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제국주의와 전쟁
조창익 l 편집위원장
『현장과 광장』 제7호의 제호를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삼았습니다.
목하 세계는 러-우 전쟁을 필두로 세계적 차원의 전운이 더욱 뚜렷해져 가는 전쟁 위기의 시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일 합동전쟁연습을 강행하는 남한과 빈번한 전술핵 미사일이나 ICBM 발사 등으로 강력한 대응을 감행하는 북한 간의 점증하는 군사적 갈등상황은 한(조선)반도가 분명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엄중한 전시상태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관한 제 개인적 차원의 몇 가지 단상을 떠올려 봅니다. 1930년 대 필자의 증조부께서 일제 치하 징병 징용을 피해 자식들 5남매를 데리고 곡성에서 지리산으로 입산을 하고, 조부께서는 지금 문수사 절터에 집을 짓고 살았던 때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었던 필자의 부친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어느 해 질 녘 집 마당에 빨치산들이 총을 들고 들어와 밥을 지어 달라 해서 할머니가 고분고분 감자를 삶고 쌀밥을 지어줬다는 이야기, 밤이 깊어 그들이 사랑방에서 잠자리에 들 때 낮에 있었던 음식물 보급 투쟁 등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옆방에서 귀를 대고 숨죽이며 들었다는 이야기, 내용인즉, 문수골로 올라오는 어느 논둑길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삼베 보자기를 주웠는데 그 안에 호박잎으로 싼 여러 개의 주먹밥을 주워 먹고 배가 불렀다는 것, 그래서 부친은 빨치산 그들도 배가 고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더불어 구례 섬진강가에서 산더미 같은 시체가 여러 날 시커먼 연기로 타오르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시곤 하셨습니다. 여기에 모친께서는 순천 친족 형제 중에 고등학교 다니는 머리 명석한 오빠가 여순 항쟁 시절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집 마당에서 화염방사기에 불타 희생되는 끔찍한 장면을 회고하곤 하셨는데 모친의 생생한 증언을 접했을 때 몸서리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였지만, 그저 먼 나라 이웃 나라 영화 같은 장면으로 상상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며칠 전 10월 28일 넷플릭스에 개봉된 전쟁 영화, 2022년 작 ‘서부 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간 전쟁의 참혹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철조망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신을 바로 등 뒤로 하고 적진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참호 속에서 적진을 향해 총알 세례를 쏟아붓는 장면이나, 항복하는 독일군을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이는 프랑스군, 참호 속 병사를 탱크로 깔아뭉개 죽이는 장면 등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고통스럽게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모든 건 열병 같아.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갑자기 들이닥쳤지. 우리도 원치 않았고, 저쪽도 원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러고 있잖아. 세계의 절반이 이러고 있어. 우리가 서로 도륙하고 있는 동안, 신은 지켜보기만 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프랑스 샹퍄뉴 어느 들녘에서 재회하는 독일 병사들 사이에 오고 간 대화 중에 나온 대사입니다. 사경을 헤매는 병사, 절망하여 자살하는 병사 등등 참혹한 전쟁터로 내몰린 독일 청년 학생들과 인쇄공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절망, 종전을 앞둔 독불 수뇌부 협상 중에서 지휘부의 과욕으로 또다시 전쟁터에 내몰린 병사들의 공허한 죽음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갈구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서부 전선에 새로움이란 없다’의 의역입니다. 그 오랜 전투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전선에서 단 몇 미터를 오가는 공방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 당시 전쟁의 지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선에 전쟁의 참화 이외에 새로움 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처럼 양차 대전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헤아릴 수 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은 인류가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 이면에 자본주의의 최고단계, 제국주의가 전쟁이라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암울한 진실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언제나 전쟁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지만, 한편으로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잃을 것은 다만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쇠사슬뿐입니다. 