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ㅣ 농민
‘수구’ ‘극우’ 등은 세칭 갈 데까지 간 정치 세력이나 인물을 지칭할 때 쓰이는 것인데 한국 정치에서는 이들조차도 양당 체제의 패권 속으로 들어가면 진보와 경쟁하는 건전한 보수로 불리게 된다. 지난해 국회에서 ‘5월 항쟁’을 폄훼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른 것을 ‘손가락 운동’이라고 발언하는 이진숙의 뻔뻔함 앞에서 최소한의 양싱도 소명의식도 없는 관료가 만들어 낼 정책들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 결정에 윤리, 규범, 감정으로 얻어지는 두꺼운 정보는 이제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 – 국힘이라는 지배 권력의 두 축 가운데 하나에 줄 서서 서로를 혐오하는 발언으로 극단적인 갈라치기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사실 확인이나 합리적 토론은 없다. 물론 윤리적 반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자는 윤석열 정부와 국힘의 품격 없음을 말하면서 그래도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의 상식을 가지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말한 민주당을 두둔하지만 그 상식을 깬 것은 재벌이 먼저인 것을 보여준 문재인 정권이었다. 문재인은 재판 중인 삼성의 이재용을 해외 순방에 동반하고 청와대에 초청하는 초유의 사건을 벌였고 문재인에 의해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그에 화합으로 이재용을 사면해 줬다.
이 둘은 한국 정치의 환상이 콤비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사면 명단에 오르는 사람들은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조국’ 사면을 두고 또 그 지지자들이 조국을 ‘윤석열’정권의 희생양이자 검찰개혁의 투사로 말하는 뻔뻔한 짓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때, ‘표창장 위조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며 ‘고위 공직자 사모펀드는 불법이 아니므로 괜찮다’고 말하는 몰지각과 비도덕이 지금은 ‘조국의 죄는 모두 무죄다’ ‘내란 세력에 희생된 조국’을 사면 시키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억지와 궤변으로 공론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조국은 딸 입시 관련 위조공문서행사, 위조사문서행사, 사문서위조 등 조민의 이른바 7대 허위 스펙 관련 혐의는 1,2,3심까지 가서 전부 확정되었다. 조국은 검찰개혁이나, 윤석열 정권과 싸우다 감옥에 간 것이 아니다. 또 약자와 소수자 권리를 위해 시위하다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자식의 최고 스펙을 즉 권력과 부의 세습을 위해 자신의 권력으로 온갖 반칙과 불법을 저지르다가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잡범을 두고 또 온 나라가 둘을 나뉘어 사면과 사면 반대를 외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문재인 정권에서 조국 사태로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로 드러낸 이 사회의 민낯을 그 누구도 바로 보지 않고 있다. 내가 조국이라는 개인이 미워서 지금껏 비판했을리 만무하고 나 또한 조국이라는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물적 기반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삶이 공적 이슈로 이 사회에 논란이 되었을 때 그가 겪었을 고통을 모를리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조국이 나쁜 놈이다, 아니다로 싸울 것이 아니라, 조국 사태가 왜 그토록 이 사회를 분열시켰나를 보자는 것이 지금껏 내가 페북에 한 말이다. 지금껏 진보라고 떠들며 정의를 외쳤던 정치세력이 약속한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런 상층 세력들의 자식들과 평범한 민중들의 자식들 즉 그러니까 너무도 심각한 젊은세대 내부의 계급 격차(부모의 물적 기반이 대물림 되면서 나타나는)를 어떻게 해소 할 것인가를 묻고 따져야 한다.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모든 정치적 행위에 책임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과 조국 지지자들 입에서 나와야 될 말은 ‘검찰개혁의 희생양 조국을 사면하라’는 신파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권기에 일어난 판단착오와 아집으로 인해 시민들이 치루어야 했던 그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고, 조국은 겸허하게 법의 판결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 지지자들도 이런 반성과 책임을 말한 다음에 개인적 연민을 토로해야 앞뒤가 맞다. 세월호에 이어 채 상병, 이태원 참사가 다시 일어나도 이 사회가 또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가 이런 상식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면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지지자라는 신도의 대변자인 대통령이 지배권을 가지고 그 지지자들의 함성에 의해 통치하는 신정 정치 형태가 되었다. 거대 양당은 언제나 지지자들을 앞세운 ‘압도적 다수 국민의 지지’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어떤 ‘죄’도 포용하는 면죄부를 남발하고 이것을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중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