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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 중심 정당'에서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정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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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05일 07시 51분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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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 중심정당’에서 ‘노동자계급정당!’으로


-발제문을 <발제 요청서>에서 <첨부>한 평가위원회에서 다루었으면 하는 논점들에 답하는 형태로 작성하였습니다-



1. 그동안 진행되어 온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


1) 87년 이래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지점


-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발전해 온 노동자정치운동의 성과는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성과를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이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으므로 민주노동당을 줄곧 비판해 온 소위 좌파 진보정치운동이 올발랐다는 자족적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소위 좌파 진보정치운동 역시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면서 진보적 정치세력화의 대안을 제출해서 발전시켜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좌파 정치세력은 성과는 없이 한계만 보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올바른 진보정당의 전망의 요소들은 좌파 정치세력 내에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파 진보정치세력들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표체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하고, 보수정치세력, 또는 부르죠아정치세력과 분명한 경계선을 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우경화해나갈 위험과 동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성과


-보수정당 일색인 정치판에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등장시킨 것과 창립 이후 4년만에 국회 10석을 당선시킴으로써 진보정당의 현실적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것은 진보정당이 한정적이기는 하나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역사적 지위를 획득했었다는 것, 달리 말하면 노동자, 민중속에 일정한 정도의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령에 사회주의 지향을 천명함으로써 아직 미약하나마, 사회주의를 합법적으로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80년대 말-90년대 초 쏘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와 함께, 국내 진보정당인 민중당의 실패와 사회주의적 성격의 정치조직, 정치써클들의 몰락과 더불어서 사라져 간 사회주의적 활동을 불완전하고 개량적 수준에서나마 다시 부활시키고, 사회주의적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 한계


①민주노동당의 한계


-민주노동당 강령에 담긴 사회주의 내용은 절충적이고 불철저한 것이었다. 그나마 강령은 당의 실천을 이끌어가는 축이 되지 못하였고, 당의 정책노선은 사회주의적 내용과 유리되어 대단히 개량적인 한계 내에서 활동하였다.


-당조직은 선진노동자들, 나아가서 노동자계급대중을 당의 목표와 강령 전술로 조직화해내지 못함으로써 정치적 조직적으로 지도해내지 못하였다. 당이 자신의 내용을 가지고 노동자계급대중과 밀접하게 결합하지 못한 것이다. 


-선거와 개량적 합법정당활동에 매몰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대중정치투쟁-나아가서 변혁적 정치투쟁을 지도해내지 못하였다.


-의회전술마저도 대단히 개량적 수준에 머물렀고 급진적 의회전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는 포괄적으로 급진적 대안세계의 상을 제시, 이의 실현을 위한 당 운동을 발전시키고 집권과 변혁전술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이를테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비정규직철폐, 여성해방, 무상의료, 무상교육, 사회보장,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낼 계획을 제출하고 대중적 신뢰를 획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의회활동마저도 보수개혁정당의 정책보다 반보 앞선 대안(법안)제출에 급급하였고(그나마 대부분 입법화하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두었다 폐기됨), 의회투쟁에서 보수개혁정당의 2중대 역할을 하였다. 


둘째는, 노동자계급과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 또는 통상적으로 민중을 대표, 대변하는 집단적이고 급진적 의회전술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의회전술은 대체로 의원 개개인의 입법화법안 제출활동이나, 정부 여당 정책에 대한 비판과 폭로 등 개인능력을 드러내는 활동에 그쳤고, 당 목표 실현을 위한 전술적 배치로서 의원 개개인의 활동을 수렴, 통합해내지도 못하였고, 10명 의원 전체의 집단적 의회전술을 창조하지도 못하였다.


포괄적 대안 세계의 상과 이를 구체화한 강령과 정책을 가지고 전술을 수립 집행하는 당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노동자, 민중의 핵심적 이해와 전망과 관련된 과제를 쟁취 또는 방어하기 위해서 전체 의원의 조직력을 집단적으로 가동하지도 못하였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개악입법을 저저키 위해서 10명 의원의 뺏지를 과감히 던지는 집단행동전술을 중심으로 당의 총 역량을 동원하는 투쟁과 이러한 당 투쟁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연대 역량을 조직화할 사업을 기획집행할 상상력과 역동성, 지도력이 결여되었다.


②소위 좌파 진보정당 또는 정치조직의 한계


-청년진보당-사회당은 상대적으로 젊고 급진적 청년들로 구성된 진보정당으로 출발하였으나 현실정치에서 미숙함을 드러내었다. 중요한 시기인 사회당시기의 핵심 강령이었던 ‘반자본주의’와 ‘반조선노동당’강령에 대해서 말하면, 반자본주의는 구호에 그치고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하고 구체화된 강령과 정책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반조선노동당은 북한 실체의 부정적 내용에 대한 반정립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대단히 일면적이고 반사적 수준에 머물렀고 역동적으로 발전해가는 남북을 둘러싼 한반도와 국제관계의 포괄적 내용을 담아내면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서 2001년부터 전국 전 지역구에 국회의원후보를 출마시키는 대단히 조악한 합법주의 전술을 채택함으로써 전국적인 합법적 지구당 건설목표로 당력을 분산시키고, 2002년 대선후보 출마 역시 그 전 단계 전술로 배치하였으나 0.35%의 미미한 득표에 그침으로써 결정적으로 패착이 되었다. 이후 사회당은 활력을 잃고 당원의 이탈과 내분에 휩싸이고, 결국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개량주의 전술로 변질하였다.


-좌파 진보정치조직의 위상을 가졌던 노동자의 힘 역시 당적 수준의 변혁적 현실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내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성과 의회주의를 비판한 것은 옳으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과 반정립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 좌파 진보정치적 내용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노동자의 힘은 반합법 투쟁정당으로서 자신의 성격을 규정짓고 강령작성 작업에 들어갔으나 실천적 강령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노동자의 힘에 대한 비판은 오세철교수가 2001년 노동자의 힘에 대해서 “반합법적 투쟁정당을 건설할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개량적 노동조합운동을 지원하는 수준, 그것도 전국적이고 전 계급적 차원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실행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한 것이 비교적 그 한계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이후 노동자의 힘은 2005년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유기혁 열사투쟁 방기, 금속선거에 대한 타협적 태도 등의 문제로 비판에 직면케 되면서, 대표적 좌파 진보정치조직으로서의 위상이 타격을 받게 된다.


-전반적으로 역사적으로 대표성을 가진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 의회주의 한계에 대해서 민주노동당 외나 당내를 막론하고 좌파 진보정치세력의 비판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으나, 대안을 제출하고 대안정치세력으로 스스로를 정립, 이를 위한 조직력의 형성과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였다. 2007년 12월 대선을 전후해서 민주노동당이 한계를 급격히 노출하고 분열하는 과정과 이후 촛불정국에서도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스스로를 등장시키는 데 무기력하였다.


라)87년 이후 진보정치운동의 한계 또는 실패의 이유


-①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정치사회적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되고 확장된 국면에서 이를 급진적으로 발전시킬 토대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였다. 첫쩨 87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민주세력인 김영삼, 김대중 세력의 분열로써 민주세력이 집권하는데 실패함으로써 군부독재의 법, 제도, 공안.행정기구, 인물 개혁, 청산과 정치사회적 분위기에서 혁명적으로 민주개혁을 관철해내는 데 실패하였다.


이후 군부, 수구세력,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아래서 민주 진보를 향한 민중적 에너지가 억압당하면서 제한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져 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진보세력이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교두보를 구축하고 세를 확장하는 데 억압적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오히려 부르죠아적 민주세력마저도 차례로 수구세력과 연합함으로써 집권하는 과정을 밟게 됨으로써 근본적으로 반동과 수구적 정치사회적 법제도, 인물 개혁에 실패하게 되었고, 이는 진보정치세력이 뿌리내리기에 불리한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90년 1월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중심의 집권세력이 탄생하고, 1995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개혁수구 보수연합으로 집권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급속히 진행되어 온 민주화의 과정 역시 91년 박창수열사투쟁과 열사정국의 대회전에서 민주화세력이 수구반동세력에게 패배함으로써 민주투쟁의 고양기는 수세기로 전환하였다.


②89년 동독의 붕괴와 연이어서 90년대 초반 쏘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와 중국 등 동아시아와 제3세계 사회주의세력의 수정주의화와 관료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사회에서 막 뿌리내리려던 사회주의적 사상과 세력의 발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였다. 이는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변혁적 급진적 발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였고 진보정당, 진보정치운동의 발전 추동력 역시 약화시키고 개량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③이러한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노동자, 민중세력은 정치세력화방법에서 보수정치세력과의 민주연합노선과 진보정치세력 독자정당(후보) 노선으로 분열되어 진보정당운동으로 통일적이고 힘차게 전진하지 못하였다. 87-88년 민중후보와 민중의당 운동, 91-2년 민중당운동으로 나타난 민중정치-민중정당운동은 실패하고 민중당은 해체되고 이를 구성하였던 제 정치세력들은 약화, 이탈, 개량화되어 갔다.


-노동운동단체협의회는 노동조합운동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지원하는 보조세력으로 약화되어 가고, 전민련은 전면적 독자정치세력으로 발전하거나 뒷받침하지 못하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선운동조직으로 스스로를 성격지었고, 그 한계 내에 머물면서 오히려 보수개혁정당을 비판적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정치적 부분은 평민연, 민연, 국민회의 등 부르죠아 개혁 정당으로 합류해 들어갔다.


④이후 진보정치운동은 노동자의 전국적 조직을 건설해낸 민주노총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치적 변혁성을 담보하지 못한 노동조합조직인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건설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객관적 조건 자체가 진보정치운동의 한계로 되었다.


-첫째, 노동조합운동은 조직의 성격과 그 발생 토대에서 노동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의 권익을 위한 경제투쟁을 중심사업으로 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혁명적 시기가 아니고, 혁명사상과 혁명정당의 지도를 받지 않는 한 개량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선 90년대 후반은 노동운동이 퇴조기에 들어서 있었고, 이러한 시기에 노동조합조직인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정당인 민주노동당은 개량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⑤둘째, 민주노총의 초기 지도부의 개량성이다. 이는 민주노총 창립 초기 역동적 발전을 저해하고 노사관계관계개혁위원회, 노사정위원회 등 보수개혁정권 주도의 노동법개악에 하위동반자로서 타협적 노동법개정에 몰입케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관계법 개악과 노동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의 급격한 약화를 불러왔을 뿐더러,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한 진보정당을 개량적 한계에 가두게 되었다. 이러한 개량적 지도부 아래서 민주노총은 96년 말-97년초의 역사적 노개투총파업을 발전시켜, 이를 중심으로 결집된 투쟁, 정치역량들을 정치세력으로 전환시켜 진보정당을 조직화해내는 데 실패함으로써 상층 간부중심의 개량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⑥이 개량적 한계가 근본적으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민중 대표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독자적 노선을 동요하게 하고, 보수개혁정당의 2중대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수개혁정당과의 민주연합노선 근처에서 배회하게 만든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경향적으로 기울어져 온 보수개혁정당과의 민주연합노선은 근본적으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이었다.


⑦87년 이후 20년 가까운 오랜 기간 보수정당 일색의 정치가 진행되어 온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이 시기 진보정당 건설은 시대적 요청이요, 또한 노동자, 민중의 요구였다. 그러나 진보정당을 건설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어떠한 정치조직도 세력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기 민주노총이 중심주체가 되어서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피하였다. 이 시기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선 것은 역사적 요청에 부응한 것이었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 건설로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표체를 역사무대에 올려놓았고, 이후 2004년 총선 성과를 통해서 현실정치 무대에 진보정치세력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했다고 할 것이다.


⑧그러나 진보정치세력의 중심주체로서 노동조합으로서의 한계와 특히 지도부의 개량성과 정치적 지도력의 한계로 인해서 창당 당시의 진보정치세력들을 당으로 모두 결집시켜내지 못하였다. 당시 좌파 청년 정치세력은 청년진보당-사회당으로 분화해 갔고, 민중정치연대는 노동자의 힘이라는 정치조직으로 발전해 갔다.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나 아직 노동운동세력으로서 일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역시 초기에 민주노동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러한 좌파 진보정치세력들이 민주노총 중심으로 창당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에 합류치 않은 것이 당의 역동성과 급진성, 변혁성을 강화시키는 데 한계로 작용하였다.


