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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철학 공부"를!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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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4일 11시 05분 49초

엊그제, '살림터' 출판사를 통해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철학 공부'를 펴냈습니다.

 

똑똑한[생각 깊은] 고등학생뿐 아니라 보통의 20~30대 청년들도 읽어봄직한 내용입니다.

주변에 권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머리말 ; 배움에 큰 뜻을 품어라

1. 말과 앎 ; 앎을 얻어내는 길, 말과 생각

 

 2. 사랑과 정치 ; 성과 사랑, 누구나 나서야할 것이 정치다

 

3. 철학과 종교 ; 주마간산 동아시아 철학, 교회를 떠나라, 불교는 나침반이 돼 줄까.

  유물론과 관념론, 변증법

 

4. 돈에 대하여 ;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 돈을 벌어도 될까

 

 

 


  
전교조   엊그제, '살림터' 출판사를 통해 세번째 책을 냈습니다.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철학 공부' ;



똑똑한[생각 깊은] 고등학생뿐 아니라 보통의 20~30대 청년들도 읽어봄직한 내용입니다.

주변에 권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말과 앎 ; 앎을 얻어내는 길, 말과 생각



2. 사랑과 정치 ; 성과 사랑, 누구나 나서야할 것이 정치다



3. 철학과 종교 ; 주마간산 동아시아 철학, 교회를 떠나라, 불교는 나침반이 돼 줄까.

유물론과 관념론, 변증법



4. 돈에 대하여 ;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 돈을 벌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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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앎이 드물었던 옛날을 떠올린다 : 요즘 세상은 앎, 곧 지식知識이 넘쳐난다. 신문으로, 인터넷으로 온갖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TV를 켜면 또 갖가지 상품에 대한 지식이 흘러나온다. 또 과학기술문명이 맹렬하게 내닫다 보니 앎[지식]이 쉼없이 바뀌고 낡아간다. 심지어 방사성 물질만이 아니라 지식도 반감기[半減期: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를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수학이나 경제학의 기존 학설學說이 10년쯤만 지나면 낡아버린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어린 세대의 교육을 궁리하는 사람들 중에는 학교가 무슨 지식내용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기보다[그것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도 습득할 수 있단다], 수많은 정보 중에 가려서 새기는 법과 바뀌어가는 지식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 많다. 글쓴이는 교육과정 설계에서 그것, 곧 지식의 급속한 변화 추세가 으뜸가는 현안[=맞닥뜨린 일]이라고는 여기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배워야 할지, 더 깊은 궁리가 필요하다.

인류의 옛날을 돌이켜 보면 감회[느껴지는 바]가 크다. 요즘은 널린 게 책이요, 길거리에 나뒹구는 것이 인쇄물[광고 전단지]이지만, 글쓴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식을 담아내는 책이 귀했고 인쇄물이 드물었다. 2~3백 년 전에는 어땠는가? 인쇄시설이 몇 안 돼서 소설책 따위는 원본을 빌려다가 일일이 베껴서 끈으로 묶었다. 누가 그 책[필사본]을 빌려오면 다들 주변에 모여들었다. 대부분 까막눈[문맹]이었으므로 남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2500년 전에는 어땠을까? 그때는 동아시아에 갖가지 학문이 화려하게 꽃피어난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였다. 하지만 그 귀중한 학문과 사상이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제자弟子를 길러내지 못한 사상가들의 얘기는 후손에게 거의 전달되지 못했다.



옛날에는 지식[앎]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배울 책이 귀하고 선생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으며 게다가 전깃불도 없었던 옛날에는 눈물겹게 공부한 사람들의 일화가 많았다. 책을 반딧불에 비춰가며 읽은 어린이가 있었고,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학교 앞으로 이사 간 어머니가 있었다. 요새 교사[교육자]들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일이겠지만 옛날의 교육자들은 어버이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그때의 격언을 요즘 학생들은 공감할 구석이 도무지 없다. 그때는 값진 지식을 몇 안 되는 학자와 스승에게서밖에는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이니까 말이다.

