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은 없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투쟁이 두 달 간 지속되었을 때 민주노총은 늦었지만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결정했다. 그런데 정권과 자본은 현대자동차 지부의 파업 찬반투표를 두고 절차적 불법성을 크게 부각하였다. 현대자동차 지부는 임.단협을 앞 둔 시점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정치파업을 수행하기 위해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였고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을 기록했다. 그러자 정권과 자본은 기다렸다는 듯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1조에 규정된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찬성 없이는 쟁의를 할 수 없다는 ‘쟁의행위 제한과 금지’ 조항을 문제 삼아 불법파업임을 선제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현대자동차 지부가 금속산업노조의 지부이고 금속노조 전체 재적조합원의 과반수가 파업에 찬성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른 채 하면서 현대차만 물고 늘어졌다. 그런 논리라면 현대자동차 지부가 파업 할 때 재적조합원 파업찬성률 과반수 여부에 따라 공장별로 합법, 불법파업으로 구분하겠다는 식의 코미디와 같은 꼴이 될 일이다. 그 후 금속노조는 다시 임.단협 관련 산별 파업찬반투표를 거쳤고 현대자동차 지부는 재적조합원 과반수가 파업에 찬성하였다. 그렇다고 그 파업을 합법이라 할 자본과 정권이 아니다. 절차에 시비를 걸던지 내용에 시비를 걸던지 노동자들의 파업은 어떤 경우에도 불법이 되고 마는 것이 자본주의의 법과 제도이고 정권과 자본의 태도다.
그들은 광우병 소고기 반대투쟁을 위한 파업은 불법이라 말한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정치파업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노동조합법 제1조는 ‘헌법에 의해 노동3권이 보장되고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며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슬그머니 ‘정치’를 빼버렸지만 ‘경제.사회’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노사간 이익분쟁에서 다투는 경제문제로만 제한하려 한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에서 '정치'를 제거해 온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하기야 오늘날은 '경제'조차도 '경영(management)'으로 대체하여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입각한 자본가의 인사.경영전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와 정치는 구분될 수 없다. 경제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근로기준법> 제1조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보장과 향상 그리고 균형 있는 국민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불일치’로 규정했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근로기준의 범위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포괄하고 있다면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동자 자신의 건강권 쟁취뿐만 아니라 전 민중적 요구를 받아 안은 투쟁이라 할 것이다. 굳이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파업은 정당하고 합법적이다.
그런데 정권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간부에 대해 불법정치파업을 이유로 소환장을 발부였다. 왜 검.경찰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방해하는 것일까?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본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한 자본가정권의 하수인으로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강화해야 한다. 말하자면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하고 언제든지 해고하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생산을 멈추는 파업을 자유자재로 한다는 것은 자본의 이윤극대화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노동조합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아직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를 인정 않는 자본가가 있긴 하지만- 결코 ‘파업은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원천봉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와 자본가정권이 꾸미는 ‘불법정치파업의 정치경제학’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소환장 발부, 체포영장 발부, 구속수사라는 판에 박힌 절차를 통해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파업을 무력화시킨다. 노동조합법 제39조도 ‘쟁의기간 중에는 현행범 외에는 이 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노동자의 구속을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전혀 위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 구속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자본의 폭력을 악법을 잣대로 정당화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네 번의 정권을 거치면서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불법쟁의라는 올가미에 걸려 구속되었다. 그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쟁의는 ‘불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져 있다. 노태우 2,000명, 김영삼 600명, 김대중 800명, 노무현 1,000명 등 20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들은 대개 불법쟁의나 불법파업의 모함을 뒤집어썼다. 그 동안 ‘불법’도 아닌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자본가가 구속된 노동자 수의 단 1%도 되겠는가? 아직도 노조설립을 방해하고 노동자를 탄압한 자본가들은 보란 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본가정권과 결탁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불법으로 몰아가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자본의 세계화를 선전하면서 ‘글로벌화’니 ‘국제화’를 떠들어대지만 진작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그들이 선진국이라 일컫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 한국처럼 임.단협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로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불법파업으로 매도하면서 소환장, 체포영장 발부하고 구속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경찰, 판.검사 노조가 있는 나라에서는 ‘불법파업 운운’하는 그런 야만적인 난동은 하지 않는다. 노.사.정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도 그런 식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한국과 같은 국가를 노동탄압국가로 규정하고 감시대상국가로 선정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국민연금, 의료보험을 포함한 국가의 정책에 반대하며 수시로 총파업을 전개할 때 그 나라 언론이 한국처럼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한 적이 없다. 더욱이 검.경찰이 치졸하게 소환장을 보내고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협박하면서 파업을 무력화시키려들지 않는다. 대신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해결을 시도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것이 설령 경제적 목적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보면 정치적문제다. 경제문제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해결된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경제문제 즉 고용이나 임금 생존권문제는 노동과 자본의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해결된다. 오늘날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야만적 세계주식회사-는 국가권력을 하위에 두고 공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적 억압과 착취체제로 자본을 뒷받침하게 한다. 자본은 노동에 대한 착취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파업-직장폐쇄, 노동자 해고, 공장 이전, 해외 이동, 투기-을 단행한다. 이 결과는 공장이나 사업장 내에서 노동과 자본 간의 관계를 넘어 전사회적으로 계급적 구조로 확대된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은 필연적이다. 이는 당장의 고용과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으로서 정치파업은 불가피하다. 자본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내 모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위협 때문이다.
(2008.7, 구속노동자 후원회 소식지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