⑨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당내의 변혁세력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당을 변혁적 역동적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였다. 그런 한계 내에서도 변혁적 소수파는 당내 활동에서 탄력적 전술구사를 하지 못함으로써 당을 혁신하고 당 활력을 높이면서 변혁적으로 발전시켜내는데 실패, 한계를 드러내었고, 당외 변혁세력과 연합함으로써 한국사회 전반의 변혁적 세력들의 정치역량들을 통합 발전시켜내지도 못하였다. 민주노동당내 다수 당내 좌파세력들은 끊임없이 동요하였고 사민주의적 기회주의적 경향과 자주파와 함께 소패권적 양상을 보였다. 당은 자주분파가 과반수 헤게모니를 점하면서 개량주의와 민주연합노선이 노골화하고, 패권주의와 종파적 대립이 격화하게 되었다.


2) 노동자 정치운동 및 대중조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의 원인과 이후 방향은 무엇인가?


가)원인


-현실에 적합한 진보적 정당으로서의 올바른 강령과 정책을 구현하는 데 실패하였다. 특히 제국주의, 정권, 자본가계급에 대한 대항전선을 명확히 쳐내지 못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였고, 상대적으로 심화되는 빈곤화와 생존권의 악화로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서는 데 실패하였다. 이로써 대중적 지지확대와 성장발전의 한계에 빠졌다.


-계급과 계층, 정파연합적 성격을 가진 넓은 의미에서의 진보정당으로서 다양한 세력이 공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기풍, 상호 경쟁과 협력의 운영원리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였다. 종파성과 다수정파의 패권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 전망, 당의 발전에 앞서서 종파적 이해를 앞세우고 내부 공존협력과 민주주의 토대를 무너뜨림으로써 당 활동을 왜곡시켰다.


-다수파로 등장한 자주파세력의 종북적 성향은 당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획득케 하는데 장애로 작용하고, 개혁 보수세력(정권, 정당)과의 경계를 약화, 보수정치세력과의 민주연합으로 당 노선을 경도시키고, 대중성을 획득하는 데 저해요소로 작용하였다.


나)방향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키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17년이 경과하면서 신선감을 상실하고, 창당 시기보다도 더욱 개량화되고, 경직되고 내부모순이 착종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대표성을 상실해감으로써 한계를 드러내면서 약화되고 분당사태에 직면케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당해간 진보신당 역시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20년(준비위시기까지 포함)만에 한계에 봉착하면서 분열, 초기의 민주노동당보다 더욱 개량화되고, 노동자, 민중의 대표성을 상실한 두 진보정당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2. 진보정당 안에서의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문제


1) 노동자 계급 중심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향과 관점의 문제인가? 대중적인 토대의 문제인가? 여전히 유효한 전략인가?


가)노동자계급중심성이란?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노동자계급’이 변혁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계급임은 당연한 것으로서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현실적 진보정당으로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그러한 변혁정당이 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노동자계급정당이 아닌 ‘노동자계급 중심 진보정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중심의 계급연합정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과 소생산자계급이 연합한 계급연합정당이었다. 소생산자계급은 농민, 영세 및 소규모 자영업자, 고급 관리노동자 등을 의미한다. 당은 양 계급의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다양한 계급, 계층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다양한 정파, 그룹으로 구성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중심성이란 먼저 노동자계급을 당의 중심계급으로 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당원 구성에서 양적으로도 노동자계급이 당연히 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중심성이란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요, 자신의 해방과 더불어서 모든 민중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노동자계급의 진보성(변혁성)을 실현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여전히 유효한 전략인가?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에 진정한 민주노조세력의 집합체인 민주노총의 조합원에게 대의원과 중앙위원의 1/3을 더 배정하였지만, 창당 당시의 조건에 따라서 그렇게 한 것이고, 이후에도 꼭 그러해야할 이유는 없다.


-민주노총에 대한 민주노동당 대의원, 중앙위원 1/3배정은 이후 노동자, 농민에서 소수집단으로 나누어지면서 무원칙하게 적용되고, 민주노총 배정 인원 선출과정의 비민주성과 당 활동에의 소극성과 불성실, 그 배정인원이 민주노총의 특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행사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당원간의 평등한 대의성을 침해하고, 당 운영의 민주성을 왜곡하는 부정적 영향이 우세한 데까지 이르렀다.


-민주노총(조합원)에게 별도로 대의원과 중앙의원을 추가로 배정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적절치 않고, 농민 등 타 계급 계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당 의결기구와 운영기구 구성은 기본적으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당원비례성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좋다. 장애인 등과 같은 진보정치 속에서의 대표성이 객관적으로 제한받는 특수한 계층과 집단에 대해서, 전체의 의결구조를 왜곡시키지 않는 약간 범위내의 예외적으로 소수할당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양적인 측면에서나, 그 계급성과 변혁성을 실현키 위해서 진보정당의 중심적 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지금에 이르러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양적으로나 당 운영상 역할배치에서  중심적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원의 양적인 계급구성에서 일반적 노동자계급 출신이 다수일 수밖에 없고, 당의 강령, 지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를 갖추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으로서의 대표성에서 다소간의 변형이나 일탈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하면서 노동자중심성의 측면에서 정도의 문제로 서로 비교될 수도 있다.


-나아가서 진보정당운동 발전의 현 단계에서, 즉 노동자중심의 계급연합정당이 20연간(97년 이후)에 이르는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고 스스로 강력한 진보정당으로 발전하지도, 변혁적으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분열, 약화된 현 시점에서는 이러한 <노동자(계급)중심의 진보정당>의 개념은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진보정당 개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시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복수의 진보정당이 존재할 수 있으나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정당은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정당이 될 것이다.


2) 대다수 노동자들이 미조직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인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어떤 의미인가?


가)노동자정치세력화란?


-역사적으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역사적 현실 조건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었다. 노동자정치세력화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또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세력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자정치세력화란 정확히 말해서 다음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①노동자계급의 보편성을 띄는 것이다. 즉 전체 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정치적 주체화에 의한 역동적 진보(변혁)정치를 전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변혁(혁명)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다. 이는 사회주의혁명을 의미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되어서 자본주의사회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스스로의 해방과 함께 전체 민중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을 말한다. ③정치세력화의 중심주체는 당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해서, 당이 중심이 되어서 대중정치투쟁과 의회투쟁(선거투쟁)을 통해서 스스로의 해방을 쟁취해내고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3) 노동운동의 혁신 없이 진보정당이 노동자 계급 중심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은 진보정치의 발전 전망 속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가) 노동운동 타락과 노동자계급중심성


-노동자중심성이란 일반적 개념이지 특정 조직의 구성원이 양적으로도 역할로도 진보정당의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와 같이 투쟁성을 상실하고 계급성이 희박해지고 심지어 부패한 세력마저 내부의 구성원에서 제외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특권적 관료적 권력을 행사코자 하는 민주노총이 양적으로도 역할로도 진보정당의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이 패배하고 약화되고 심지어 부패와 자본세력의 침투로 타락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노동운동의 투쟁과 혁신을 추진할 대오가 구축되어야 한다. 투쟁과 혁신은 변혁적 전망 속에 그길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 배치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스스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임과 함께 진보정당이 앞장서서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운동이다. 진보정당은 약화되고 타락한 노동운동(민주노총)의 눈치를 보고, 그러한 노동운동(민주노총)에 좌지우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전 노동운동을 노동자계급 보편운동과 변혁적 운동으로서 다시 세워낸다는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현재의 노동운동(민주노총)을 혁신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재탄생케 해야 하는 임무를 갖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동운동의 혁신 과정에서 명확한 자기 전망과 원칙을 견지하는 속에서, 현실 노동운동 조직과 협력하고 논의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4) 노동자 계급 중심성을 주장했던 정파들은 진보정당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들을 했는가?


가)노동자계급 중심성을 주장한 정파의 역할


-일정한 시기 당의 변혁성 견지, 당의 혁신, 당 정책의 노동자, 민중중심성을 강화하거나 당의 대중투쟁을 세워내고, 당의 개량화, 의회주의화를 저지하고 민주성을 유지코자 노력하였다. 공공특위,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 설치와 활동 등 당을 투쟁적으로 유지코자 하는데 기여하였다. 당 대의기구, 운영, 집행기구의 당원 직선 등 민주적 정립, 당의 노선 혁신 즉, 당 활동 공개, 집단지도제 개혁, 당직공직분리, 당 비례대표 연임금지 등을 추진, 실현하였다. 2003년 가을에 격돌한 사회주의성격강화를 당의 노선으로 채택케 하였으나, 이를 구체화해내는 데는 실패하였다. 근본적으로 당이 노동현장에 뿌리내리고 노동자당원을 당의 주체로 활성화시켜내고, 현장 노동자투쟁을 정치적으로 지도하고 대중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내는 데 무력하였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당내의 변혁세력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당을 변혁적 역동적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였다. 그런 한계 내에서라고 할지라도 변혁적 소수파는 당내 활동에서 공세적 탄력적 전술구사를 하지 못하였고, 당외 변혁세력과 연합함으로써 한국사회 전반의 변혁적 세력들의 정치역량들을 통합 발전시켜내지도 못하였다.(평등연대, 해방연대) 민주노동당내 다수 좌파세력은 끊임없이 동요하였고 사민주의적 기회주의적 경향을 보였다.(전진 등) 일부정파는 당 활동과 혁신을 위해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현장 노동운동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결여됨으로써 한국노총과 정책연대 등에서 명확한 입장을 갖지 못하였다.(다함께) 당내 노동자중심성을 주장한 정파들 역시 전반적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당 혁신과 노동자중심성 강화를 위한 계획과 전략이 부재하였고, 그 실천은 대단히 미흡하였다. 당은 자주분파가 과반수 헤게모니를 점하면서 전반적으로 개량주의와 민주연합노선이 노골화하고, 패권주의와 종파적 대립이 격화하게 되었다.


5) 진보정당은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혁신의 상, 노동운동 재구성의 방향에 대한 자기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가? 당 차원의 독자적인 노동운동의 전망에 대한 고민 부재, 활동과 사업부재 평가 및 진보운동의 중요한 한 축인 노동운동의 재구성에 당의 역할은 이후 어떠해야 하는가?


가)노동운동의 재구성에서 당의 역할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위기의 핵심적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및 무한 비정규직화, 투쟁력의 약화와 노사협조주의의 만연, 노동운동내의 자본세력, 부패세력의 만연과 일부정파의 이들 세력과의 연합(야합) 등이다. 노동운동이 퇴조함에 따라서 한국노총은 노골적으로 수구보수정권의 품안으로 안기고, 현 민주노총 조직 상황 역시 투쟁력을 다시 세워내고 혁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민주노총 역시 심각한 암에 걸려서 점차 종양이 커지고 전신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노동당이 혁신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당이 실패하고 분열했듯이 민주노총 역시 구제불능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열이나 새로운 노총의 탄생이 불가피해지는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갖게 한다.


-노동운동의 재구성은 투쟁을 다시 세워내는 일, 혁신, 비정규직철폐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통합한 보편적 계급성의 실현, 이 세 가지가 핵심적 요소다. 이미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 조직을 주체로 해서 이에 의존하는 방식과 전술만으로써 이를 실현키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노동조합활동과 더불어서 다양한 형태의 실천주체를 구성하는 사업이 배치되어야 한다. 변혁의 주체로서, 대중정치투쟁의 주체로서 당은, 중앙과 각 지역 산업현장에 다가가는 조직활동을 통해서 노동운동을 재구성하는 각 부문의 사업과 운동을 세워내고 그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내용적으로 이러한 운동(사업)이 나아갈 방향과 전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보편적 계급성의 쟁취는 노동운동의 원칙이다. 비정규직철폐투쟁을 당의 핵심적 과제로 설정해서 이를 쟁취키 위한 중심 투쟁대오를 구축하고 광범위한 노동, 사회, 시민단체들로 연대체를 구성해서 사회여론화, 조직, 투쟁, 법제도화, 재정 등 종합적인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사업을 조직화하고 추진하는 데 당이 앞장서야 한다.


