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노동전선 교육위원장)
삼성 노동자들의 이번 교섭과 투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 투쟁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기존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한 목표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면, 이번 삼성 투쟁은 그 경계를 넘어섰다. 노동자들은 단지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생산한 가치에 대한 소유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핵심은 이른바 “영업 가치”, 즉 기업의 잉여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삼성 자본은 성과급과 영업이익을 마치 기업 경영진의 능력과 투자 결정의 결과물인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반도체를 생산하고, 공장을 운영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상품을 만들어낸 주체는 결국 노동자 자신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업이익은 결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다른 표현이다. 자본가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사적으로 점유한다. 그러나 이번 삼성 투쟁은 바로 이 지점에 균열을 냈다. 노동자들은 성과급 문제를 통해 “잉여가치는 누구의 것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분배 요구가 아니라, 생산물과 잉여가치의 소유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이 자신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생산수단조차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공장, 원료,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을 자본가의 고유한 소유물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수단 역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공장을 건설한 것도 건설 노동자들이고, 기계를 제작한 것도 금속·기계 노동자들이며, 원료를 채굴하고 가공한 것 또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공장과 기계, 원료 등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가치를 생산물 속으로 이전할 뿐이며, 이를 우리는 ‘불변자본’이라 칭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되는 수천억 원 규모의 장비와 공장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반복적으로 작동하며 자신이 마모된 만큼의 가치만을 생산물에 이전한다. 원료 역시 마찬가지다. 실리콘 웨이퍼와 각종 화학 재료는 가공 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존 가치를 제품 속으로 옮길 뿐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노동, 즉 노동자들의 노동력이다. 노동자는 생산 과정 속에서 단지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창조한다. 바로 이 초과된 부분이 잉여가치이며, 자본의 이윤과 축적의 원천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바로 이 살아 있는 노동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거꾸로 보인다. 거대한 공장과 첨단 설비, 자동화 시스템이 모든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삼성과 같은 초거대 기업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사람들은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와 첨단 반도체 공정을 보며 마치 자본 그 자체가 부를 창조하는 힘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기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장을 설계하고 유지·보수하며 생산 공정을 운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생산라인의 자동화조차 과거와 현재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과 기술 축적의 결과물이다. 즉,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을 뿐,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낸 존재는 아니다. 생산수단은 역사적으로 보면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노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인간 사회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역시 세대를 거친 노동자들과 민중의 집단적 경험과 노동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가는 단지 법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사회적 생산물을 사적으로 독점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생산은 철저하게 사회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협업하고, 사회 전체의 기술과 인프라가 결합되어 하나의 상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생산물과 생산수단, 그리고 잉여가치의 소유는 극소수 자본가에게 집중된다. 다시 말해 생산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소유는 사적으로 독점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한 개가 생산되기까지 연구개발 노동자, 생산직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물류 노동자, 건설 노동자, 발전 노동자 등 사회 전체의 노동이 결합된다. 국가가 제공한 교육 시스템과 산업 인프라, 전력과 교통 체계 또한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성과는 삼성 자본의 이윤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자본은 이를 자신의 경영 능력과 투자 위험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생계비라고 이야기되는 임금 수준 자체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임금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자연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의 힘 관계와 투쟁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과 물가 인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은 항상 부족한 수준으로 강제된다. 오늘의 임금 인상은 내일의 물가 상승 속에서 다시 잠식되며,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 조건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적절한 임금” 혹은 “정당한 임금”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립하기 어렵다. 임금과 잉여가치 사이에는 절대적이고 고정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영업이익이라고 부르는 주장 역시 근본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전체가 애초부터 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임금 인상을 넘어 영업이익, 즉 잉여가치를 쟁취하자”는 표현 또한 엄밀하게 보면 불완전한 표현이다. 마치 임금은 노동의 몫이고 영업이익은 자본가의 몫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삼성의 영업이익 15% 요구 투쟁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임금과 영업이익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 임금을 포함한 가치 전체가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성과급 투쟁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을 단순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아직 완전히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성과급 체계와 기업별 교섭 구조는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을 다시 개별 경쟁과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 속으로 흡수하려는 강력한 통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은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이윤 확대를 자신의 이해와 동일시하도록 강요한다. 노동자는 동료 노동자와 협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평가와 더 많은 성과급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존재로 재편된다. 