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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소통 공간, 총파업과 거리 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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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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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7일 17시 18분 4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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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소통 공간, 총파업과 거리 시위
허 영 구(알바노조 지도위원)
언론은 막장이고 대통령은 불통이며 세상은 먹통이다. 하루 수백만부의 조중동과 수많은 지면 신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KBS, MBC, SBS에 여러 종편과 수많은 공중파와 인터넷 매체가 저마다의 색깔로 말, 말, 말을 퍼붓는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하루 종일 뭔가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사회 각종 지수는 매우 부정적이고 그를 종합한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왜 그럴까?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농경시대를 생각해 보면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조차 공동체의 삶을 살지 않으면 개인의 낮은 노동생산력을 극복할 수 없었다. 서로 대면하고 소통하고 함께 하면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문화생활을 공유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던 사람들의 시대였어도 소통하면서 지혜롭게 살았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늘어나고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불통이 증가하고 있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고 노동은 자본의 착취 수단으로서 갈기갈기 찢겨져 연대와 소통은 점점 더 멀어졌다. 사람들은 가상의 소통에 익숙해지면서 고립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수백 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 왔다. 지금도 사업장과 노동 현장에서는 교섭과 법률적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공장과 직장은 평온해 보인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거리로 나설 때 세상은 노동자들과 소통한다. 오는 4월 24일 민주노총은 총파업에 돌입한다. 자본의 노동착취와 국가권력의 노동탄압을 호소하는 장이 열리는 날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이고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 서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소통’하는 말이다.
총파업은 총연맹이 전국적 전 산업에서 걸쳐 행하는 대규모 파업이다. 우리나라 130여년 노동운동 역사에서 이런 총파업은 50년 주기로 1946년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과 1996년 민주노총이 행한 두 차례다. 1946년 9월 24일~30일, 전평이 전개한 총파업은 조직된 노동자 25만명과 미조직노동자 5만명 등 30여만명이 참가했다. 당시의 노동자 수를 감안해 오늘날과 비교하면 수백만명이 파업에 참여한 셈이다. 1996년 12월 26일~1997년 2월 28일, 민주노총이 전개한 총파업에서 하루 이상 파업에 참가한 노조 531개, 조합원 수는 40여만명에 달한다. 대규모 집회는 30일간 열렸는데 총 150만명(하루 평균 5만명)이 참가했다. 총파업은 노동자들의 거리 정치이자 꽉 막혔던 것을 뚫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약한 지식인들은 대중들과 소통하기보다 책상머리에서 자신들의 머리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전망했기 때문에 지배자와 지배체제를 향해 끈질기게 싸우는 것을 중도 포기했다.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동력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배 시기 동경 2.8선언을 기초한 춘원 이광수나 3.1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이 친일과 변절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해방에 대한 전망이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골방에 앉아 머리로만 생각한 결과다. 착취당하는 피지배민중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투쟁하고 전망을 만들어갔다면 안중근 의사처럼 존중받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알바노조의 시급 1만원 쟁취 투쟁이나 맥도날드 점령시위는 500만 알바노동자들과 소통하는 총파업이자 거리 시위다.
(<월간만원>, 2015.4, 알바노조/알바연대, 게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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