-노동자의 개별적 투쟁을 공동의 연대투쟁으로 발전시키고, 노동자의 제반 투쟁을 올바르게 지도해서 정치투쟁-변혁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다. 투쟁은 비정규직철폐투쟁, 공공부문사유화저지투쟁 등 특정 의제화해서 중심세력을 구축하고 광범위한 연대세력을 결집해서 대오를 형성해서 추진한다. 모든 투쟁은 궁극적으로 정치사회를 변혁키 위한 정치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투쟁을 수행할 주체적 역량을 형성 강화하는 과정으로 배치한다.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토대로 해서 상하를 포괄하고, 연대세력이 참여하는 운동체를 구성해서 전면적으로 운동을 추진한다. 혁신은 자본으로부터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내부 부패를 척결하고 부패가 발붙일 수 없는 시스템과 운영기제, 기풍을 만들어 내고, 내부 민주주의와 전체 노동자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고양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6) 노조를 통해 가입하지 않은 당원과 노동조합 당원과 인식의 편차가 생긴 이유와 극복방안은 무엇인가?


-진보정당에 가입하는 당원은 그 객관적 계급구성에서 대부분이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활성화된 노동조합활동을 경험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의식과 행동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을 통해서 노동자 집단의식과 집단행동을 경험했느냐 아니냐 차이로부터 나올 것이다. 집단경험을 통해서 집단의식이 형성된다. 반면에 노동조합을 통해서 집단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본 성격이므로, 이러한 집단적 이해의 추구가 사회정치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계를 넘어서서 집단이기주의화할 경향 역시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면서 발전적으로 다른 노동자대중이나 민중과의 연대투쟁이나 변혁정치투쟁으로 지도해낼 교육 훈련이나 전술, 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3.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에 대한 평가


1)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양 조직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가)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대한 평가


-각급 노동조합 조직이 특정 진보정당을 조직적으로(조직적 결의를 통해서)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 조직의 구성원이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금지(배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초기의 조직적 지지는, 이후에 <민주노동당을 통해서만> 선거 또는 정치행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차츰 배타적 지지로 강화되고 변해 왔다.


-민주노동당이 점차 진보성이 약화되고, 반 노동자적 법 통과 묵인,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중소기업친화발언, 보수정당 지지자 비례대표후보선정 등 반 노동자적 행동으로 인해서, 진정으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위해서 활동하는 범위에서 이탈하고 있는데도 조직적 결정으로 배타적 지지를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민주노동당이 당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지도성을 전혀 확보치 못하고, 오히려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 이에 의존하고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면서 진보적 정책을 실천하는데 지장을 받는 것은(2005년 울산 비정규직투쟁 외면) 진보정당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현재 진보정당이 복수화하고 어느 정당도 진정한 노동자계급 대표성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배타적 지지뿐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특정 정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 역시 적절치 않다. 노동자계급 대중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고 노동조합 등 노동자조직을 강화하는 데 도움되고,8 노동자 민중 해방의 변혁을 내오는 길에 봉사하느냐 여부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당과 후보 지지를 결정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2)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당이라고 불리워진 것에 대한 이유는 무엇이고,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가)‘민주노총당’이 갖고 있는 양면성


-5대 사회악의 하나로 정규직노동자를 든 진보정치연구소의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민주노총을 집단적 이기주의 조직으로 본 것은 대단히 왜곡된 관점이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화에 맞서 투쟁하지 않고, 심지어 정규직의 고용안전을 위한 방패막이로 삼는 것은 노동운동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의식과 실천을 결여한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규직의 의식과 행동 역시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억압과 가혹한 노동착취와 노동자계급 분열정책의 결과로서 나온 것이요, 비정규직의 양산과 가혹한 착취는 자본가계급과 정권의 노동자계급 지배와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5대 사회악의 하나로 들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책임을 주요한 원인으로 드는 것은 본질을 오인한 것이다.


-운동권정당, 민주노총당으로 비판하는 것은 당 운영에서 민주노총이 건강한 노동자계급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으로 작용, 당 운영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으로서 올바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총이 당에 파견한 최고위원, 중앙위원, 대의원이 특권적으로 행사되는 것, 특히 진보성이 희박한 민주노총의 집행부 성원이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정책실현과 합리적 의결구조를 왜곡한 사실은 비판받아서 마땅한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자계급 중심을 부정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치열한 투쟁, 변혁지향성 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으로 부르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은 일면적이고 과도하다고 할 것이다.


3) 결과적으로 노동자 당원이 소극화되고, 수동화되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고 얘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과의 결합이 중요하게 선거 혹은 세액공제로 국한되었던 지점에 대한 이유와 평가는 무엇인가?


가)민주노동당 실패 이유


-민주노총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에 돈 내고 투표하는 역할만을 자신의 역할로 하고 있는 것으로 수동화되고 주체적 당원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양쪽에 있어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었다.


-민주노동당 강령은 상당히 변혁적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당의 지도부와 중앙과 지역의 주요 간부들은 개량주의에 빠져 있었다. 당원은 처음부터 훈련되고 정치적 활동에 능동적인 당원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당에는 정치투쟁을 중앙과 시도당-지구당(지역위원회)까지 라인을 갖고 지도집행해낼 조직적 구조를 갖추지 못하였다. 당이 근본적으로 투쟁을 조직화하는 발상이 없었다.


-당의 의회전술 역시 대단히 개량적으로 구사되었고, 당의 중장기적 목표나 의회전술의 원칙이 수립되지 않았다. 의원단의 집단적 목표나 전술, 원내투쟁형태를 정립하지 못하고 의원 활동은 개별화되었다. 의회활동을 대중투쟁과 결합시키는 방식과 사고에 어두웠고 의회내의 활동에 매몰되었다.


-WTO농산물수입개방반대를 위해서 20일간 단식투쟁하고 다시 광우병 미쇠고기 수입반대 단식농성 등 행동적 투쟁으로 사천에서 당선되고 촛불투쟁의 영웅이 된 강기갑의원의 예가 모범적이다. 10명의 의원들이 조직적(집단적)으로 비정규직 개악입법반대에 의원직을 걸고서(내던지고) 총력투쟁을 하였더라면 당을 명확하게 노동자계급 대표정당으로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의원단을 중심으로 당력을 총 결집해서 계획적 투쟁을 수행하고, 민주노총도 실질적 총파업전선을 배치했더라면 비정규직법 개악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개악을 막아내든 못 막아내든 민주노동당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계급 전체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노동자계급을 통합시켜내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4)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과의 결합내용 및 사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가)민주노동당은 의회정치, 민주노총은 대중투쟁 분업화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을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전술에 따라서 조직하지도 못하였고, 노동자 대중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 내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정치를 전담하되 그것은 의회정치적 의미로서 한계지워져 있었다.


-반대로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대리정치에 자족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투쟁을 전면적 정치투쟁-변혁투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없었고, 고민조차 없었다. 있다면 당원 중에서 그래도 활성화된 당원이 민주노동당의 거리선전 등의 정치활동에 단순히 동원되는 수준이었다.


5) 정규직 대공장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는 평가의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당이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이에 대한 극복방향은 무엇인가?


가)정규직 대공장 남성노동자 중심 민주노총-당?


-민주노총의 노동자계급 대표성이 점차 약화되고, 그 투쟁이 진취적이고 진보적 성격을 상실해 감으로써 노동자계급 대중 전체의 보편성을 상실해가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정당성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데서 나오는 비판이다. 자본과의 대결에서 노동자계급의 누적된 패배와 약화 침체 상황,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노동운동(민주노총)이 전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변혁(혁명)이라는 전망 속에서 공세적 사업을 추진해 오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노동조합운동보다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 당의 위상에 걸맞는,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독자적 발전전망 속에서 강령 정책과 전술, 구체적 실천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노동운동(민주노총)을 비판하고 지도하기보다는 노동조합운동(민주노총)에 의존하고 이끌려가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 민주노총의 과오와 폐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비판하고 시정케 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옹호하는 태도마저 보임으로써, 또는 민주노동당내의 특정 정파의 종파적 행위를 옹호하거나 작당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민주노총과 더불어서 당이 비판받고, 노동자계급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민주노총과 당에 대한 관제언론과 정권, 자본측에서 뒤집어씌우고 있는 이미지형성인 측면이 있다. 역시 개량적이거나 종파적인 당내 일부 그룹이 자본측이 뒤집어씌우는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메이킹에 추수하면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과도하게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4.  이후 진행되어야 할 노동자 정치운동의 방향


1)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 (전위정당의 성격을 가진)계급정당인가 대중정당인가?


가)전위정당인가 대중정당인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정당은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당 구성이나 지금까지 활동해 온 방식과 내용을 보건대 어느 당도 사회주의정당은 아니고 될 수도 없다. 끊임없이 동요하며 자본가계급정당과의 연합으로 기울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대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은 사회주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을 대립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혁명직전에 천여만명이상으로 확대된 중국공산당을 대중정당과 대립된 전위정당이라고 부를 것인가? 볼세비키가 활동한 짜르치하의 러시아에서도,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을 보아도 당 활동이 대중 속에서 높은 실천력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에는 당원의 범위는 크게 확장된다.


-정보기관과 폭압적 경찰, 군이 고도의 포위망을 구축한 정치사회적 환경속에서 비공개의 훈련된 당활동을 수행하는 직업적 당원들의 정당이라는 의미에서 전위정당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당 형태는 아니다. 지금 한국은 비록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이지만 상당히 폭넓은 영역에서 사회주의 사상활동을 할 수 있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 설혹 이러한 활동이 심각한 탄압을 받을지라도 현 시기 당 활동의 기본은 공개적 활동 형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어느 시기에나 전위(앞선 사람)-중위(중간)-후위(뒤떨어진 사람)가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의미에서라면 당원은 노동자계급의 전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 활동은 공개적이고 대중적이고 합법적 활동을 축으로 해서 전개될 것이다. 반동적 권력이 당의 기본적 활동 자체를 불법화하려고 할지라도 공개적이고 당당하게 이와 맞서 싸우며 합법성을 쟁취해 나가는 방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사회주의자는 소수일텐데 사회주의자를 다 모아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 가능할 것인가?>,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한다고 해도, 소수로 한정될 것인데, 그 정당이 현실 속에서 유의미한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인가?>, <그러한 정당이 강력한 정당으로 성장, 발전하기는 불가능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사회주의 변혁을 담당할 능력있는 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정당법은 당을 창당하려면 <1천명 이상 당원을 가진 5개 시도 이상>에서 당조직을 가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합법정치활동(선거, 의회활동)을 부정하지 않으므로 합법정당을 결성하려 할 경우 자격을 가진 당원을 채우기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 건설을 단기간에 해내거나 일거에 해내는 사업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 처음부터 합법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전제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실제로 고민해본 사람들은 이해한다. 사회주의당은 공식 명칭을 포함해서 당 조직을 갖는 것을 일부러 지체시키거나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당의 준비기구 자체가 실제로 당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해야 한다. 다만 당이라고 할 때 어떠한 기본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전국적 전 계급적 대표성을 갖고, 사회주의적 실천활동을 해낼 강령과 전술을 갖춘 통일적 정당이면 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은 사회주의적 기본 인식과 실천의지를 갖고 있고 경험적으로 검증된 사람으로 구성될 것이다. 인터넷상으로 당 가입을 신청하면 당원으로 인정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처럼 당원구성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 소수인원이 당(준비모임)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양적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원이 비교적 소수라고 할지라도 당 활동영역이 당원수만큼 극히 좁은 공간으로 한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첫째 잘 훈련된 당원이라면 당원은 소수일지라도 당원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폭넓게 수행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각 지역 구석구석마다 그리고 각 산업 업종마다 사회 각 부문마다 당원이 있고 당 기초조직이 구성되어 있다면 당 활동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당은 다양한 성격과 목적을 가진 수많은 조직, 기구를 만들거나 참여해서 활동할 수 있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철폐투쟁위원회>를 강력한 실천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 구성해서 집중적 투쟁을 수행하거나, 광범위한 노동, 사회, 정치, 시민단체 및 개인들도 참여하는 <비정규직철폐 범국민 연대(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서 활동하는 등의 경우인 것이다. 이러한 실천공간은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광우병쇠고기 수입저지> 등등 수많은 의제별로 구성되거나, 또는 지역, 산업, 부문을 토대로 구성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정당이나 대중조직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활동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한국사회 풍토에서 일반대중에게 대단히 생소하고, 대중과의 접촉면적이 협소하지 않겠는가? 사회주의적 목표와 요구수준이 일반 대중과 너무 유리되어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다가감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받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의문은 많은 경우 사회주의 활동을 대단히 근본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나온다.