결단코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지만 미구에 닥칠 수도 있는 안팎의 전쟁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투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사기다. 언제나 그랬다. 전쟁은 아마 가장 오래된 사기일 것이다. 또 쉽게 가장 큰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사기이며,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기이기도 하다. 규모로 볼 것 같으면 독보적인 국제적 사기다. 이득은 달러로 계산하고 손실은 인명으로 계산하는 유일한 사기이기도 하다.” – War is racket!- Smedley Darlington Butler
전쟁은 사기라는 버틀러의 선언은 사뭇 충격적입니다.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전쟁 영웅(?) 버틀러가 폭로하는 진실은 군산복합체의 실체와 전쟁이 양산하는 만행과 참상의 근절을 향하고 있습니다. 놈 촘스키가 ‘미국에게 전쟁이란 국민을 속여 대기업을 배를 불리는 수단이다’라고 경고하고 고발하고 있지만 지금도 미 제국주의 전쟁은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진행형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전쟁 그 자체라 할 것입니다. 자본의 탐욕으로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가혹한 삶의 조건을 전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착취가 심화되는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타살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에 의한 살육 그 자체입니다. 이 땅은 참혹한 계급 전쟁터입니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극우 정치의 야만과 이전투구가 그 어떤 희망도 생산하지 못한 채 전 민중을 상대로 가하는 일상의 심리적 폭력 그리고 그것이 허용되는 계급적 조건이야말로 강요된 또 다른 전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일상은 분명코 정치경제적 내전 상태입니다.
덧붙여, 이 땅에서 가장 아픈 곳 중의 하나가 소성리입니다. 지난 박근혜 이래 문재인,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6년간 수백 번에 걸쳐 무력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미제와 정권에 맞서 싸우는 소성리 주민들의 고통스럽고 파괴된 일상이 전쟁의 다른 이름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땅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합니다.
<여는 시>로 저의 졸시 ‘선언 2022’를 싣습니다. 어느 활동가 조직의 출범식에 제출된 ‘선언 2022’는 이른바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향한 절절한 염원이자 노동자권력 노동자국가를 향한 옹골찬 정치선언입니다. 이른바 진보와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의 차분한 과학적 성찰과 품 넓은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사상적 조직적 혼란이 가져다주는 답답함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도 멈추지 아니하고 변혁을 향하여 전진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그 자체로 희망입니다. 희망을 만들어가는 노동자들의 투쟁 전선이 보다 견결해지면 좋겠습니다.
<현장>에 심종숙 시인의 시, ‘시지프스 정우형’을 싣습니다.
10월 말일로 173일째 분향소를 지키는 동지들이 커피 한잔을 올리고 열사투쟁을 시작합니다. “삼성은 죽음으로 항거한 정우형 열사의 외침에 답하라!”
다음 <현장>에 이빈파 님의 글, ‘CPTPP 톺아보기’를 싣습니다. ‘CPTPP에서 극명한 문제점은 높은 관세철폐율, 강화된 동식물위생검역조치, 원산지 문제다. 무엇보다 농산물 개방률이 96.1%로 일반적인 FTA 개방률 73%에 비하면 매우 높아 농업피해는 기본’입니다.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반농민반농업적 정부들의 변함없는 자세에 대한 통렬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현장>에 고태은 님의 글, ‘끝까지 간다. 악덕 자본에 맞서는 질긴 노동자들’을 싣습니다.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동지들의 승리를 향한 끈질긴 투쟁기록입니다. 작은 승리들은 이미 쌓여가고 있습니다. 부당노동판결 뿐만 아니라 살인적인 운항 스케줄도 중단되고, 운항 수당도 오르고 임금도 개선되는 등 현장의 변화에 이어 궁극의 승리를 향한 굳건한 단결 투쟁을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다음 <현장>에 김성만 시인의 시, ‘폭파공법’을 싣습니다. 자본의 체제를 해체하는 노동자의 폭파공법! 노동자가 만들어갈 해체의 예술! 통쾌한 상상과 실천을 결의하고 있습니다.