그 옛날이 황금 시대일 리는 없다. 그때는 몇 안 되는 젊은이만 공부했고, 요즘은 누구나 학교에 다닌다. 그때는 자기 지역의 문화와 학문도 몇 사람밖에는 알지 못했는데 요즘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대다수 나라의 젊은이들이 안다. 그때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학문[또는 문자]의 세계를 얼마나 까마득히 먼 것으로 느꼈는지는 ‘부적’이 넌지시 말해준다.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 준다는 부적符籍은 사실 별것 아니다. 무슨 울긋불긋한 종이에 어떤 글자를 적어넣었을 뿐이다. 그때의 까막눈들이 지독한 ‘문자文字 숭배’에 빠져 있었기에 부적이 효험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어떤 감회가 찾아든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게 됨에 따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차츰 잃어가고 있지 않냐는 씁쓸한 감회 말이다. 무엇을? 앎[지식]은 참 소중한 것이라는 간절한 마음을! 그때는 훌륭한 분에게서 좋은 말씀 몇 마디 듣고나면 그 말씀을 두고두고 새겼다. 성경과 불경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그렇게 해서 전해졌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방송과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너무 많은 얘기를 퍼부어댄다. 다 고만고만한 얘기로 대수롭지 않게 들린다. 무슨 얘기를 들었다 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벅차 오르는 그런 경험을 우리가 별로 누리지 못한다. “다 그렇고 그런 얘기들!”





2.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그렇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한국 아이들이 무척 공부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러 나라 학생들을 견줘 보면 한국 초중고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잘 풀기는 하는데 싫증도 지독하게 느낀다. 그런데 고개 돌려 찬찬히 둘러 봐라. 문제는 어떡하면 학교 공부에 학생들이 재미를 붙이게 할까,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도, 아이들만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에 접어들어, 사람들 사이에 무지無知에 대한 의지will가 완강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있다. 과학기술문명이 온갖 골치아픈 부작용을 빚어내고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진중하게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가 보다. 이를테면 ‘생태계 파괴’에 대해 걱정하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걱정이 스트레스로 다가갔는지 사람들은 그 문제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고 그래서 물신적物神的으로 부인한다. “나는 [인류의 생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정말로 믿지는 않아. [그러니까 내 삶의 방식을 바꾼다든지 하는 결단을 내리지는 않을 거야]”

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버릇과 의지는 사회 지배층일수록 더 완강하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여러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의 대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면 그들의 버릇을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극해의 얼음이 너무 빨리 녹는다’는 보도가 나오면 ‘긴급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정부들도 이를 수긍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너무 겁먹지 말라’고 정부가 거꾸로 훈수를 둔다. 사태가 금세 좋아졌을 리 없는데 말이다. “북극의 자원도 캐내고 거기 사람도 살 수 있게 됐으니 다행 아니냐”고 물타기[초점 흐리기]를 곁들인다. 사태가 얼마나 나빠지고 있는지, 세밀하게 살필 성의가 없다. “내[집권자들] 죽은 뒤에 세상에 홍수가 나서 지구가 떠내려가건 말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생태계 파괴가 줄어들고 있다는 확증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들이 ‘겁먹지 말자’고 흰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어리석은 꿩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매에 쫓긴 꿩은 사람 마을로 달아나다가 더 피할 곳이 없으면 짚더미 속에 머리를 박는다. 꿩은 자기 눈에 매가 보이지 않게 돼서, 좋아라 웃는다.

인류가 새삼스레 겪는 문제가 이것이다. 책장만 들추면 하품부터 하는 아이들이 어찌하면 공부할 마음이 나게 만드느냐? 세상 현실을 똑바로 살피기를 꺼리는 어른들이 어찌해야 세상을 알고 싶어 하게 만들까? 인류는 새로운 고민과 맞닥뜨리고 있다.