-사회주의 활동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비판하는 측에서도 대단히 근본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 활동은 일상적으로 정치운동과 노동운동 민중운동 공간에서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그 내용을 토론하고 선전선동하는 데 망설임없이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사회주의(정당)는 일반적 활동공간에서 대개의 경우 <날것> 그대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음식물이 날 것 그대로 우리가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해서 먹는 것과 같다. 사회주의는 대중이 있고 모순과 문제가 있는 곳에 어디든지 다가간다. 대중이 추체로 서면서 공동으로 투쟁하면서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가간다. 일상적 실천공간에서 이행강령, 더 나아가서 실천강령으로 친숙하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2) 노동운동 활동 간부들의 정치활동 및 당에 대한 무관심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3) 지역에서 당 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4) 노동운동의 전망 및 재구성에 대한 평가 및 대안찾기가 진보정당 운동과 함께 결합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가)노동운동의 재구성


-노동운동은 현재 투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명박정권 들어서 노동탄압이 가중되고 공공부문의 사유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도, 민주노총은 자신의 조직을 총가동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진보정당은 ①각급 단위의 노조조직에서 투쟁을 일으켜세우기 위한 적극적 역할을 해냄과 함께, ②중앙과 지역에서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직면해있는 조직이나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가 되어 있는 노조(지부), 단체, 당, 개인 등이 망라되어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체를 꾸려서 대응하는 것도 그 하나의 방안이다. ③중앙당은 이러한 노동운동을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방향, 강령과 전술을 제시, 토론하고 여론화하고 정치적 대오를 결집해내는 정치적, 정책적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고, ④각 지역과 산업 현장의 당 기초단위는 현장 노동자를 조직화해내고 투쟁으로 나서게 하는 조직가와 선전선동가의 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상하로부터의 연대전선 역시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운동은 병들어 있다. 병은 골수에 침투하고 전신에 퍼진 심각한 상황이므로 노동운동 혁신은 전면적이고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제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의 병이 수술과 치료가 불가능함이 판명되면 조직을 버려야 한다는 태세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혁신은 노동자대중에게 공공연한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노동운동, 민주노총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고 대중적인 형태로 진행되어야 하고, 이 혁신의 방향과 내용에서 광범위한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을 혁신주체로 일으켜세우는 형태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비정규직이 엄청난 비율로 증가, 끝없이 증가해 나가고 있다. 노동자계급내의 분열수준을 넘어서서 실업과 고용불안, 사회적 수요감소와 경제활력 상실,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분열의 문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비정규직은 대부분의 경우 소규모로 뿔뿔이 흩어져 있고, 제도적으로 천대받고 자본과 권력의 탄압이 집중되고 있으므로 비정규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조직, 투쟁해내기가 쉽지 않다. 비정규직의 조직화, 투쟁, 법제도개혁, 선전홍보, 재정 등을 위해서는 핵심투쟁대오를 구축하고 광범위한 세력과 조직들을 결집해서 대책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철폐투쟁에서 당은 당 중앙조직과 지역-지구의 하부조직라인을 통해서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조직에만 맡겨 두거나 노동조합조직 활동의 보조역할을 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당이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핵심적 정치, 사회적 의제화해서 당의 역량을 기울여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투쟁을 세우고, 노동운동을 혁신하고, 비정규직철폐투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의 통일성을 쟁취하는 과제 수행을 통해서, 당은 노동자계급을 단결통일된 계급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노동자계급대중의 권익을 쟁취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조건인 법, 제도를 개혁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을 바꾸어내고, 노동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당의 이러한 제반 활동은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객관적 환경을 조성해 나감으로써 사회주의 변혁의 과정으로서 배치해야 한다.


5)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제안 및 연대전선의 구축 방안 등은 무엇인가?


6) 대중조직(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운동 등)과의 관계설정 및 연대와 협력체계는 어때야 하는가?


가) 제 민중운동과의 연대


-노동운동의 다른 계급 계층과의 연대는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상황에서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①노동자계급의 독자적 대중투쟁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독자적 투쟁을 힘차게 세우는데 부정적 역할을 하는 연대를 무원칙하게 계속해서는 안 된다. ②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세밀하고 체계적인 연대의 원칙이 마련되어 이 원칙이 연대의 틀 속에서 관철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과 변혁지향성이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성이 그 연대 속에서 묻혀버리고 희석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③연대는 활동의 치열성을 더욱 살리는 속에서 그 범위를 확장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고 연대가 활동과 투쟁의 치열성을 죽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더구나 보수개혁정치세력과 무원칙하게 합세하거나 노동자, 민중운동의 자주성을 부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7) 그 외




***참고/진보정당운동 위기의 원인

<08년 4월 27일>


1. 글머리에

 

4.9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53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무소속 25석이 당선되었다. 무수속중에서 친박세력은 12석으로서 한나라당내 35석 이상을 포함해서 60석이 넘게 된다. 민주노동당은 5석, 창조한국당 3석이 당선되었다. 진보신당은 의석이 없다.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5.6%, 진보신당 2.9%였다. 진보정당 의석은 5석으로서 17대 선거시의 절반이고, 득표율은 8.5%로서 17대 총선 13.1%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약평하면 수구보수세력의 압승과 분할, 개혁보수세력의 참패, 진보세력의 몰락으로 말할 수 있다.


18대 총선의 전국평균 투표율이 46.0%였다. 이는 역대 전국 동시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이는 역대 총선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인 2000년 16대 투표율 57.2%보다 11.2%p 낮고 전국 동시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인 2002년 제3회 지방선거 투표율 48.9%보다도 2.9%p 낮은 수치다. 이는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대중의 전면적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결과를 보면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을 대체할 정치세력으로 들어서기는커녕 몰락할 위기에 놓여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진보정당의 위기는 지난 10여년간의 민주노동당운동의 실패의 과정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것은 우파, 개량적 민주노동당은 실패하였는데 좌파 변혁적 정치운동은 성공해 왔다는 뜻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로 인해서, 이를 딛고 (토대로 해서) 좌파 변혁적 정치운동이 진보정치운동의 대체세력으로 들어설 호기가 되었다는 식으로 사고할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민주노동당이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겪어온 지난 10년간 좌파 정치세력은 더욱 무기력해서 그 존재조차도 망각되어 오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2. 진보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무엇이 진보정당의 위기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뒤집어서 진보정당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현재의 진보정당이 이러한 내용을 채우고 있는가 못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정당의 목표는 강령으로 표현된다.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선 대단히 일반적이고 상식적 기준으로 말해보면, 올바른 진보정당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갖추어야 하리라고 보여 진다. ① 노동자계급중심 정당이냐 하는 문제다. 진보정당은 주체성에서 노동자, 민중의 정당이다. 노동자, 서민이라고 말해도 좋다. 당의 계급적 구성은 노동자계급과 농민, 도시 빈민과 영세 자영업자, 관리직 노동자 등 소생산자계급의 연합정당이다. 즉 노동자 중심의 계급연합정당인 것이다. 최소한 진보정당은 그 정체성에서 자본가계급 정당이 아니고, 자본가계급을 그 구성원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② 계급투쟁을 주요한 전술로 갖느냐 하는 문제다. 진보정당의 목표, 강령과 정책은 노동자, 민중이 당하고 있는 억압, 착취와 수탈, 그들이 놓여 있는 빈곤과 차별을 개선하고 철폐하기 위해서 투쟁한다. 착취자와 억압자 즉 자본가계급과 이를 대표하는 정권과 제 정치사회적 억압, 통제기구들과 맞서 싸운다. ③ 내부 민주주의와 공존의 기반을 확립하느냐 문제다. 진보정당은 당을 구성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다양한 계층, 집단, 분파들과 나아가서 소생산자계급의 다양한 계층 즉 농민, 빈민, 도시 영세 자영업자, 관리직 노동자 등등을 아우를 수 있는 내부 민주주의와 단결의 제도, 기풍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해야 한 당 내에서 노동자계급과 소생잔자계급의 다양한 계층, 집단과 이를 대표하는 다양한 정치적 분파가 공존할 수 있고 함께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서 당이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은 실패한다. ④ 성장 발전하느냐 문제다. 진보정당은 그 실천과정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해 있거나 오히려 퇴보한다면 그 당은 실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실패나 패배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이후 승리하고 발전할 수 있는 전망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러한 전망을 실현할 수 있는 내부 구조와 응집력, 역량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⑤ 세상을 뒤바꾸려는 목표와 전망을 갖느냐의 문제다. 모든 정당은 집권을 자신의 중요한 목표로 한다. 진보정당은 단순한 집권이 목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진보정당이 자신의 궁극 목표를 실현키 위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대중적 지지를 높이고 대중 속에 조직적 근거들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가, 적을 약화시키고 객관적 현실을 바꾸어내 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사업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다. 



3. 무엇이 위기인가?

-현상적 위기 양태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이 대표해 왔다. 그러므로 우선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그 위기의 양태와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말해주는 다양한 양태가 지적, 비판되었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상근비 체불로 드러나는 재정운영의 난맥상, 빈번하게 드러나는 회계부정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이를 명확히 척결하는 운영기제가 작동치 않는 것, 종파주의, 패권주의 등이다. 이러한 제반 부정적 양태는 당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당의 민주주의와 활력, 건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당원들이 수동화되어서 당비 내고 표 찍는 기계로 일컬어지는 것 역시 당의 문제로 지적된다.


운동권정당, 민주노총당으로 비판하는 것은 당 운영에서 민주노총이 건강한 노동자계급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으로 작용, 당 운영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으로서 올바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 노동자계급 중심을 부정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치열한 투쟁, 변혁지향성 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민주노동당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개량주의와 의회주의, 부르죠아개혁정당과의 민주연합노선, 그리고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사건과 관련해서 살펴보자.



4. 창당과정에서 배태된 위기 원인


가. 노동운동 패퇴기 진보정당운동 전개의 한계


민주노동당의 실패는 민주노동당자체의 성격과 구조와 운동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실패의 과정을 우선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진보정치운동 및 이 시기 전반적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흐름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노동자계급이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였으나, 민주세력이 분열함으로써 법, 제도, 인물, 사회적 기풍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철저한 민주개혁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보수정치권력의 지배와 억압 속에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민중운동세력의 정치역량 역시 분열하여 상당 부분은 평민연, 민련, 국민회의 등으로 보수정치세력에 흡수되어 갔다. 진보정치운동은 87년 대선시의 민중후보와 88년 총선의 민중의당 시도 실패에 이어서 91년 민중당이 건설되어 92년 대선과 총선에 나섰으나 실패하여 해체되고 말았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다시 역사무대에 진출한 노동운동은 그 이후 급속히 지노협과 전노협을 건설해내고, 한편으로 업종연맹회의와 대공장노조운동의 민주화,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95년 11월 전노협과 업종연맹회의, 현총련과 대노협을 근간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이 총단결하여 34만여명의 민주노총을 건설하였고, 그 이후 민주노총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을 참여시켜 실수 66만여명의 거대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노태우정권 집권 이후 전진하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반동적 탄압은 가중되었고, 91년 2-7월 대기업노조연대회의 투쟁과 열사정국 격돌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은 하강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편 89년 동독 정권의 붕괴에서 비롯된 쏘동구 사회주의체제의 급속한 붕괴는 변혁운동의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흡수해 가던 한국 노동운동에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비록 민주노조총단결을 기치로 결성되었지만 창립시부터 개량적인 지도집행부를 갖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신생 조직으로서의 진취성과 패기를 갖지 못하고 민주노총 조직 자체의 합법화에 매몰되어 정부가 제안하는 정부 산하의 노사정협력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여해서 복수노조금지, 정치활동금지, 제3자개입금지 등 3금을 푸는 것을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제 등 3제를 허용하는 것과 절충해서 자본과 정권과 타협적으로 노동법개정을 추진하였다. 비록 강경정책으로 돌아선 김영삼정권의 정리해고 조항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통과에 맞서 민주노총은 역사적 총파업을 결행하였지만, 98년 3월 김대중이 김영삼과 야합하여, 정리해고 조항 실행을 다소 유보하는 선에서 노동악법은 통과되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사회무대 역사적 진출 이후 노동자계급대중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진보정당 창당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보수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착취에 맞서서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대중의 열망도 높았다. 그러나 민중후보전술과 민중당의 실패 이후 잔여 진보정치세력은 운동을 이탈하거나 현저하게 약화되거나 개량화하거나 부문운동, 시민운동, 사회운동세력으로 변화해 갔다. 새로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설만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정치조직이나 활동가그룹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을 성공적으로 건설해낼 정치조직이나 단체, 활동가군이 없는 상황에서 전국적 노동조합조직을 토대로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피하였다. 수십만의 노동운동 역량과 강력한 민중운동 역량이 존재함에도 아직 진보정당을 건설하지 않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런 것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통일조직인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 민주노총은 창립 초기부터 산별노조건설과 정치세력화를 두 개의 주요 사업축으로 설정하였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진보정당 건설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삼고 조직적 결의로 당 건설작업을 추진하였다. 96년 말-97년 초 민주노총 총파업을 계기로 해서 진보정당 창당이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진보정당 건설은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를 안고 출발하였다.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관점에서 전반적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은 하강기, 쇠퇴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87년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기세와 전투성, 청신성, 변혁성은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쏘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영향으로 노동운동의 전망은 동요하고 있었고, 변혁적 정치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축이 약화되어 있었다.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 96-97년 노동자대투쟁의 기세를 발전시켜, 이 투쟁에 동참하고 투쟁으로 결집, 지원한 제 세력들을 주체로 세우는 방식으로 당 건설을 추진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결집된 세력을 해소하고 시민운동세력과 연대해서 대선후보전술에 나서는 등의 소극적이고 우경화한 방식으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다.