다음 <현장>에 이시보 님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 투쟁의 기록인 ‘이대로 살 순 없다’를 싣습니다. 올해 6,7월 전국의 노동현장은 투쟁으로 들끓었습니다. 폭염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랐던 투쟁을 복기하고 성과와 과제를 냉철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노동자들이 치열한 파업투쟁의 전개과정에서 온갖 반노동자적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깨부수고 이 사회와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계급 및 계급관계의 본질을 인식해나가야 하며 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의식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다음 ‘전쟁’을 주제로 하는 <특집>으로 몇 편의 글을 정리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이현숙 님의 글, ‘부를 위한, 계급의 전쟁 – 평화는 짧고, 전쟁은 길다-’를 싣습니다.
필자는 먼저 전쟁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분석하고, ‘사회적으로 누적된 모순을 급격하게 해소하는 수단이자 실마리’로 정의한 레닌의 서술을 살핀 다음, 결국 최근 ‘제국주의 전쟁의 최종적인 목표는 금융자본의 이윤’임을 차분하게 밝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메들리 버틀러의 ‘전쟁은 사기다’, 이 작은 책자는 참으로 충격적인 보고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필자는 나아가 전자본주의 시대의 전쟁, 자본주의에서의 전쟁을 분석합니다. 여기에서 ‘제1기: 1789~1871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파리꼬뮨까지, 제2기: 1871~1941년. 파리꼬뮨 이후부터 독쏘전쟁까지, 제3기: 1941년 독쏘 전쟁~1991년 쏘련 붕괴, 노-자 계급전쟁, 제4기:1991년~현재. 제국주의 전쟁’으로 세분화해서 시기별 특징을 분석해냅니다. 끝으로 필자는 이미 시작된 제국주의 전쟁이 전면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함을 역설하고 ‘다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계급전쟁을 다시 시작하자.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며 일갈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관하여 노동자계급이 취해야 할 관점과 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다음 전원배 님의 글, ‘1차 세계대전에서 러우전쟁까지 – 전쟁의 정치경제적 성격-’을 싣습니다. 필자는 1차 대전, 대공황, 1차 대전을 거쳐 최근의 러우 전쟁까지를 역동적으로 분석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며, 그런 만큼 예측 불가능한 무수한 변수가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다. 오늘날 인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마주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차원, 다른 형식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현실이 되었다. …. 대공황이 지난 지 100년, 세계대전이 지난 지 80년이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자본주의 리셋의 시대로 달려간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다. 우리는 이미 한 세대 이상 이 주제를 붙들고 있다. 우리가 좌익으로서의 자세와 실력을 복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매듭짓고 있습니다.
다음 <특집> 순서로 김혁동 님의 글, ‘한미동맹과 제국주의 전쟁’을 싣습니다. 필자는 한반도 평화 문제는 단순히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계급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시대를 열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다음 단계의 사회구성체로 넘어가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돌입하게 되는 제국주의 단계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진짜 평화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 <특집> 순서로 서승 님의 글, ‘동아시아에서 자주평화의 조건 – 계속되는 항일 투쟁-’을 싣습니다. 필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리의 통일을 열망함에 무엇보다도 ‘한미일동맹’론에 의한 ‘냉전논리’를 거부하고 반파시즘, 반제 민족해방 전쟁에 승리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일제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청산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장> 글에는 김동성 님의 글, ‘기후정의행진은 체제전환으로 나아가는 행진이다’를 싣습니다. 필자는 착취와 전쟁 그리고 기후재앙을 막으려면 자본주의를 멈추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쟁점>에는 이을재 님의 글, ‘진보교육감 12년, 성과와 한계’를 싣습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진보교육감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면서 ‘지난 12년 진보교육감의 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는 진보교육감 개인만이 아니라 진보교육운동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홍승용 님의 글, ‘파리코뮌과 노동자 정치운동’을 싣습니다. 필자는 오늘의 국내외 상황이 노동자정치운동의 질적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의 난관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발판으로 노동자민중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대안사상·정책을 생산하고, 이를 검증하고 널리 공유할 수 있는 조직적 체계적 운동을 펼쳐나가자고 주장합니다. 