3.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모를까? : 옛날에 저마다 자기 땅에 머리를 박고 농사 짓던 시절에는 사람이 꼭 알아야 할 것이 많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서도 그랬고, 지구촌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서도 그랬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사람의 지식이 산더미로 쌓이자 민중이 소화불량에 걸렸다. 옛날 선조들보다 쪼가리 지식은 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잘 모른다’는 열등감에 빠져 들었다. 옛날에는 의사가 따로 없어서 저마다 자기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다. 아는 게 많지는 않았어도 ‘나는 하나도 몰라!’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요즘은 제가 아는 게 많은데도 두려움이 크다. 의사한테 무슨 얘기를 들어야 안심한다. 요즘은 ‘전문가 시대’가 됐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과학은 과학자에게, 패션은 패션 전문가에게! 심지어 아이를 돌보는 것도 자신감이 없어서 걸핏하면 상담 전문가를 찾는다. 수많은 지식들을 감당할 줏대가 없어 민중은 그 지식들로부터 또다른 따돌림[소외]을 겪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라고 잘 알까? 골치 아픈 병에 걸려 병원을 찾아가본 사람은 안다. 이 병원, 저 병원 기웃거리다 보면 ‘의사들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대뜸 눈치챈다. 생태계 파괴가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놓고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갖가지다. 다들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 그 모양이니,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인류의 과학수준이 왜 이 정도일까, 새삼 돌아보게 된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낱말이 있다. 어떤 상황이 처음에는 느릿느릿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확 바뀌는 극적인 지점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미국의 국채[나라빚]에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데 이게 언제 확 가라앉느냐는 따위다. 우리는 경제 위기가 언제 터질지도 확실히 모를뿐더러 생태계 위기가 언제 확 불거질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뿐 아니라 생태계가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른다. 우리는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모른다! 과학기술이 현기증나게 발달했는데도 정작 그것이 낳는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역설적逆說的으로 깜깜하다.

2003년 이라크전쟁이 벌어졌을 때 [당시]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저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따져 봤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아는 것들이 있다[가령 이라크의 땅넓이에 대해 분명하게 안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안다[가령 이라크 대통령의 속셈을 우리는 분명하게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가령 이라크 정부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지도 모른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거기 하나 덧붙인다.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것이 프로이트의 ‘무의식unconscious’이란다. 럼스펠드는 이라크정부에 대해 자기들이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고 했는데[그 말이 엄살 아니었을까 싶지만], 사실 더 두려운 것은 ‘알려지지 않은 아는 것unknown knowns’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생태 위기에 대해 물신적物神的 부인에 빠져서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그것이다. 그게 먼저요, 생태 위기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다음 문제다. 둘이 뒤얽혀서 문제를 키워가고 있다.



4. 우리는 왜, 무엇을 알아야 할까? : 국가가 틀을 짜서 내놓는 학교 교과서들은 학생들이 지금 굴러가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무난하게 편입되기를 바란다. 정부 기구에 무엇무엇이 있는지 알아둬서 나이 어린 시민들께서 앞으로 잘 이용하기를 바라고, 자연과학이 내놓은 지식을 잘 습득해서 과학기술 문명이 굴러가는 데 한 몫 하기를 바라고, 적어도 국어와 산수의 기본은 익혀서 무슨 직장에 다니든 거기 그럭저럭 적응하기 바란다. 지금의 나랏님들께서 바라는 것은 거기까지다. 그런데 우리의 공부 목표가 그 정도쯤으로 머물러도 될까? 다들 최소한의 것[가령 누구나 공중도덕 지키기]만 해내면 충분한가?

우선 인류의 앞날이 그렇게 해서 넉넉하게 굴러갈지를 묻자. 앞서 [인류가 맞닥뜨린 복잡하게 뒤엉킨 문제들에 대해] 전문가들도 잘 모른다고 했고, 사회 지배층은 자기 앞가림에만 눈을 팔아서 그 현실을 똑바로 알려는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가방끈 짧은 대다수 민중이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 웃사람들[?]에게 세상 경영을 맡기고, 다소곳이 뒤따라 가기만 해서야 세상 꼴이 잘 풀릴 리 없다.

또 그렇게 해서 우리 개개인이 흐뭇하게 살 수 있을지를 묻자. 지식이 산더미로 쌓이는 세상에서 자신의 줏대를 세우지 못하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자기가 넉넉히 알아챌 수 있는 것도 남에게 묻는 어린아이로 살아가야 한다. 아는 것 많고 힘센 사람들에게 늘 휘둘리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사회가 엉망으로 치달을 때 그 결과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사람들은 [비행기 타고 자기들 별장으로!! 달아날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중이다.



우리 사회는 근래 들어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겪었다. 박정희[1961~1979]와 전두환[1980~1987] 군사 독재에 짓눌려 살기도 했고, 1997년 IMF 금융위기가 터져서 숱한 사람들이 졸지에 일터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앞날도 안갯속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미국 해군기지가 터를 닦는 것으로 봐서, 미중美中 두 패권국가의 다툼에 한반도가 볼모로 잡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계 전체로는 2008년 경제대공황이 터져서 여지껏 그 국면stage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20세기 중~후반에 독립국가도 많이 생겨나고 빈부 격차도 줄어들고 다소 형편이 피었다가 20세기말부터 전세계의 유산자[有産者, bourgeois]끼리만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정글 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 2008세계대공황이 [헬리콥터로 돈을 퍼부은 덕분에] 잠깐 주춤해졌는가 싶더니 다시 유럽발 경제위기[디플레이션의 악화]가 스멀스멀 꿈틀거리고 있다. 세상을 넓게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려운 세상을 뚝심으로 살아내기가 참 어려워졌다.

