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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결의
허영구
6067 8626  /  3817
2015년 01월 30일 11시 39분 54초
속리산 결의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속리산까지 가는 데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청주, 보은 터미널은 당연리 들렀고 중간 중간 완행버스처럼 손님이 내리고 탔다. 예전엔 보은에서 속리산 가는 길에 말티재가 버티고 있어 굽이굽이 넘었는데 몇 년 만에 지나는데 터널이 뚫려 있어 쉽게 도착했다. 수학여행이나 관광으로 번창할 때는 기념카드에도 있었던 고개였는데 이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다. 계절도 겨울이고 평일이라 그런지 속리산 법주사로 통하는 동네는 조용했다. 대합실에 들러보니 매표소 창구는 막혀 있고 매표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불은 꺼져 있고 연탄난로 하나가 약간의 온기를 전하고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을 찾았지만 대부분 불이 꺼져 있다. 겨우 불 켜진 식당에 들렀더니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주인 혼자 기다리다가 과객을 맞는다. 오는 길에 여유롭게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탄 지 3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보은을 지나간다. 여러 정류소 들러 사람들 타고 내리고...속리산에서 열리는 공공운수노조 수련회 가는 길. 이 정도 속도가 딱 좋은 데 우리는 지금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무한속도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생산과 소비의 노예가 되었다.” 식탁에 앉으려 하자 방이 따뜻하니 올라가라 한다. 방석으로 방을 덮어놓았으니 따뜻할 거라 한다, 올갱이 국을 주문했는데 나물이랑 반찬이 풍성하게 나왔다. 유명한 산이나 절 앞은 어디를 가나 산채비빔밥이 유명해서 그런지 나물이 그득하다. 부족하면 더 말하라고 한다. 바닥은 뜨끈뜨끈 했지만 등짝은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냉기가 느껴진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냐고 물었더니 작년 봄 세월호 참사 이래 학생들 수학여행이 중단되면서 장사가 안 되고 식당 대부분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선 뒤 다시 대합실에 들러 다음날 일찍 서울로 가야 하기에 배차시간표를 확인했다. 이제 대합실을 나와 수련회가 열리는 속리산유스타운으로 향했다. 속리산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위치한 이 곳까지는 걸어서 20여분 남짓 걸렸다. 간혹 차들이 지나칠 뿐 조용하다. 길에는 내린 눈이 쌓여 있다가 녹아내리고 풍경은 예전 그대로다. 시작 시간에 조금 늦게 공공운수노조 소속 공공기관노조간부수련회가 열리는 유스타운 강당에 도착했다. 내가 속한 지부 소개가 들린다. 해고된 지 6년이 넘었는데 지부장이 공석이라 지부장 대행을 하고 있으니 정년을 앞두고도 사업장 노조간부 역할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다니던 직장에 들어간 지 올해로 32년째가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수련회장에 들어서자 400여명이 강당을 꽉 메웠다. 작년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정상화 추진에 밀렸고 올해는 그 보다 더 강한 공격이 예상되는 터라 그런지 많은 간부들이 참가했다. 노동시장구조개선과 2단계 공공부문정상화를 앞두고 정부와 노조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대책’을 앞세워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을 공격하고 있다. 올해는 총체적 공세로 밀어붙일 채비다. 박정희 시대 유신정책을 학습한 분이니 어련하겠냐마는. 공공운수노조간부가 전체상황을 설명한다. 그 동지는 공공운수노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전문노련, 1989년 창립)때부터 함께 활동했으니 25년이 넘었다. 저녁 식사 전 현 상황에 대해 지혜를 모으는 분임 모임이 있었고 저녁 식사 후에는 문화제가 열렸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4월 총파업을 제안했고 공공운수노조위원장도 올해 정부의 공세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자고 호소했다. ‘용장약졸’, ‘파부침주’, ‘상병벌모’, ‘성승구전’ 등 전략전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자본이나 정권이 공격할 ‘철밥통’에 맞서 공세적 대응도 결의했다. 말하자면 ‘도원결의’처럼 ‘속리산 결의’를 한 셈이다. ‘속리산결의’를 말하고 나니 22년 전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가 주최해 이 곳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열린 2박3일간의 수련회가 생각난다. 