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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483km, 30만 번의 절
허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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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9일 16시 03분 04초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483km, 30만 번의 절 잔혹한 죽음, 그 야만의 날이었던 4월 16일이 다음 달로 다가오고 있다. 304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수장한 바다는 오늘도 무심하다. 아직 9명의 실종자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여전히 팽목항에 머물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인심도 무뎌지고 정권과 권력은 사악할 정도로 더 무관심하다.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진상조사가 아니라 진상이 묻히길 그래서 역사 속 미궁에 빠지길 기다리고 있다. 아직 진도 앞바다에는 슬픔과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떠난 이들을 위로하거나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월 14일 오후 팽목항에서 세월호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안산을 출발한 도보 행진단이 20여 일간의 행진을 거쳐 도착한 시간이다. 원래 진도항이었지만 작년 4.16참사가 터지면서 언론이 보도된 대로 팽목마을의 이름을 따 팽목항이 되었다. 이 항구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인파라 할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전국에서 단체나 가족단위로 승용차나 관광버스로 속속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대한문에서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출발했다. 먼 길이었다. 작년 4월 16일 이 길을 따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려갈 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도대교를 지나 팽목마을에 들어서면서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마늘밭을 매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그들도 말없이 아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항구는 조용했다. 바다도 그랬다. 4월 16일 사고가 난 날도 바다는 호수처럼 조용했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사람을 구하지 않은 이 정권이 이 사회가 시리도록 아픈 바다로 살아 있다. 항구에는 수많은 노란 천과 띠에 염원이 새겨져 있고 가족들은 떠난 이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며 목 놓아 불렀을 흔적들이 서럽게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천리 길을 걸어 온 유가족들이 자리했다. 그들과 아파하며 걸어온 노동자시민들도 말없이 함께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다. 분노와 원한, 아픔과 서러움이 선명한 팽목항에 어두움이 깔리고 있었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해 절규하는 유가족은 피눈물을 토해낸다. “애들아 올라오렴, 엄마아빠 찾아 올라오렴”이라는 가사의 노래는 서러움 그 자체였다. 세월호 범국민대회는 광화문이나 시청에서 열린 것과 달리 더 숙연했고 더 아팠고 더 서러웠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떡국이며 주먹밥이며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도 함께 했다. 별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노란 풍선이 별이 총총한 밤하늘로 올라갔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다시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나 일요일 새벽이 되었다. 팽목항에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대회 현장에서 판매하는 책을 구입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240일간의 세월호 육성기록>(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창비, 2015.1, 347쪽), 이틀 동안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펼치고 닫을 때까지 내내 마음이 아팠다. 서러웠다. 여는 글은 말한다. “세상이 절망적일수록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뿌리가 같은 영혼의 나무다. 그래도 부모들은 걷는다. 이 기록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열 셋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르지 않은 샘처럼 아들 이야기를 쏟아낸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 죽은 뒤 지킨 딸의 약속 아빠와 함께 한 하늘 여행(헬기로 시신 운반할 때 함께) 2학년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씨, 빨리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2학년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씨, 세상에 딸하고 자기하고 둘 만 남겨졌는데 아이를 잃은 2학년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씨,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거야 2학년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 사이가 좋지 않다가 헤어진 게 노무 가슴아픈 2학년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씨, 대통령과 5분간의 통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긴 고통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씨, 남겨진 영상 그리고 진상규명을 향한 아버지의 사명 2학년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씨, 엄마없는 세상을 살아갈 딸을 걱정했는데 딸을 먼저 보냈어요 2학년 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씨, 내 마음을 자꾸 키워가려고 해요 2학년 7반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 장순복씨, 진도에 빈 자리가 많아지니 더 못 떠나겠더라고요 2학년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씨, 다영이는 어른스러웠어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죠 2학년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씨, 앨범 두 개도 못 채운 인생을 살았구나 2학년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씨. 그 외 모든 가족들이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책은 말미에서 ‘슬플 수만은 없는 연대기’를 말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작년 세월호 투쟁 때 참석한 건으로 세 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다. 그 중 한 번은 유치장 신세도 졌다. 경찰에 쫓기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다쳐 깁스와 목발을 짚고 다니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나면서 나에겐 절실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세월호 집회에 가끔 참석하고, 팽목항 다녀온 것으로 또 잊고 지내지만 세월호의 아픔은 그대로다.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난 2월 14일 팽목항을 다녀오고 그 때 샀던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읽으며 눈물콧물 짠 것 말고 난 그들의 아픔에 여전히 다가서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2월 23일부터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를 기다리다 지친 유가족이 팽목항을 출발해 광화문까지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483km, 천리가 넘는 길을 약 30만배가 예상되는 삼보일배를 하며 걷기 시작했다. 벌써 2주일째다. 그러나 도착은 언제일지 모른다. 그 기다림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외침은 여전히 진실처럼 묻히고 있다. 삼보일배로 고난의 행진을 하는 유가족들의 모습도 SNS상으로 잠시 볼 뿐 일상을 핑계로 지나치고 있다. 진정 아픔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수학여행 갔다가 결국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은 함께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 주변에 이 책이 더 많이 읽히도록 권유라도 해야 하는 데 그것조차 버겁다. 세월호 1주년 다시 거리에 나서며 진실을 촉구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자식과 소중한 가족을 잃었는데 왜 유가족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해야 하나? (2015.3.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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