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금메달에만 열광하는가?
최근 출소한 이의 얘기를 들으면 요즈음 감옥 안에는 코미디 프로 영향으로 “1등만 존중하는 더러운 세상”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동계 올림픽 금메달 소식에 전국이 열광하고 있다. 하기야 동계뿐만 아니라 하계올림픽이나 한․일 월드컵 때도 전국이 열광의 도가니였다. 설 연휴 전날부터 열흘 동안 동계올림픽의 금메달 얘기가 세상을 지배한 듯하다. 이승훈 선수가 5천 미터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뜻밖의 은메달을 땄을 때부터 열기가 달아오르더니 모태범과 이상화 선수가 5백 미터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자 그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스물한 살인 두 사람의 인생드라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가족들의 응원모습과 인터뷰 그리고 대통령이 축하전화를 보내는 등 최고점에 도달했다. 한편 5백 미터 세계 랭킹 1, 2위 이강석과 이규혁은 4위와 10위에 그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강석은 혼자 쓸쓸히 귀국했고 이규혁도 극도로 상심한 모습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고 22일 서둘러 귀국한다고 한다.
모태범, 이상화는 아직 이규혁, 이강석을 넘지 못해
13살에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만 다섯 차례나 출전한 이규혁 선수는 현재 이번 대회 전까지만 해도 세계랭킹 2위였고 1000m(1997년), 1500m(2001)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올림픽을 제외하면 수많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던 스피드 스케이팅의 영웅이다. 그런데 그 영웅의 모습은 단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일그러져 있다. 이는 이규혁 선수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직 메달, 그것도 올림픽 금메달만 중시하는 풍토에서는 아무리 큰 선수라도 그런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일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모태범의 1차시기 34.92초, 2차시기 34.90초 합계 69.82초는 2위와 0.06초 앞서는 기록이다. 이는 대회 신기록이나 세계 신기록이 아니다. 이강석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 기록인 34.80에는 0.1초나 뒤지는 기록이다. 이상화 선수 역시 금메달을 땄지만 대회나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은 아니다.
금메달과 1등만 존중하는 사회
그런데 수많은 경기경험을 통해 훌륭한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못 땄다고 보이는 모습을 보면 매우 씁쓰레하다.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마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봤을 때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그 선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사회의 잘못된 풍토 때문이다. 메달 여부, 색깔여부에 따라 상금이나 광고 등에 따라 엄청난 돈의 차이가 생기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고 거의 로또 복권이나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메달도 중요하지만 기록경기에선 기록이 더 의미 있는 법이다. 그것이 스포츠역사를 써 내려가는 기준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물론 아시아인 최초로 5천 미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승훈 선수의 은메달이 의미 있을 수 있다. 메달을 딴 선수는 경기가 끝나도 계속 언론의 취재대상이 되면서 올림픽에 참여하는 반면 메달을 못 딴 선수는 개별적으로 귀국하는 모습이야말로 1등만 존중하는 사회, 극소수의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성과, 순위, 돈에 오염된 스포츠
중계를 독점한 SBS만 보더라도 오직 메달과 순위에만 도취된 나머지 동계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선수출신인 스피드스케이팅의 제갈성렬 해설자의 경우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후배들의 메달 따는 모습에 감격한 나머지 거의 신파극을 연출할 정도다. 국내빙상경기 때는 협회 관계자나 가족들만 참여하였고 국제대회라 하더라도 뉴스 끝머리에 단신 처리하거나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에 복받쳐 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과․순위주의가 낳은 결과물이다. 밴쿠버에서는 동계올림픽이 다국적기업의 광고 선전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SBS의 경우 올림픽이 다국적기업과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에 의해 오염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축전을 보낼 때도 금메달만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메달 딴 선수만이 피눈물 나는 연습을 한 것이 아니다. 설령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라 하더라도 메달을 따는 선수와 함께 하고 있다. 또 메달과 상당히 거리가 먼 종목의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 역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 되살려야
예를 들어 이강석 선수가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에서 4위를 한 것은 몇 십 명 중 4위가 아니라 그 종목 세계 4위인 것이다. 설령 스키점프를 비롯해 30~40위 한 선수들 역시 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100대 기업에 들었다고, 우리나라 일류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에 들었다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왜 세계 4위에서 40위라는 엄청난 등수를 차지하고도 피눈물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0.0몇 초 차이로 메달을 딸 수도 있고 딸 수도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돈과 명예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줄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메달을 못 땄다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끝까지 관전하면서 올림픽을 즐기고 공부하면서 폐막식까지 참여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선수지만 언젠가는 상당수가 지도자가 될 터인데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선 똑같이 메달을 따는 것만이 최고인 방식으로 후진을 양성하지 않을까 두렵다. 자기 종목뿐 아니라 겨울스포츠의 다양한 경기를 관전하고 여러 나라의 스포츠 문화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격과 국격을 말하고 있다. 스포츠 역시 진정한 스포츠정신과 격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0. 2.22, 오마이뉴스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