추억이라기보다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말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건설된 민주노조들은 1990년 들어 (지역)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등 지역, 산업업종, (재벌)그룹별노조 연합체로 모이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5년 동안 2000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되는 상황이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전개했고 민주노조 총단결을 이루어나갔다. 이에 군사독재정권의 아류와 보수정치권 일부가 결합하여 민자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시작했다. 1993년 탄생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내세우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토대를 만드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은 1993년 6월 1일 전노대로 총집결했다. 네 조직의 대표를 공동대표로 오늘날 민주노총의 전신이라 할 전노대가 출범했다. 당시 나는 전노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민주노총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자가용이 많지 않아 노조나 지역별로 관광버스로 오거나 버스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노대는 연맹이나 산별노조의 상급단체도 아니었고 현재와 같이 가맹조직으로서의 형식적 규율성도 없었다. 그러나 수련회에 참가한 간부들은 결의에 차 있었고 서로서로 동지애를 확인했다. 연설과 토론 그리고 뒤풀이도 매우 열기 있게 진행됐다. 대합실에서 유스타운까지 걸어올 때 22년 전 그 날 아침이 떠올랐다. 수련회 이튿날 아침 참가자들은 모두 운동장에 모여 아침체조를 하고 법주사 입구까지 함께 달렸다. 아침 속리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힘차게 구호도 외쳤다. 당시 수련회 내내 한겨레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아침 단체로 뜀박질하는 사진이 한겨레신문에 실렸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대부분 자가용으로 수련회에 참가하는 시절이니 대합실에서 이 길을 걸어 오가는 사람도 없고, 1박 2일 수련회조차 뒤풀이를 하고 나면 자가용 타고 돌아가거나 술자리가 길어져 다음날 아침에 예전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다음날 새벽 6시 아직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은 적막한 길을 따라 걸으며 버스 타러 가는 데 지난 시기 전노대 수련회가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졌다. 그 때 수련회는 무슨 거창한 구호를 앞세워 도원결의를 하거나 총파업을 선언하지도 않았지만 결의에 차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쟁의지, 용기, 동지애, 자부심, 긍지, 진정성...같은 게 있었다. 전국노조대표자회의! 이름 그대로 회의체계였다. 독립된 사무실이 없어 전노협 사무실에 책상 하나 두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상근자도 딱 한 명이었다. 상근자 활동비는 15만원인가 했는데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필자가 업종회의 집행위원장을 겸하고 있었기에 업종회의에서 활동비 일부를 보조한 것으로 기억한다. 전노대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투쟁 구심역할을 하면서 민주노총건설을 향한 토대를 만들어나갔다. 1994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경희대학교에서 ‘민주노조총단결’ 깃발이 휘날렸고 민주노총준비위가 발족했다. 1995년 11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역사적인 민주노총을 창립했다. 올해가 20년째 되는 해이다. 민주노총 창립 2년 만에 신자유주의와 맞닥뜨렸고 17년 동안 질곡을 시대를 건너왔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반생명, 반환경 무한생산을 반복한다. 대중들은 자본주의소비구조 깊숙하게 빠져있다. 노동운동이 이런 방식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그대로 두고서 투쟁을 말할 수 없다. 지배자들의 분할통치전략에 맞설 수 없다. 투쟁의 결의하는 것만으로 승리할 수 없다. 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상응한 전략전술을 수립해야 한다. 전력전술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제반 조건이 준비되어야 한다. 전략을 세웠다하더라도 인적, 물적 조건 없는 투쟁선언만으로는 실행에 옮길 수 없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환골탈퇴, 노동운동혁신이다. 장시간노동체제와 노동시장이중구조라는 자본의 초과착취 구조를 그대로 두고 노동자단결을 말할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를 공고화하는 사적소유에 입각한 개인주의적 삶을 그대로 두고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새로운 ‘속리산결의’가 필요할 때다. (2015.1.23.~24, 속리산 유스타운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간부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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