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간선언, 코스콤 투쟁
한국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 한복판, 주가 2000시대에 비정규직 증권전산 노동자의 피울음이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보기 드문 파랑새 깃발과 千事不如一行(천사불여일행) 글귀가 아로새겨진 ‘통곡의 탑’이 거래소 정문을 막아서고, 가로수에는 비정규직들의 염원을 담은 울긋불긋한 천 조각들이 내걸렸으며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장승이 우두커니 서 있어서 증권선물거래소 마당은 이미 거대한 성황당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자본의 심장부에 비정규직의 거리가 펼쳐진 것이다.
코스콤(구 증권전산)은 1977년 증권전산망 운영을 주요 사업 분야로 하여 설립된 회사다. 설립 당시 재정경제부와 증권거래소가 출자하여 공공적인 성격을 태생적으로 띠게 되었고, 그것을 구실로 증권 정보를 독점 공급하여 이윤을 남긴다. 30년 역사의 코스콤은 비정규직 착취 20년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비정규직 차별이 사회적 쟁점이 된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코스콤은 간접고용의 형태를 유지하며 비정규직노동자를 착취해왔다. 2007년 현재, 코스콤은 정규직 노동자 500여명, 비정규직 노동자 5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코스콤비정규 노동자들은 입사한 뒤로 줄곧 코스콤의 네트워크를 관리 운영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아 왔다. 업체 이름은 예닐곱 번이나 바뀌었지만, 언제나 똑같이 코스콤의 네트워크를 떠맡았다. 채용 면접도 코스콤 인사담당이 했고, 일하는 곳도 코스콤 출장소였다. 코스콤 정직원인 관리자의 업무지시를 받았으며, 전산 장애가 생긴 고객 회사에 코스콤 이름이 찍힌 명함을 들고 가서 “코스콤에서 왔습니다!” 하고 자기를 소개했다. 코스콤 간부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코스콤의 얼굴”이라며 항상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장애 처리를 신속하게 하라고 늘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밤 11시든, 새벽 1시든 전화를 받으면 곧장 달려 나가야 했고, 심지어 태풍 매미로 출입이 막힌 도로를 불법으로(?) 운전해야 했다. 명절 연휴도 일부는 반납해야 했는데 제대로 된 시간외수당도, 휴일수당도 받아본 적이 없다. 한 노동자가 업무를 보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는데 병실로 간부가 찾아와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을 테면 회사를 나가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노동부 근로감독 때에는 거짓진술을 하도록 사전 교육을 시켜서까지 위장도급 불법파견을 유지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뼈 빠지게 일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한 가족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저임금과 계속되는 고용 불안이었고, “열심히 하면 정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탕발림의 말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우유 값을 벌려고 새벽과 주말에 주유소,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들 비정규직이 일어섰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는 지난 5월에 설립된 뒤로 쉼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10회가 넘게 전조합원 총회를 열었고, 6박 7일간의 1차 투쟁, 84일 넘게 전면파업을 벌였다. 파업 출정식에서부터 열 명이 넘게 경찰에 붙들려 갔고, 좁디 좁은 ‘통곡의 탑’에서 19일간 단식 농성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여성 부위원장의 20일 넘는 단식, 100인의 동조 단식, 지금 이 시간에도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고 있으며, 두 차례의 CCTV 고공농성과 3보 1배 등 다양한 투쟁이 일어났다.
회사는 어떻게 나왔는가? 코스콤은 노동조합 설립 이후 지금까지 ‘사용자가 아니’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며 문제를 키웠다. 5월부터 넉 달 동안 단체교섭을 20차례가 넘게 벌였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어이없게도 ‘사용자가 아니니 법적 당사자와 교섭하라’고 ‘행정 지도’를 하여 회사쪽에 편을 들어주었다. 용기 백배한 회사는 6박 7일간 진행된 1차 투쟁으로 쟁취한 기본합의서마저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전면파업 84일을 넘긴 지금 12월초, 어떤 교섭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회사는 그뿐 아니라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등 온갖 가처분신청을 올리고, 1억원 가까운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들겨 팬 용역 비용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청구비용에 포함시켰다. 코스콤 건물은 용역깡패와 폭력경찰로 24시간 중무장하고 있다.
코스콤의 위장도급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야 모든 환노위 위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코스콤 네트워크팀은 적어도 20여년간 위장도급으로 운영되어 왔다. 코스콤의 총무팀장, 인력개발팀장이 대표이사와 임원으로 있는 ‘증전 엔지니어링’이라는 업체는 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와 코스콤 사이의 실질 사용관계를 가리기 위한 유령업체에 불과했다. ‘코스콤 총무팀장이 바뀌면 증전 사장이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코스콤은 유령업체를 중간에 내세워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함과 동시에 정규직원의 일상적인 퇴출시스템을 확보하기도 했다. 코스콤에서 퇴직한 임직원들을 증전, 아이티네이드 등 도급업체의 임원으로 보내주면서 월급 지원까지 해왔던 것이다.
노동부는 이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겨우 ‘파견기간을 어긴 불법파견’이라는 최소한의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현행법상 파견기간위반 불법파견은 벌금이 전부다.
코스콤비정규직의 줄기찬 요구는 완전 정규직화다. 중전엔지니어링등 파견업체는 실체가 없으므로 파견회사 자격도 갖추지 않은 위장도급이다. 따라서 당연히 자신들은 ‘직접 고용’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번 단협에서 코스콤과 협상하여 완전정규직을 투쟁으로 쟁취하겠다는 목표이다. 노조의 주장에 흠이 없음을 잘 아는 노동부가 ‘파견기간 위반’으로만 몰고 가려는 것은 이 사태로 인한 파장이 몰고올 여진을 미리 잠재우려는 얇은 술수이다.
이러한 정부 방침을 감지하고 있으니 코스콤가 국회 환노위의 위증고발 방침에도 아랑곳 않고 생색내는 시늉만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 바뀌었는지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는 어느새 자본의 소유물로 둔갑하여, 코스콤은 ‘겨울아, 어서 오너라!’ 하고 고사를 지내왔다. 발 동동거리는 겨울이 오면 투쟁 동력도 얼어붙고 노동자들이 흩어질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화이트칼라의 사무직종이 대부분인 사무금융연맹에서 코스콤비정규직의 투쟁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어날 것이 일어났으니, 비정규직 증권전산 노동자들이 놓인 처지가 너무나 열악했다. 회사의 대응도 금속이나 건설업종 수준이다.
주체들은 제대로 일어서고 있는가? 이들 대부분은 온 몸이 멍투성이다. 교섭요구 하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도 용역 깡패와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데서 얻은 훈장(?)들이다. 조합 결성 무렵에는 자신이 ‘비정규직’인줄도 몰랐던 노동자들이지만 교육받고, 연대투쟁을 거듭함에 따라 단련되어갔다. 파업기간에는 하루 세 차례 집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두가 발언자 토론자로 나섰다.
투쟁의 전망은 어떠한가? 치열한 투쟁에는 거드는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사무금융연맹에서 싸움을 받아 안았고, 정성의 물결도 따랐다. 쌀과 계란과 돼지를 보내오고, 같은 처지의 비정규 노동자가 자신의 결혼식 축의금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러나 노/자의 전체 역관계가 불리하여 승리를 선뜻 장담하기 어렵다. 한 열성 노동자의 옆구리를 한번 찔러보았다. “코스콤을 굴복시키기는 불가능할 것 같네. 빈털터리로 끝나도 계속 싸울 셈인가?” “싸워야지요.” 이들은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이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그래, 한번 가 보는 거다. 그게 남는 것 아닌가.”(2007.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