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64호 4-5 사람이 안 보이는 영화, “건국 전쟁”

  • 이 기사는 <노동자신문> 1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심미숙

≪자본론≫을 비롯한 맑스ㆍ엥엘스의 저작을, ≪국가와 혁명≫을 비롯한 레닌의 저작을 읽다보면 크게 감동하며 깨닫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장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관심과 사랑. 또 하나는,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집요하고 집요하고 집요한 탐구.

영화, “건국 전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도 등장하는데, 그리고 이상한 말들도 많이도 하는데, 그 중 압권은 “피해자에 집중”하는 것, “희생자 중심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가해자에 집중하고 가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보라는 말! 학살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살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에 집중하라는 말! 가해자, 학살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섬뜩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죄도 없이 손가락 총에 의해 경찰서로 끌려가서, 뒷산에서, 개울에서, 구렁텅이에서, 언덕배기에서 집단학살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정식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된 억울한 부모형제들의 한을 풀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유족들”도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건국 전쟁”을 벌이며 학살한 사람이 백만 명 가량이었다.(≪경향신문≫기사, 2006. 6. 22.)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그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영화에는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나는 그 백만의 희생자 중 한 사람, 고 노상도씨를 KTV(국민방송)에서 만났다. 그는 해방 후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을 했고, 벽보를 11군데 붙였다는 이유로 1948년 4월에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 벽보의 내용은 “1. 정권을 인민에게 넘겨라, 2. 농지를 순수 농민에게 돌려줘라, 3. 남녀평등권 실시하라, 4. 친일 세력들 색출 엄벌하라” 였다. 징역을 살고 1949년 9월 출소 후 보도연맹에 가입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7월 초, 마을 이장을 통해 보도연맹원들은 면사무소로 일을 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삽과 쌀소쿠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그 길로 형무소에 수감, 8월 14일 사형을 언도 받고 전차상륙함(LST)에 실려 구산면(마산) 앞바다로 끌려가 총살, 수장되었다.

묻혀있던 학살의 진실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아직 백만 학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 학살자들의 무리는 밝혀진 진실의 조각마저 되묻으려고 한다. 지난 2021년, 여순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작년 2023년 말에는 ‘여순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기획단’이 구성되었는데, 이 기획단에 뉴라이트를 포함한 극우 인사 9명(전체 15명 중)이 포함되었고, 그 기획단의 회의에서 “14연대의 봉기는 반란이었다. 여순사건 진상규명은 반란군과 이에 찬동하는 민간인들이 합동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기에 진상보고서는 반란이라는 원칙 속에서 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영화 “건국 전쟁”을 만든 자들이 바로 그러한 극우 인사들이다. “건국 전쟁 2”도 만든다고 한다. 학살된 “반란군과 이에 찬동하는 민간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 참혹한 학살의 진실을 덮으려는 그자들은 과연 사람일까? 좀처럼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 엄청난 대량 학살자 대한미국의 건국 대통령 리승만을 가리켜, “일반 보통 사람들, 평민 계층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수도 없는 죽음의 자리에 함께 했던 그야말로 민중의 벗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였”다고 추앙⋅찬미하는 저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그 영화에는 정말 사람이 안 보인다.

이렇게 인간같지 않은 인간들이 득세하고 활개를 치며, 더욱 냉철하고 엄혹한 투쟁을 노동자 인민에게 강제하는 정세의 직접적 계기는 극우 윤석열 정권의 탄생이고, 그 근본적 배경에는 독점자본의 전반적이고 만성적인 과잉생산 위기의 격화와 노동자 인민들의 실업과 빈곤의 심화가 있다. 이에 더욱 거세게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노동자 인민의 저항과 투쟁을 억누르고, 위기의 자본주의체제를 연명하기 위한 독점자본의 방책이 파쇼 독재정권과 극우세력의 재탄생과 육성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원시 공동체 사회의 해체와 더불어 사회가 서로 적대적인 계급들로 불가피하게 분열하면서, 동시에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당하는 계급 사이의 불가피한 투쟁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속한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만성적 과잉생산과 노동자 인민의 가난과 실업⋅전쟁과 학살의 공존이 필연인 착취와 억압의 사회 자본주의의 폐지로, 뉴라이트와 극우를 포함하는 모든 사회악을 영원히 잠재우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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