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6호 콜론타이,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해방을 말하다

서의윤(노동전선 회원)

맑스주의 여성해방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짧은 글들을 모아 번역해낸 것이 2018년이었다. 국내에서는 한창 페미니즘의 물결이 많은 부문들에서 차오르고 있었고, 방향도 제각각이며 다양한 주장이 섞인 ‘여성’에 대한 목소리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던 때였다. 나는 콜론타이를 번역한 사람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나는 그 질문자가 내가 번역한 콜론타이 책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콜론타이를 일종의 페미니스트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 그들은 명료하고도 명료하게 적힌 콜론타이의 저작들을 읽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콜론타이가 직접 한 말들이 번역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그 저작들에 대한 서평을 써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콜론타이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성노동자의 대모도 아니다.

20세기 초, 콜론타이가 활동할 당시의 페미니즘은 소위 말하는 1세대 페미니즘으로 부르주아 여성만의 참정권과 직업을 가질 권리 등을 주장하고 전통적인 혼인이 아닌 자유연애를 옹호하며 성매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현재의 2세대 혹은 3세대 페미니즘과는 차이가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원칙들을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성매매를 성노동이라고 부르며 가치를 부여하고 몸에 대한 여성의 통제력을 중시하며 몸과 성이라는 사안에 집중한다. 또한 3세대 페미니즘은 성별 구분을 거부하거나 육체적 성을 뛰어넘고자 하고 여성성의 관계적인 면을 더욱 중시한다는 점에서 1세대 페미니즘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페미니즘으로서 공통된 점은 여성 일반을 하나의 억압받는 집단이자 계급으로 인식하고 남성을 억압자인 적으로 보며 기존 사회 내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콜론타이의 목소리로 현대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 또는 최소한 콜론타이가 주장했던 바가 페미니즘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콜론타이는 1909년에 쓴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에서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운동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의 차이로, 페미니즘은 남성과 남성 중심의 사회로부터 여성을 분리해내면서 논의가 시작되는 반면 맑스주의 여성해방운동을 대표하는 콜론타이는 남녀의 우월 경쟁은 부르주아 학자들에게나 맡겨두라고 말하며 모든 것의 이면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있음을 주장했다. 현대의 페미니즘이 전제로 하는 가부장제는 역사적인 가족 구성체나 거기에서 파생된 낡은 지배 관념을 말하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뜻한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요소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남녀 간의 관계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대립하는 모순이 된다. 이러한 성별 분리, 성별 적대적 접근은 콜론타이가 말하는 여성해방의 전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콜론타이는 항상 경제 체제가 도덕이나 관습 등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맑스주의적 관점을 놓치지 않았다.

“역사적 유물론의 지지자들은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사회 문제와 분리된 어떤 특별한 여성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종속에는 그 이면에 특정한 경제적 요소들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특정들은 부차적인 요소였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8), 콜론타이의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 여성의 날, 좁쌀한알. p.51

그리고 그러한 전제에서 페미니즘과 맑스주의 여성해방운동은 계급에 대한 정의도 각각 다르게 말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페미니즘은 여성 일반을 하나의 계급으로 보았고 모든 여성들이 공유하는 문제가 있으며 그래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단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물리쳐야할 대상이 남성 일반이자 남성이 만들어 놓은 남성 중심의 현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래 맑스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나눠지며 여성들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는 계급적 차이를 강조하고 특히 노동자계급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연대를 항상 강조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주적으로 보며, 남성들이 부당하게 모든 권리와 특혜를 쥐고서 여성들에게는 속박과 임무만 남겨놓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승리란 이전에 남성들이 독점적으로 누렸던 특권이 “공정한 성”에게 허용될 때를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다르다. 그들은 남성을 적이나 억압자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들을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로 생각한다. 여성과 여성의 남성 동지는 똑 같은 사회 모순으로 인해 착취되고 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8), 콜론타이의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 여성의 날, 좁쌀한알. pp.55-56