나. 민주노동당 창당 세력구성에서의 한계

-좌파 정치세력의 민주노동당 불참-


민주노총 1기 권영길위원장 대선운동 이후 민주노총 2기 집행부 들어서서 민주노총 중앙과 연맹, 지역본부에 정치위원회를 결성하고 당건설에 대한 토론과 정치교육, 선전홍보를 거쳐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조직적 결정으로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였다. 진보적 변혁적 강령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를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드는 진보정당이 아닌, 노동자대중조직이 주체가 되어서 대중조직의 간부, 조합원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당이 개량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은 예견되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운동 쇠퇴기에 변혁적 이데올로기적 전망도 허물어져 있는 상황에서, 당시 대다수가 개량적이요 타협적 노선에 물들어 있었던 간부들이 진보정당 건설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진보정당의 상층부는 권영길 전 후보 대선운동을 중심으로 한 국민승리21에 모인 세력들이 차지하였다. 권영길과 개량적 민주노총 간부 출신 이외에 진정추, 사노맹, 전국연합 출신 등이었다. 이들은 다수가 진보운동을 청산하였거나 변질한 진보운동 출신들이었다. 


민중정치연대 등 좌파 정치세력들은 민주노총 중심의 당 건설에 참여치 않았다. 민중정치연대는 권영길후보 대선운동에는 참여하였으나, 대선 이후 진보정당 건설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들은 97년 대선운동기간 권영길이 개량적이고 패권적이라고 인식, 이에 혐오감을 갖고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결의해서 만드는 진보정당은 권영길중심의 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개량주의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국노동청년연대를 중심으로 한, 민중정치연대에 참여하였던 청년세력들은, 권영길후보 대선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이후 청년진보당-사회당의 독자정당 건설로 나아갔다. 당시 크게 약화되어 있던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역시 창당 초기 민주노총 중심의 진보정당건설운동에 참여치 않았다. 좌파 정치세력의 진보정당운동 불참은 새로 만들어지는 진보정당의 우경적 경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1년 7월 전국연합의 조직적 결정으로 전국연합과 소속 단체인 전농, 한총련, 청년운동세력이 조직적으로 밀려들어오면서 민주노동당 중앙과 지역조직을 장악해 들어감으로써 민주노동당은 전면적으로 이들 NL세력의 헤게모니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더욱 우경화하고, 패권주의와 종파주의가 지배하게 되고 내부 갈등은 해결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5. 당 강령과 실천의 괴리


당의 목표는 강령으로 표현된다.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 당의 시스템과 지도집행부 구성은 한계를 드러냈지만, 강령은 다소 절충적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당히 근본적이고 급진적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자본주의 질곡 극복’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건설’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 주체들의 생산수단 점유와 계획, 생산, 분배, 유통 통제’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 ‘노동의 현장, 문화의 현장 등 민중의 삶의 현장에 민중 권력 구축’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화된 자본에 맞서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 착취당하는 민중, 억압당하는 민족과의 국제 연대와 정의 평화의 인류 공동체를 건설’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서 ‘낡은 사회의 인물, 법제도, 구조 청산’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 계승’ ‘억압적 국가기구를 전면 폐지’ ‘국민의 소환권과 발안권 등으로 직접 민주제’ ‘민중 주체의 민주정부 수립’하고, ‘경제체제의 근본적 변혁 추구’ ‘자본주의 모순 극복’하는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경제체제’ ‘사회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을 활용‘ ’노동자, 민중에 대한 평등한 분배 실현’ ‘소유의 사회화와 사회적 조절을 다양한 소유와 시장적 조절보다 우위‘에 두고, ‘자주적이고 평등한 대외경제관계’를 수립할 것을 담고 있다.


강령은 당 실천의 방향이요 목표가 된다. 강령은 당 실천의 테제가 되어야 하고, 투쟁의 슬로간이 되어야 하고, 실현해야 할 정책이 되고 주요한 과제가 된다. 당지도집행부는 이 강령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정책을 고민하고 전술을 숙의해야 한다. 이러한 당 강령을 실현키 위한 사업을 추진하려면 조직을 투쟁태세로 편성하고 과감하고 급진적인 지도집행부를 앞세워서 공세적으로 치고 나아가는 당의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이 강령은 당 사업과 별 관계가 없었다. 당은 이 강령을 시렁위에 올려놓고 일상적 당 사업은 이와 관계없이 느슨하고 타성적으로 진행되었다.



6. 조직운영 시스템과 운영원리에서의 한계


가. 투쟁하는 조직 아닌 의회주의 조직 구조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에서 핵심적인 부서인 선전홍보(선전선동)위원회와 조직위원회는 설치하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투쟁업무와 선전선동업무를 할 구조를 중앙당 및 계통조직인 광역시도당과 지구당(지역위원회) 모두에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 조건에 따라서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진보정당에서는 중앙당과 시도당, 시군구당(또는 지구, 산별 기초 당조직)에 이에 상응하는 부서(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일상적 선전선동과 조직투쟁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활동의 기초 세포인 분회 조직을 위해서 노력하기는 하였으나, 당원의 당 기초조직에서의 활동을 기본 요건으로 하고, 조직 투쟁의 기본 임무가 조직적으로 정확히 부여되지 않은 조건에서 분회의 조직화와 활동을 활성화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일상적 투쟁을 수행하고, 이 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이끌어 올려야 할 직장분회는 거의 조직화할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스스로를 투쟁하는 정당, 노동자계급투쟁을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정당으로 세워 내지를 못하였다. 처음부터 노동자계급대중의 투표행위에 의해서 다수의 의원을 당선시켜서 이들의 의회주의적 정치행동-입법화과정을 통해서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실현시키는 의회주의적 정치행동을 목표로 하였다. 작은 당이지만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결합하여 거대한 힘을 창출한다는 ‘거대한 소수전략’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였을 뿐이다. 그나마 대중투쟁이라고 할 경우에도 대개의 경우 시민운동적 형태를 취하였다.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04년 6월 이후에는 이 의회주의적 경향에 더욱 함몰되었다.


2004년 전국적으로 비정규직투쟁이 고양된 상황에서 05년 민주노동당에서도 중앙당에 비정규직철폐투쟁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는 자체의 비정규직철폐투쟁계획과 당 조직을 동원환 조직화계획을 수립, 실행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의 기획 아래 정책연구 수행과 투쟁계획을 집행할 적절한 규모의 상근 역량이 배치되고, 광역시도당에 비정규직특위와 지역위원회에 특위설치 또는 담당자를 선임하여 중앙당에서 기초 당 조직까지 라인을 구축해서 당의 중심사업의 하나로써 추진되었어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은 본부를 설치해두고 주요한 비정규직투쟁이 있으면 민주노동당을 대표해서 참가, 연설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삼았다.


나. 왜곡된 집단지도제와 선거제


민주노동당은 창당 초기부터 대체로 노동조합 간부, 변혁운동, 진보운동과정에서 운동적으로 굴절된 사람, 경험주의자, 개량주의자 등으로 집행간부 등 지도자군을 구성하였다. 그리하여 상층부에서 노동자계급 사상(사회주의 혁명사상)은 관철되지 못하였다. 당의 체계(시스템)와 운영 역시 보수정당을 모방한 그대로였다. 당은 대표 단일지도체계를 취했다. 노동자계급의 집단주의적 운영원리와 (직접)민주주의적 원리를 구현하는데 실패하였다. 부서는 원내의석이 없었으므로 원내총무만 없었을 뿐 사무총장, 정책위의장과 나아가서 대변인과 기획위원장이라는 보수정당 당3역과 당5역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였다. 04년 원내 진출 이후에는 원내대표가 있었다.


당을 집단지도체제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의해서,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04년 당직선거시부터 적용하였다. 그러나 당 중앙 간부들 사이에도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변혁정당의 전통에 대해서 무지하고 사회주의의 집단주의적 원리에 대해서 둔감하였다. 개정된 당헌당규에 의해서 당원 직접 선거 원리와 집단지도체제인 최고위원회제를 도입했으나 그 구성과 선거과정은 여전히 왜곡된 형태로 되었다. 정확하게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려면 최고위원 성원 모두(현행 13명)를 동등한 자격으로 동등한 방법을 통해서 당원 직선이든 대의원대회에서든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최고 득점자를 당대표로 하면 되는 것이다. (최고위원 중에서 호선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은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별도로 각 1인씩 뽑고 노동부문(나중에 농민부문 추가) 최고위원 1명을 뽑은 이후에 남은 8명을 일반투표로 뽑았다. 여성부문 4명과 일반부문 4명을 선출하였다.



7. 드러난 주요 문제점 검토


가. ‘종북주의’는 분당의 원인


종북주의는 민주노동당 분당파들이 민주노동당 주류파의 패권주의와 함께 분당의 주요 이유로 내세운 것이었고 그 중에서 핵심이 종북주의이다. 심상정비대위 역시 분당파의 문제인식과 함께 해서, 종북주의 척결을 당 혁신의 중심고리로 내세웠다. 그 구체적 방안이 일심회 최기영 전 당 사무부총장 등을 제명하는 것이었다. NL주류의 전면적이고 격렬한 반발에 직면하여 NL파와 격돌을 완화하고 NL 일부 분파(인천)와 연합하여 당대회에서 혁신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술상 이유로 당대회에서 최기영에 대한 제명 이유로 종북주의 렛델을 떼고 단순 해당행위로 수정하였지만 당내외에 본질적 변화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심상정비대위의 당 혁신안은 부결되었고, 분당은 현실화되었다.


민주노동당 역사에서 종북주의적 행동으로 드러난 것은, 2006년 10월 국정원이 발표한 북한공작원과 회합하며 국가기밀을 전달하는 등 이적단체를 구성하고 이적활동했다는 사건에 최기영 등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과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무기 발사사건을 둘러싼 민주노동당 태도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일심회 최기영 사건


당 사무부총장 최기영 등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은 종북주의를 둘러싸고 실타래처럼 착종된 여러 문제들을 보여준다. 당의 주요 간부 대부분의 정보를 분석해서 북에 제공하는 행위가 괘씸하기는 하지만, 이것 자체로는 당의 존폐나 성쇠에 중대하게 영향을 주는 행위는 아니다. 제공한 정보는 일반적인 신상정보 수준으로서, 징계에 회부되더라도 제명에 해당될 만큼 중대한 과오는 아니다.


이 문제가 큰 문제로 되는 것은, 이 사건이 당이 종북적인 정당임을 드러내는, 또는 적어도 종북적 정당으로 인식시키는 중요한 사건이고, 당이 종북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당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리고, 당의 발전에 중대한 장해를 조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당이 큰 손실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부르죠아 반동언론이 이 사건을 매카시즘적 공격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건 관련자가 간접적 책임이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부르죠아반동언론의 비열한 행위에 그 책임이 있다.