다시 말한다. 옛 민중은 제 논밭에만 눈을 가둬도 그럭저럭 살 만했다. 입에 풀칠할 근거, 또는 제 살림살이를 기댈 ‘비빌 언덕’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교에 다닐 필요가 별로 없었다. 지금 우리 대다수는 자기 것[=남의 집 살이를 하지 않고도 살아갈 버팀목]이 없지 않은가? 어디라도 찾아가 품을 팔아야 하고, 시장경제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변덕을 부릴 때마다 돈벌이할 길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간장을 태운다. 예전에는 비바람과 재난을 몰고 오는 자연세계가 무서웠다면 요즘은 우리의 밥줄을 쥐었다 놨다 하는 사회세계가 무섭다. 우리 대다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 인간 세상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신세다. 이런 신세에서 벗어나 대다수 민중이 불안에 떨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길을 얼른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은 이 커다란 과제를 두고 떠올려야 한다.



5. 자신의 무지無知를 자랑하라 : 그런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이를테면 ‘생태 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저 막연하게, 어렴풋이[!] 아는 것은 아무 쓸데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러저런 사실이나 의견이 다 올라와 있어서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생태계의 어제와 오늘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새로운 눈[!]’으로 세밀하게 살펴야 어떻게 문제를 헤쳐나갈지 가까스로 윤곽이 잡힌다. 또 왜 우리의 문명이 치달아온 길을 수정해야 하는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헤아려야 변화의 추동력을 얻는다. 실제로 세상을 바꿔내지 못하는 앎은 결국 ‘도로묵’이 아니냐.

또다른 얘기로 우리는 ‘북한에 인권이 없다’는 방송을 자주 듣는다. 그러니 북한 하늘에 풍선을 띄워서 그 나라를 얼른 무너뜨려야 할까? 남한이나 북한이나 어떻게 사회를 고쳐내야 인권이 ‘실제로’ 개선될지 깊이 헤아리지 않고서는 섣부른 앎이 오히려 민족의 미래를 그르치기 십상이다. 이렇듯 세상을 날카롭게 파헤치지 않고서는 쓸모있는[!] 앎을 얻기 어렵다. 자연과학을 알아도 똑바로 알고, 인간세상을 알아도 깊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공부의 목표가 높아야 한다. 제자백가[2500년 전]의 시대에는 전쟁의 도탄에 빠진 민중을 어찌 구해야 할지, 묵자나 장자 같은 몇몇 사상가들만이 고뇌했으나 지금은 몇몇 엘리트가 나서는 것만으로 될 일이 없다[3부에 실린 ‘주마간산 동아시아철학’ 참고]. 21세기는 민중 누구나 장자와 묵자가 돼야 한다. 옛날에는 젊은이들이 제 집안과 마을[나라]만 걱정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세계 전체를 걱정해야 한다. 그렇게 포부가 커야 세상 문제가 비로소[한꺼번에] 풀린다.



간추리자. 기성 주류主流 사회는 여러분더러 쪼잔한 그릇[사람됨]의 고만고만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대학입시 결과만 기다리면서 학창 생활을 보내라고 한다. 여러분이 자기 앞가림만 몰두할 요량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른으로서 이 세상을 주인답게 맞겠다면 세상을 통 크게 내다보는 눈길부터 틔워야 한다. 자기 앞가림만 골몰하는 사람은 자기 앞가림도 변변히 해내지 못한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자리를 우러르며 자기가 나아갈 길을 헤아린 옛 사람은 아마도 행복했으리라. 소박한 삶이나마 희망을 품고 살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발달한 인류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면서도 뿌우연 하늘과 불투명한 앞날로 하여 시대의 별자리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지혜의 눈을 틔우지 못한 젊은이는 언제 어떻게 비틀거릴지 모른다. 배움에 큰 뜻을 품어야 가까스로 길을 찾는다. 여러분은 어떤 뜻을 세우겠는가?


2014.12.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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