그렇다고 해서 콜론타이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부과되고 있는 차별과 짐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아니다. 남녀의 역할분담은 남성에게 돈벌이 노동을 여성에게는 가사일과 양육을 맡겼다. 한 때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천이나 버터 등을 만들어내는 여성의 생산이 가정과 국가에 한몫을 하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가정 내에서 주로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사일은 가계와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고, 또한 가장 역할을 하던 남성의 벌이만으로는 가정을 꾸리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계급의 여성들은 이미 원하든 원치 않든 노동현장으로 내몰린 상태였다. 게다가 (급진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바대로 태초부터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비과학적, 비역사적 의미의 가부장제가 아니라 역사적 실체로서의) 가부장제가 무너진 이후에도 오랜 역할분담과 가부장적인 의식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짐을 지웠다. 자본주의로 인해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일이 전혀 줄지 않은 채로 임금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성들은 이러한 삼중고 아래에서 비틀거리며 고통 받고 항상 눈물에 젖어 있다. 여성들에게 삶이 쉬웠던 적은 없으나, 공장 생산이 한껏 발달한 이 시대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에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 여성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절박하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9),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세와노동 제157호, p.209

현재 (부당하게) 여성들이 주로 맡고 있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 자체를 방어함으로써 여성의 존엄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노력할 필요는 없다. 현대의 페미니즘은 억눌렸던 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힘을 쏟는다. 대표적인 것이 가사일과 성매매이다. 페미니즘이 가진 약점들 중 하나는 과도한 정신승리이며 이는 가사일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부르고자 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러나 여성들을 가사일과 성매매로부터 떨어뜨릴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 가사일과 성매매를 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동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여성들의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맑스가 말한 가치는 상품으로서의 물건이 가지게 되는 가치를 말하며, 맑스주의 입장에서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사일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맑스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가치는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는 가치와는 다르다. 맑스주의의 가치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시간으로 계산되는 노동의 양을 반영한다.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을 만드는 노동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우리를 키우신 가치 있는 어머니의 노동’은 경제학 개념으로 쓰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우리를 키우신 사용가치 있는 어머니의 노동’이 된다. 맑스주의에 대해 제대로 전달을 하려면 이렇듯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구분도 못하거나 왜곡하는 페미니즘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다.) 이는 여성이 앞으로도 계속 가사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도 않으며 역사적으로 주로 여성들이 해온 일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콜론타이 역시 맑스와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는다. 소비를 할 뿐이다. 집안일이라고는 청소(바닥 청소, 먼지 떨이, 물 데우기, 램프 관리하기 등)와 요리(저녁 식사 준비하기), 그리고 가족이 쓰는 아마포와 천을 빨고 관리하는 일(꿰매고 수선하기)만이 남아있다. 이는 어렵고 진 빠지는 일들로,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노동자 여성의 남은 시간과 기운을 전부 뺏어간다. 하지만 이 일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우리 할머니들이 했던 일들과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말한 그 네 가지 일들은 여전히 가족을 한 데 유지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국가 경제에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 일들은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나라의 부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주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집안을 청소하고 매일 아마포를 빨고 다리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간소한 재료가 허락하는 한 마음에 드는 요리를 하면서 보낼지라도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로 하루를 마친다. 그 모든 노력을 들였다고 할지라도 여성이 만든 것은 어느 하나 상품으로 간주될 수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9),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세와노동 제157호, p.212

해결책은 가사와 성매매로부터 여성들이 벗어날 수 있는 변혁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가치가 없는’ 가사일을 사회가 떠안고 양육을 모두가 하는 것이다. 의식을 바꿔야한다면 가사일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그러한 공동 생활을 위한 의식적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족 단위로 사회를 구성하여 생산을 해내고 그것의 반복을 부계를 통해 다음 세대에 물려줄 필요가 있던 시대는 지났으나 경제 체제는 여전히 자본주의에서 머물러 있다. 현재 가족은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개별적으로 해체되고 있거나 가족 단위라는 사회 구성이 아직 그대로인 채로 가족임금이 폐지되고 일인을 기준으로 한 임금이 책정되는 등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생산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내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약자를 위한 적절한 임금의 형태나 노인과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복지에 대해서는 감감무소식이다. 가사일은 사회가 떠안는 방향으로 발전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뿐만 아니라 뿔뿔이 흩어진 남녀노소 일인 가구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해야하는 힘든 과제가 되었다. 기존의 가족 제도와 사유재산제가 낳은 산물인 성매매 역시 자본주의가 현재처럼 계속해서 파편화된 개인들을 낳으면서도 상품 생산에 근거한 사회 구조한 근본에 있어서 어떤 변혁을 겪지 않는 이상 없어지기는커녕 악화될 것이다. 페미니즘과 다른 맑스주의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제대로 된 투쟁의 방향 설정이 필요한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노동 조건이 바뀌고 노동자 여성의 물질적인 안정이 확보되고 (실제로는 사기일 뿐이지만 소위 파기할 수 없는 혼인이라고 불리는) 교회가 맺어줬던 결혼이 아니라 연인이자 동지인 남녀의 자유롭고도 솔직한 결합이 등장하면, 성매매는 사라지게 된다. 인류에게 오점이고 굶주린 노동자 여성들에게 재앙인 이 해악의 뿌리는 상품 생산과 사유재산이라는 기관에 있다. 이러한 경제 형태가 대체되면, 여성을 사고 파는 일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 계급의 여성들은 가족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여성을 가정이라는 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어머니가 되는 것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마지막으로는 성매매라는 끔찍한 저주를 끝장내는 이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반길 일이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9),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세와노동 제157호, p.218