분당파쪽에서는 이 문제를 부패독직사건이나 폭력사건과 같은 선악의 문제로 환치시키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사상노선의 문제이다. 전의 사회당이나 일부 평등파나 진보신당파처럼 반북주의냐, 또는 종북주의냐, 그렇지 않으면 보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이냐 하는 것은 사상노선의 문제이다. 당과 당의 정파는 어떤 사상 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종북주의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당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 노선을 달리하는 정파가 한 진보정당에서 서로 함께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한반도의 반쪽을 차지하고, 나름의 역사적 정당성과 현실성을 갖고 있는 거대한 정치적 실체인데, 이를 추종하고 이 세력과 결합하는 정파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는 것은 당 운동방향의 결정과 당의 성공과 실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북주의가 패권주의와 독선적 사업방식과 결합된 문제는, 당내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사실 분당파와 진보신당은 이러한 이유에서 분당의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당의 주류분파가 종북주의적 사상노선을 당사업에서 패권적으로 관철해내려 한다면 당내 소수파는 이러한 주류와 갈라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 발사


2006년 10월 초 북한은 동해상으로 2기의 핵무기를 연속적으로 발사하였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한국정부의 가입을 압박하며 북한 선박과 항공기 강제검색을 위협하는 미국의 봉쇄 침공위협에 저항한 것이었다. 북한 핵무기 실험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전반적으로 반제적 관점이 불철저함을 드러내었다. 소위 당내 평등파는 북한과 미국에 대한 양비론을 펴거나 북한 핵무기실험을 초래한 미제국주의에 대한 단호한 투쟁보다도 핵실험을 한 북한을 비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또한 계급모순과 제국주의와의 모순을 해결하는 기조위에서 환경적 의제로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핵폐기를 우위에 놓고 있다. 심지어 왜곡된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의 악과 미제국주의 악을 동일시하거나 제국주의 침탈에 대해서 북한 민중의 방어, 한반도 민중의 방어를 소홀히 하는 태도를 보인다. NL조차도 일부는 미제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북한 핵실험을 찬양하는 태도를 보이고, 일부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에 눌려 방어적 수단으로서의 북한 핵실험에 대한 성격규정을 애매하게 얼버무리면서 미제의 침공위협과 북한 핵실험을 양비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민주노동당내 사회주의 분파들 역시 부분적으로 양비론에 빠져서 반제투쟁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를 보였다.


○조선노동당의 위성정당급


종북적 노선은 현 시기 진보정당노선으로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 진보정당이 북을 추종한다면 한국 노동자계급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서 현실 정치세력으로 토대를 구축하고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초기인 2000년 이후 한국사회 대표적 진보정당으로 자부하면서 북한 정권과 조선노동당에 대해서 한번도 대등한 태도를 갖지 못했다. 진보정당으로서 북한의 당과 교류와 협의를 추진하면서 북한 정권 담당 주체인 조선노동당과 김정일과 회담을 요청해 보지 못하고 조선노동당의 위성정당인 조선사회민주당과 수차 요청하고 2006년 한번은 방문 회담을 가졌다. 이 얼마나 당당하지 못한 태도인가? 그러한 태도의 밑바닥에는 북한을 감히 맞대응하기 어려운, 쳐다보아야 하는 상대로 보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사업배치의 왜곡


종북적 노선은 일명 자주노선이라고도 하듯이 자주 통일을 운동의 제일과제로 삼는다. 이러한 노선은 당 사업 배치를 왜곡시킨다. 2005년 2월 정기당대회 사업계획은 통일, 반미, 반전 평화, 국보철, 반 WTO사업 과제를 중심축으로 배치되고 비정규직철폐와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같은 민생과제는 중심과제 아래에 부차적이고 세부적인 과제로 배치하였었다. 2004년 5월 최고위원 선거에서 사무총장과 최고위원 다수 등 당권을 장악한 NL주류가 작성 제출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업계획은 대의원대회 상정 전 중앙위원회 검토과정에 제출되어서 비판을 받고 철회한 것이었는데도 다시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것이었다. 참석 대의원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고서는 당시 김창현 사무총장이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 재 작성키로 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노무현정권은 취임초부터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청산법,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입법 통과를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였다. 특히 2005년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하였다. 2004년 6월부터 10석의 의석으로 원내활동을 시작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독자적인 의회활동의 기획없이 처음부터 노무현의 이 개혁법안 입법화 프로그램에 빨려 들어갔다. 그 개혁법안 중에서도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몰입하였다. 그리하여 2005년 가을 정기국회시에는 당의원단과 최고위원을 비롯하여 중앙과 지역의 당간부들이 장기간 국회앞 천막농성을 치고 당원총회까지 배치하면서 당 총력을 기울여서 투쟁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국보법 개정에 대한 저항을 돌파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철폐에 대해서, 고무, 찬양조항만 겨우 폐지하고 나머지는 형법보완과 대체입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열우당과 공조에 매달려서, 김창현사무총장은 ‘열우당 2중대’가 되어서라도 국보법 개정을 해야한다고 발언하면서 무원칙한 보수야당과의 공조와 의회주의적 양태를 보임으로써, 당내외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노동계는 2005년 9월 노동부장관의 비정규악법 발의로 비정규악법 철폐투쟁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당은 당구성의 중심인 노동자계급의 핵심적 현안투쟁에 계획적으로 당력을 집중하여 대항 투쟁하지 못했다.


2005년은 노무현정권의 실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던 해였다. 노무현은 과반수 의석 점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석 부족과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불평하면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는 매몰찬 거부를 당하면서 지지기반인 호남지역과 민주세력의 이반을 가져오게 되었다. 2004년에는 저성장과 소득불균형확대, 부동산폭등, 비정규직증대, 실업만연 등으로 민생 파탄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발의조차 못하고 있는 사이에 민주노총 이수호위원장은 05년 중심사업으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내세우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과제를 핵심과제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민생에도 소홀하였다. 이를 보더라도 자주통일노선이 당 사업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를 알 수 있다.


현 시기 NL의 종북노선은 북한, 통일, 미제국주의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특정한 계급적 특성을 드러낸다. 종북노선은 북한이 남한의 보수정권과 평화 협력적 정책 방향으로 나아갈 때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보수정권이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협력적 관계를 갖도록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당이 북한정권과 남한 보수정권 사이에 이루어진 6.15공동선언 기념식을 매년 개최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보수정권과 관변단체 민족화해협력위원회와 함께 개최한다든지, 노무현과 김정일의 07년 10.4 선언을 민주노동당이 무비판적으로 찬양하고, 민주노총 역시 환영 플래카드를 각 연맹, 지역, 단위노조에 게양토록 한 조치가 그러하다. 이러한 행동은 실제로 한국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보수정권과 자본가계급에 대한 무원칙한 협력을 강요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약화시키고 계급투쟁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나. 패권주의 종파주의의 문제

-내부 민주주의의 결여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를 가져 온 직접적이고 결정적 이유는, 당권파가 08.4.9총선 비례대표선출방침을 왜곡되고 독점적 구조로 몰고 가려고 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07년 7월 27일 대선후보 선출과 진보대연합등 대선방침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2008년 총선 비례대표후보 선출일정마저 함께 결정하였다. 12월 19일 대선이 끝나는 바로 다음날인 12월 20일 비례대표 선출공고를 한다는 안이었다. 비례대표 선출문제는 대선이 끝난 이후 대선평가를 한 이후 선출일정을 잡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었다. 여성후보와 일반후보 비례대표후보선출방안도 1인 2표가 아니라 1인 1표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력하게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안은 그대로 중앙위 안건으로 제출되어 당내 평등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NL주류파에 의해서 묵살당하고 표결로 강행 통과되었다.


이러한 주류파의 독선적 행동이 평등파로 하여금 분당을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후보는 당원 직선에 의해서 선출되므로 대단히 민주적 절차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의 비례대표 선출 절차 규정에 따르면 당선권에 드는 비례대표후보는 주류분파가 독식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7월 27일 중앙위에서 비정규직을 비례 2번으로 배치한다는 결정을 포함해서 비례대표후보 선출 절차는 ①홀수는 여성으로 하므로 비례대표 후보는 1,3.5.7.9번이 여성이 된다. ②1번은 장애인후보로 한다. ③2번은 비정규직후보로 한다. ④당원은 장애인후보에게 1표, 비정규직후보에게 한 표, 여성후보에게 2표, 일반후보에게 2표를 찍는다. 그리고 이미 지난번 선거에서부터 관례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 ⑤투표자가 모든 선출대상 후보수만큼 기표하지 않은 표는 무효로 한다.


이미 민주노동당내 조직적 역량과 영향력에서 중앙당과 지역당의 55%-60%정도를 NL연합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의 중앙위와 대의원대회 등 의결기구 역시 NL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당원 총투표 영향력 역시 그러하였다. NL연합세력은 가장 강력한 울산을 비롯해서 경기(동부), 인천, 광주전남 등 4개의 대분파와 서울, 부산, 경남 등의 소분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경기도당위원장 선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특정한 이슈로 서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당 중앙 당직선거, 공직후보선거 같은 큰 이슈에서 철저하게 단합-담합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08년 4월 총선후보선출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2004년 당직선거에서는 NL세력은 정책위의장을 제외하고는, 소위 당내 평등파와

이 담합해서 당 대표를 당선시키고, 사무총장과 최고위원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06년 당직선거에서는 최고위원으로 전진 출신후보 3명이 당선된 이외에는 노동, 농민부문 포함해서 나머지 7명의 최고위원과 당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NL세력이 장악하였다. 즉 당권을 전면적으로 확고히 장악하였다. NL세력은 당의 각종 기구를 장악하였고, 상근 간부들을 자파출신들로 대부분 교체해갔다.


4년전인 2004년에는 NL주류분파의 당 장악력이 그렇게 압도적 우세를 보이지 않았고, 단병호, 심상정, 노회찬 등의 명망성과 당내에서의 지위 때문에 평등파가 당 비례대표후보로 단병호, 심상정, 노회찬 같은 유력한 후보를 당선시킬 수도 있었고 울산 북구에서는 조승수를 당선시킬 수가 있었다. 국회의원을 평등파가 NL과 대등하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NL연합세력이 당을 철저하게 장악한 이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해졌다. 평등파는 크게 보아도 그 영향력에서 30-40%에 미치지 못하였고 그마저도 다양한 노선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지난 4년간 민주노동당의 실패로 당은 크게 위축되어 08년 4월 총선에서는 04년 비례 8명당선의 절반을 크게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이었다. 장애인, 비정규직 등 개별 후보와 여성 2인, 남성 2인 등 당선 가능권후보는 NL주류파가 독식할 것은 누구 눈에나 명약관화했다. 당내 주류파에서 대선후보가 선출되어 선거운동이 한참 진행중인 시기에 당내 NL주류의 각 분파 대표가 만나서 비례대표 후보를 조정한 끝에 김창현 등 4명을 우선적으로 확정했다는 소식은 당내 분당파의 분당기류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러한 사실은 민주노동당 내부 민주주의의가 극히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했고, 당내 노선이 다른 분파들이 공존하면서 경쟁키 위한 공동의 기반과 기풍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른 계층, 집단과 다른 노선을 가진 다양한 분파가 함께 당을 구성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통의 목적과 공존의 제도, 규율과 기풍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갖지 못하였다. 그 원인은 유리할 때는 NL파와 담합하고 불리할 때는 NL파와 싸우는 기회주의적 주류 평등파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주된 원인은 NL세력의 패권적인 중앙과 지역 당 기구 장악과 운영에 있었다.


당 건설초기부터 NL세력은 자파의 연고가 없는데도 전략지역을 선정하여, 당원을 집단적으로 등록해서 지역 당 조직을 장악해 들어가는 행태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반미투쟁의 기지로서 용산지구당을 장악한 것과 수도권의 공장과 노동자 밀집지대인 ‘부평을’ 지역을 장악해 들어간 것이었다. 초기 지역 내 거주자가 아닐지라도 당원의 선택에 의해서 소속 지구당을 결정할 수 있게 된 당규상 규정을 악용하여 특정 지구당에 당원을 떼거리로 전입시킨다든가, 집단적으로 이사가거나 주소 이전을 하거나, 당비를 대납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폐해를 제거키 위해서 그 지역에 거주지나 직장이 있는 한에 있어서 그 지역 당(지구당-지역위원회) 가입을 인정하는 쪽으로 당규를 개정한 이후에도 집단적인 주소이전을 통해서 지역당을 장악하는 현상은 전국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대표적인 종파적 행위이다.