삼성의 성과급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막대한 영업 이익의 일부를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삼성의 경쟁력 유지”와 “기업 성장”이라는 논리에 묶여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이란 결국 더 강도 높은 노동, 더 빠른 생산 속도, 더 낮은 비용 구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비용 절감의 상당 부분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삼성과 같은 초거대 독점자본의 이윤은 결코 삼성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노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반도체와 전자 산업 전체는 복잡한 원하청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원청 대기업은 핵심 이윤을 독점하는 반면,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속에서 생산을 떠받치고 있다. 위험한 공정과 불안정한 업무는 외주화되고, 비용 절감 압력은 하청으로 내려보내진다. 더 나아가 자본의 축적은 개별 기업 내부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전력·교통·산업단지·교육 시스템, 그리고 사회 전체 노동자들이 생산한 인프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삼성 역시 생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즉 삼성의 이윤은 사회적 노동 전체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자본은 그 집단적 성과를 사적으로 독점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왜 노동자들이 생산한 사회적 부가 소수 자본가의 사적 소유가 되는가”라는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필연적으로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선 공동의 투쟁을 요구하게 된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 물류 노동자, 청소·시설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 존재하지만 모두 삼성 자본의 축적 구조를 떠받치는 노동자들이다. 자본은 이들을 서로 다른 계약 구조와 임금 체계, 복지 수준으로 분리함으로써 공동의 이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모두가 하나의 생산 체계 속에서 집단적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이해관계와 고용형태의 차이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원청 정규직만의 임금 인상 요구가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와 비정규직화, 장시간 노동, 위험의 외주화 문제까지 함께 제기할 때 비로소 자본의 축적 구조 자체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진다.
물론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 역시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은 흔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득권 지키기”로 왜곡하지만, 실제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자본의 이윤 확대 논리와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는 중요한 계급투쟁의 일부다. 특히, 삼성과 같은 무노조 경영 체제를 유지해온 초거대 독점자본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교섭과 파업에 나선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성 자본은 오랫동안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철저히 통제하면서, 개별화된 노동자 관리와 성과 경쟁 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억눌러 왔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영업이익과 성과급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에 나섰다는 것은 자본의 통제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역시 결코 자본이 “시혜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시간의 노동과 집단적 투쟁,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 속에서 쟁취된 결과물이다. 자본은 언제나 임금을 낮추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려 하며, 노동자들의 몫을 줄여 더 많은 잉여가치를 확보하려 한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 역시 자본의 축적 논리에 맞서는 현실적이고 정당한 투쟁이다. 더욱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후퇴하면 그것은 곧바로 하청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기준으로 전가된다. 반대로 상층의 노동조건이 일정하게 방어될 때 다른 노동자들의 조건 역시 일정 부분 지켜질 수 있다. 자본이 끊임없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귀족노조”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유 역시 노동자계급 전체의 기준을 낮추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미 없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느냐에 있다. 만약 투쟁이 기업 내부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데만 머무른다면 자본의 분할 구조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들의 투쟁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연결하고, 자본의 이윤 구조 전체를 문제 삼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때 그 투쟁은 훨씬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번 삼성 교섭 투쟁이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는 분명하다. 노동자들이 단지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누가 사회적 부를 생산하며, 누가 그것을 소유하는가”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교섭 전술의 변화가 아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투쟁의 방향을 새롭게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은 대체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전제로 한 채 그 안에서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 수준을 둘러싸고 투쟁해왔다. 그러나 이번 삼성 투쟁은 생산과 분배, 소유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사적 소유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가 왜 소수의 자본가에게 집중되는가, 생산수단과 기업의 운영 방향을 왜 노동자들은 결정하지 못하는가,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부를 왜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요구를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문제의식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생산 현장의 조건 개선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생산 체계와 권력 구조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노동운동은 단순한 이해관계 투쟁이 아니라 사회 변혁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성과급과 경쟁 체계를 통해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노동조합 운동을 임금 협상 수준에 가두려 한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분할 구조 속에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동 이해를 형성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삼성 투쟁이 남긴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선 계급적 연대와 공동투쟁의 전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투쟁은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윤을 더 이상 “당연한 자본의 몫”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노동조합 운동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운동을 넘어, 사회적 부의 생산과 소유를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번 삼성 투쟁은 바로 그 가능성을 드러낸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