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 대안운동
집권 초기에 대운하, 민영화, 0교시 수업과 영어몰입교육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밀어붙이려던 이명박정권은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포기한 미국과의 소고기협상으로 3개월 동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그러나 촛불투쟁이 소강국면에 접어들자 대국민 사과를 두 번씩이나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보복성 공격의 양태를 보이며 전면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먼저 경찰력을 동원하여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권력의 시녀인 검찰을 동원해 촛불투쟁을 주도한 단체의 간부들을 무자비하게 구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747경제를 이룩할 국가 최고경영자(CEO)에서 자본독재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강부자’, ‘고소영’으로 대표되는 특권집단에 기반해 권력을 잡은 이명박정권은 결국 그들의 정치.경제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먼저 재벌총수들을 특별사면하고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감면하면서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 한다. 자본독재를 수행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는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불법과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기업에 대한 사유화(민영화)를 대대적으로 진행해 나갈 준비를 완료했다. 국민의 기업인 공기업을 자본에 넘김으로써 세계주식회사인 다국적기업과 재벌이 한국경제를 용이하게 지배할 조건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완성하려 한다. 나아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을 지지한 가진 자들을 위해 수도권 아파트 전매금지 기간을 단축하고 종합부동산세를 낮추는 등 투기적 거래를 활성화 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100회 동안 열린 촛불집회 과정에서 단연 시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단순명쾌한 노래는 “헌법 제1조”였다. 헌법조문이 대중적인 노랫말이 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60년 만에 일반국민들이 헌법에 다가간 최초의 대중적 사건이었다. 이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그래서 지난 60년 동안 자신들이 뽑은 권력에게 소외당하고 탄압받았던 국민들이 권력의 주인은 국민 자신 스스로임을 자각하고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민간독재, 군사독재 그리고 교활한 신자유주의 민간독재-독재인지조차 잘 몰랐다-뒤에 찾아온 저돌적인 이명박정권의 국민무시 일방통행에 저항했다.
시민들은 가족들과 함께 국민의 건강권과 나라의 검역주권을 내팽개친 이명박 정권의 소고기 협상에 분노하며 거리로 몰려나와 ‘이명박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소고기 협상이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한미FTA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나아가 다국적기업의 본산이자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의 축산자본이나 사료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우병 위험 소고기를 한국에 들여오기로 합의한 사실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한 경쟁과 효율이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이며 그 본성이 바로 체제가 배태할 수 있는 모든 재앙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검역주권이나 국민건강권으로 표현된 광우병 소고기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의 이윤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헌법 제1조”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도 대한민국의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 선거를 통해서 만든 권력이 ‘민중권력’이 되지 못하거나 ‘부르주아 자본독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발제문의 논리와 일치한다. 이번 촛불투쟁이 궁극적으로 정권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은 형식이나 절차적 민주주의 투쟁에 초점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더 보탠다면 자본권력의 토대가 되는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생산을 중단할 노동자 파업을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본은 다양한 형태의 ‘자본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투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이전 민주노조운동은 국내독점재벌과의 대응에 집중했다. 재벌, 정경유착정권, 노동악법, 수구보수언론으로 포장한 총자본과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신자유주의시기를 거친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은 세계주식회사인 다국적기업, 파생금융상품의 극단적 형태인 초국적 금융투기자본, G8.WTO.APEC.FTA.IMF 등으로 표현되는 세계정부 기구, 미국의 달러 및 군사제국주의 등 급진전된 자본의 세계화와 정면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국가는 세계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리인인 세계정부 하에 있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노동을 탄압하고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자본독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명박정권은 그 극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 각 국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화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가나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현상은 개개인의 삶에서도 그대로 실현된다. 동서냉전체제 붕괴 이후 몰아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공동체적 삶은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를 해체시키고 공기업을 사유화(민영화)함으로써 자본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대안이 사회민주주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사회의 민주화운동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점진적이고 개량적 개혁보다 더 혁명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본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사회개혁’이나 ‘공공성 강화’와 같은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소유를 둘러싼 반자본주의 체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교육, 주택, 의료, 공공서비스 등에 대한 공공적 소유를 주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헌법 제1조를 넘어 헌법 제126조가 규정한 국민경제의 필요시 법률에 의해 사기업을 국유화 또는 공유화 할 것을 주장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국책은행을 비롯해 사유화(민영화)된 사기업의 재국유 또는 재공유화를 주장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추진하는 사유화(민영화)를 막아내야 할 것이다. 공공(무상)임대주택 건설, 무상의료, 무상교육, 금융의 공공성을 위해서는 택지, 병원, 학교, 은행 등에 대한 과감한 (재)국유화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발제에서 제기한 연대사회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기본소득제도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 볼만하다.
이제 노동운동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 머물며 생산과정의 근로조건 개선 투쟁이나 분배투쟁인 임금인상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요구를 넘어서야 한다. 첫째,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관점에 충실해야 한다. 자본운동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이 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법적으로 ‘제3자 개입금지’가 없어졌지만 자본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하고 있다. 셋째, 전 민중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자본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한다. 넷째, 투쟁의 기풍을 살려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투쟁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다섯째, 체제 변혁적이어야 한다.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에서 용기 있게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2008.8.29, 한국사회포럼, ‘신자유주의 대안의 정치’에 대한 토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