당이 부패하면 당이 망한다. 진보정당은 청신한 기풍이 그 힘의 원천의 하나이다. 진보정당 내에 부패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를 척결해내지 못한다면, 그 부패의 종양은 암덩이처럼 커져서 당을 망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에서 2006년 6월 도지사선거 이후 선거 수입으로 들어온 1억원 이상의 부채가 발생하였는데도, 정상적 회계처리하지 않고, 당위원장에게 보고처리하지 않은 회계부정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에서는 이를 명쾌하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울산시당 회계문제와 당내 폭력문제, 성폭력문제 등 당내에서 발생하는 부패폭력사건을 객관적이고 명쾌하게 정리해내지 못하고 종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편파적으로 처리한다거나 처리를 지연시키는 행동이 누적되면서 당은 단합과 건강성, 진취적 기풍을 상실해 갔다.


다. 개량주의 의회주의 문제


민주노동당의 개량성과 종파적 대립의 전형적인 예로서 민주노총 출신 이용식 최고위원의 부유세 반대가 있다. 2004년 총선 당시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 데 호소력을 가졌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정책과 이를 뒷밤침할 재원마련을 위한 부유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당 최고위원회에 부유세 입법화추진 안건이 제안되었을 때 이 안은  당시 민주노총 할당 후보로 최고위에 선출된 이용식 최고위원이 중산층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함으로써 장기간을 입법안 발의조차 못하였다.


당은 2002년 대선에서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것은 당의 대표적인 상표가 되었다. 이 공약은 2004년 총선에서도 대표적인 공약으로 되었고, 당경비 당원 당비로 충당, 당직 공직후보 당원 직선, 비례대표 연임금지, 국회의원 특권폐지(반납), 당직공직 겸직금지 등 혁신적 당운영방안과 더불어서 대중속에 민주노동당 지지율을 높여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개인적으로는 의회활동이 우수하였다. 각 상임위 의원들의 언론과 지식인, 시민단체 등의 평가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수위를 차지하거나 우수한 순위에 들어갔다. 이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노동자, 민중의 편에서 활동해 왔고, 이들과 함께 하고 지원하고 협력하는 노조와 노동사회단체, 시민단체들이 주변에 적극 협력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개인적으로는 우수하였지만 전체적인 조직적 힘으로 행사되지는 못하였다. 의회전술에서도 집단적 조직적 계획이 부재하였고, 당차원에서 이들의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결합해서 소위 ‘거대한 소수전략’을 내오는 계획을 수립 집행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 입법활동중에서도 급식법 제개정이나 주민소환제 제정 등 민생과 주민 참여 민주주의 실현 수준을 높이는 소중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은 당의 기획에 의한 집단적 원내투쟁보다도 개인적 활동에 치우쳤고, 보수정치, 권력과 자본의 행태를 폭로하고 이에 대항해서 당의 강령과 대안을 선전선동하기 보다도 지나치게 입법화활동에 매몰되었다. 보수정당 의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내 구성으로 보아서 입법활동은 보수 여야당이 함께 동의하든지 과반수에 가까운 정당이 동의하든지 하지 않으면 입법화될 수 없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 10명의 의원들이 17대 국회 4년간에 발의한 약 200여개의 법안은 국회 창고속에 쌓여 있고 곧 종료될 회기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전체 의석 299석중의 10석을 가지고서는 급진 개혁법안을 제출해보아야 보수 여야당이 거부하므로 입법화 추진을 직접적 목표로 할 경우에 그 입법안은 보수정당의 것보다 약간 앞선 대단히 개량적 수준으로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고, 그러한 법안 조차도 통과를 위해서는 상임위 소위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단계를 통해서 보수 여야당과 무수한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원래의 안을 수정해야만 한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적 활동의 전형을 보여준 것 중의 하나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었다. 이 법안은 정부여당에서 국민연금 재원의 고갈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보험요율을 9%에서 12.5%로 인상하고 연금지급액은 현행 평균급여액 60%에서 08년에 50%, 2028년에 40%로 내리는 개악내용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원래 기초연금 15%지급에 지급대상자를 현행 50%에서 80%로 확대하는 조건으로, 보험요율 12.5%로 인상하고 연금지급액을 40%로 내리는 안에 찬성하는 자체 수정안을 만들어서, 한나라당과 공조, 기초연금 15%지급과 기초연금 대상자 현행 50%에서 70%로 확대하는 안을 공동으로 제안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파기되고, 오히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로 연금지급액은 2028년에 40%까지 인하되고 기초연금 지급액은 2028년까지 현행 노령연금 5%(약 8만원)에서 10%로 올리는 안에 현행 경로연금 5%를 폐지하고 교통수당까지 폐지하는 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4대 보험 전면 보장을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과연 보험요율을 올리고 연금 삭감에 동조하는 것이 맞는 일이냐, 장기간에 걸친 그러한 미미한 개량적 정책을 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러한 개량적 정책을 입법화하기 위해서 수구정당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것이 맞느냐, 그리하여 보수수구정당들의 야합에 놀아나야 되느냐, 하는 많은 의문을 던져준다.


○사회연대전략의 문제점


의회주의는 본질적으로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제도정치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개량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는 또한 필연적으로 노사타협주의, 계급협력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계급협력주의 정책이 ‘사회연대전략’이다.


사회연대전략은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안을 작성해서, 2006년 8월 민주노동당 의원단 워크샵에서 논의된 이후 최고위원회와 의원단총회를 두 차례 거친 후 10월에 공식 당사업으로 의결되었다. 2006년 11월 10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국회 연설에서 사회연대적 연금개혁방안을 당의 주요정책방향으로 제시하였고, 2007년 1월 31일 문성현 당 대표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기자회견 시간 전부를 할애해서 국민연금 개혁과 사회연대를 호소하였다. 사회연대전략은 2007년 민주노동당의 중심적 정책방향이요, 대선시기 당의 핵심전략으로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당내외의 강력한 비판과 현장 노동자의 거부로 민주노동당은 이 전략을 철회하였다.


사회연대전략은 한국형 사민주의적 복지전술로 내 놓은 것이다. 이 전술은 고소득(정규)노동자의 부담을 통해서 저소득(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의 연금을 일정정도 지원하고, 이러한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서 자본가와 국가의 양보와 동참을 이끌어낸다는 노사타협주의 논리를 바탕하고 있다.


복지동맹이란 이 동맹을 구성하는 집단들의 공통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기 위해서 구성된다. 서구의 복지동맹 역시 연금개악, 비정규직화 등 이미 형성되어 있던 복지를 삭감하거나 해체하려는 보수정권의 시도에 대항해서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계급계층들이 연대하여 투쟁함으로써 승리한 것이었다. 투쟁에는 투쟁의 주체가 있고, 투쟁의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복지동맹에서 투쟁의 주제는 복지의 실현이라면, 투쟁의 주체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층, 농민, 여성, 장애인 등으로 설정되고 있다. 이들은 단결하여 자본가계급과 이들의 권력과 투쟁해서 전면적 복지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소자산가계급의 연대 역시 자본가계급과의 공동투쟁을 목표로 해서 그 투쟁과정중에 형성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연대전략은, 복지를 위한 노동자계급 내부와 계급 외부 민중간의 동맹을 통해서 자본과 국가에 맞서 싸워서 복지를 쟁취하거나 복지저하기도를 저지하는, 서구식 복지동맹의 기본적 성격마저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사민주의적 정책으로서의 타당성마저 결여하고 있다.


고소득노동자가 저소득노동자의 연금보험료를 대신 지불해줌으로써 노동자계급 내부의 연대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자본가계급의 양보를 끌어낸다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서 비정규직 등 저소득 노동자는 수혜대상이고 스스로 연대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자본의 양보가 필요할 뿐 고소득노동자와 저소득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가와 투쟁하는 문제가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은 자기발전을 한다. 인간 역시 스스로 발전하고 이 발전을 억압하는 대상과 투쟁함으로써 전진한다. 사회연대전략은 이러한 사물의 발전의 기본원리와 역사적 변증법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내부의 연대도 성공할 수 없고, 이것이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투쟁없이 사소한 것이 아닌 본질적인 내용에서, 자본가계급의 양보를 결코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644만명에게 2008년부터 5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해서 이들 저소득층이 민주노동당을 쉽게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은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더불어서 급진적인 군축과 군비삭감, 감군과 더불어서 부유세 등 누진과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복지를 과감하게 실현할 복지재정을 마련하고, 재정지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임대주택과 연금, 실업, 여성해방과 장애자 등을 위한 전면적 복지를 실현할 방안을 제출하지 않는가? 대선 시기 민주노동당이 집권 5년 동안에 세상을 바꾸어 놓을 총체적인 계획을 내놓고 집권정당으로 일어서기 위한 대선투쟁에 나설 상상력도 못 가지는가?!


○노사관계개악입법 통과 동의


단위 사업장 복수노조 실시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2007년에서 2010년으로 3년 유예되는 내용이 담긴 노사관계법 개정안(노사관계로드맵)안이 2006년 12월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안에는 그 이외에도 소위 필수 공익사업장의 직권중재를 대신하는 필수업무유지 내용과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한 내용 등 악법 조항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 법안통과를 위한 국회 환노위 개최에 민주노동당이 동의하여 주었다. 담당 의원이 단병호의원이지만 심상정 원내 부대표가 기자브리핑에서 환노위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의원단에서 동의된 것이고 또한 민주노동당이 동의한 것으로 볼 것이다. 곧 이어 열린 환노위에서 단병호의원이 법안 반대발언을 했지만, 표결하지 않고 형식상 만장일치 찬성으로 그 법안은 환노위를 통과하였다. 이 법안은 이어서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이 소속된 법사위원회를 통과하였고 다른 법안들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노동자를 얽어매는 사슬로서 노동현장에 쳐지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모가지를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쥐어주고, 노동운동을 황폐화시킬 이 개악법을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민주노동당이 합의로 통과시켜주고 말았다. 노동자계급대중을 대표하여 국회로 보내준 민주노동당 10명(이제 9명)의 국회의원들은 국회라는 새장에서 길들여지고, 2백수십여마리의 타락한 보수새, 수구새들에게 밤낮으로 부대껴서 기죽고 탈진한 것만 것 같다. 이로써 민주노동당은 급속히 타락해 갔다. 노동자계급대중을 앞장서 이끌고 해방세상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대중을 타락시키면서, 노동자계급대중으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진보정당이 타락해서 자본가계급에 빌붙게 되면 그 존재의의를 상실한다.


○문성현 당대표 한국노총 사과


2007년 10월 15일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한국노총에 사과문서를 들고 찾아가서, 06년 11-12월 한국노총이 정부, 경총과 야합해서 비정규개악법을 합의로 통과시킨 것을 문성현대표가 집회에서 비판한 사실에 대해서, 고개를 조아려 사과하였다. 한국노총이 그 이전에 한국노총이 전 조합원 투표를 통해서 지지정당을 결정하고 정책연대를 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06년 비정규직법개악 통과 이후 문성현대표가 한국노총을 비난한 사실에 대해서 문서로 사과하는 조건으로 조합원 찬반투표 대상후보에 포함시키겠다고 공문을 보내 온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당이 대선 득표를 구걸해서 한국노총에 대해서 사과공문을 보낸 것에 대해서 당내외에 비판이 쏟아졌고, 문성현대표는 그 직후 분신 운명한 건설노조 정해진열사 빈소에 조문갔을 때 조합원으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당은 그 이후 최고위원회 결정으로 문성현대표의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행위를 취소했고, 그러나 정책연대에는 찬반논란이 팽팽하여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는 최고위원회에서 NL주류가 주장하였고, 다함께 역시 조합원투표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정책연대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투표대상후보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투표결과 투표자 44.5%지지를 받은 이명박후보를 지지하고 정책연대하였다.