더불어‘노동자국가 건설운동 과정에서 철저히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면, 그리하여 운동의 대중화와 질적 도약을 이루어냄으로써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을 획기적으로 앞당긴다면, 이 또한 파리코뮌의 교훈을 존중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연구>에 천연옥 님의 글, ‘국가란 무엇인가?’를 싣습니다. 정치강좌 <맑스주의 국가론>에서 발표된 글을 보충한 내용으로서, 필자는 국가관의 변화와 맑스주의 국가론을 분석하면서, ‘왜 본질에서 부르주아독재인 현대국가는 어떤 곳에서는 파시즘 형으로 어떤 곳에서는 뉴딜 형으로 나타났는지, 식민지·신식민지의 국가권력을 제국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등 더 자세히 파고들어서 분명히 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연구> 란에는 한동백 님의 글,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를 싣습니다. 필자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그 허구성’등 일련의 분석을 통해 여성 해방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지 않고선 여성이 겪는 사회모순이 해결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이윤이 생산의 동기가 아닌, 필요가 생산의 동기가 되는 사회에서 여성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육> 란에는 이용기 님의 글, ‘윤석열정권에서 교육노동운동을 위하여 –담론의 구조를 주도하자!-’을 싣습니다. 필자는 대전환의 시대 자본의 빠른 대응에 비해 노동자민중의 교육에 대한 이념적, 체제적 제출은 활발하지 않고, 체제의 위기에 대해 변혁을 추구하는 교육노동운동이 변혁의 상을 제출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논의와 주체 형성의 측면에서, 대전환의 시대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논의기구 수립, 학생 주체의 자기활동 공간확대와 민주시민으로 학생 인권을 보장받는 학교를 위한 사업, 교사 공무원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활동 등 세 가지 방안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 소개>란에는 하영진 님의 ‘전쟁 시대를 내란 시대의 시작으로 –레닌의 『사회주의와 전쟁』을 읽고-’를 싣습니다. 더불어 지음 님의 ‘그녀들은 보았다 –냉전의 마녀들-’를 싣습니다. 이어 노제혁 님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을 싣습니다.
<독자후기>에는 하영진 님의 글, ‘여성이 세상의 절반을 만든다’와 김석현 님의 글, ‘전초제근의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를 싣습니다.
<1970-2022오늘> 표지그림을 제공하여 주신 박종선 화백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52주기입니다. 52년의 긴 세월이 흐른 ‘오늘’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투쟁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담아 전태일 열사를 그렸습니다.” 박 화백의 말씀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림 속에 형상화된 장면 하나하나는 지난 시기 우리 모두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익숙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아직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기필코 노동해방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동지들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수차례 거듭되는 편집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주신 박한솔 동지, 교열교정에 힘써주신 남중섭 동지, 여전히 표지 디자인 작업에 애써주신 이규환 동지 등 많은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책 뒷면에 ‘현대사상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연구 성과물, ‘현대사상 27’, 『자본』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제1호 ‘현대의 키워드’에서 시작하여 환상을 넘어서, 아방가르드, 유물론, 사회주의, 지젝 읽기, 변증법, 아도르노, 식민지, 레닌, 무의식, 맑스-엥겔스, 실제, 이글턴, 욕망, 트로츠키, 진보, 호찌민, 폭력, 마오쩌뚱, 국가, 로자 룩셈부르크, 전쟁, 알튀세르, 민족 등의 주제와 더불어 26호 ‘그람시’에 이어 발간한 연구물입니다. 앞으로 『현장과 광장』은 『현대사상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현대사상’과 함께 정기 독자들에게 제공될 것입니다. 독자 제현의 많은 관심과 구독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편집자의 글’을 작성하는 도중에 참으로 황망하고 애통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인재’이자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으로 분노를 자아내는 국가 권력에 의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이태원 거리에서 위험을 감지한 청년들은 살려달라고 국가에 애타게 SOS를 타전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국가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희생자와 한 공간에 있었던 생존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의 사회적 트라우마와 공분이 커져만 갈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참극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참사를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청년들의 명복을 빕니다.
『현장과 광장』은 전태일 열사처럼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며 전진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자 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세상을 희망으로 수놓고자 합니다.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겠습니다.
2022. 11. 12.
‘노동개악 저지!노조법 2,3조 개정!민영화 중단!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22 전국노동자 대회’ 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