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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자 박종철 열사 추모제에서
허영구
6042 9098  /  4024
2015년 01월 12일 15시 09분 10초
김시자 박종철 열사 추모제에서 오늘은 2015년에 첫 모란공원 열사묘역정비사업일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매월 두 번째 일요일에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와 몇 몇 열사추모사업회 그리고 좌파노동자회,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뜻을 같이하는 단체나 개인이 참여했다. 묘역정비사업은 잔디가 죽은 경우 새로 입히는 사초(死草)작업, 잡초와 이끼 제거 작업, 표지판 정비, 겨울철 동해방지 작업 등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일 년 한차례 추모제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묘역정비작업을 통해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다 간 열사들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일이다. 묘역정비를 위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해야 하는데 유가족과의 만남을 통해서 열사들에 대한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된다. 1월은 동절기라 묘소가 눈에 덮여 있거나 땅이 얼어 있어서 실제 작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해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올 한 해의 사업을 원활하게 할 운영체계를 마련하는 토론을 벌였다. 오늘은 1996년 한국전력노조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분신사망한 김시자열사 19주기와 1987년 전두환군사독재정권에 의해 타살된 박종철열사 28주기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 두 분 추모식에 참가했다. 먼저 김시자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당시 어용노조세력에 맞서 투쟁하다 분신한 열사는 공권력의 압박으로 화장 후 재마저 뿌려졌는데 열사대책위가 초혼제를 통해 이 곳 모란공원에 모셨다. 그 동안 김시자 추모사업회 주최로 열렸는데 오늘은 19년 만에 한국전력노조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추모제가 열렸다. 후원에는 한국전력을 포함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노조, 한전병원(옛 한일병원)노조도 함께 했다. 추모식 말미에 참석자들은 추모가 <동지를 위하여>를 불렀다. “(3절 중 1절)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는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죽이던 흐느낌도 피투성이 비구름 되어 진달래 타는 언덕 되어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민주노총 창립 후 두 달여 만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도봉구에 있는 한일병원에 많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장례투쟁에 참여했다. 나도 한일병원으로 달려갔고 동지들과 함께 했다. 20여 년 전 일이다. 그러나 거대 한국전력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었고 한일병원 지부는 매우 규모가 작았다. 한국전력 내 민주화 세력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독립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발전노조가 한국전력으로부터 독립해 민주노총 소속이 되었고 2002년 38일간의 산개파업을 전개했다. 김대중정권의 발전소 해외매각을 저지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김시자열사가 목숨을 바친 한국전력노조 민주화투쟁은 이후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어 박종철열사 2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박종철은 1965년 부산에서 박정기님과 정차순님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하고 ‘대학문화연구회’에 가입했다. 사당동, 가리봉동 등 거리 시위로 몇 차례 구류를 살았고 대림동 공단에서 공장생활도 했다. 왕십리 노학연대투쟁으로 구속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민주화 투쟁과정에서1987년 1월 13일 자정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연행 당해 고문당했고 다음 날 오전 11시 20분 경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갓 22세가 되지 않았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경찰의 새빨간 거짓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사망 3일 만에 강제 화장당해 임진강에 뿌려졌고 이후 초혼장을 지낸 뒤 모란공원 묘소에 안장되었다. 1997년 6월 그의 모교인 서울대 교정에, 2004년 5월 부산 혜광고에 추모비가 건립됐다. 2001년 2월, 서울대 제 55회 졸업식에서 명예졸업했다. 2009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박종철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기도에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면서 국가와 검찰의 사과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박종철열사의 죽음은 1987년 6.10 민주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곧 이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민주화의 재단에 바쳐졌다. 박종철 열사의 투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노동자 민중의 저항정신과 가깝게는 1970년 전태일열사를 비롯한 열사들의 투쟁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날 추모식에서 그의 29년 언어학과 후배가 추모시를 낭송했다.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솟아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 차가운 날 한 뼘의 무덤조차 없이 언 강 눈바람 속으로 날려진 너의 죽음을 마주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곁에 맴돌 빼앗긴 형제의 넋을 앞에 하고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 누가 너를 앗아 갔는가 감히 누가 너를 죽였는가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우리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끝까지 살아남아 목청 터지도록 해방을 외칠 그리하여 이 땅의 사슬을 끊고 앞서 나아갈 너는 결코 묶인 몸이 될 수 없음을 너를 삼킨 자들이 아직도 그 구역질나는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이 땅 이 반도에 지금도 생생하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너 이어 추도식 참가들은 박종철 열사가 생전에 좋아한 노래를 추모가로 함께 불렀다. <그 날이 오면>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피맺힌 그 기다림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모란공원은 1970년 전태일 열사, 유신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된 1979년 YH여성노동자 김경숙열사 그리고 1987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끝장 무렵 최악의 발악 과정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가들의 학살만행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박종철 열사로 이어지는 노동자민중 저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서려 있다. 모란공원 한 해 첫 출발은 김시자(1.13) 박종철(1.14) 두 분 열사의 추모제로 시작된다. 시신마처 탈취당하거나 강제로 화장당해 재로 뿌려지는 신세였지만 열사들은 정신만큼은 면면히 살아 우리들에게 역사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운동권이네 좌파네 하며 스스로 도취된 주문을 외면서 출세주의와 소영웅주의에 빠져 소시민적 삶에 안주하는 나약한 우리들에게 서릿발 같은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2015.1.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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