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농성 2692일차에 또 강제 철거 수난
오늘 오전 농성장이 침탈당하는 장면을 페이스북으로 지켜보면서도 달려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4.24총파업, 5.1 노동절에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모였다. 그러나 모인다고 모두 투쟁전선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치적 투쟁전선의 전면에서 싸우는 분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민주노총이 그 뒤에 서 있는 꼴인데 매우 미약한 대오다. 5월 1일~2일 경찰과 대치하며 안국동 거리에서 느낀 심정은 참담했다.
1946년 일주일간의 전평 총파업에서 1800명, 1947년 하루 총궐기 파업에서 2076명이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 전평의 총파업을 미군정과 우익세력은 탱크와 총으로 진압했다. 그 보다 미약했지만 1996~7년 정리해고에 반대한 노개투 총파업은 한 달간 지속됐고 규모나 성과 면에서 총파업이라 할 만 했다. 이번 4.24 총파업은 집행부가 96~97 총파업 이후 최대 규모인 26만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실제내용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다.
5월 1일 10만 상경투쟁을 목표로 했지만 수적으로 거기에 미치지 못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위력적인 가두투쟁의 전술이 없었다. 투쟁을 호언장담한 전투부대가 전선에 배치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종각 네거리가 전선이 아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정권에 맞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재능을 비롯한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적에 포위되어 탄압받고 짓이김을 당하고 있는데 들판에 평화롭게 모였다 흩어진다면 어찌 전투부대라 할 것인가?
대규모 집회 한 번으로는 당일 뉴스나 다음 날 신문에 한 컷 사진으로 끝이다. 노동절 날 한국노총도 여의도에 수만 명이 모여 행사를 했다고 하지만 자본과 권력에 위력적인 게 있었는가? 양대노총 임원들이 서로 교차하며 연대사까지 하는 등 상층교류가 활발하지만 현장은 민주노조를 둘러싼 복수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다. 노동운동에서 역사는 매우 중요하고 전략과 전술은 필수적이다. 5월 1일 노동절은 세월호 투쟁과 결합해 1박 2일로 진행됐다. 많은 청년·학생·알바노동자들이 연행됐지만 민주노총 지도부는 선두에서 싸우지 않았기에 연행자도 없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알바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활동하는 데 함께 했다. 최근 맥도날드 점거투쟁 등 비정규알바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전략전술기획이 없는 일회성 행사는 투쟁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특히 민주노총이 최전선에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한 조직적 책임을 지고 투쟁을 집중시켜 나가야 한다. 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투쟁의 현재상황이나 의미를 알려나가면서 연대하겠다. 재능 투쟁 승리의 그 날까지 함께 힘을 보태겠다.
* 노동절 투쟁이 끝난 5월 4일 오전에 사측이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 결정이 받아들여져 농성장은 강제 철거당했다. 몇 명이 물리력을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저녁 7시 투쟁 승리결의대회가 열렸고 여러 동지들이 달려왔다. 결의대회 중 다시 천막을 설치했다. 사측은 접근금지 등 여러 가지 법적 제재를 통해 압박하면서 다시 천막철거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2692일 동안 수십 차례의 폭력적인 철거를 버텨낸 학습지 동지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5.5.4, 학습지 재능 투쟁승리결의대회, 혜화동 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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