라. 공세적 의회전술 결여


10석의 국회의석 획득은 당이 활용해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될 수 있었다. 국회는 자본주의 권력의 부패와 협잡,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과 혹심한 착취,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정치적 침략과 자본가 권력의 비굴한 행태를 폭로하고 노동자, 민중의 해방세상을 내오려는 당 강령을 선전선동할 좋은 무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은 국회에 10석의 의석을 갖자마자 입법주의, 의회주의의 관성에 길들여졌다. 민주노동당 의원활동 중에서 그래도 대중의 기억 속에 가장 남는 것은 노회찬의원의 삼성떡값과 권력의 부패와 횡포 폭로, 강기갑의원의 WTO농산물 수입개방 저지 장기 단식농성, 심상정의원의 FTA내막과 재경부모피아 폭로 등이 아닌가?


10석의 국회의석은 당이 현장 노동자와 결합하고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각성시킬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은 이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였다. 거대한 소수전략은 국회 의원활동과 시민운동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현장의 노동자대중투쟁과 결합하는 전술이 핵심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당은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현장투쟁을 국회일정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고 현장투쟁을 국회활동의 보조투쟁으로 만들고, 국회의 입법활동으로 현장투쟁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현장투쟁을 김 빼는 역할을 하였다.


당은 국회의원 10명이라는 무기를 집단적 조직적으로 사용할 줄을 몰랐다. 당은 비정규직개악입법과 노사관계개악입법저지에 10명의 국회의원직을 걸었어야 하였다. 06년 정기국회 11-12월에 비정규직개악입법과 노사관계개악입법 법안들이 통과될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지점을 D-day로 해서 당력을 총결집시키는 투쟁계획을 세워서 추진해 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수없이 총파업을 되뇌면서 실질적 총파업을 실행치 못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을 당 투쟁과 결합해서 현실화해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당은 비정규직개악입법과 노사관계개악입법저지에 10명의 국회의원직을 걸었어야 하였다. 실제로 이 법안들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10명(9명)의 국회의원들이 직을 걸고 배수진을 치고서 투쟁하였다면 통과를 저지할 수도 있었다. 이때 바로 보수 여야당간의 이전투구전선은 노동자민중과 자본과 권력의 대결전선으로 주전선이 바뀌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사력을 다해서 싸우고 당이 총력을 기울여서 투쟁하여도 법안이 통과된다면 실제로 10명(9명)의 국회의원들이 사퇴하는 것이다. 그랬다면 민주노총 조합원과 비정규직노동자, 1500만 노동자들 가슴속에 민주노동당은 그들 자신의 당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을 것이었다.


마. 민주연합노선


역사적으로 통일전선전술의 일종이다.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 일색인 정치구조에 대항해서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를 통해서 노동자 중심의 노동자 민중의 정당으로 창당되었다.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에게는 정치적으로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이 명확하였다. 그러나  87년 이후 지속적으로 개혁보수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노선을 견지해 왔던 전국연합 한총련 등이 당내에 전면적으로 들어오면서 상황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NL세력이 비판적 지지노선의 청산이 불철저한 상태에서 대거 합류하면서, 당의 노선은 비판적 지지노선의 당내 변형형태인 개혁보수세력과의 민주연합노선으로 나타났고, 이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이 노선이 당의 지배적인 노선이 되었다.


2005년 7월 노무현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대연정을 제안하였다. 내세운 목표는 대연정을 통해서 국정운영을 안정화시키고 중선거구제 등으로 선거제도를 재편해서 지역정당구조를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집권 여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의석의 안정성을 확보치 못했다기보다 일관성있고 결단력있는 개혁적 의정운영이 결여되었었다. 호남 중심의 열우당을 개편해서 노무현 자신이 부산과 경남 나아가서 영남 지역에 자신의 직접적 세력기반을 구축하려는 의도 역시 읽히는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정권은 정치개혁실패, 경제실패, 부동산값폭등 등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실정을 모면코자 하는 의도 역시 있었다.


대연정대상은 일차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칭하였지만 한나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제안을 즉각 거부하였다. 그러나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노회찬의원은 즉각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화답하였다. 최고위원회는, 대연정은 반대하지만 개인적 의사표명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애매한 결정을 내렸다. 실상 최고위원회 분위기는 다수가 찬성이었는데 당원의 눈이 무서워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정당과 자본가정당을 통합하자는 데 침 흘리는 당이 무슨 진보정당인가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민주연합노선은 2007년 대선에서 기승을 부렸다. 2월 정기당대회에서 대선후보 전술로서 열린후보 선거인단 전술 속에 민주노총이나 민중진영 이외에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포함시켰었는데, 열린후보전술이 부결되고 그 이후에 민주노총이 들고 나온 민중후보전술 역시 부결된 07년 7월 27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진보대연합 전술이 채택되면서 민주연합노선은 전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7월 27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당의 주요한 대선전술로서 진보대연합 전술이 결정되었다. 민주노동당 진보대연합전술은 별 반대없이 통과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도 민주노동당과 함께 대선대책기구를 구성해 온 민주노총과 전농 등 민중단체는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진보대연합 대상에는 좌로 노동자의 힘과 사회당 등이 포함되지만, 주로 우측으로 시민단체 등을 겨냥한 것이다. 중앙위 결정에서 진보대연합의 기본내용으로 ①신자유주의와 한미FTA반대, ②사회양극화해소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③평화 통일, ④국보법철폐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서 핵심은 한미FTA반대이다. 한미FTA반대에 동의하면 미래구상 등 시민단체 중심으로 한 세력들도 합류하기를 기대하였다.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노무현정권과 열우당의 실패로 인해서 정부여당을 떠난 노동자 민중의 지지가, 더욱 수구적이고 반민중적인 한나라당과 그 후보로 가고 있다는 것, 진보진영 정치세력의 대표주자가 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지지정당 없이 헤매고 있는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진보대연합을 통해서 이를 극복, 10%전후에 머무르고 있는 민주노동당 지지율을 넘어서서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율을 30%로 끌어올려 보수정당들과 대등한 정치세력으로 설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실제로 당내 거의 모든 정파들이 진보대연합에 동의하였다. 정성희, 다함께의 김인식, 전진 집행위원 정종권 등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임종인, 천정배, 김근태마저도 연합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천정배, 김근태와 정동영, 손학규 사이에는 아무런 격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권영길후보진영의 문명학 기조실장은 100만 민중대회를 김근태, 손학규, 천정배 등이 권영길과 함께 참여하는 후보단일화대회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 정치세력들과 연합해서 집권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심상정비대위 퇴진 이후에 민주노동당 수습 및 선거대책 비대위 위원을 맡은 이수호는 전국적으로 민주노동당과 범여권정당의 후보단일화를 통한 집권과 연정참여를 설파하고 다녔었고, 정성희 비대위원은 대선 이후 전국연합 주최 평가토론회에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선거연합할 것을 주장하였었다.


권영길이 민주노동당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현충사를 방문하고, 중소기업연합회를 방문, 민주노동당이 친기업정당임을 표방하는 등 보수정치인과 비슷한 행동을 보였고, 또한 문국현과 가치연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회동을 추진하고, 당은 한나라당을 겨냥 보수정당을 포함한 반부패연합을 논의하는 등 혼란된 모습을 보였다.


자본가 정당과의 연합 여부는 현 시기 반미 반제나 반수구 반통일세력반대 연대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개혁보수정당이라고 할지라도 엄연한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보수정당이다. 국내재벌기업들은 초국적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하위 파트너이고, 한국정부는 미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이다. 노무현정권은 국내 재벌의 이해를 대변할 뿐만아니라 미국과 초국적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 한국정부는 미제국주의와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통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시민운동세력 역시 ‘범 개혁세력 연합’ 또는 ‘진보개혁세력 연합’을 내세우면서, 자본을 대변하는 보수정치세력의 주도하에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을 엮어내서, 이들 개혁보수세력을 강화키 위해서 복무하는 데 지나지 않음은 수십년 한국정치경험에서도 명확하지 않은가? 자본가정당인 보수정당과의 연합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정체성, 진보정당으로서의 존재의의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8. 진보신당이 대안인가?


분당파가 당을 분열시켰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위기가 왔는가? 그것이 아님은 이제까지 보아온 바와 같다. 민주노동당은 분당파의 분열행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이미 내부의 암덩이가 너무 커져서 화석화하고 사망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분당파가 적극적 분당행동에 돌입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너무 경직되고 왜곡된 민주노동당은 서서히 고사상태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분당파가 분당행동에 들어간 것은, 주류 NL분파가 평등파 등 소수 분파와 상호 협력하면서 당을 함께 할 수가 없을 지경에까지 내몬 것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심상정비대위가 당 혁신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위기를 해결치 못했는가? 종북주의 청산과 일심회 최기영 등 제명이라는 당혁신의 방향이 분당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적절치 않다는 사실은 결과로서 증명되었다. 심상정비대위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종북주의를 혁신의 중심 과제로 설정하지 않았다면 분당파의 분당행동을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분당은 불가피하였을 것이고, 사상노선을 함께 하는 그들이 나간 이후, 심상정비대위도 역시 더욱 소수화된 당내 정파적 지형 속에서, 패권적인 방식으로 종북주의 노선을 관철해가는 NL주류에 포위되었을 것이다. 종북주의를 타격하여 약화시키거나, 그 방향성을 상당정도 돌리지 않고서는 민주노동당 내에 그들이 설 땅이 없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분당의 진실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문제는 종북주의만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은 노동자계급성의 상실이요, 자본가계급과 맞서는 투쟁성의 결여이다. 이점에서 문제는 NL주류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당파든 잔류파든, 자주파든 평등파든 함께 안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미 보았듯이 진보신당파 역시 민주노동당의 노동계급성 상실, 개량주의, 의회주의적 경향을 대표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분당파와 비대위가 떨어져 나가서 진보신당을 만든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신당은 시민운동세력과 보수정당의 개혁세력, 사민주의, 녹색주의, 자유주의 지식인 등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면서 전형적인 한국적 사민주의정치세력화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진보신당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대안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민주노동당을 민족주의적 사민주의당, 진보신당을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적 사민주의는 사민주의 나름의 원칙도 보이지 않는다. 4.9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대표적인 민주연합론자인 정성희가 비대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이수호가 당혁신특위위원장을 맡았다. 당의 얼굴인 비례대표후보로서, 1번을 비롯하여 상위 순번에 보수정당의 대표적 정치인인 정동영, 강금실, 문국현 지지자들을 내세워서 그중 2명을 당선시켰다. 총선기간 동안 일산시 덕양갑에서 통합민주당 한평석후보는 심상정후보에게 개헌저지선 확보와 대운하저지를 위해서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하자, 심상정후보는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자 노원병에서도 한나라당후보와 접전을 벌인 노회찬후보는 먼저 통합민주당 김성환후보에게 후보단일화를 압박하였다. 통합민주당 한평석후보가 단일화 제안을 철회해서 단일화는 실패하였지만 진보신당 상임 공동대표 두 사람이 통일민주당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적극 나섰다는 것은 이 당이 사민주의정당으로서의 자기 내용조차도 확보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서구에서는 1930-40년대 진보진영이 파시즘에 대항해서 자유주의 부르죠아 정치세력과 통일전선을 형성했지만, 2차대전 이후에는 파쇼정당 저지를 위해서나, 보수정당에 대항해서 공산당과 사민주의정당(사회당, 사민당)이 결선투표시 등에 연합하기도 하나 사민주의정당과 보수정당이 연합하지 않는다. 한국적 사민주의정당은 타락한 사민주의정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의 실패는 민주노동당에게만 그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민주노동당만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세력, 변혁세력은 더욱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민주노동당의 심각한 실패의 국면에서 대안을 제시하지도 대안세력으로 스스로를 세워내지도 못하였다. 사회주의 세력은 현실 정치운동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안세력의 주도권을 다시 사민주의 분당파-진보신당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사회주의세력은 대안적 강령도 조직도 실천도 없었다. 자본에 투항적이고 부패한 관료 정당운동, 또는 개량주의적 정당운동에 맞서서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여 대체세력으로 서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노동자, 민중 속에 강력한 변혁적 정치운동을 벌여온 것도 아니요, 조직을 꾸려낸 것도 아니다. 주류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세력, 이의제기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대안은 여전히 사회주의와 노동자계급운동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모든 개량주의와 타협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우리들에게 보다 철저한 반성이 요청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사명이 우리 어깨 위로 넘어오고 있음을 우리가 감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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