술󰡕, 오영민 역, 녹진 1988 참조. 이하 ‘전술’로 약칭
5 K. 맑스: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F. 엥겔스: 󰡔엥겔스의 독일 혁명사 연구󰡕, 박홍진 역, 아침 1988 참조.
6 K. 맑스: 「프랑스 내전」,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7쪽 참조. 이하 ‘내전’으로 약칭.
7 레닌도 거의 비슷하게 코뮌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코뮌정부는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했고, 또 할 수도 없었으며, 공화제 수립을 위한 투쟁사업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사업으로 혼동하였고, 베르사유에 대항할 강력한 전투방위군을 만들지 못했고, 프랑스 은행을 장악하지 못한 오류를 범하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전술88
8 객관적 모순과 적대관계에 대한 인식의 우선성은 탈식민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여러 사유방식들에도 마찬가지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9 V. I.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역, 박종철출판사 2001, 105-106쪽. 이하 ‘무엇’으로 약칭함. 이때 전위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 레닌주의의 본질을 엄혹한 차르 치하에서 수공업 수준을 넘어 운동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혁명운동으로 전진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직 형태와 동일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레닌 자신도 강고한 혁명가 조직의 필요성이 당대 러시아 현실조건의 산물임을 명시한다.(무엇177
10 “만일 우리가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을 원하되 광범위한 패배를 원치 않는다면, 헌병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이 조직이 완전히 무형의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무엇153
11 F. 엥겔스: 「서문」,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역, 소나무 1993, 33쪽. 이하 ‘서문’으로 약칭함.
12 V. I.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게 1995, 104쪽. 이하 ‘소아병’으로 약칭함.
13 보통선거와 국민소환,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임금만으로는 ‘사회의 종복’이 ‘사회의 주인’으로 되는 것을 막는 데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조건들에 근거해 더욱 효과적인 방책들을 마련하는 것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요 과제다.
14 레닌은 독일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반동적인 노동조합들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거나 후진적인 노동자 대중들을 반동적인 지도자들, 부르주아지의 앞잡이들, 노동귀족들, 또는 ‘부르주아화한 노동자들’(1858년에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들에 대해 맑스에게 보낸 편지를 참조하라)의 영향력 하에 내버려둠을 뜻한다.”(소아병53) 레닌은 의회와 관련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보여준다.(소아병59-60
15 J. 스탈린: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관하여󰡕, 윤시인 역, 두레 1990, 189쪽. 이하 ‘문제’로 약칭함.
16 레닌은 소련체제를 위한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경제적 건설에서뿐만 아니라 군사적 건설에서 노동조합들과의 밀접한 접촉이 없었다면, 노동조합들의 정열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노동조합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당연히 2년 반은커녕 2달 반도 나라를 통치하거나 독재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소아병48
17 레닌은 독일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위로부터의 독재냐 밑으로부터의 독재냐 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응수한다. “조그만 비합법 지하서클들로부터 발전하는 것을 보아온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위로부터’인가 아니면 ‘밑으로부터’인가, 지도자들의 독재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독재인가 하는 따위의 이 모든 지껄임을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튼 소리로, 곧 어떤 사람의 왼쪽 다리와 오른 쪽 팔 중 어느 쪽이 그에게 더 쓸모 있느냐에 대해 토의하는 것과 같은 짓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소아병49
18 J.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윤시인 역, 두레 1990, 134쪽 참조. 이하 ‘기초’로 약칭함.
19 R.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주의: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저작집󰡕, 편집부 역, 도서출판 풀무질 2002, 288, 297쪽 등 참조.
20 L.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김성훈 역, 갈무리 1995, 123쪽 이하 참조.
21 위의 인용문에서 스탈린이 당내 사상투쟁을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24년 이후 스탈린의 지위와 󰡔레닌주의의 기초󰡕가 지니는 원론적 의의를 감안할 때, “썩어빠진, 위험스러운 논리”라는 언술 자체를 그저 냉소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22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명칭은 쉴러의 ‘자유로운 시민들의 연합’을 연상시킨다. 쉴러는 원칙 없이 자의적 폭력에 의지하는 미개와 자발성 없이 원칙만이 지배하는 야만 사이의 긍정적 종합으로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연합을 구상했다. 그의 구상은 오늘날에도 나름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 맑스의 문학적 소양이나 부르주아 지적 유산에 대한 그의 태도를 감안할 때 그가 쉴러의 개념을 받아들여 변형시켰으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23 김수행: 「2015년의 개역에 부쳐」, K. 맑스: 󰡔자본론 1󰡕,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15, viii쪽.
24 같은 글, ix쪽 참조.
25 김수행: 󰡔맑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도서출판 한울 2012, 123-124쪽.
26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허교진 역, 소나무 1988, 35-36쪽. 이하 ‘배신자’로 약칭함.
27 K. 맑스: 「독일 노동자당 강령에 대한 평주」,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선집4󰡕, 이수흔 역, 박종철출판사 2007, 375쪽. 이하 ‘고타’로 약칭함.
28 F. 엥겔스: 󰡔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 김대웅 역, 아침 1987, 106쪽.
29 같은 책, 195쪽 참조.
30 V. I. 레닌: 「P. 키에프스키(Y. 피아타코프)에 대한 회답)」, 󰡔맑스-레닌주의 민족운동론󰡕, 편집부 편, 도서출판 벼리 1989,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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