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노동자와 촛불시위
허 영 구(민주노총 부위원장)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투쟁은 지난 8월15일 제 100차 광복절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약화되었다. 피로도가 누적된 측면도 있지만 정권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진압에 대중들의 투쟁이 위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골단을 부활하고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쏘면서 끝까지 추적하는 상황에서 물리력을 갖고 있지 못한 일반 시민들이 이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국민의 건강권과 나라의 검역주권을 지키기 위한 100차례에 걸친 대중적 촛불집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로 기록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1500여명이 연행되고 30여명이 구속되었으며 2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가히 전쟁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명박정권이 들어서자 공기업 사유화를 중심으로 자본에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펼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투쟁을 예비하면서도 많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예견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발생한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으로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이는 곧 이어 시민들의 거대한 촛불시위로 발전하였다. 상반기 임.단투와 이명박정권의 구조조정에 대비하던 민주노총은 범국민대책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레 촛불시위에 결합하였다. 그러나 소고기 문제가 한미FTA의 연장선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반대투쟁과 달리 정세인식이 부족했고 투쟁을 주도적으로 준비하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은 촛불집회에 적극 결합하는 것을 주요 투쟁과제로 출발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청계광장에서 철야농성을 전개하면서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러나 현장의 일상 투쟁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퇴근 후 결합의 어려움으로 노동자들 다수가 촛불투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다 운수노조가 미국산 소고기 운송거부를 결의하자 네티즌을 비롯한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이미 국내에 들어와 냉동창고에 보관 중이던 미국산 소고기 유통을 저지하기로 하고 행동에 돌입했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긴 했지만 이 투쟁 역시 조직적 동원을 통해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파업이었다.
촛불투쟁 과정에서 시민들은 민주노총의 파업투쟁을 기대했다. 지난 1996년 말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이래 10년만의 총파업에 대한 지지가 예상되는 분위기였다. 100만 촛불시위가 있었던 6.10항쟁 21주년 기념일이 총파업을 단행할 최고의 시점이었지만 민주노총은 아직 총파업을 단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IMF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현장은 약화되었고 투쟁을 이끌 지도집행력 역시 부족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은 7월 2일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2시간 파업에 그쳤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은 이를 두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무관한 불법정치파업이라 규정했고 조.중.동을 비롯한 자본언론들은 불법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결국 이명박정권은 7월 24일 민주노총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민주노총 건물을 경찰병력으로 에워쌌다. 이는 실질적으로 파업을 단행한 금속노조 집행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광우병 범국민대책회의와 함께 촛불투쟁을 전개한 대중조직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는 이명박 정권의 치졸한 보복이자 그들이 추진하려 했던 사유화(민영화) 등 친자본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촛불집회는 100회 이후 매우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최고의 인기곡은 ‘헌법 제1조’였다. 헌법 제정 60년 만에 헌법조문이 대중 집회에서 이토록 강렬하게 노래로 불려 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매우 간결한 가사는 3개월이 넘는 집회의 성격을 명확하게 말해 주었다. 국가권력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이는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에 대한 시민저항이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은 건강권으로 표출되었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정신은 그대로 검역주권으로 나타났다.
촛불집회는 대통령 선거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정권을 임기 시작과 더불어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 힘은 ‘헌법 제1조’에서 나왔다. 그러나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제도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지만 결국 국민이나 민중의 권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왜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권력이 소수자인 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다가가지 못했다. 시민들은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내팽개친 협상결과에 대해 이명박정권을 규탄했지만 그 뿌리가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FTA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은 간과했다. 노무현정권과 이명박정권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인식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다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축산자본이나 사료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우병 소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협상이 타결된 점에 대한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한미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세계화를 위한 무한질주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한 경쟁과 효율이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이기에 광우병 소고기 역시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만들어 낸 과잉생산의 일부분이고 민중에 대한 재앙이다. 자본의 이윤추구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통해 민중의 재앙으로 결과한다. 따라서 한.미FTA비준을 위해 서둘러 타결한 한.미 소고기협상은 자본의 요구를 위해 양 국가가 대리인 역할을 했고 특히 이명박정권은 맨 앞장섰다.
민주노총 역시 가족의 건강을 위해 광우병소고기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점과 사업장에서 노동자 건강을 위해 식당에 광우병 소고기가 급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 투쟁을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자본은 일상적으로 자본파업을 단행한다. 신자유주의 정부의 성격은 명확하게 자본독재정권이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 한미FTA를 추진하고 한미FTA를 비준하기 위해 미국 축산자본의 음식찌꺼기까지 국내에 들여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노동파업을 조직하지 못했다. 혹자는 파업 대신 위력적인 촛불집회나 가두시위 참여가 현실적이라 주장하지만 현장의 고용불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야간 촛불집회에 나서는 것은 파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번 촛불시위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또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에 자발적으로 분출한 민중의 투쟁이 승리하거나 성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받아 안아서 궁극적 승리로 귀결시킬 조직된 주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야당은 작년까지만 해도 한미FTA를 추진한 정권의 여당이었기에 그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남는 것은 대중조직인데 그 중에서도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야 했다. 그러나 서두에서 지적한 바대로 그 정도의 정세인식이나 조직적 준비에 이르지 못했고 주변부에 머무르고 말았다. 소시민적인 헌법1조 노래를 따라가는 데도 벅찬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은 자신이 머리 숙여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촛불투쟁 단체와 개인들에 대한 보복과 함께 자본의 세계화를 위한 본격적인 정책을 추진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에 주어진 과제는 촛불투쟁에서는 그 중심에 서지 못했지만 향후 벌어질 자본의 대리자인 이명박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꺼져가는 촛불을 살려내는 길이 될 것이다. 헌법 1조를 넘어 헌법 126조가 규정한 국민경제상 필요시 법률에 의거 사기업에 대한 국유 및 공유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사유화(민영화)에 맞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촛불투쟁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기를 바랐던 수많은 민중들의 기대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시민들의 촛불을 횃불로 살려내는 길은 자본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력을 복원하는 길이다.
(<진보평론> 2008년 가을, 37호, pp.86~90에 게재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