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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드러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북한 남침설
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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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8일 12시 08분 48초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일입니다. 무고한 민중들이 전두환 독재자의 총칼에 희생된 날이지만 아직도 5.18과 북한을 연관시켜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5.18 '북한 남침설'이 무엇이고 그 근거와 거짓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 남침설, 그 새빨간 거짓말' 북한 남침설은 1980년 5월 15일~20일 사이에 북한이 남침한다는 주장입니다. 박정희 사망이후에 가장 우려했던 북한의 움직임과 전쟁징후는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북한 남침설'은 많은 국민에게 공포를 주기 충분했습니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하고 국무회의까지 보고된 '북한 남침설'의 근거는 중국을 방문한 일본 고위관리에게 중국이 북한의 남침 계획을 제보했고 그 관리는 일본 방위청과 일본 내각조사실에 이 사실을 알린 것으로 나옵니다. 이후 일본 내각조사실(한국 중앙정보부에 해당)에서 북한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중앙정보부에 제공했고 이것이 '북한 남침설'의 근거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의 명분이 됐습니다. 그럼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던 '북한 남침설'의 근거를 하나씩 검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을 방문해 북한 남침사실을 들었다는 일본 고위 관리는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입니다. 그러나 나카소네 전 수상은 중국 방문중에 중국이 북한의 전쟁 동향이나 징후는 말한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내각조사실의 한반도 담당관은 중앙정보부에 북한 남침설을 말한적도 어떤 정보도 준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북한 남침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각조사실 한국담당 과장은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있자 일본내 외국,국내 언론 및, 미군,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북한 남침설'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중앙정보부의 문서에 나온 일본 내각조사실 담당자가 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앙정보부의 '북한남침설' 발표 이전에 주일 대사관으로부터 북한전쟁징후에 대한 전화 문의가 왔었고 자신은 그런 징후는 없었다고 말한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중앙정보부의 '북한 남침설'이 나온 뒤 5월 13일에 '북한 남침'에 대한 징후는 없었다고 본국에 보고했으며 당시 주미 대사도 미국 정보부와 국무성 등 어떤 기관에서도 '북한 남침징후'는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도 하지 않은 말과 정보를 가지고 중앙정보부는 '북한 남침설'을 주장했고 거짓말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5.18 광주학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5.18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의 허구' 북한 탈북자들이 방송에 나와서 5.18 시민군의 대부분이 북한군 특수부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 광주에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탈북자들과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만큼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기는 지면이 길어져 힘들어 주요사안에 대해 진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 전제조건의 허구성 탈북자들과 보수단체는 북한 특수군이 땅굴과 해상을 통해 침투해서 광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땅굴에 근무했던 군인들 수백명이 전사했어야 합니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땅굴로 침투 광주까지 내려갈수 있었다는 사실자체가 믿기 어렵습니다. 5월 21일 광주외곽봉쇄작전이 시작됩니다. 광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대한민국 3공수, 7공수, 11공수, 20사단, 31시단, 전교사가 모두 차단했습니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전국 곳곳에 배치된 군인과 경찰을 뚫고 또다시 공수부대가 막고 있는 광주 외곽을 뚫고 시민군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을 전제입니다. 북한 특수군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수백 명이 5월 18일 광주에 시위가 일어나자마자 침투하거나 광주외곽봉쇄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곧바로 투입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미군이 북한 동향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광주까지 오는 동안 미군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해상, 공중, 육상에 모두 미군과 한국군이 경계를 서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사실이 진실이라면 기밀문서가 해제된 지금 시점에서 분명 밝혀지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북한군 수백 명이 넘어왔다는 공식기록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 M1소총 총상 환자가 많은 이유 탈북자와 보수 세력은 유독 M1이나 카빈 소총 총상환자가 M16 총상 환자보다 많기 때문에 이것이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의 증거가 된다고 주장 합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광주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사인을 보면 M1이나 카빈 소총의 총상 환자가 M16 총상자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자 사인 보고서의 작성은 전두환이 장악한 보안사가 작성했습니다. 처음 광주지역 의사, 검찰, 보안사 요원이 작성한 검시 자료원본에는 오히려 M16사망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M1 총상 환자가 늘어났을까요? 이유는 피해자 보상문제 때문이었습니다. 5.18이 종료된뒤 보안사 주도로 사체검안위회원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보안사는 M16 총상 환자를 폭도로 분류했고 검안에 참가했던 의사 2명과 목사는 폭도로 분류될 경우 위로금이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양민(비폭도)으로 분류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처음 폭도로 분류된 사람은 20여명이 조금 넘었지만 (의사와 목사의 주장으로) 보안사는 이정도 비율이면 폭도수가 너무 적다고 해서 상호 합의하에 최종적으로 38명이 폭도로 분류됐습니다. 결국, 사체에 난 총상이 M16인지, M1인지 정확히 알수 없고 이것이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의 증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광주에서 죽은 한국군이 총 23명이었는데 그 13명은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사망했고 대략 7~10명 정도의 군인이 무장시민에 의해 죽었습니다. 수백 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들어와서 겨우 10명 미만의 한국군을 사살했다고 가정한다면 북한 특수군 개입설 주장은 헛된 증언에 불과합니다. ○ 탈북자 VS 기자의 시각 요새 종편 채널에 자주 등장해서 5.18 광주 당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입니다. 임천용은 언론에 나와 광주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침투해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증언은 그리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임천용은 2006년 한국논단에서는 북한군 450명이 그해 12월 기자회견에서는 1개 대대가 2007년 뉴스한국에서는 2개 대대 600명이 2013년 TV조선에서는 1개 대대 등 침투인원수가 매번 달라집니다. 여기에 침투방법도 배를 이용해 침투했다가 해놓고는 잠수함, 나중에는 땅굴까지 다양해집니다. 침투 인원, 침투방법, 생환자수 등이 매번 바뀌는 그의 증언을 믿기는 신빙성이 떨어지는데, 오로지 그의 주장이 진실인양 TV조선과 보수단체는 활용하고 있는것입니다. 1980년 광주에는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인들이 다수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정부에서 폭도와 간첩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해외 언론 기자들은 이런 정부의 발표를 검증했습니다. 그러나 간첩이나 북한 특수군의 개입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극우 논객중의 한명이었던 조갑제닷컴의 조갑제씨는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의 한 명입니다. 만약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면 조갑제를 비롯한 기자와 신군부가 모를리 없었고, 35년이 지난 시점에서조차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증언이 바뀌는 탈북자들의 말만 믿고 1980년 광주에 수백 명의 북한 특수군이 침투하여 민간인을 사살했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최소한 인간답게 생각하려는 행동에 있습니다. 1980년 광주에 있었던 아픔을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없고 오로지 권력과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사는 듯한 모습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광주를 경험했습니다. 그 아픔을 아직도 잊지 못해 가슴 한켠에 분노와 좌절, 그리고 한이 어린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위로를, 남아 있는 자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도 말도 안되는 왜곡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1980년 5월,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35년전 광주에서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넋에 고개 숙여 고마움와 미안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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