이렇듯 새로운 사회의 도래에 앞서고 뒷서며 동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의식의 변혁이다. 콜론타이가 말하는 맑스주의 여성해방의 사회는 기존의 사회에서 남성만이 가지고 있던 특혜가 여성들에게도 주어지거나 그러한 특혜를 여성들이 쟁취해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맑스주의 여성해방의 사회는 사회의 토대 자체가 바뀌고 그에 맞춰 가는 새로운 의식의 사회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상력으로는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부분이다. 반면 페미니즘은 기존 사회 토대의 변혁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변화를 꿈꾼다. 이점에서 페미니즘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가질 수 있다는 강점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성매매가 없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상상하기보다는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긍정하는 편을 더 쉽게 여긴다. 또한 기존 결혼제도를 넘어설 수 있는 건강한 인간관계의 결합을 꿈꾸기 보다는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그에 따른 각기각색의 연애를 사생활로서 긍정하는 것을 더 쉽게 여긴다. 따라서 막연해 보이는 맑스주의 여성해방이 아니라 잘못되었을지언정 구체적인 방침을 제시하는 페미니즘에서 사람들은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체가 바뀌지 않은 채로 용어와 의식만 달리하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러한 “자유로운 관계”와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처방이 실행되기 전에 무엇보다도 사람들 간의 모든 사회관계에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도덕적이고 성적인 규범과 인류의 심리 전체가 철저한 진화를 겪어야만 한다. 현재의 사람이 “자유로운 사랑”에 심리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있는가? 가장 고귀한 영혼조차도 갉아먹는다는 질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소유하고자 하는, 그토록 뿌리깊은 소유 개념은?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개성을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종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종속시키려는 버릇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고 떠날 때 겪는 그 쓰라리고 절망적인 감정, 버림받은 기분과 끝도 없는 외로움은? 뼛속까지 개인주의자인 사람은 외로울 때 어디서 위안을 찾을 것인가? 기쁨과 슬픔과 염원을 함께 하는 공동체야말로 그 개인의 감정적이고 지적인 에너지에 대한 최상의 분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이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영향력을 느낄만한 방식으로 이러한 공동체와 함께 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 현재 공동체의 삶이 개인의 소소한 즐거움을 진실로 대체할 능력이 있는가? 가족 문제는 삶 그 자체만큼이나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사회 체제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서의윤 옮김(2018), 콜론타이의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 여성의 날, 좁쌀한알. pp.74-75

현실에 기반을 두는 것과 현실에 굴복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의식을 꿈꾸는 것과 무리한 공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들과 마주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맑스를 언급하면서도 그 언어를 왜곡하거나 맑스주의 역시 극복해야할 서구 남성중심의 사고틀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비판과 대안에 낭만적, 문학적 수사가 아닌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있는가가 요점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향상시키는 모든 움직임을 페미니즘 안에 포섭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콜론타이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부름으로써 페미니즘에 분명하게 비판적이었던 콜론타이의 주장을 흐리고 묽게 만든다. 따라서 용어 정리, 개념 정리부터 본래의 모습대로 정확하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여성 운동에는 페미니즘이라는 한 가지 갈래와 함께 그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콜론타이로 대표되는 맑스주의 여성해방운동 역시 존재한다. 존재에 합당한 이름을 되돌려주고 조금은 더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행동지침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맥이 끊겼던 맑스주의 여성해방운동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전선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이전 글

[전선] 116호 노동자의 표현과 수용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현장과 광장」으로 발전하기를

다음 글

[전선] 116호 여성해방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통해서, 사회주의 승리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클라라 체트킨 선집』을 읽고-

2 Comments

댓글을 입력하세요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